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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書齋 | 요리는 삶의 축제이자 인류 진화의 불꽃이다 

 

장석주 전업작가
음식에 숨겨진 인간 진화의 비밀 <요리 본능> vs 불·물·공기에서 찾는 요리의 사회문화사 <요리를 욕망하다>



남자이지만 가끔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한다. 두부탕수, 동파육, 스크램블, 비프스튜, 코코뱅(닭고기와 야채에 포도주를 부어 조린 프랑스 전통요리), 스키야키(일본식 전골냄비) 따위를 만든다. 조리도구를 잘 갖춘 주방을 진심으로 부러워할 정도로 요리를 좋아한다. “부엌[이] 인생을 예찬하고 온갖 즐거운 실험을 하게 만드는 장소”(<소식의 즐거움>, 도미니크 로로)임을 잘 아는 까닭이다.

몸은 감정의 보고(寶庫)이고, 사유의 원천이다. 돌이켜보면 한 개인이 가진 많은 행복한 기억은 누군가와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었던 때와 관련이 있다.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어머니가 부엌에서 김치전을 부칠 때면,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을 채웠다. 얼마나 조바심치며 그 맛있는 별식을 기다렸던지! 좋은 재료와 정성을 깃들여 만든 요리는 몸에 자양분과 원기를 채우는 일이자, 메마른 영혼에 천국의 기쁨을 수혈하는 일이다.

중세 페르시아 시인 하피즈는 “친구들, 포도주 한 병, 한가로운 시간, 꽃에 둘러싸인 곳…나는 세상을 준다 해도 이것들과는 바꾸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요리를 만들어 벗을 초대하고 그들과 환담을 나누며 오후 한때를 보내는 것은 즐겁고 풍요롭게 사는 한 방식이다.

사람은 먹어야만 사는 존재다. 인류는 태고 적에 단지 살아남기 위해 날마다 자연에서 수렵과 채취 활동을 하며 먹을 것을 구했다. 자연에서 날 것의 먹거리들을 구하던 인류가 불로 익힌 음식을 먹게 되면서부터 역사는 전과 다른 형태로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불은 날것을 익혀내는 물질 변성작용의 가장 중요한 매개다. 불이 인류 생활에 개입하면서 화식(火食)이 관습으로 굳어졌고, 인류 진화와 문명발달이 촉진됐다.

불을 이용한 요리, 인류를 바꿔놓다

요리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 중의 하나’이자 ‘인류 진화의 불꽃’이라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요리는 단순히 불로 날것의 재료들을 익혀 그 물리적 속성을 바꾸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날것을 익혀 인간의 욕망과 필요를 위해 자연을 변형시키는 요리는 인류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있는 문화적 행위다. 즉 인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인류는 “불로 요리하는 유인원이며, 불의 피조물”(<요리 본능>, 31쪽)이다.

진화생물학 연구자인 리처드 랭엄의 <요리 본능>은 요리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켰는지 매우 꼼꼼하게 다룬다. 이 책의 원제는 <불 피우기: 화식은 어떻게 해서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는가>(Catching fire: How cooking made us human)이다. 랭엄은 불로 익힌 요리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의 계기를 이룬 것을 짚는다. “‘불로 요리하기’는 우리가 먹는 양식의 가치를 높이고 우리의 몸과 두뇌, 시간 사용방법, 사회생활 방식에 변화”(14쪽)를 가져온 것을 논증하려고 몇 개의 가설을 제기한다.

우선 불로 익힌 부드러운 음식이 ‘진화 식단’을 채우게 됐다. 불을 써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자 신체와 소화기관, 소화효소에 변화가 일어났다. 익힌 음식은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 익힌 음식을 먹게 되자 인류는 더 작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도 소화를 잘 시킬 수 있게 됐다.

‘불로 요리하기’는 인류의 역사에서 커다란 도약점이 되었다. 불을 써서 요리하면서 음식의 질이 좋아졌고, 소화의 중노동에서 자유롭게 됐다. 뿐만 아니라 불로 먹기 좋게 조리한 음식은 뇌의 용량이 빠르게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화식은 오랫동안 뇌의 진화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 인류는 “독보적으로 큰 뇌”와 함께 “부실한 육체에 빛나는 정신력”(168쪽)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화식은 인류에게 더 많은 자유의 시간을 주었다. 아울러 요리를 통해 성별 분업이 이뤄졌다. 여자는 불을 관리하면서 음식 만드는 일을 전담하고, 남자는 바깥으로 나가 대형 포획물을 가져오는 일에 주력할 수 있게 됐다. 이렇듯 불과 요리, 인류의 진화 사이에는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랭엄은 <요리 본능>에서 인류학자들의 다양한 보고를 통해 요리가 인류 진화의 이점으로 현생 인류가 탄생하는 필요조건이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그와 더불어 요리가 새로운 사회적·생태적 관계를 이끌어냈음을 밝혀낸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폴란의 <요리를 욕망하다>는 요리의 사회문화사를 폭넓게 다룬다. 그는 요리를 하면서 “나는 요리가 사회적·생태학적인 관계, 즉 동식물과 흙, 농부, 우리 몸 안팎의 미생물, 그리고 요리로부터 양분을 공급받고 기쁨을 얻는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그물망 속에 우리를 끌어들이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29쪽)라고 썼다.

이 책에 앞서 <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의 행복한 밥상> 등을 펴낸 폴란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작가다. ‘불에 대한 지배가 우리 유전자에 각인된 요소이고, 인류 문화와 생명활동 자체에 깊이 상관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언급할 때, 폴란은 리처드 랭엄의 ‘요리 가설’을 그대로 따른다. “특히 요리에 쓰이는 불은 내가 앞마당에서 피우는 종류의 불로, 우리가 사회적 존재가 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137쪽) 불은 하나의 사회적 구심점으로 작용해서 인류를 공동체 생활로 이끈 요인이었다.

불·물·공기의 연금술이 빚어낸 요리

그는 인류가 냄비를 발명하면서 물에 삶아내는 다양한 요리법을 창안하게 되었음에 주목한다. 물을 끓임으로써 식물의 식용 가능성이 한층 넓어졌고, 요리법은 훨씬 더 다양해졌다. 폴란은 시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냄비의 상징성을 읽어낸다. “오목하고 내용물을 가려서 볼 수 없게 돼 있는 냄비의 내부 공간 자체”를 ‘집과 가족’의 상징으로 해석하며 그의 지적 섬세함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물에 대한 해석도 독창적이다. “요리에서 물은 창조적이고 파괴적이며 변화무쌍하다. 냄비에 갇혀 길들여진 물은 협곡과 해안을 깎는 격류에 비하면 강력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분명 놀라운 힘을 갖고 있다. (중략) 물은 하나의 재료에서 분자를 추출해 확산시켜 다른 재료에 있는 분자들에 영향을 주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화학적 고리가 끊어지고 새로운 고리가 만들어지면서 향이나 맛 또는 영양분이 생길 수 있다. 냄비 안에서 물은 열뿐만 아니라 맛을 전달하는 매개이며, 향신료와 다른 조미료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맛이 느껴지도록 한다.”

요리는 ‘음식을 먹는 자’와 ‘세계’를 연결한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한마디로 요리는 불꽃의 창조물이고, 인류는 그가 먹은 것들의 창조물이다. 폴란은 해박한 지식과 유머를 버무려 빵 굽기와 발효식품을 만든 경험을 흥미진진하게 펼쳐놓는다.

미식가로 유명한 프랑스의 요리 거장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알려주면 당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는 말을 남겼다. 음식이 그것을 먹는 사람의 정체성을 만드는데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다. 요리, 그것은 인류의 본능이자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축제’로 만드는 기술이다. 요리는 만드는 자와 먹는 자 모두가 즐거운 행위다. 수산물 시장에서 우럭과 숭어, 전복을 산 뒤 맛난 해산물 요리를 만들어 가까운 벗과 나눠 먹고 싶다.

201406호 (201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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