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책갈피 |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 시로 읊으면 감동 두 배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최종철 교수의 최초 ‘운문번역’ 셰익스피어 전집 출간 시작…번역사의 신기원, 2019년까지 10권 완간 예정



올해는 셰익스피어 탄생 450년이 되는 해다. 그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대 발전하는 런던의 모습을 보며 도시 속 군상을 성찰했다. 시대를 종횡으로 넘나들지만, 그의 작품엔 근대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국가를 넘겨줘도 셰익스피어 한 명만은 못 넘긴다”라는 최고의 찬사를 남겼다. 괴테 역시 “나는 그의 포로가 됐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나 번역본을 읽는 국내 독자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다. 그에 대한 세상의 열광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번역의 한계일 수도 있고, 고전이 읽히지 않는 시대의 서글픈 흐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치 귀신들린 것처럼 구사되는 셰익스피어 언어의 향연은 경이롭고 두려운 것이다. 인간의 내면세계를 그토록 강력하고 세세하게 표현한 작가는 전무후무다. 주관적 평가가 아니다. 셰익스피어 탄생 450년, 문학과 연극을 포함한 인류의 근·현대 예술사가 웅변하는 ‘객관적 현실’이다.

탄생 450년을 맞아 연세대 영문학과 최종철 교수의 최초 ‘운문번역’ 셰익스피어 전집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4월 26일 탄생 기념일을 맞아 우선 두 권이 출간됐고, 5월 말 다시 두 권을 출간해 독자들을 찾아간다. 최 교수가 20년 동안 연구해온 결과물이 육중한 볼륨의 전집으로 탄생하는 과정으로, 중견 출판사 민음사가 심혈을 기울이는 대형 프로젝트다.

셰익스피어 희곡은 대사의 절반 이상이 운문 형식이다. 따라서 운문 형식의 대사를 우리말로 어떻게 옮기느냐 하는 문제가 번역 작품의 깊이와 감동을 결정한다. 최 교수는 1993년 처음으로 <맥베스>를 운문 번역하면서 우리 시의 기본 운율인 삼사조(三四調)에 적용했다. 운문 형식을 그대로 살리면서 원문을 최대한 정확하게 번역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대사의 절반 이상은 운문 형식이다. 4대 비극 중에서도 <햄릿>과 <리어왕>은 75%, <오셀로>는 80%, <맥베스>는 95%가 운문 형식의 대사로 이뤄져 있다. 대사에서 운문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희곡도 전체 38편 가운데 22편이나 된다.

최 교수의 <맥베스> 번역 이후 다른 학자들의 운문 번역이 몇 번 시도되었지만 주목을 끌지 못했다. 원칙을 지키지 못했고, 번역의 이론적 근거도 박약했다. 산문보다 운문 번역이 훨씬 힘든 작업이다. 리듬감과 운율, 자음과 모음의 수등을 고려해야 한다. 아마도 한 줄을 번역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빛난다고 다 금은 아니다/ 그런 말을 여러 번 들었겠지/ 나의 이 겉모습을 보려고/ 많은 이가 목숨을 팔았다.”(<베니스의 상인>), “온 세상이 무대이지/ 모든 남자여자는 배우일 뿐이고/ 그들에겐 각자 등장과 퇴장이 있으며/ 한 사람은 일생 동안 많은 역을 하는데/ 나이 따라 7막을 연기하네.”(<좋으실 대로>) 등 여러 작품이 최 교수의 손끝에서 재탄생했다.

셰익스피어 운문 전집은 2019년까지 총 10권이 완간될 예정이다. 셰익스피어 읽기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50년 전 발표된 비틀스의 음악을 들을 때와 비슷하게, 언제 읽어도 현대적이란 느낌을 받는다. 진정한 고전이 갖는 힘이다.

201406호 (2014.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