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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여름철 부패 방지의 특효약 고수 

비타민 A·B·C, 마그네슘, 철은 물론이고 항(抗)세균물질도 가득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날씨가 더워지니 뜬금없이 몸서리치는 까마득한 옛 일 하나가 아련히 떠오른다. 이렇게 종종 까맣게 잊었던 기억이 스멀스멀 기지개를 켜고 깨어나는 수가 있다. 대학교수 시절에 학생과장이라는 보직을 맡아서, 어느 해 여름방학을 맞아 총학생회 학생들을 데리고 그 더운 타이완을 갔다. 솔직히 말하면 5공 시절에 학생들을 회유하느라 그렇게 외국여행도 시켰다. 외국여행이 거의 없었을 때라 1주일간 메스꺼운 현지 중국요리를 질리도록 먹느라고 넌더리 나고 혼겁해서 죽는 줄 알았다(요즘은 여행지 음식이라도 여행객 입맛에 맞게 바꾼 경우가 많다). 된통 당했으니 그럴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말이 맞다. 푹푹 찌는 날씨에 기름에 볶아 내는 역겨운 음식, 다시 생각하기 싫은 억장 무너지는 음식 추억이다.

식성이 아주 까다로운 한 여학생은 안쓰럽고 민망스럽게도 한 주 내내 오로지 ‘미반(米飯, 쌀밥)’과 혹시 몰라 준비해서 가져간 고추장으로 살았다. 더 기막힌 사건이 있었으니, 그렇게 밥을 못 먹겠으면 컵라면을 사먹으라고 넌지시 일러 주었겠다. 하지만 거긴들 중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빈대 냄새 나는 메스꺼운 향신료 고수풀이 들지 않았을 리 없다. 그 선생에 그 학생들이다. ‘교수님 탓에 돈만 날렸다’며 심드렁해 하는 학생들에게서 지청구를 듣기는 당연지사. 아무튼 고수풀은 중국 사람들을 사로잡는 양념감의 하나로 향채(香菜)라 하여 거의 모든 음식에 넣어 먹는다.

고수(Coriandrum sativum)풀은 미나리과의 한해살이 풀로 ‘호유(胡荽)’, ‘향유(香荽)’ 또는 잎에서 고약한 빈대 냄새가 나기에 ‘빈대풀’이라고도 하며, 서양인들은 그것을 비누 냄새(soapy)로 느낀다고 한다. 생김새는 미나리를 닮았으나 미나리보다 잎이 더 잘고 가느다랗게 찢어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절에서 많이 재배하고, 멀리까지 강한 향기를 풍긴다. 원래 ‘풀’이란 뜻인 허브(herb)로, 키가 30∼60㎝로 자라고, 줄기는 곧고 가늘고, 속이 비어 있었다. 고수에 꾀는 특별한 해충은 없으나 제비꼬리나비(swallowtail butterfly)가 고수잎을 갉아먹는다. 꽃은 6∼7월에 가지 끝에서 넓적하게 부채형으로 나와 끝마디에 꽃이 달리며, 각 꽃차례는 3∼6개의 작은 꽃자루로 갈라져서 10개 정도의 흰 꽃이 달린다. 꽃잎 5개, 암술 1개, 수술 5개이고, 열매는 구시월에 맺으며, 처음에는 녹색이다가 차츰 황갈색으로 익는다. 둥글고 황갈색인 꼬투리 속에 10개의 등성이(능선, 稜線)가 난 씨가 2개 맞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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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호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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