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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특집] 4당 비례대표 ‘말번(末番)’ 당선인들의 롤러코스터 판세 감상기 

지옥과 천당을 몇 번씩 오갔다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20대 총선은 이변 그 자체였다. 기존의 예측은 철저히 깨졌다. 당초의 지역구·비례대표 의석 전망도 부질없었다. 오로지 개표 결과만이 진실을 말해줬다. 정당득표율에 목을 멘 비례대표 후보자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수치에 눈을 떼지 못했다. 특히 여야 4당 말번 당선인들은 그 순간순간에 애간장이 녹았을 것이다
새누리당 17번 김현아 |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 “19번 이어 18번도 무너지자 드디어 내 차롄가 싶었다”

새벽 5시 당선 확실시된다는 방송 보도조차 믿기 어려웠다


▎새누리당 김현아 당선인은 공무원이 국민에게 찾아가서 정책을 홍보하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출구조사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아, 세상에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구나…’라는 생각이 스쳤지요.”

20대 총선 새누리당 비례대표 말번(17번) 당선인 김현아(47)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도 개표 과정을 떠올리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선거를 앞둔 각종 여론조사는 새누리당의 낙승을 예고했고 비례대표도 20번까지 안정권으로 평가받았다. 막상 출구조사 결과는 잔칫상에 던져진 ‘폭탄’과 같았다. 새누리당 예상 의석수는 지역구 106~124석, 비례대표 15~19석.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 개표 상황실은 일순간 무거운 침묵에 잠기면서 곳곳에서 탄식과 신음이 흘러나왔다.

현장에서 TV 모니터를 지켜보던 김현아 연구위원도 뒤통수를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투표 당일까지도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커트라인을 놓고 행복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못 먹어도 20석, 잘하면 한두 석은 더 건지리라는 게 지배적 분위기였다. 17번을 배정받은 김 연구위원도 당선을 의심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미리부터 인사를 건네는 이들도 적지 않아 본인도 그런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하지만 출구조사 결과와 함께 TV 화면에 뜬 ‘15~19’라는 숫자는 세상을 온통 잿빛으로 바꿔놓았다. “정말 아찔했죠. 설마 하는 생각과 함께 낙선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김 연구위원은 20여 년간 주택, 부동산, 도시정책 분야 전문 연구자로 활동하면서 한 가지 목표를 잡았다. 가칭 ‘정책 사용설명서’를 만들고 싶어졌다. 국민은 늘 공무원들의 무사안일, 복지부동은 탓하면서도 정부가 만들어놓은 정책과 제도를 활용하는 데는 무심한 게 안타까웠다.

이를 테면 복지 정책만 해도 여와 야가 따로 없다. 연 100조 원을 쏟아 넣는다. 하지만 정책이 공급자 중심으로 가다 보니 제도를 만들어놓고선 필요한 사람에게 가져가라는 식이다. 정책을 아는 사람은 혜택을 누리고 모르는 사람은 소외되는 게 대한민국의 행정이다. 그래서 각종 보조금이나 예산을 부정 수급하는 일까지 빈번한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서 정책을 알리고 활용토록 하는 쪽으로 정부의 정책전달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싶어서” 국회 입문을 결심한 그에게 생각지도 않은 복병이 등장한 것이다.

밤이 깊을수록 패색이 짙어졌고, 당사도 파장 분위기로 흘렀다. 텅 비다시피 한 선거 상황실을 줄곧 지키던 그도 밤 10시 넘어 자리를 떴다. 이때만 해도 새누리당이 지역구에서는 밀려도 비례대표 19번은 문제없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축하 전화에도 ‘안 되면 어떡하나’ 안절부절


▎김현아 당선인(왼쪽)은 선거운동 기간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들과 함께 LH 마이홈센터 찾아 주거 복지 관련 현안을 파악했다.
그런데 웬걸! 집에 와서 보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비례대표 의석을 결정짓는 정당득표율에서도 새누리당이 슬금슬금 주저앉기 시작했다. 믿었던 19번이 아웃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18번마저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 다음은 김 연구위원 차례. 조금씩 내려가던 정당득표율이 마침내 자기 순번(17번)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가 새벽 5시. 일부 언론에서 그의 당선을 예고하는 방송을 내보냈고 친지, 지인으로부터 축하 전화가 빗발쳤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그는 축하 인사를 정중히 거절했다. “안 됐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김 연구위원과 부군은 선관위 개표가 완료되던 아침까지 불안과 초조 속에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세웠다. “아침 7시쯤일까요? 선관위 개표 결과 새누리당 비례대표 커트라인이 17번으로 확정됐어요. 그제서야 우리 부부는 격려의 포옹을 나눴어요. 며칠에 걸쳐 받을 스트레스를 한나절에 다 받은 탓인지 갑자기 온몸에 피로가 몰려왔어요.”

이렇게라도 당선된 사람은 행복하다. 당초 안정권이라 믿었던 김 연구위원 뒷 순번 후보들은 날벼락이 따로 없다. 김 연구위원도 마음이 무거웠고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지역구 공천자들은 현지에서 전쟁을 벌이고, 비례대표 공천자들은 권역을 나눠 지원 유세를 펼치거나 전문지식을 활용한 공약 개발에 투입된다. 새누리당이 제시한 ‘가계부채와 주거문제’ 공약에는 김 연구위원의 아이디어가 녹아 있다. 지역구 TV토론에 나가는 새누리당 후보들에게 주거, 부동산 관련 자문을 해주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20대 국회에서는 ‘보유’에서 ‘임대’로 전환하기 시작한 주택시장의 구조 변화와 관련한 입법 활동에 매진할 계획이다. 부동산 관련 법령 대부분이 개발시대, 보유 중심으로 정비됐기에 손댈 게 많다. 또 전월세난,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가 올라 저소득층이 도심에서 밀려나는 현상), 도시재생도 그가 관심을 두는 분야다. 김 연구위원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연구를 평생 해왔다”면서 “이제는 그 일을 국회에서 구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더민주 13번 정춘숙 | 전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 “심상치 않았던 호남 민심, ‘이번 선거 쉽지 않겠다’고 느꼈다”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이끌어낸 24년 경력의 인권 전문가


▎유세현장의 정춘숙 전 대표. 그는 향후 더민주 정당 지지율을 19대 총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우선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겠다.”

20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말번(13번) 당선인 정춘숙(52) 전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도 출구조사 결과에 한숨을 내쉬었다. 더불어민주당 정당득표율이 국민의당을 압도하지 못할 것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전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지상파 3사(KBS·MBC·SBS)가 공동으로 실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더민주는 11~14석을 얻는 데 반해 국민의당은 이보다 1석이 많은 12~14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다.

개표 결과 더민주는 최종 정당득표율 25.5%를 얻어 새누리당(33.5%)와 국민의당(26.7%)에 이어 3위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결국 더민주는 비례대표 47석 중 13석을 가져갔다. 이는 19대 총선 당시 더민주의 ‘전신’ 민주통합당이 정당득표율 36.45%를 얻어 비례대표 21석을 확보했던 데 비하면 무려 10%포인트 안팎의 지지율이 빠진 수치다.

이에 대해 정춘숙 당선인은 “사실 선거 전 당내에서는 ‘비례(대표)는 적어도 15~16번까지 당선가능성이 있다’며 낙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라고 전했다. 때문에 우연히 그를 만나는 당원마다 “비례대표 13번 순번은 당선된 거나 마찬가지”라며 축하인사를 미리 건네오는 일도 잦았다.

그때마다 그는 “더민주가 지역구에서는 선전할 수 있어도 정당득표율에 있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 같다”라며 신중하게 응대했다. 정 당선인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어떤 예감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스토킹 방지법 만들겠다”


▎20대 총선 더민주 비례대표 말번 당선인 정춘숙 전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정치를 하는 게 정치의 목표가 되면 안 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선전하는 분위기였던 터라 ‘이거, 쉽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 당선인이 24년간 몸담았던 ‘한국여성의전화’는 현재 25개 지부와 5000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전국적인 여성단체다. 그는 총선 직전 초조한 마음에 여성의전화 호남 지부에 직접 물어봤다고 한다.

“진심은 통하겠지”라며 내심 ‘반전’을 기대했지만 호남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탓일까? 비관적인 답이 돌아왔다.

“이곳(호남) 분위기가 사실 많이 안 좋다. 문재인 대표가 방문했지만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결국 총선 당일 뜬눈으로 밤을 새운 그는 자신이 말번으로 당선됐다는 것을 듣고 안도감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불길했던 예감대로 당 지지율이 낮게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 당선인은 “개인적으로 당 지지율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며 정당지지율을 19대 총선 당시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민이 지역에서 더민주의 손을 들어준 것은 전략적인 선택일 뿐이지, 더민주를 믿어서 밀어주신 건 아니다. 반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민주가 예상보다 낮은 정당득표율을 얻게 된 원인에 대해 그는 20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명단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나온 잡음을 꼽았다. 특히 장애인 전문가가 단 한 명도 비례대표로 선택되지 않았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중앙위원회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정할 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전략적인 배려가 부족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실제로 이번 더민주의 비례대표 명단에는 19대 총선 당시 당선권인 1~20번에 포진했던 시민사회·운동권 출신이 대거 배제됐다. 당선권에는 정춘숙 전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비(非) 당선권에는 제윤경(44) 주빌리은행 상임이사 정도가 이름을 올리는 데 그쳤다.

최근 국회의원 당선증을 받고서야 당선인 신분을 실감하게 됐다는 정 당선인은 “정치를 하는 게 정치의 목표가 되면 안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데이트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스토킹방지법’을 자신의 1호 법안으로 발의할 예정이라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 김포그니 기자 pognee@joongang.co.kr

[총선특집] 국민의당 12번 이동섭 | 서울시태권도연합회장 - “TV 자막에 이름 뜨는 순간 아내와 함께 펑펑 울었죠”

역대 총선에서 2번 낙선, 4번 낙천 끝에 당선된 ‘6전7기’ 오뚝이


▎7번째 도전 만에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 이동섭(오른쪽) 국민의당 비례대표 당선인은 “태권도를 발전시키는 법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4·13 총선 기간 지원유세를 펼치고 있는 이 동섭 당선인.
이동섭(59) 국민의당 비례대표(12번) 당선인은 총선이 치러진 4월 13일 아침, 일찌감치 투표를 마친 뒤 아내와 함께 경기 파주시 조리읍 오산리로 향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이 당선인 부부는 오산리의 한 기도원을 찾아 눈감고 두 손을 모았다.

기도 덕분이었을까. 싱숭생숭하던 마음은 한결 차분해졌다. 마음을 가라앉힌 이 당선인 부부는 ‘이번에는 반드시 되겠지’라는 믿음을 손에 쥐고 오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6시,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 결과 발표에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당선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아내와 함께 차분히 개표방송을 봤습니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비례대표 12번 공천을 받아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 이 당선인은 경찰 출신의 태권도인이자 정치인이다. 국민의당 대외협력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서울시 태권도연합회장 겸 서울시체육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20대뿐 아니라 역대 국회를 통틀어서도 ‘공인’ 태권도 9단은 이 당선인이 유일하다.

이번 총선을 통해 처음으로 금배지를 단 이 당선인이지만 야권에서는 제법 알려진 인사다. 그는 민주당 노원구 지역위원장 6차례, 전국청년위원장 5차례, 중앙당 사무부총장과 부대변인 등을 지낸, 말 그대로 정당인으로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비례대표 본연의 전문성 살리겠다”


▎이동섭 당선인은 인터뷰 도중에도 감격에 겨워 여러 차례 목이 멨다.
그런 이 당선인이지만 비례대표 순번은 12번에 그쳤다. 3월 23일 비례대표명단 발표 당시 국민의당은 6번 정도를 당선 안정권으로 보고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의 측근인 이태규 전략홍보본부장을 ‘마지노선’이라 할 8번에 배치했다. 10번 이후는 당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냉정한 평가였다.

이 당선인은 “12번이라는 말을 처음 듣고 이번에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국민들의 변화 열망과 안철수 대표의 힘을 확인했고 기대감도 높아졌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바람대로 4·13 총선 정당투표에서 국민의당은 26.7%를 얻어 33.5%의 새누리당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근소한 차이이긴 하지만 국민의당은 더불어민주당(25.5%)을 제쳤다. 이에 따라 비례대표 총 47석 중 새누리당이 17석,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각각 13석, 정의당이 4석을 가져갔다.

총선 기간 이 당선인은 노원구를 중심으로 한 서울지역 국민의당 출마자들의 지원 활동을 폈다. 안철수 공동선거대책 위원장의 비서실장이기도 한 그는 안 위원장이 서울을 비울 때 마이크를 잡고 동료들의 지원 유세에 나섰다. 자신이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아니었지만 목이 터져라 외치며 한 표를 호소했다.

“총선 전에 이미 당선 가능성을 봤다”는 이 당선인이지만 막상 TV 자막에 자신의 이름 석 자가 뜨자 북받치는 감격을 억누를 수 없었다.

“4월 13일 자정을 지나자 국민의당 비례대표 예상 당선인 명단에 제 이름이 보이더라고요. 내심 기대는 했지만 막상 제 이름을 보는 순간, 아내와 함께 말없이 펑펑 울기만 했습니다.” 4월 15일 오후 <월간중앙>과의 인터뷰 중간중간에도 감격에 겨운 나머지 이 당선인은 몇 차례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당선인은 자신을 ‘6전 7기의 오뚝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총선에 두 차례 출마해서 낙선의 고배를 들었고, 네 차례는 본선에 진출조차 못한 채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이 당선인은 누구를 원망하기보다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았다고 했다.

“제가 비례대표에 지원한 것은 정치적으로 뭘 하겠다는 것보다는 태권도인으로서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해외 여러 나라에서 국위선양에 애쓰는 태권도 사범들을 위한 지원법 제정, 낡고 비좁은 국기원 재조성 사업, ‘한류 원조’인 태권도의 관광·문화상품화에 앞장서겠습니다.”

-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총선특집] 정의당 4번 윤소하 | 정의당 전남도당위원장 - “3개 상임위 담당한다는 자세로 뛸 것”

두 자릿수 의원 배출, 두 자리 정당득표율 실패… ‘삼파전’ 선거에 소수정당 정책홍보에 한계 절감


▎비례대표 4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윤소하 정의당 전남도당위원장은 “20대 총선은 새누리당의 오만과 독선, 불통의 정치에 국민이 심판을 했지만 소수 진보정당 입장에서는 제도 측면에서 상대적 불이익을 감수한 선거”라고 말했다.
6석. 2004년 17대 총선의 ‘진보 정당 최초 원내 진출’의 쾌거는 그때뿐이었을까. 20대 총선 정의당이 받아든 성적표는 12년 전과 비교하면 제자리걸음이었다. 비록 5석이었던 19대 국회보다 한 석은 늘었다지만 위상은 예전만 못했다. 제3당의 영광은 국민의당에게 돌아갔고, 제 4당이라고 하기엔 의석, 정당득표율의 격차는 컸다. 정의당은 정당득표율 7.23%로 비례의석 4석을 확보했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정의당 비례대표 4번으로 20대 국회에 턱걸이 입성한 윤소하(54) 정의당 전남도당위원장은 출구조사 결과 발표 직후의 심정을 돌이켰다.

정의당사 종합상황실에선 안도의 한숨과 아쉬운 탄식이 교차했다. 방송에서는 정의당의 비례대표 예상의석 수를 최소 3석에서 최대 4석으로 발표했다. 막판 뚜껑을 열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그는 “나보다 주변 당직자들이 나를 더 걱정하며 밤새 개표방송을 지켜봤다”고 말했다.

정의당의 총선 성적에 대해 윤 위원장은 “(정의당은) 원내 교섭단체보다는 두 자릿수 의원 배출, 두 자리 정당득표율을 목표로 했는데 그에 많이 못 미쳐 아쉬웠다”고 심경을 피력했다. “20대 총선은 새누리당의 오만과 독선, 불통의 정치에 국민이 심판을 한 경종을 울린 선거였지만 저희 같은 소수 진보정당 입장에서는 제도 측면에서 상대적 불이익을 감수한 선거입니다.”

윤소한 위원장은 전남 지역에 뿌리를 두고 30여 년간 진보 정치 활동가로 광주전남진보연대 공동대표, 학교무상급식운동본부 상임본부장을 역임했다. 정의당에서는 전남도당위원장을 맡았다.

이번 선거에서는 호남선대본부장을 맡아 정의당에조차 ‘험지’가 된 호남 전역을 돌아다녔다. 동이 트기 전에 집을 나서 군산부터 광주·여수·목포를 돌며 지원 유세를 했다. 선거운동은 힘겨웠다. 기성정당보다 당세가 약한 정의당은 지역구 후보도 많이 내지 못했다. 그래서 비례대표 후보들이 전국을 돌며 정의당 바람몰이에 안간힘을 쏟았다. “선거운동을 해보면 소수당의 고충과 한계를 절감한다.”

정의당의 총선 3대 공략 포인트는 노동, 청년, 호남이었다. 정의당은 진보정치 복원을 위해 호남 민심을 얻는 데 주력했지만 지역구 후보를 낸 10개 선거구에서 모두 졌다.

현장 목소리의 국회 입성… 소수인 만큼 한 발 더 뛰어야

국민의당 출현은 정의당에 시련의 예고편이었다. 야권이 쪼개지자 정의당의 입지가 좁아졌다. 미디어의 관심은 여야 3당에만 집중된 탓이다. 정의당은 야권연대를 꾀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윤 위원장은 “그래도 선거막판 야권연대가 실현된 인천에서 한두 석을 기대했지만 잘 안됐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삼파전으로 치닫던 선거판에서 정의당이 설 자리는 점점 축소됐다. 이번 선거에서도 복지정책은 핫이슈로 다뤄졌다. 정의당이 일가견을 가진 분야도 복지정책이다. 윤 위원장은 “미디어에서도 3당 정책 위주로 보도를 내보내는 통에 정말 보석 같은 정책을 마련한 정의당은 국민에게 제대로 알릴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정의당 공약에는) 국민월급 300만원 시대, 통신비 기본요금제 폐지, 고교 무상교육, 9~5시 출·퇴근제 등 노동과 복지 개혁 이슈가 많았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의 경합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언론은 진보 의제를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뤘다.”

어렵게 들어간 국회인 만큼 똑부러지는 의정활동으로 정의당의 존재감을 높이겠다는 각오다. 윤 위원장은 30년 세월을 민생현장에서 보냈다. 그래서 자신의 역할을 ‘현장 목소리의 국회입성’으로 규정했다. 그는 “말 그대로 노동자·자영업자·지역주민의 요구를 국회에서 대변하는 4년이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정의당은 대안정당을 표방한다. 그럼에도 국회에서는 소수다. 인원은 고작 6명. 18개에 이르는 국회 상임위를 대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의원 1인당 적어도 3개 상임위를 담당한다는 자세로 일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의 염원을 담은 정의당이기에 다른 당 의원보다 몇 배는 더 치열하게 일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예컨대 노동은 환노위(환경노동위원회), 복지는 보건복지위, 비정규직 문제는 안행위(안정행정위원회)로 나뉘어져 있는데 사실 노동·복지·비정규직 이슈는 모두 연결이 된다. 민생현안을 제대로 다루자면 이들 3개 상임위를 아우르는 의정활동이 요구된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201605호 (201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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