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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10)]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와 ‘배려’ 

혁신의 DNA로 인류에 영혼의 숨결을 불어넣다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
도구 제작기술의 전통 쌓이면서 도구의 종류와 활용 다양해져… 폭력과 살인, 배려와 보호라는 이중성을 띤 ‘영적 동물’로 진화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세대간에 무형의 기술인 ‘문화’를 전수했다. 이렇게 전수된 창과 손도끼, 집 등의 혁신적인 발명품을 통해 비로소 인류는 ‘영적 동물’로 진화할 수 있게 됐다.
#1. 혁신의 결과, 문화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에렉투스는 ‘호모(homo)’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지니게 된 유인원들이다. 그들은 수백만 년 동안 서서히 진화하여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에게 자신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습득한 신체적이며 유전적인 진화의 형질들을 전달했다. 아프리카 동부 그레이트 리프트 계곡(Great Rift Valley)에 거주했던 일부 유인원은 약 200만년 전의 급격한 기후변화로 더 이상 나무 위에서 열매를 따먹으면서 생존할 수 없게 됐다.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소수의 유인원은 생존을 위한 변화를 시도했다. 그들은 더 이상 나무 위에 거주하는 ‘원숭이’이기를 거부하고 위험한 땅으로 내려와 거주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허리를 펴고 두 발로 걷기 시작하였다. 비록 수백만 년 동안 일어난 일이지만, 누군가 그 일을 시작했을 것이다. 이족보행이라는 혁신은 사족보행을 하던 자신의 원숭이성을 절대부정할 때 조용히 일어나는 부산물이다.

그들이 두발로 걷기 시작한 이유가 있다. 머리를 치켜 올려, 자신들을 공격할 맹수들을 미리 ‘감지’하고 사냥할 먹잇감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관찰이란 자신이 정한 사냥의 대상을 ‘보고 또 보는 수련’이다. 인류의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인내의 ‘몰입’을 수련했다. 그 과정 중에 자신이 다른 맹수의 공격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동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 관계로 인간은 혼자 존재할 수 없고 친구나 이웃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동물’로 자리를 잡았고 이 문화적인 유전자는 인류가 문화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기둥이 되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자신의 혁신을 이족보행으로 마치지 않았다. 그(녀)는 효과적으로 사냥하기 위해 몸에서 털을 제거했다. 두 발로는 네 발로 뛰는 다른 사냥감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탈모를 통해 열과 땀을 배출하여 장거리 달리기에 적합한 몸을 만들었다. 단거리에 능한 사냥감들을 추적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진화-혁신한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급기야 불을 다루고 만들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한다. 불의 발견은 바로 그들의 식생활에 연결됐다. 요리된 음식은 호모 에렉투스의 신체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음식을 요리하면서, 음식을 소화하기 위한 신체 기관들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치아의 크기는 줄어들고, 내장 길이는 짧아졌다. 호모 에렉투스의 뇌 용량은 급격히 커져 현생인류의 뇌 크기와 거의 같아졌다. 특히 뇌의 가장 바깥부분인 신피질이 커졌다. 문제는 출산이었다. 호모 에렉투스 여성들은 아이를 점점 미성숙한 상태로 출산해야 했다. 직립보행으로 인해 골반은 좁아진 반면 태아의 뇌 용량은 커졌기 때문이다.

#2. 어머니, 인간문화의 태반


▎네 발로 걷던 인간이 점차 허리를 세우고 두 발로 걷게 되는 것이 인류의 진화과정이다
출산여성들은 10개월의 임신기간과 어린아이를 양육하는 수년 동안 자신과 태아의 생명을 지켜줄 남성을 선호한다. 그 남성은 자신과 일대일의 부부관계를 유지할 여성을 위해 의식주를 제공한다. 인간에겐 다른 동물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일대일 부부관계가 성립된다. 태아가 세상으로 나와 스스로 걷기 위해선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출산여성이 미성숙한 자식을 위해 1년 동안 젖을 먹여 키우면서 인간만의 고유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바로 교육이다. 여성은 어린아이를 1년 동안 젖을 물리고, 그 이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12~13세까지 양육을 책임진다. 여성이 출산 후 다시 임신하거나 생존에 필요한 노동을 해야 하는 경우, 신생아의 조부모가 아이의 양육을 돕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주양육은 인간만의 문화다. 조부모에게는 이제 손자양육이라는 명분과 의무가 생겼고, 이들의 평균수명도 점차 늘어나 손주가 결혼할 때까지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어머니가 1년 동안 갓난아이를 돌보는 동안, 어머니와 아이는 정신적이며 영적인 동물로 서서히 변한다. 유아는 어머니의 품에서 세상을 배운다. 어린아이는 특히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쳐 양육하는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정신적이며 영적인 씨앗인 ‘사랑’을 심어놓는다. 이 씨앗은 교육을 통해 발아하고 어머니가 보여준 삶을 통해 꽃피울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바로 다른 동물들에게선 거의 찾을 수 없는 ‘자기희생적 배려’다. 배려라는 원칙으로 한 공동체를 묶는 행위를 문화라고 부른다. 문화는 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을 만하다고 인정하고 서서히 형성한 최선의 가치다. 이 문화는 눈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문화의 표현은 볼 수 있다. 한 집단이나 그곳에 속한 사람의 수준은 그들이 하는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에 스며있는 배려의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그들이 여가시간에 하는 행위를 보면 쉽게 판단할 수 있다. 21세기는 정보 시대이기 때문에 TV, 신문, 그리고 SNS와 같은 공간에서 난무하는 글들이나 말을 보면, 그것을 창출하는 집단이 문명집단인지 야만집단인지 알 수 있다. 정제되지 않은 말과 글들의 특징은 남에 대한 배려가 없다.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차별 공격한다. 이들의 특징은 남에 대한 배려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배려도 없다는 것이다. 자신을 향한 배려란 자신의 처지에 대한 깊은 생각과 그 표현이다. 즉흥적이며 이기적인 입담과 글이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미디어를 장악한다면, 그 공동체가 구성한 국가는 후진국이다.

#3.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등장과 마우어 아래턱


▎1. 조부모가 손주를 기르는 것은 인간만의 문화다. 양육을 도맡았던 여성이 생존에 필요한 노동을 하게 되고 인간의 평균수명도 증가하면서 신생아의 양육을 조부모가 돕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 2.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테라 아마타를 만들고 있는 모습. 테라 아마타는 지붕과 입구, 화로가 있는 인류 최초의 집이다.
‘문화’라는 무형의 가치를 삶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기 시작한 인류의 조상이 있다. 호모 에렉투스와는 다른 인류다. 호모 에렉투스는 180만 년 전부터 25만 년 전까지 생존했던 유인원이다. 80만 년 전부터 호모 에렉투스와는 다른 새로운 인종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바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Homo Heidelbergensis)이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호모 에렉투스와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현생인류로부터 시작해 오늘날 인간문화의 기초가 되는 몇 가지 중요한 문화, 특히 ‘배려’라는 문화의 씨앗을 심었다.

현생인류의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선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를 장악한 유인원을 찾아야 한다. 그 열쇠를 쥔 유인원이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다. 260만 년 전부터 농업이 발견된 1만1700년 전까지를 지칭하는 지질학적 용어가 플라이스토세이다. 이 기간은 지구가 가장 최근에 경험한 빙하기다. 영국의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1797~1875)은 지층연구를 기초로 지구 연대를 측정했다. 그는 1839년 이탈리아 시실리 지층을 연구한다. 시실리는 오늘날 살고 있는 연체동물의 70%가 보존되어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가장 최근의 지층을 ‘플라이스토세’라고 명명했다.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최상급을 의미하는 형용사 ‘플레이스토스’와 ‘새로운’을 의미하는 ‘카이노스(kainos)’를 합성해 ‘(현재와) 가장 가까운 (시대)’라는 의미다. 농업이 발견된 1만1700년 전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홀로세(Holocene)’라고 부른다. 이 단어는 ‘완전히 새로운’이란 뜻이다. 중하반기 플라이스토세에 해당하는 유인원 연구가 후대에 등장하는 호모 사피엔스 등장을 이해하는 열쇠다. 아프리카 동부에서 발견되던 유인원 화석들은 150만 년 전에 이르러 거의 자취를 감춘다. 대신 아시아와 유럽에서 그 이후 시기 화석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8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등장하여 20만 년 전에 멸종했다. 실제로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등장한 여러 유인원의 선후관계를 명확하게 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고고학자들이 운 좋게 발견한 화석유물들을 분석하여 그 계통을 짐작할 뿐이다. 호모 에렉투스가 180만 년 전에 등장했고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20만 년 전에 등장했다. 이 두 유인원 사이에 등장한 유인원들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라는 새로운 유인원이 세상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독일 하이델베르그 근처 마우어(Mauer)라는 마을에서 발견된 아래턱 화석 때문이다. 1907년 10월 21일 다니엘 하트만이라는 고고학 현장 일꾼이 인간의 아래턱으로 보이는 화석을 모래구덩이에서 찾아냈다. 이 구덩이에는 수많은 포유류 동물의 화석이 시대 지층에 따라 분포해 있었고 이 아래턱은 지상에서 24m 아래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이 화석을 고고학 탐사 책임자인 오토 쉐텐삭(Otto Schoetensack)에게 건네주었다. 오토 쉐텐삭은 사업가였지만 취미로 고고학 탐사팀을 이끌고 있었다. 그는 이 아래턱을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즉 ‘하이델베르그인’이라고 명명했다. 당시 이 뼈는 그 전에 발굴된 뼈들과는 전혀 다른 모양이었다.

이 아래턱은 후에 등장하는 네안데르탈인이 지닌 파생형질의 원형을 지녔다. 파생형질이란 동식물의 분류에 있어서 동일한 종군에서 발견되는 형질로, 직접공동조상을 가졌다는 증거다. 다시 말하자면 후에 등장하는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유전적인 후손이다. 마우어 아래턱의 절치(앞쪽 중앙에 나는 끝이 얇은 이로 위아래 4개)의 크기, 소구치의 생김새, 그리고 이공(하악골체의 외측면에서 이결절 위 외측으로 열려진 구멍으로 좌우 2개)의 위치와 어금니 뒤 공간은 후에 네안데르탈인의 치아로 가는 중간단계다. 아프리카에서 40만 년 전에 이주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아래턱이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두 번에 걸쳐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으로 이동한다. 이들의 첫 번째 이주는 4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그들의 화석들은 에티오피아, 남비아, 남아프라카에서 발견되었다. 그들 중 일부가 유럽과 아시아로 이주했다. 이들은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 헝가리, 그리고 그리스에 정착했다. 유럽에 정착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세월이 지나면서 네안데르탈인으로 진화한다. 네안데르탈인은 35만 년 전부터 등장했다가 2만8000년 전에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다시 유럽에서 중앙아시아로 이동했다. 특히 그들의 유전적 후손은 4만년 전 남서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 동굴에서 거주했던 데니소바인(Denisovan)이다. 데니소바인들은 중앙아시아, 몽고를 거쳐 인도와 인도네시아까지 아시아에 골고루 퍼져 생존하였다.

두 번째 이동은 20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이 두 번째 이동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인들은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이 되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에 도착했을 때, 이곳엔 이미 정착하여 자리 잡은 네안데르탈인이 있었다. 유럽에서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경쟁하였고, 2만8000년 전 네안데르탈인은 자취를 감추었다.

#4. 프랑스 테라 아마타의 집터 아슐리아 손도끼


▎미어캣은 두 발로 서서 주위를 둘러봄으로써 천적의 등장을 감지한다. 인간 역시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사냥감을 관찰하기 위해 이족보행을 시작했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처음으로 집을 짓고 살았다. 이전엔 주로 동굴에서 살았지만, 이제 들판이나 해안가에 집을 짓고 살았다. 최초의 집의 흔적은 프랑스 지중해 해안에 위치한 테라 아마타(Terra Amata)에서 발견됐다. 그들은 동물사냥이 힘든 경우,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구워서 먹었다. 물고기가 인간의 식탁 위에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해변가에 어린 나무들을 심고 그 가운데를 한곳으로 모아 지붕을 올려 오두막집을 지었다. 오두막 주위에는 돌들을 깔아놓고 입구엔 돌들을 놓지 않고 밖으로 열려져 있다. 이 구조 위에 눈비바람을 막기 위대 동물 가죽을 덮어 놓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오두막 안도 입구를 제외하고 돌로 둥그렇게 쌌다. 그 안에 움푹 파인 곳이 있다. 그곳엔 재, 동물 뼈, 그리고 그을린 돌들이 있다. 이것은 화로가 있어 불을 지폈고 고기를 요리해 먹었다는 증거다. 인간은 분명히 50만 년 전부터 불을 다루기 시작했고, 40만 년 전 테라 아마타 화로는 그 증거다.

이곳에서 특별한 석기가 발견됐다. 아슐리아 손도끼다. 아슐리아 석기는 호모 에렉투스가 150만 년 전에 동부와 중부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호모 에렉투스들이 유럽으로 이주하면서, 아슐리아 손도끼를 50만 년경 유럽전역에 퍼뜨린다. ‘아슐리아’라는 명칭은 프랑스 생트-아슐(Saint-Acheul) 유적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아슐리아 석기제작은 인류를 진보시키는 데 중요한 사건이다. 아슐리아 석기 제작자는 자신의 생각을 물건으로 만든 최초의 혁신가이며 예술가였다. 이것을 제작한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이것을 디자인했을까? 아슐리아 손도끼는 그의 생각의 물질적 표현이다. 첫째 특징은 아슐리아 석기는 그 자체가 도구다. 나무나 금속에 끼워 사용하질 않고 그것 자체가 온전한 완제품이다. 이족보행을 통해 두 손이 자유로워진 인류가 이제 획기적으로 혁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자체가 도구이기 위해서는 자신이 사용하기에 가장 편리해야 하고 익숙해야 한다. 그는 빙하기시대에 다른 동물들과의 싸움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몸의 일부를 강력한 무기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깊이 생각했을 것이다. 다른 포식자들의 날카로운 발과 발톱, 그리고 강력하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이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손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흉내 내 또 다른 손을 만들었다. 또 다른 손은 자신의 부드러운 손과 달리 날카롭고 강력하여 어떤 동물의 치아도 이겨야 한다. 혁신은 자신이 매일 보는 일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는 연습의 결과다. 그는 동물들을 제압할 수 있는 또 다른 ‘팔’을 만들었다. 인도-유럽어 어근으로 ‘ar-’는 ‘우주의 질서에 맞게 결합시키다; 연결시키다’라는 의미다. ‘팔’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arm은 ‘우주의 질서에 맞게 몸뚱이에 연결시킨 것’이란 의미다. 아슐리아 손도끼는 인류의 또 다른 ‘팔’이자 ‘무기’인 셈이다. 영어나 라틴어에서 ‘팔’의 복수형인 arms(영어)나 arma(라틴어)의 의미가 ‘무기’인 이유는 이런 뜻에서 비롯됐다. 인류는 혹독한 빙하기에 생존하고 더욱이 다른 동물들을 제압하기 위해 가히 가공할 만한 ‘팔’인 아슐리아 손도끼를 만들었다. 아슐리아 손도끼의 크기는 성인의 손길이와 비슷하게 길이는 17~18㎝, 너비는 9㎝, 그리도 두께는 3.5㎝정도다. 이들은 규암, 규질암, 유리질 화산암, 혹은 플린트석으로 만들어 강도와 날카로움을 더했다.

둘째 특징으로 아슐리아 손도끼는 가운데는 두툼하고 가장자리 날 쪽으로 가면서 점점 얇아진다. 특히 불룩 튀어나온 가운데를 중심으로 양면이 대칭적이다. 아슐리아 손도끼 제작자의 디자인 원칙은 대칭과 균형이다. 인간의 몸이 좌우로 대칭인 것처럼, 손도끼도 대칭이다. 다른 동물들을 사냥하거나 사냥한 동물의 가죽을 벗기거나 뼈를 추리고 살을 도려내고 송곳처럼 찌르는 작업을 위해, 도구는 끝이나 가장자리가 날카로워야 하며, 손도끼를 쥐는 부분은 두툼하여 손과 손가락에 꼭 맞게 감겨야 한다. 손으로 쥐는 부분은 망치로 사용했다. 아슐리아 손도끼의 좌우대칭 균형은 인간 마음속에 존재하는 미적인 원형의 표현이다. 인간은 이제 세상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관찰을 통해, 그 안에 존재하는 우주의 원칙을 감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작자들은 이 균형을 잡기 위해서, 돌이 아닌 동물 뼈, 뿔, 혹은 나무로 만든 부드러운 망치로 다듬었다. 이전에는 몸돌에서 떨어져 나간 날카로운 격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격지보다는 몸돌 자체가 중요했다. 이 기법을 르발루아기법(Levallois technique)이라고 말한다. 르발루아기법이란 ‘준비된 몸돌’을 이용한 석기제작 기술이다. 준비된 무정형의 몸돌에서 자신이 상상한 디자인에 따라, 필요가 없는 부분을 정교하게 쪼아냈다. ‘조각 예술’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각이란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을 과감하고 섬세하게 제거하는 작업이다.

셋째 특징은 아슐리아 손도끼는 모양에 일정한 규칙성을 지녔다. 오늘날 물건 모양이 일정하듯이, 마치 주물에서 제작된 것처럼 그 모양이 유사하다. 규칙성이란 이 석기의 특별한 디자인이 ‘디자인 학교’에서 훈련되어 지식으로 후대에 전달되었음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자신이 원하는 손도끼의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 공정이 있었고, 이 공정에 따라 인류 최초로 대량 생산이 가능했을 것이다. 한 공동체 안에서 부모나 선배가 자식이나 후배에게 전달해주는 무형의 기술인 ‘문화’가 창달되었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오늘날 스마트폰을 만드는 창작자처럼 통찰력과 상상력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물건을 제작했다.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지닌 상징과 언어의 능력을 습득했음이 분명하다.

#5. 독일 쉐닝겐 창


▎오늘날에는 스포츠 경기의 한 종목이 된 창던지기는 원시 인류가 사냥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제작한 원거리 공격 무기였다.
아슐리아 손도끼만큼 인류의 혁신과 창작의 순간을 엿볼 수 있는 물건이 있다. 1994~1998년 독일 헬름슈테트에 위치한 쉐닝겐(Schöningen)에 있는 노천굴 갈탄광산에서 발견된 나무창이다. 쉐닝겐 창은 지금까지 발견된 창들 중 그 전체가 온전히 보존된 가장 오래된 창이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30만 년 전에 어떻게 생존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유물이다. 하르트무트 티메(Hartmut Thieme) 교수팀이 이끄는 고고학팀이 8개의 창을 발견했다. 옛 인류는 창을 대량생산하여 자신을 위한 최고의 무기로 삼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슐리아 손도끼는 사냥한 동물들의 가죽이나 살, 그리고 뼈를 바를 때 유용하다. 그러나 무기로서는 많은 문제가 많다. 쉐닝겐 창은 자신이 사냥할 동물이 2m 이상 떨어져 있어도 사냥할 수 있는 오늘날 총이나 대포와 같은 무기다. 쉐닝겐에는 적어도 말 15마리 뼈들과 덩치가 큰 붉은 사슴과 들소 등 동물 뼈 1만6000개,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석기도 함께 있었다. 특히 말뼈에는 도살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곳은 사냥한 동물을 도살하기 위해 준비하는 정교한 의례가 행해졌던 장소였던 것이다.

이 창들은 소나무나 가문나무로 제작되었다. 길이가 1.82m에서 2.5m, 지름은 3~5㎝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제법 긴 창이다. 긴 나무자루의 끝을 뾰족하게 다듬고 던졌을 때, 목표물을 향해 가장 효과적으로 날아가기 위해 오늘날의 창처럼 끝으로 향할수록 점점 좁아진다. 이 창들은 아마도 사냥감을 근접에서 찌르기보다는 던지는 무기로 사용했던 모양이다. 이것들은 정교한 기술과 오랜 기술적 전통의 증거다. 오늘날 올림픽경기에 사용되는 경기용 창도 쉐닝겐 창과 거의 차이가 없다.

쉐닝겐 창은 초기 인류의 문화와 사회를 밝혀주는 혁신적인 발명품이다. 아슐리아 손도끼와 쉐닝겐 창이 발견되기 전까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와 그의 유전적 후손이라고 여겨지는 네안데르탈인은 문화와 언어를 알지 못하는 야만인으로만 여겨졌다. 그들은 처음으로 사냥을 기획하면서 무기를 만들었다. 그들은 다른 사체를 찾아먹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커다란 동물들을 사냥해 주식으로 삼았다, 그들은 자신보다 빠른 동물들을 사냥하기 위해서 정교한 사냥전략을 세웠고, 복잡한 사회구조를 구축했으며, 언어로 상대방과 소통했다. 미래 사냥을 대비해 창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현대인처럼 미래의 사건을 상상하고 행동하는 지적인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아슐리아의 손도끼나 쉐닝겐의 창에서처럼 인간에게 폭력성도 존재하지만, 동료 인간에 대한 배려가 남겨진 고고학적 발굴장소가 스페인에 있다.

#6. 스페인 시마 데 로스 우에소스 발견


▎배려라는 원칙으로 한 공동체를 묶는 행위가 ‘문화’이기에 악성 댓글과 상호비방이 난무한 공동체로 구성된 국가는 후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에 관한 소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장소는 스페인 카스티야 고원의 북동쪽에 위치한 시에라 데 아타푸에르카(Sierra de Atapuerca)다. 이곳에서 발견된 동굴군(群)에서 약 100만년 전부터 거주했던 유럽의 초기 인류에 관한 수많은 화석이 고스란히 남았다. 이곳에 ‘시마 데 로스 우에소스(Sima de los Huesos, 이하 SH)’ 번역하자면 ‘뼈의 구덩이’라는 동굴이 있다. 이 동굴은 43만 년 전에 만들어졌으며 여기에서 28명의 인간 유골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곳은 쿠에바 마요르(Cueva Mayor) 입구로부터 500m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그곳엔 직경 2~4m의 가파른 갱도가 있다. 이 갱도는 깊이가 13m인데, ‘뼈의 구덩이’는 이 갱도의 끝에 위치한다. ‘뼈의 구덩이’는 길이가 가로 8m, 세로 4m의 직사각형 방이다.

이곳엔 뼈가 박혀 있는 각력암(角礫岩)이 가득 차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진흙과 사암으로 수십만 년 동안 뭉쳐 있던 이 안에서 뼈들을 추려냈다. 중기 플라이스토세 것으로 추정되는 166마리의 동굴 곰과 인간 28명의 것으로 분석된 치아 500개를 포함한 6500개 뼛조각들이다. 그 외 사자, 야생고양이, 회색 늑대, 빨간 여우와 스라소니들의 뼈들도 발견됐다. 이렇게 많은 동물과 인간의 뼈가 한곳에서 발견된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동물과 인간이 이 구덩이에 떨어져 나가지 못한 것 같다.

인간의 뼈들은 구덩이에 맨 밑바닥에 차곡차곡 쌓였고 다른 동물들의 뼈는 진흙들과 함께 그 위에 축적되어 있다. 학자들은 동물들의 뼈들은 다른 곳에서 진흙과 함께 흘러 들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왜 인간의 뼈들이 이곳에 유기되었을까? SH에서 발견된 28명의 인간은 33만 년 전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서 발견된 유골들 중 두 개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6-1. 폭력 본능


▎1. 스페인의 시마 데 로스 우에소스 동굴에서는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을 증언하는 두개골이 발견됐다. 두개골 전면의 커다란 두 개의 구멍은 누군가 살해를 목적으로 머리를 여러 번 내리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 2. 고고학적 자료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인간들간의 폭력은 개인간의 폭력이 점차 인간 삶의 일부가 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카인의 이야기 역시 인류 최초의 살인 이야기다. 티치아노 작, <카인의 살해>
시마 데 로스 우에소스에서 발견된 두개골 중에는 전면 왼쪽에 두 개의 커다란 구멍이 난 것이 있다. 두개골 17번(Cr 17)이다. 두개골 앞쪽의 뼈가 함몰돼 구멍이 났다는 사실은 누군가 두개골을 살해를 목적으로 아슐리아 손도끼와 같은 무기로 내리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따르면 에덴동산에서 나와 농업과 유목으로 분화한 인간의 문화는 폭력으로 시작한다. 농부였던 카인은 유목민이었던 아벨을 살해한다. 이 두개골은 지금까지 발견된 최초의 살인사건을 증언한다. 인간의 폭력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안에 존재했던 인간들 간의 갈등을 볼 수 있는 창문이다. 폭력이 일어난 이유는 제한된 자원, 인구 증가, 혹은 영역 다툼 등 다양하다. 인간들 간의 폭력은 고고학적 자료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 상처는 자해하거나 우연히 사고를 당한 것 치고는 치명적이다. 두 개의 구멍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여러 번 내리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두개골 왼쪽에 난 구멍은 가해자가 오른손잡이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개인 간의 폭력이 점점 인간 삶의 일부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6-2. 배려 본능

시마 데 로스 우에소스에는 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병을 앓았다는 증거가 되는 두개골이 있다. 고병리학은 화석생물의 병리현상을 연구한다. 그들의 식습관 정보는 그가 공동체 안에서 어떤 위치였고 다른 구성원들에게 무슨 도움을 받았는지도 추론한다. 또한 빙하기 시대 사냥채집경제에서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는지를 연구한다.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개골 14번은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두개골조기유합증을 앓고 있는 두개골이다. 이 병은 두개골을 이루는 뼈들이 유합하는 과정이 너무 빨리 진행돼 비정상적인 모양의 머리를 만든다. 이 병은 두개골과 얼굴에 이상이 생겨 기형이 되며, 두개골 내 용적이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져 두뇌발육부전과 뇌수종, 지능저하, 시력장애 등 생존에 치명적인 합병증을 초래한다. 두개골 14번은 조기 사망한 개인의 두개골이다. 두개골의 크기를 측정한 결과 다섯 살 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어린아이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병은 태어난 후 1년 동안 그 증상이 현격하게 등장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악화된다. 두개골 14번 아이의 엄마는 이 아이를 24시간 돌봤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자식이 회복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5년 동안 정성스럽게 돌본 것이다. 이런 자기희생적인 사랑은 후대에 등장하는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인류는 모여 살면서 갈등하고 자신들이 개발한 무기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족과 사회의 약자를 돌보는 배려의 문화를 시작했다. 인류의 위대한 여정은 이런 혁신으로 스스로를 ‘새로운 영적인 동물’로 변모시켰다.

배철현 -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원전 6세기 다리우스 대왕이 남긴 비시툰 비문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2003년부터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를 가르치고 있다. 창의 인재 혁신프로그램인 ‘건명원’을 기획하고, KBS ‘궁금한 일요일 장영실쇼’ 진행을 맡고 있다.

201608호 (20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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