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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정치권 빅뱅 불러올 ‘플랜B’ 大해부 

대선을 꿈꾸는 자 반기문, 문재인 넘어서라 

박성현·추인영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내년 대선의 완승을 보장해줄 후보와 구도를 향한 새판짜기 ‘꿈틀’… 정당의 권력의지, 후발주자들의 욕망이 뒤엉킨 합종연횡의 끝은?
‘3’이라는 숫자는 늘 불안하다. 어떻게 가르더라도 2대 1로 한쪽은 소외되기 때문이다. 지금 정치권이 그 짝이다. 정치권도 3당 체제, 대선주자 경쟁도 3파전으로 흐른다. 그 누구도 혼자서는 절대다수를 형성하지 못하는 구도다. 그래서 보다 완벽한 상황에서 대선에 임하고자 한다. 여와 야에서 플랜B(대안 대선후보)가 거론되는 배경이다. 여야의 지지율 1위 주자 반기문, 문재인을 뛰어넘으려는 모색에서 19대 대선은 본격 점화된다.


대선후보 기근 고민하는 여권 | ‘인물’ 아닌 ‘개헌’? 혹은 ‘도로 반기문’


▎지난 5월 방한해서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달린다.
“애당초 ‘친박=반기문’이라는 전제부터가 (상황을) 잘못 본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은 10월 14일 전국 남녀 유권자 10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례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26%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취임 후 최저치다. 같은 조사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지율 27%로 18%에 그친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를 여유 있게 앞서 나갔다. 이 조사 결과를 보고서 친박계의 한 핵심 의원이 <월간중앙>에 한 말이다. 친박계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미래권력’으로 간주한다는 관측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언급이다.

최근 들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세로 접어들었지만 반 총장의 지지율은 여전히 견고하며 2위와도 꾸준히 격차를 유지한다. 같은 갤럽 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도(28%)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다. 원내 다수파를 형성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도 약보합세에 그친다.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이 가중될수록 제도권 밖 청정 이미지의 반 총장에게 더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고 새누리당이 왜소해질수록 친박계는 반 총장에게 더 의존하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이 의원은 “정치는 그렇게 가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다”라며 다른 주판을 튕기고 있음을 시사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당사 회의실에 등장한 ‘정신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고 쓴 배경막(백보드)을 당시 지도부가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 참석한 박 대통령이 나흘 동안 반 총장과 일곱 차례나 일정을 같이하고 비공개 회동을 가지면서 ‘친(親)박근혜계=친반기문’ 등식은 여권의 기본 구도로 여겨졌다. ‘반기문 대통령+친박계 총리’ 조합을 띄우는가 하면 친박계가 내년 대선에서 반 총장을 후보로 민다는 소문도 퍼져나갔다. 이런 정황에 대해서 이 의원은 “(반 총장에 관련된) 그런 구상은 몇몇 인사가 개인 생각을 얘기한 것”으로 치부하며 “(반총장 대망론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반 총장 대망론은 몇몇 인사의 개인 생각”

더 자세한 언급을 사양한 탓에 관련 내용을 더 확인하진 못했지만 반 총장을 보는 친박계의 시선이 식어간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9월 하순부터 이런 분위기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요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보면 걱정이 많다. 정치에선 문재인·안철수는 프로, 반 총장은 아마추어 아니냐”고 평가했다. 올 상반기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을 제기하며 반기문 대통령+친박계 총리 조합을 거론하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윤상현 의원도 “반 총장은 정책과 후보 적합성을 놓고 혹독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 총장의 불투명한 권력의지, 고령, 국내 정치와의 간극 등이 걸림돌이 된다는 수군거림도 따라붙는다.

친박계가 반 총장의 중도하차에 대비해 ‘플랜B(대안 대선 후보)’를 준비한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이 언저리에서다. 반 총장이 지금은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지만 검증과정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전제다. 김태흠 의원은 “반 총장은 여전히 유력한 대안”이라면서 “그의 권력의지를 확인할 수 없는 이들에게서 이런저런 우려가 제기되는 것 같다”고 여권 내부 동향을 전했다.

반 총장의 중도하차설은 그와 함께 국정을 운영해본 야권 친노인사들의 단골 메뉴였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도 <월간중앙> 9월호 대담에서 외교관으로 잔뼈가 굵은 반 총장이 진흙탕과 같은 정치권에서 모든 걸 던지는 리더십을 보여줄지 의문이라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정치라는 건 어려운 걸 타개하고, 갈등 과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몸에) 흙도 묻히고 물도 묻히고 하면서 건너가는 게 정치적 리더십이다. 그런데 외교관은 절대 그런 거 안 한다.”

친노 진영은 아직 반 총장을 정조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간간이 외곽을 때리는 견제구를 날린다. 친노 진영의 ‘반기문 흔들기’에 적극적으로 반격을 가했을 친박계가 요즘 들어 웬일인지 뜸하다. 친박계가 변한 걸까? 일각에서는 친박계가 반 총장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거리를 둔다는 설, 친박계가 아닌 범국민 후보를 지향하는 반 총장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설이 나돈다. 또 반 총장과 같은 충청권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반 총장과 밀착하면서 친박계 주류 인사들이 견제에 나섰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박근혜 몰락해도 반기문 지지층은 콘크리트


▎지난여름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모임을 가진 당내 친박계 인사들. 일부 인사는 반기문 검증론을 강조한다.
덩달아 여권에서 ‘플랜 B’를 언급하는 이들도 늘어난다. 새누리당의 대선 경쟁력 강화가 명분이다. 그 일선에는 대권을 꿈꾸는 잠룡들이 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은 많이 어려운 상황이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이기기 위한 연대의 틀은 갖춰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경북 출신인 유승민 의원도 내년 대선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심판이란 측면이 있어 절대 쉽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래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전부 경선에 나오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공평하게 경선을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경제는 개혁, 안보는 보수’를 표방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의 새누리당 입당 및 경선 참여도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이다.


▎9월 29일 국회에서 국회정상화 방안을 논의하고자 만난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 이들은 대선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당의 외연 확대와 정당 간 연대를 주장한다.
한나라당 시절부터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트리오로 개혁세력을 대표한 남경필 경기도지사 역시 반 총장의 대선 경쟁력에 의문을 나타냈다. 지난 9월 관훈클럽 그는 반 총장을 향해 “대선 출마를 할 것인지, 한다면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의 변화를 얼마나 어떻게 고민했는지 묻고 싶다”고 운을 뗐다. “내부 경쟁력이 떨어지면 누굴 모셔와 대선 후보로 만들던데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도 이러한 고육지책 후보였다. 그가 열심히 했지만 패배했다. 새 영웅을 모셔다가 (후보를) 내자는 발상은 굉장히 위험하다.”

문제는 이들을 중심으로 플랜B를 그리기에는 그들의 ‘덩치’가 너무 작다는 데 있다. 한국갤럽 10월 정례여론조사에서 김무성 전 대표는 3%, 유승민 의원은 4%의 지지를 얻는데 그쳤고 남 지사는 대선주자 지지도를 묻는 한국갤럽의 8인 후보에 들지 못했다.

자칫하다가는 여권의 대선 경쟁구도가 ‘반 총장과 일곱 난쟁이’로 굳어지는 상황도 배제하지 못한다. 한국갤럽은 “반 총장은 차기 지도자 조사 후보군에 처음 포함된 올해 6월부터 선호도 평균 27%, 5개월 연속 선두”라며 “현재 당적은 없지만 새누리당 지지층과 무당층에서 가장 높은 선호도를 기록하고 있어 사실상 여권 유력 후보로 분류된다”고 의미를 부여할 정도다.

이와 관련해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의 정한울 연구교수는 “반 총장의 지지율은 한방에 와르르 무너지는 지지가 아니다”고 평가한다. 나아가 박 대통령이 레임덕으로 가더라도 반 총장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할 가능성도 봐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압도적으로 높게 나온다. 이는 당내에 다른 대안이 없어서다.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반 총장 이외의 다른 여권 잠룡은 안중에도 없다. 대안이 없는 조건이라면 새누리당 지지층은 온전히 반 총장을 자기 후보라 지지할 것이다. 항간의 인식과 달리 향후 반 총장의 지지층은 아주 강고할 수도 있다.”

반 총장 입장에서도 어차피 보수의 지지가 예약돼 있다면 굳이 ‘반기문=친박 후보’라는 프레임에 자신을 가둘 이유가 없다. 그래서 반 총장이 내년 1월 귀국하더라도 기존 정당들과는 거리를 둔 채 범국민후보로서의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반 총장 주변에서 나온다.

안철수 의원이 여권의 ‘플랜 B’로 언급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반 총장의 예에서 보듯 새누리당 골수 지지층은 그가 누구든 보수의 재집권을 가져다 줄 인물에게 쏠릴 개연성이 높다. 그 대상이 지금은 반 총장이지만 확실한 ‘대체재’가 나타난다면 보수의 무게중심은 이동하리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안철수 의원이 여권의 ‘플랜 B’로 언급되는 이유


▎보수와 진보로 갈라지는 대대적인 정계개편론을 들고 나온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여권의 플랜B는 그래서 ‘인물’에 앞서 ‘구도’의 문제일 수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최근 제주대 강연에서 불쑥 정계개편을 언급했다. 그는 “이제는 중도보수와 중도좌파 및 급진 진보세력 간에 대대적인 정계개편이 있어야 한다”면서 “중도우파에서부터 보수까지 보수정당을 만들고 진보좌파 등이 진보정당을 만들어 정책 대결을 펼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동기와 방식은 다르지만 헤쳐모여를 선호하는 건 비박계도 마찬가지다. 앞서 김무성 전 대표가 ‘이기기 위한 연대의 틀’을 말했고, 유승민 의원도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의 새누리당 입당을 언급하기도 했다.

더구나 최근 청와대는 측근 비리 의혹으로 궁지에 몰렸다. 박 대통령과 오랜 세월 친분을 다져온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씨가 이화여대 딸 특혜입학 및 학사개입 논란을 빚고, 미르, K스포츠재단 설립과 운영에도 개입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비박계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이 박 대통령과 선을 긋고 당 외곽의 반기문 총장,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 등과 함께 새로운 범보수 연대를 꾸리자는 주장이 표출된다. 김용태 의원은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 “지금 박 대통령 주변을 보면 한보사태 등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몰락에 이른 김영삼 정부를 떠올리게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정국의 수습 없이 정권과 대선을 논하는 게 얼마나 허망한지는 우리 정치의 역사가 말해준다. 이참에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반기문, 안철수 등 보수 인사들이 새누리당과 새로이 연대하는 틀을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통령 임기단축 개헌을 설파하는 김종인 전 더민주 대표도 합류한다면 보수의 총집결이 된다.


▎새누리당의 제휴 대상으로 거론되는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왼쪽)과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
그 지렛대가 바로 개헌이다. 그것도 권력을 나눌 수 있는 이원집정부제, 혹은 내각제와 같은 분권형 개헌이다.

여권 정무라인의 서랍에는 분권형 개헌 방안도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실무자 선에서 정권의 선택지를 다변화하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통상적인 업무의 일환이라는 전언이다. 아직은 ‘현 시점 개헌 논의 불가’라는 박 대통령의 현실 인식을 바꿔놓을 환경 변화가 없는 상황이다. 경제가 좋아진 것도, 주요 개혁 입법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박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제지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힘을 실어줄 것 같지도 않다. “지금은 개헌 이슈를 제기할 때가 아니라는 게 확고한 방침”이라는 김재원 정무수석의 발언이 권부의 의중을 대신한다.

그럼에도 최근 개헌의 깃발을 다시 든 김무성 전 대표는 <월간중앙> 11월호 인터뷰에서 “노동관계법 포함해 개혁입법을 다 놓고 개헌이랑 바꾸자고 해도 된다. 그게 딜(교환)이고 정치인데 못할 일이 뭐가 있느냐”며 청와대를 향해 개헌을 촉구했다.

관건은 박 대통령과 반기문 총장

새누리당 제휴 대상으로 거론되는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여권의 개헌론을 측근 비리의혹을 잠재우려는 공작정치라고 당장은 몰아세우지만 그는 아주 오래된 분권형 개헌론자이기도 하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했듯이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개헌을 매개로 머리를 맞댈 수도 있다.

관건은 박 대통령과 반기문 총장의 선택이다. 벌써 여권의 잠룡 중에는 반 총장 지지 의사를 피력하는 이가 나타나고 있다. 새누리당 지지층의 전부를 아우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두 사람의 결심이 없다면 플랜B는 공허하다. 서성교 바른 정치연구원장은 “박 대통령과의 우호적 관계, 충청 표심과 장년층의 선호라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반 총장이 개헌에 힘을 실어줄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나아가 “분권형 개헌은 정치적 연대를 위한 정략적 모델이라는 역공을 당하기 쉽다”면서 “박 대통령도 스스로 국정의 실패를 인정하게 되는 개헌을 받기는 쉽지 않은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말들은 하지만 직접 봤다는 이가 없는 게 여권 플랜B의 현주소다.

문재인 확장성에 의구심 갖는 야권 | 2위그룹 연합 시나리오 제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월 6일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가칭)을 출범시키면서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섰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행동을 개시했다. 추석 이후로 양산 자택보다는 서울 자택에서 머무르는 일이 더 잦고, 현장 방문이나 간담회 등 공식 일정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무엇보다 지난 10월 6일 싱크탱크인 ‘정책공감 국민성장’을 출범시킨 것은 대선행보의 신호탄 격이다. 10월 말에는 서울 마포구 광흥창역 인근에 서울사무소를 차릴 예정이다. 마포구 신수동 노무현재단과 지척이다. 관계자들의 부정에도 정치권에선 사실상 대선캠프를 꾸린 것으로 받아들인다.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측근인 임종석 전 의원까지 영입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선 연일 고강도 발언을 쏟아낸다. 문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반대를 비판하자 “야당은 돕겠다는데 대통령은 야당 탓을 한다”며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철저하게 실패했다”(9월 23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틀 뒤 백남기 농민의 사망과 관련해선 “참으로 비정한 정부”라고 날을 세우는가 하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서도 “문화와 예술, 그리고 예술인들을 건드리지 말라”(10월 12일)고 경고했다.

흔들리는 대세론, 탄력받는 플랜B


▎지난 8월 추미애 대표(왼쪽) 등 신임 지도부가 최고위원회를 개최한 가운데 회의실 백드롭에 크게 쓰인 ‘정권교체’가 눈길을 끈다.
이 같은 문 전 대표의 전격적인 모습에는 ‘문재인 대세론’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8·27 더민주 전당대회가 기폭제였다. 친문 진영이 지지한 추미애 후보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대표에 선출되고, 문 전 대표가 영입한 양향자·김병관 최고위원까지 당선되면서 “친문이 지도부를 독점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다. “이번 대선은 경선이 아니라 본선으로 직행한다”(더민주 친문 의원)거나 “지금 더민주 내에선 하나마나 문재인이고, 문재인 스스로도 본인이 대선 후보라고 생각한다”(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야기들이다.

대세론은 내년까지 이어질까. 불안한 시선도 적지 않다.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반기문-문재인-안철수의 3자 구도에서 문재인의 승리를 확신하기엔 변수가 많다는 말이다. “문재인은 2등은 할 수 있지만 1등은 할 수 없다” (박상병 평론가)는 논리다.

“문재인은 야권이 똘똘 뭉쳐 48%를 득표했다. 그 최대치를 뛰어넘을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는 외연 확장성의 부족이 거론된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당으로 분열되고, 문재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남의 비토가 대표적인 예다.

대세론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문 전 대표 시절 입당한 온라인 당원 10만 명 중 권리당원 자격을 획득한 유권자들은 3만5000명 정도다. 더민주 핵심 관계자는 “이들이 모두 당비 약정을 하고 가입한 것도 아니고, 문 전 대표가 어려울 때 도와줬다고 해서 경선에서 100% 문재인을 지지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세론은 언론이 지어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며 “누구든 3만5000명 정도 못 모으겠나. 그 정도도 못 모으면 대선주자 감도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개헌도 문재인 대세론에 대한 주요 변수로 꼽힌다. 아직은 청와대가 거리를 두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분명히 개헌 카드를 꺼내 들 것이란 전망도 만만치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은 블랙홀’이라고만 했지, ‘개헌을 하지 않겠다’고 한 적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김종인 전 대표가 “개헌을 공약하는 대선후보를 돕겠다”고 공언한 것도 이런 전망을 바탕으로 개헌론을 선점하려는 전략이라고 한다. 김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청와대가 우병우 민정수석부터 최순실 문제까지 끄덕 않고 버티는 이유는 결국 어느 시점에 개헌 카드를 꺼내 들겠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새누리당이 아무리 못해도 개헌 문제가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은 잊혀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문 전 대표의 공세적 태도는 플랜B 준비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김부겸 의원과 안희정 충남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등 비주류 후보들을 중심으로 ‘대안’을 찾는 움직임이다. 참여정부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한 친노 인사는 “당 경선과 본선에서의 경쟁력이 과연 일치하겠느냐는 ‘대세론’에 대한 불안감이 플랜B 가동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은 박근혜의 길을 가고 있다”(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는 우려도 나온다. “문재인이 ‘대세론’을 일찌감치 굳히고 ‘국민성장론’을 내세워 경제 어젠다를 선점하려는 모습이나 조기에 경선을 끝내고 본선으로 직행하겠다는 전략이 2012년의 박근혜 후보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서 소장은 “드라마틱한 경선에서 2002년 노무현이 만들어낸 이변을 재현하려면 이념과 지역, 계파 문제를 초월하는 시대적 과제를 제시하는 새로운 주자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문재인에 대한 경계도 노골화되고 있다. 김종인 전 대표는 “특정인 몇 사람은 무조건 내가 대통령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자기 주변에 세력 확장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문 전 대표를 공개 비판하고 나섰다. 국민성장론에 대해선 “일각에서는 말장난 같은 성장변형론들이 나오고 있다”고도 했다. 박영선 의원도 문 전 대표가 국내 4대 대기업 경제연구소장들과 간담회를 가진 것을 두고 “의원들은 전경련 해체를 주장하며 경제정의를 논의하는데 이런 행보는 스스로의 경제철학 부재를 고백하는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국정감사에서 뜨거운 공방이 벌어졌던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의 미르·K스포츠 재단 모금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2%씩 부족한 비문(非文) 연대 주자들


▎추미애 대표는 대선 경선문제와 관련해 “공정한 경선 관리가 생명”이라고 밝혔다. 9월 28일 최고위에 참석한 추 대표(오른쪽에서 둘째).
문재인 대세론에 맞서기엔 아직 이들 플랜B 주자들의 세력이 미미한 게 사실이다. 박원순 시장과 김부겸 의원은 더민주에 몸담은 시간이 상대적으로 오래되지 않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적자’ 안희정 지사는 문재인 전 대표와 지지층이 겹친다. 김 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지방자치단체장이고, 현직을 유지한 채 경선에 나설 계획이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 반경이 넓지 않다는 것도 불리한 지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들의 발걸음은 빨라지고 있다. 국정감사가 마무리된 만큼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가장 적극적인 쪽은 김부겸 의원이다. 김 의원은 대선주자 중 처음으로 개헌을 위한 임기 단축 의사도 밝혔다. ‘분권형 개헌’을 주장해온 그는 “대통령이든 의원이든 분권정치와 책임정치의 실현을 위해 자기희생을 해야 한다”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기와 권한이 다 기득권이면 포기할 각오를 하고 대한민국을 새로 출범시키자고 약속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약속한다”(9월 23일)고 말했다. 그는 북핵 문제와 원자력발전소 문제, 경제 문제 등과 관련한 토론회를 준비하는 한편 11월 중순에는 대선공약을 담은 저서 ‘공존의 경제’(가제)를 출간할 예정이다. 50여 명이 참석하는 교수자문단과 온라인 팬클럽 결성도 준비 중이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9월 22일 관훈토론회에서 “201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저의 의지는 분명하다. 지역주의 정치, 20세기 낡은 정치, 표류하고 있는 정치체계를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로서 제가 나서보겠다”고 했다. ‘시대교체론’을 내세우고 있는 안 지사도 이달 말쯤 출간할 저서를 마무리 중이다. “시대교체는 박근혜 대통령 체제가 끝나는 내년을 기점으로 한 박정희 체제의 종언을,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경제성장 담론의 종언을 뜻한다”고 안 지사 측 관계자는 설명한다. 이 관계자는 “박정희 체제에 저항한 세대인 문재인보다는 안희정이 ‘적대적 공존’이 아닌 ‘융합적 공존’에 더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박원순 시장도 특히 최근 들어 강경 발언으로 존재감을 부각하고 있다. 박 시장은 10월 13일 페이스북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이런 야만적 불법행위와 권력남용을 자행하는 현 정부와 대통령은 탄핵대상”이라고 비난했다. 14일엔 새누리당이 시위 진압용 소화기 사용에 대해 서울시와 경찰 간 사전협의가 없었다는 박 시장의 국감 발언을 문제삼아 위증 혐의로 고발하자 “영광이다. 불의한 세력과 사람들에게 받는 ‘탄핵’과 ‘고발’은 오히려 훈장”이라고 맞받아쳤다. 박 시장은 10월 27일 서울 시장 취임 5주년을 맞아 대선과 관련한 구체적인 메시지를 밝힐 계획이다. 연말쯤엔 시리즈로 출간할 예정인 책을 통해 더 자세한 내용을 공개한다고 박 시장 측 관계자는 밝혔다.

이재명 시장의 추격세도 만만치 않다. 이 시장은 10월 10일 리얼미터가 실시한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2.2%포인트)에서 5.1%를 기록하며 4.9%를 얻은 박 시장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이 시장은 화끈한 정책과 발언으로 진보층의 인기를 끌고 있다.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반발해 열흘 간 단식을 하거나 정부가 반대하는 청년배당 정책(만24세 청년에게 연 50만원 상품권 지급)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모습 등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문재인 고립’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플랜B 주자들의 연합 시나리오다. 한 비주류 주자의 핵심 관계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낙오하는 후보가 생기고, 그 후보의 지지층이 누구에게로 옮겨갈 것인지가 문제”라며 “자연스럽게 비문재인 후보로 지지세가 모아질 것”이라고 했다. 김부겸 의원이 안희정 지사와 가까운 정재호 의원에게 “나만 승리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승리하는 길로 가자”고 한 것도 이런 해석에 힘을 실어준다.

경선룰 샅바싸움에서 불붙는 파워게임


▎야권의 플랜B 주자들을 두고 일각에선 “시간이 지나 낙오하는 후보가 생기면 그 후보에 대한 지지는 자연스럽게 비문재인 후보로 모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왼쪽부터 김부겸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더민주는 정기국회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경선 준비에 착수할 예정이다. 연말에 경선룰 논의가 본격화되면 올해를 넘겨 최종 룰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원욱 더민주 전략기획위원장은 “모든 후보들이 만족하는 경선룰을 만들 순 없겠지만, 적어도 아무도 이탈하지 않고 모든 후보가 참가할 수 있는 경선룰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경선룰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치열한 수싸움은 불가피하다. 일단 경선시기를 놓고 문재인 전 대표 측과 비주류 측의 입장 차이가 있다. 현재 당헌상으로는 대선 1년 전에 경선룰을 확정하고 6개월 전에는 경선을 치르도록 돼있다. 문 전 대표 측은 최대한 빨리 경선을 치르고 본선에 직행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지만, 비주류 측은 물리적으로나 전략적으로 경선은 내년 7~8월에 치르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박원순 시장 측은 “당 시계가 아니라 국민의 시계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원욱 위원장은 “경선이라는 것은 어떤 것보다 후보자들 간의 합의가 우선”이라면서 “여당과 당내 상황, 정치적 분위기를 종합적으로 감안해서 경선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선거인단 구성방식도 쟁점이다. 2012년 경선에서는 ‘대의원 30%+국민투표 70%(권리당원 35%+일반국민 35%)’ 원칙이 적용됐다. 문제는 권리당원의 비율이다. 비주류 후보들은 최대한 많은 권리당원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김부겸 의원은 ‘100만 명 선거인단’을 주장했다. 김 의원은 14일 언론 인터뷰에서 “과거 두 차례 경선도 국민참여경선 방식으로 치러졌다. 대선 경선에 참여하는 후보들이 모두 노력하면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국민경선도 가능하다“며 “그렇게 되면 판이 커지면서 변화 가능성도 커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반국민과 당원을 함께 반영하는 국민참여경선이 아니라 선거인단을 일반국민만으로 구성하는 완전국민참여경선 같은 방안도 거론된다. 대선을 앞둔 잠룡들의 샅바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박성현·추인영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201611호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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