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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철옹성’ 국정원의 안마당을 들여다보다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정보 전장’에 파견된 한 종군기자의 ‘라이프 워크’… 역대 국정원장과 요원들의 증언이 빼곡한 ‘국정원 실록’

“우리나라엔 제대로 된 종군기자의 전통이 부재하다”던 한 언론인 대선배의 말이 기억난다. 그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이념의 문제를 들었다. 6·25와 월남전 등 우리나라가 치른 전쟁에는 이념이 앞세워졌는데, 그래서 기자들이 전쟁의 참상을 객관적으로 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기자들은 전장에의 접근조차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순직한 종군기자도 거의 없다. 6·25 당시 유명을 달리한 국내외 종군 기자는 모두 23명이다. 이 중 한국인은 한규호 <서울신문> 기자뿐이다.

김당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이 최근 펴낸 <시크릿파일 국정원>은 정보 전장에 파견된 한 종군기자의 ‘라이프 워크’라 할 수 있다. 중앙정보부-안기부-국정원 등 한국 정보기관의 역사를 종횡으로 훑으며 수행한 치열한 취재의 결과물이다. 한국 현실에서 그런 작업은 종군기자의 헌신에 맞먹는 용기 없이는 이룰 수 없다.

한국의 국가정보론 연구는 그 성과와 실적이 매우 저조하다. 학자들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철옹성이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이 철옹성의 일부를 헐고 얻어낸 정보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역대 국정원장과 요원들의 증언이 빼곡한 ‘국정원 실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취재와 인터뷰에 응한 전 현직 국정원 간부와 직원의 수도 50 명이 넘는다. 국정원 5급 이상 간부의 고교·대학·출신지, 북한과 남북정상회담에 제공된 행사 비용, 탈북자와 관련된 대외비 등은 이 책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고급 자료다. 제3장과 5장에서 다뤄진 국정원 운영의 현실은 흥미진진하면서도 개탄과 우려를 부른다. 국정원의 맨파워와 인력관리 실상, 스마트하지 않은 국정원 간부들의 행태 때문이다.

새롭게 밝힌 사실도 많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당시의 정황이 대표적이다. 국정원이 주도한 협상에서 몸값 2000만 달러를 지불했다는 실상을 밝혀냈다. 저자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을 최초 보도했지만, 이와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송금 특검 수용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지금도 “정보기관 공작을 법으로 심판한 것은 노무현의 오판”이란 생각이다. “7·4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실정법을 어겼다고 기소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그는 말한다. 어쨌거나 당시 정부의 대북송금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한국의 정치 지형은 지금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실패한 공작의 역사, 그리고 혁신’이란 부제가 말해주듯 그는 국정원의 대대적인 개혁을 제안한다. 그 방법론은 “국정원이 정권 안보에만 심혈을 기울이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의 개혁이 이뤄져야 할까? 그는 이렇게 답한다.

“첩보 위성을 확보하는 등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에 걸맞은 첩보가 이뤄져야 한다. 백화점식 정보수집 방식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도 정보기관이 역할을 해야 한다. 앞으로는 국정원이 수집할 경제 정보도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아날로그 방식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여전히 정치개입, 선거개입에 머물고 있다. 이스라엘 모사드나 미국 CIA는 이미 1970년대에 이런 후진적 행태를 청산했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201611호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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