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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창조의 본고장’ 바우하우스를 가다(8)] 여덟 번째 이야기 | 미술, 공예, 그리고 ‘자발적 오리엔탈리즘’ 

미술공예운동이 바우하우스, 민예운동, 민중예술을 낳다 

사진 윤광준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의 여파가 독일에서는 그로피우스의 바우하우스로, 일본에서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운동’으로 이어졌다. 특히 야나기의 민예운동은 한국에서 ‘민중신학’, ‘민중해방’ 등의 사상이 형성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우리의 전통문화와 그 속에 녹아 있는 ‘한’ 혹은 ‘비애’와 같은 정서는 ‘민중’ 개념과 연결된다.
#1. 아주 황당하게 생겨난 ‘미술’이라는 개념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개념들의 어원을 찾아 보면 일본 메이지 시대의 번역어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특히 학술 언어가 그렇다. 사회(社會), 문화(文化), 개인(個人) 등등. 원래부터 있었던 개념이 아니다. 너무 놀랍지 않은가? 오늘날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런 단어들이 불과 100여 년 전에 생겨났다는 이야기다. 개념이 없으면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나 개인, 문화와 비슷한 개념들은 있었겠지만, 서구의 언어가 지칭하는 society, individual, culture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현상은 없었다.

세계관이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적극적으로 서구문물을 수입하던 일본 메이지 시대의 지식인들은 동양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들을 일일이 한자어로 번역했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서구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학자들이 한국어의 문화적 맥락에 맞는 새로운 번역을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그러나 이미 일상어가 되어버린 개념들을 전부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한자는 중국의 언어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학술 언어는 많은 경우 일본식 한자번역어를 사용한다. 이는 일본에 대한 정서적 불쾌감과는 별개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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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호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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