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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同行-고령사회로 가는 길’(9)]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가 말하는 노인의 성(性) 

“성욕은 살아 있다는 증거, 주책이라고 놀리면 안 돼”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노인은 무성(無性)적 존재라는 편견 버려야… 노년의 성행위는 스킨십 등 친밀감을 공유하는 행위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목각인형을 들고 노인의 행복한 성생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5년 유엔에서는 인간 발달단계를 새롭게 정의해 발표했다. 0~18세는 청소년, 19~65세 청년, 66~85세 중년, 86~99세 노년, 100세를 넘긴 사람은 ‘많이 산 사람’이라 부르자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65세는 청년, 85세는 중년이다.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은 반백년 가까이 청년기를 보내는 셈이다.

월간중앙이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보건학 박사)를 만나 행복한 노년의 성(性)에 대해 물었다. 배 대표는 20여 년 동안 강의, 방송 출연, 저술 등 성문제 전문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배 대표는 “1997년부터 강의, 부부 상담 등을 해왔다. 섹스를 하는 부부인지 아닌지는 얼굴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며 “섹스는 몸의 문제만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문제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몸을 나눠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어떤 계기로 성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예전에 연세의료원 홍보과에서 근무했습니다. 대학원에서 PR(홍보)을 전공했거든요. 그러다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뒀는데 재취업이 잘 안 되더라고요. 주변에서 ‘경력이 아까우니까 청소년 상담 자원봉사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해서 찾아간 곳이 구성애 선생님의 ‘아우성’이었어요. 그곳에서 선생님의 강의를 열심히 들었죠. 그런 인연으로 지금까지 성문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65세는 청년, 85세는 중년


▎노인들의 사랑을 그린 영화 [죽어도 좋아]의 한 장면. 두 사람 모두 일흔을 넘긴 노년에 배우자와 사별한 뒤 운명처럼 만나 사랑에 이른다.
누구나 ‘행복한성문화센터’에서 상담할 수 있나요?

“그럼요. 부부나 결혼을 앞둔 커플은 물론이고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도 많이 와요. 전화하면 상담하실 수 있습니다. 행복한성문화센터 홈페이지(www.baejw.com)에 들어가시면 전화번호가 있어요. 이메일로도 연락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도 지난해 8월 전체 인구의 14%가 65세 이상인 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성문제 전문가 관점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세요?

“우리나라는 1955~63년생이 베이비붐 세대잖아요? 이 세대가 노년층으로 진입하면서 (노인 인구가) 크게 늘어난 겁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65세를 노인으로 보기에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너무나 젊습니다. 몇 해 전 유엔에서 인간 발달단계를 새로 조정해서 발표했어요. 0~18세를 청소년, 19~65세를 청년, 66~85세를 중년, 86~99세를 노년, 그리고 100세 이상은 ‘오래 산 사람’이라고 부르자는 겁니다.

기대수명이 90세를 돌파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노인은 굉장히 약자라 많이 걱정됩니다. 세대 간의 갈등이 커지고 양극화도 심화되기 때문에 노인의 위상은 계속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또 사회적으로 지나치게 젊음을 지향하다 보니 노인들은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성형외과 찾아가서 보톡스 주사 맞고, 시술하고 이래저래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아요.”

최근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과 세계보건기구(WHO)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의 기대수명을 분석해 미래의 장수 국가를 예측한 논문을 세계적 의학저널 [란셋(Lancet)]에 발표했다. 2030년 출생하는 한국 여성의 평균 기대수명은 세계 최초로 90세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됐고, 한국 남성의 평균 기대수명도 84.1세로 예측됐다. 남녀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다.

노년이 되면 성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게 됩니까?

“남자들은 40세가 지나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매년 1~3%씩 감소해요. 이때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매력적인 대상이 생기거나 멋진 섹스를 자주 하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사실 여성의 폐경기에 대한 정보는 많아요. 그런데 남자들의 갱년기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어요. 남성이 갱년기에 접어들면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거나 식은땀이 나거나 매사에 무기력증이 심해집니다. 그런 현상들은 남성호르몬의 변화 때문에 생기는 거죠. 또 남자 나이가 60세 정도 되면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성취를 했는지’ 자꾸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다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요.

여자들은 49~51세에 폐경기를 겪습니다. 이 시기가 되면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이 크게 떨어져요. 폐경기 증후군을 앓게 되는 거죠. 얼굴이 확 달아오르거나 짜증이 나거나 불면증이 생깁니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성적으로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잠을 잘 자야 테스토스테론도, 에스트로겐도 잘 분비돼요. 그래서 학자들은 여성이 적극적으로 섹스를 하게 하려면 잘 자게 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잠을 잘 자지 못하면 성욕이 생기지 않고 우울해지죠. 그러다 보면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지난해 KBS의 ‘노인의 성 인식 조사’에 따르면 전국 65세 이상 노인 368명 중 68%가 “노인들에게도 성생활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노인들에게 성생활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살아 있으니까요. 팔이 부러졌는데 재활 안 하면 망가지듯이 섹스를 오랫동안 하지 않으면 성기능도 쇠퇴하게 됩니다. 섹스를 통해서 친밀감도 높아지고 면역력도 향상됩니다. 노인들은 생기가 돌아요. 꾸미려고 하고 젊게 보이려고 노력하게 되죠. 성생활을 통해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년의 만남, 자녀들은 반대 말아야


▎경기도는 2013년부터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성교육사의 율동을 따라 하고 있다.
아무리 건강하다 해도 노인이 젊은이만 한 체력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지혜로운 노년의 성생활은 무엇일까요?

“자신에게 맞게 해야죠. 또 파트너가 있다면 함께 노력해야겠죠. 연예나 사랑은 좋은 일입니다. 설레면 세상이 아름답고 살 만하다고 느끼게 되잖아요? 단, ‘나는 파트너 없이도 조용히 살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한테 꼭 섹스를 해야 한다고 강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노인들의 성문제에서는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더 심각합니다. 남성들이야 능력이 되면 자신보다 훨씬 젊은 여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반면 여성들의 경우 정조관념 같은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잖아요? 할머니가 예쁘게 꾸미면 추레하지 않아서 좋다고 칭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난스럽다고 욕합니다. 자식들의 반대도 걸림돌이죠. 사별 또는 이혼한 노인들의 성 상담하러 가보면 늘 듣는 이야기가 ‘자식들의 반대 때문에 상대를 만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자식들 몰래 만나기도 하고요.”

성병으로 진료받는 60대 이상 노인이 2013년 3만4942명에서 2015년 4만2024명으로 증가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육체적으로 건강한 노인들이 많아졌다는 거죠. 다른 한편으로는 노인들이 성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노인들은 자기들도 여전히 성욕이 있고, 섹스를 통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성관계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어요. 어떤 여성들은 성병에 걸린 사실조차 모르고 성관계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인들의 성병 문제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실제로는 (발표된 통계보다) 더 많은 노인이 성병으로 고생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노인 대상 성교육을 하러 가면 콘돔 사용을 권장합니다. 여성들은 규칙적으로 자궁암 검사를 받아야 해요. ‘늙었으니까, 나는 (성관계) 안 하니까 검사 안 해도 돼’ 이런 생각을 하기 쉬운데 정기적 검사가 필요합니다.”

노년의 성범죄도 증가 추세입니다. 한국경찰학회에 따르면 만 61세 이상 노인의 성폭력은 2011년 말과 비교했을 때 2015년 말 기준 102.8%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일까요?

“노인 성폭력도 젊은이들과 다를 게 없습니다. 욕구가 있는데 채울 수 없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는 거죠. 그리고 (노인들 가운데) 성에 대한 가치 교육을 받지 못하신 분들이 많아요. 남성중심적인 가치관을 갖고 계신 분들도 많고요.”

노인 성문제 중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일단 노인들이 자신의 성에 대해서 제대로 알 필요가 있어요. 성 건강에 대한 정보가 공급돼야 한다는 거죠. 노인이 섹스를 하는 것을 주책이라고 보는, 노인은 무성(無性)적인 존재라는 편견부터 버려야 합니다. 또 노인이 성 건강에 대한 진단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갖춰졌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는 인구보건복지협회 같은 단체에서 상담사를 양성하는 등 노인 문제에 역점을 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저출산이 더 큰 문제가 되면서 (노인 문제) 이야기가 쏙 들어갔어요. 갈수록 노인 인구가 늘어나니까 노인의 삶과 복지에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또 노인들도 재혼하고 연애할 수 있도록 자식들이 반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반대하는 이유는 결국 상속 문제 때문 아니겠어요?”

‘문제’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을까요?

“노인들의 성문제라면 발기부전 같은 주로 육체적인 문제겠죠. 주저 말고 전문가를 찾아갈 것을 권합니다. 사회적으로 볼 때 성문제 관련 정보를 지속적으로 양산해 내는 것과 노인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언론도 노인 성문제와 관련된 콘텐트를 보다 많이 생산해 줬으면 좋겠어요.”

문제 생기면 주저 말고 전문가 찾아가야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는 “(노인의) 성욕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노인들의 성생활과 관련해 조언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죠.

“노인들과 상담할 때면 부부끼리 절대 각방 쓰지 말라고 합니다. 섹스를 하지 않으면 서로의 감정에 대해 무뎌지기 쉬워요. 노년의 성행위는 스킨십이거든요. (노년의 성행위를) 개인의 능력으로만 치부한다면 할 수 없는 분들이 많죠. 친밀감을 공유하는 행위, 쓰다듬어 주고 의지하는 행위, 그것이 감정으로 이어지는 것이 노년의 성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성문제 전문가로서 계획이나 포부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해온 일을 정리하면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한국의 성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섹스는 곧 포르노로 인식하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잖아요? 그래서 건강한 성을 알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디든 달려가려 합니다. 촛불처럼 주위를 밝히는 게 아니라 횃불처럼 타오르고 싶어요. 주변에서 ‘너무 좋은 일을 한다’고 격려해 주실 때 보람을 느낍니다.”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배 대표가 ‘돌발 질문’을 던졌다. “(인간에게) 성욕이 강하다고 생각하세요, 식욕이 강하다고 생각하세요?” 답변이 잠시 지체되자 배 대표는 말을 이어갔다.

“성욕이 반드시 섹스는 아니에요. 연어도 밥 안 먹고 강물 거슬러 올라가서 산란하고 죽잖아요? 사람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먹어야 섹스도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2001년 미국 9·11 테러 때 인질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전부 휴대폰 꺼내서 ‘사랑했다, 너와 나는 하나였다’ 이런 문자메시지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했고, 또 확인받고 싶어했잖아요. 사람들은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는 사랑을 확인하고 섹스를 했습니다. 이건 유전자를 남기려는 욕구와 사랑을 확인하려는 욕구, 즐거움에 대한 욕구가 합쳐진 게 아닐까요? 그런 걸 보면 성욕이 식욕보다 강한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섹스는 골프가 아니에요. 가난해도 할 수 있어요. 섹스를 하면 면역력도 좋아지고 통증 예방도 돼요. 여자들은 에스트로겐이 꾸준히 분비돼서 골밀도가 높아지고 피부 윤기가 좋아지고 표정이 밝아져요. 자존감이 높아지기 때문이죠.”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eon.minkyu@joongang.co.kr

201809호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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