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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논설위원의 ‘온리버티’] ‘촛불 이너서클’에 갇힌 ‘청와대의 부장들’ 

“우리가 왜 혁명을 했나(영화 '남산의 부장들' 中)” 되물을 때 

권력형 비리 의혹에도 ‘마음의 빚’ 앞세운 文 대통령
‘우리와 다르면 모두 적’ 논리는 전체주의로 가는 길

[자유론(on liberty)]은 존 스튜어트 밀이 1859년 출간한 자유주의의 교과서입니다. 철학에서의 ‘자유의지’와 달리 ‘사회적 자유’란 무엇이며, 이것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깊은 통찰력으로 논했습니다. 밀은 개인의 자유가 어떻게 역사를 발전시키는지 체계적으로 논증한 최초의 학자이자 정치가였습니다. ‘온 리버티’는 새 시대에 걸맞은 21세기의 ‘on liberty(자유에 관해)’라는 뜻과 ‘only liberty(오로지 자유)’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only liberty’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처럼 사회구성원으로서 인간의 모든 권리와 가치를 하나씩 제거해 나갈 때 최후에 남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 뿐(only liberty)이라는 이야기죠. ‘온 리버티’는 인간 이성의 마지막 보루인 자유의 관점에서 한국 사회를 진단합니다.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끝나고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날카로운 현실 비판과 인문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살펴봅니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식이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렸다. 국회 앞 잔디밭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생중계되는 취임식을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 사진:박종근 기자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독선에 갇힌 권력이 어떻게 이성을 잃고 몰락해 가는지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냈습니다. 주인공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과 동향이며 같은 사관학교 출신입니다. 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던 그는 박 정권의 실체를 미국에서 폭로하겠다던 전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을 암살합니다. 그러나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김재규는 2인자(현직 중앙정보부장)임에도 경호실장 차지철에 밀려 권력의 이너서클에서 겉도는 이방인으로 묘사됩니다.

처음 개봉 당시부터 이 영화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박 대통령을 권력에만 집착하는 ‘악인’으로 묘사하고, 김재규를 마치 독재정권을 끝낸 ‘의인’으로 포장하려 한다는 것이었죠. 역사적 실체를 자세히 모르고 영화만 본 관객들은 그런 생각을 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작품 속에서 박 대통령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 임자 옆에 내가 있잖아”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김재규가 김형욱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냐고 물을 때도 똑같이 답변했죠. 막상 김재규가 이를 행동에 옮긴 뒤에는 “너는 친구(김형욱)를 죽인 놈”이라며 비난합니다.

반면 김재규는 차분하고 이성적이며 인정까지 많은 인물입니다. 항상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대통령을 끝까지 보필하겠다는 충정 어린 모습도 보이죠. 박 대통령의 미움을 받는 김형욱을 찾아가 친구로서 그를 살리기 위한 노력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화 말미에선 광기에 사로잡힌 독재자의 억압과 횡포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결단(암살)을 내리는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으로 승화됩니다.

영화는 역사의 기록이 아니기에 시시콜콜 사실과 비교해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 작품이 박정희 흠집 내기라는 정치적 선동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은 논란이 있습니다. 4월 국회의원 총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당은 이 영화의 흥행이 반가울 수 있지만 자유한국당 등 보수 세력에겐 꽤 불편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처음부터 박 대통령과 그의 업적을 폄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우민호 감독의 전작 [내부자들]에서처럼 권력의 오만과 독선을 날카로운 수술용 칼로 후벼내는 것이 작품의 궁극적 의도이기 때문이죠. 비록 작품의 배경은 1979년 10월로 설정해 놨지만, 이를 다른 시대로 옮겨도 권력을 비판하는 영화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앞서 살펴봤듯 영화는 독선적인 권력이 이너서클에 갇혀 광기로 치닫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기표(記標)는 박정희의 독선적 권력과 차지철을 중심으로 한 유신정권의 친위대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숨은 의미, 즉 기의(記意)는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일 수도 있고, 캄보디아에서 수백만 자국민을 죽인 킬링필드의 크메르루주 정권일 수도 있습니다.

“임자 옆에 내가 있잖아”


▎영화 [남산의 부장들] (감독 우민호)은 1979년 중앙정보부장(이병헌 分)이 대통령 암살사건을 벌이기 전 40일간의 이야기를 그렸다. / 사진:사진 쇼박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를 보면서 2020년의 문재인 정부를 기의로 떠올린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임자 옆엔 내가 있다’고 말하는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늘 ‘사람이 먼저’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집권 4년 차에 문 대통령의 이 말이 ‘자기 사람이 먼저’라는 말로 들린다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요.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조국 전 장관이 지금까지 겪었던 어떤 고초만으로도 아주 크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여러 언론은 피의자인 조 전 장관에 대한 대통령의 표현치고는 부적절했다고 평했습니다.

대표적 진보 논객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자신의 페이스북(1월 6일)에서 “문재인이라는 분이 대통령이라는 ‘공직’을 맡기에 적합한 분이었는가 하는 근본적 회의를 갖게 한다”며 “대통령 발언에 많은 분이 뜨악했던 것은 공화국의 이념을 훼손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사실 2019년 하반기는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대표되는 두 개의 광장으로 대한민국이 쪼개져 있었습니다. 이를 촉발한 것은 문 대통령의 조 전 장관 임명 강행이었죠. 진보 정치학계의 거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조차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넘어선 권력 남용, 초법적 권력행사”라고 비판했지만 문 대통령은 밀어붙였습니다.

조 전 장관 취임 후에도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사가 계속되자 청와대와 여당은 윤 총장을 공격하기 바빴습니다. 급기야 법무부 장관 후임으로 추미애 의원이 오면서 윤 총장에 대한 압박은 더욱 거세졌죠. 소위 ‘인사 대학살’이라고 불리는 이례적인 인사발령을 통해 윤 총장의 손발을 모두 잘라냈습니다.

설 연휴 직전에는 법무부의 칼끝이 윤 총장을 직접 향했습니다. 법무부가 갑자기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전결로 기소한 송경호 서울중앙지검 3차장에 대해 감찰 의사를 밝힌 것이죠. (1월 23일) 이날 아침 송 차장이 직속 상관인 이성윤 서울지검장의 승인 없이 최 비서관을 기소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법무부는 ‘적법절차를 위반한 업무방해 사건 날치기 기소’라는 거친 표현까지 사용했습니다.

전직 국회의장이 행정부 총리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표결 당시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여야 의원들.
그러나 송 차장의 기소 결정은 윤 총장의 직접 지시에 따라 이뤄졌습니다. 앞서 윤 총장은 전날인 22일 하루에만도 세 번이나 이 지검장에게 최 비서관 기소 건을 재가하라고 주문했지만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윤 총장이 직접 송 차장에게 전결 처리를 지시한 것이었고요. 그 이전에 이미 수사팀 실무자들이 이 지검장을 찾아 기소 결재를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추미애 장관의 법무부가 윤 총장을 압박하고 나서자 피의자인 최 비서관까지 변호사를 통해 “검찰권을 남용한 ‘기소 쿠데타’”라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윤 총장을 중심으로 특정 세력이 보여 온 행태는 적법절차를 완전히 무시하고 내부 지휘계통도 형해화한 사적 농단의 과정이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 전에는 최 비서관의 해명을 청와대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대신한 사례도 있었고요.

이쯤 되면 문 대통령의 ‘(자기) 사람이 먼저다’는 구호는 대통령의 핵심 국정철학 중 하나가 아닐까 의심됩니다. 앞선 그의 ‘회전문 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문제로 전 세계가 시끄럽습니다. 그러나 사태의 진원지인 중국의 장하성 한국대사는 무엇을 하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취임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그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 의문입니다.

장 대사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을 설계하고 집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현 정부의 관리들조차 ‘소주성’을 입에 담지 않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거시경제학자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경제 정책은 소득주도 성장이 아닌 소득주도 빈곤”이라며 ’포퓰리즘 정책으로 과거 성공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1월 14일)

정책이 실패하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며, 방향이 잘못되면 옳은 쪽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정작 ‘소주성’의 책임자인 장 대사는 오히려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 없다, 내가 강남 살아서 드리는 말씀”이란 말로 국민의 속만 뒤집어 놓고 정권 내내 요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국대사로서 그의 존재감이 작다 보니 항간에서는 ‘중국의 23개 성에 소주성을 추가하는 것이 그의 임무’라는 ‘웃픈’ 농담도 나옵니다.

장 대사 외에도 공정거래위원장에서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김상조 정책실장, 국회의장을 지내다 국무총리가 된 정세균 의원까지 현 정부의 ‘회전문 인사’ 사례는 많습니다. 특히 정 의원은 입법부 수장이 총리가 된 최초의 사례였죠. 이처럼 문 대통령의 ‘자기 사람’ 정치가 계속되자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은 친문 세력의 수장인가, 대한민국 대통령인가"(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2019년 10월 8일)라는 비판까지 나옵니다.

현대 민주정치제도의 본질은 권력 분점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의 3각 구도죠. 국가 권력은 다시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로 나뉩니다. 그러나 한국의 권력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에 따라 제대로 분산돼 있지 않습니다.

먼저 시장과 시민사회에 비교해 국가의 힘이 매우 큽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과 비교해 시장과 시민사회의 힘이 강해진 측면도 없지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국가 권력이 상당 부분 우위에 있습니다. 지난달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5대 그룹 임원들을 불러 ‘공동으로 사업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보도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동아일보] 1월 22일)

청와대는 다음날 “2020년 경제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업계의 건의를 받는 자리였다”고 해명했지만 만남 자체만으로도 기업엔 큰 부담이 될 수 있죠. 앞서 여당의 홍영표 원내 대표가 “삼성의 작년 이익이 60조원인데 이 중 20조원만 풀면 200만 명한테 1000만원씩 더 줄 수 있다”(2018년 7월 13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던 터라 기업 입장에서는 청와대·여당과의 회동 자체가 껄끄러운 일입니다.

‘대통령·정부·여당 vs 야당’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 사진:뉴시스
시민사회가 국가에 종속된 것도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 중 하나입니다. 국내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설립 이후 꾸준하게 진보적 목소리를 내며 사회개혁의 불쏘시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현 정권 출범 후 참여연대 출신 인사들이 공직으로 줄줄이 영입되면서 날카로웠던 칼날이 무뎌졌죠.

급기야 조직의 핵심이었던 김경률 회계사가 집행위원장 자리를 박차고 참여연대를 나갔습니다. 그는 지난달 22일 국회 강연에서 “조국 전 장관을 옹호하는 세력을 보며 마오쩌둥의 문화혁명 당시의 대량살상과 같은 광기를 느꼈다, 그것은 토론조차 허용하지 않는 광기였다”고 말했습니다. 시민단체가 국가를 비판하고 감시하지 못한 채 오히려 정치에 예속돼 있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처럼 한국의 국가 권력은 행정부, 특히 청와대에 집중돼 있습니다. 오늘날 정치 세력의 대결 구도는 ‘행정부 vs 입법부’가 아니라 ‘대통령·정부·여당 vs 야당’ 구도입니다. 특히 2019년 국회에선 ‘1+4’라는 독특한 정치세력이 결성돼 4개의 야당이 대통령 권력에 힘을 실어주며 제1 야당을 따돌리는 현상까지 발생했습니다. 여기에 대통령의 입김이 강한 사법부까지 고려하면 한국에서 삼권분립은 교과서 속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남산의 부장들]에서 묘사된 무소불위 권력은 오늘날 한국 사회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총칼과 탱크 대신 이성과 합리가 마비된 열성 지지자들을 정치적으로 등에 업고 있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문프께 이 모든 권리를 양도해드렸다”(공지영, 2019년 8월 21일)는 말처럼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말이면 무조건 진리라고 믿는 상황에서 권력의 욕망과 아집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은 마치 소금물과 같아서 마실수록 갈증이 납니다. 한 번 도취하기 시작하면 헤어나기 어렵다는 뜻이죠.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역사가 오랜 서구의 선진국들은 권력을 분산하기 위해 제도적인 장치들을 여럿 만들고 정치인 자신도 이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 첫 번째는 독선을 지양하고 다양성을 지향하는 일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독선이 위험하다는 것은 모두가 압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어떤 의견이 불경스럽고 비도덕적이라 해도 자신에게 절대로 오류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불경스럽고 비도덕적인 의견보다) 치명적인 독을 품는다”고 합니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절대적인 권력이나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하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소크라테스의 사례를 예로 듭니다. “아테네인들은 불경과 부도덕을 이유로 그때까지 태어난 사람 중 최고의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았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독선은) 개인의 사사로운 삶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상대방의 영혼을 침투하고 도저히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민주주의 핵심 원리는 다양성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신임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과의 기념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같은 독선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성적인 토론을 통해 각자 의견의 타당성을 검증받는 것입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옳다고 믿는 A라는 명제를 반박하는 주장이 나오더라도 합리적 토론의 과정을 거치면 A에 대한 신뢰는 높아질 것입니다. 반대로 토론을 통해 A의 오류와 잘못이 드러난다면 그것 또한 매우 큰 성과입니다.

밀은 “각 시대에는 수많은 주장과 의견을 잉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지 후회되는 경우도 많다”며 “과거가 현재로 부정되듯, 현재도 미래에 번복될 것이며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많은 것들이 언젠가는 폐기될 것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밀은 ‘진리’ ‘절대선’ 같은 표현을 쓰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반증 가능성이 없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는 카를 포퍼의 말과 비슷한 맥락이죠.

이처럼 독선을 경계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입니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하는 것은 자유주의고요. 그래서 밀은 “가장 정확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누구나 자기 뜻을 펼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하며, 다양한 입장에서 다른 생각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세상의 어떤 현자도 이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지혜를 얻은 사람은 없다”고 강조하죠.

이렇게 자유주의는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기둥입니다. 시민 각자가 자유롭게 의견을 펼칠 수 없다면 사회적 다양성은 피어나지 못합니다. 새로운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과거의 의견만 답습한다면 인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죠. 같은 이유로 자기 생각만 옳다고 믿으며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역사는 후퇴합니다.

현 정권에서 이런 밀의 지적에 가장 뜨끔해야 할 이들은 소위 ‘친문’과 ‘문빠’로 지칭되는 정치인과 이들의 극단적인 지지 세력입니다. 이성과 합리를 잃어버린 맹신은 민주주의를 파괴합니다. 다양성을 상실하고 오로지 우리 편과 남의 편으로 구분되는 이분법적 사고는 상대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동반합니다. 2019년 ‘친일’ 프레임으로 자신의 주장과 다르면 ‘적폐’, ‘토착왜구’ 등의 낙인을 찍었던 일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이를 정권의 한가운데서 주도했던 인물이 조국 전 장관입니다. 조 전 장관은 자신의 범죄 혐의가 이미 상당 부분 드러났을 때도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자신을 포장했죠. 이때 사용된 논리도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였습니다. 조 전 장관의 아내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지지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자신이 구속된 “유일한 이유는 사법개혁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최장집 교수는 조 전 장관이 쓴 [진보집권플랜]에 대해 “진보 대 보수, 개혁 대 수구 등 확실한 구분과 치열한 투쟁, 권력 쟁취를 지향하는 경향이 칼 슈미트의 정치이론과 깊이 접맥된다”고 평가했습니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1888~1985)는 나치에 중요한 이론적 기틀을 제공한 사람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정치인의 이분법적 선동은 대중의 합리와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지난해 12월 말 서울 서초동 집회에서는 한 초등학생이 연단에 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교에서 주는 표창장을 받게 됐는데 엄마가 상을 받지 말라고 했다. 엄마가 매주 서초동에서 검찰개혁을 외쳤기 때문에 상을 받으면 검찰 조사를 받을 수 있다며 글썽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학생은 “민주 국가에서 검찰이 왜 죄 없는 사람을 가두는지 알 수 없다, 떳떳하게 표창장을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중앙일보] 2019년 12월 30일)

이 초등학생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의 어머니는 과연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다시 영화 [남산의 부장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작품 속에서 청와대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정치인과 재야인사, 학생 운동권, 나아가서는 일반 시민까지 ‘빨갱이’로 몹니다. 유신헌법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야당뿐 아니라 보통의 시민들까지 ‘적’으로 규정하죠. 부산에서 마산으로 시위대가 커지자 청와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특전사와 공수부대 등을 투입해 진압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 유명한 차지철의 발언이 나오죠. 캄보디아에서 크메르루주 정권이 수백만 명의 자국민을 학살한 사례를 들며 “100~200만 명쯤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라고 말이죠. 그러면서 박정희 대통령 역시 그의 주장에 솔깃해하는 모습이 작품에 그려집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무고한 시민의 생명조차 새털처럼 가벼이 여길 만큼 왜곡되고 일그러진 것이었습니다.

21세기를 떠도는 전체주의의 유령


▎지난해 8월 울산시 동구 한 도로변에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를 규탄하는 ‘노 아베’ ‘노 토착왜구’ 현수막이 걸렸다. / 사진:연합뉴스
극 중에서 ‘혁명의 대의’는 왜 이렇게 흉측한 괴물로 변하고만 것일까요? 그것은 다양성과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독선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영화에 묘사된 박 대통령뿐 아니라 인류 역사의 모든 독재자에게 공통된 일입니다. 독선은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단순명료하며 폭력적인 방식을 선호합니다.

오랫동안 권좌에 군림했던 만큼 최고 권력자에게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쓴소리를 하던 사람은 모두 곁을 떠나고 권력자의 비위만 맞추는 간신들만 주변에 남게 된 것이죠. 제아무리 ‘혁명의 대의’와 ‘공정사회’를 외쳤던 사람도 독선의 벽에 갇히고 나면 괴물로 변하고 맙니다.

그때부터 전체주의 유령이 국가를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청와대·정부에서 여당으로, 이는 다시 시민단체와 언론으로, 종국에는 ‘모든 것을 지도자에게 양도한’ 맹목적 추종세력까지 진영논리로 수직계열화된 단일대오가 형성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은 ‘적폐’가 되고, 우리 편과 너희 편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죠.

일본을 미워하지 않으면 ‘친일’, ‘토착왜구’가 되고 조 전 장관을 비롯한 정권의 실세들을 수사하거나 이를 지지하면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적폐’가 되는 현실이 전체주의의 그것과 똑 닮아 있습니다.

“‘진보 vs 보수’와 같은 확실한 구분과 치열한 투쟁은 칼 슈미트의 정치이론과 깊이 연관돼 있다”는 최장집 교수의 지적처럼 조 전 장관을 포함한 현 정부의 실세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맹목적 추종세력은 전체주의의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카를 포퍼는 폐쇄적 민족주의와 전체주의처럼 피아 구분이 명확하고 상대의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를 닫힌사회라고 규정합니다. 반대로 열린사회는 ‘개인이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자율적 행동을 통해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입니다. 칼 포퍼는 “우리가 문명사회의 인간으로 남길 원한다면 단 하나의 길, 열린사회의 길만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짐승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 지금 우리는 어떤 길로 가고 있을까요?

※ 윤석만 논설위원/중앙일보 -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 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202003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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