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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목민관열전] ‘실용 행정’으로 변화 꿈꾸는 심규언 강원 동해시장 

“4년의 밑그림, 4년의 실천으로 백 년 동해의 미래 실현”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40년 ‘토박이 공직’ 경험으로 겉치레보다 내실 있는 지역발전 추진
환경·산업 자원 활용해 북방경제·관광 중심지로 제2 도약 발판 마련


▎심규언 강원 동해시장은 40년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동해시에서 봉직했다. 지역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그가 세운 발전 전략은 실용적이고 효과적이다. / 사진:동해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강원도 방면으로 두 시간가량 달리면 동해의 푸른 바다가 보이는 장관이 펼쳐진다. 열차 승객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바다로 향하게 되고 정동진부터 동해역까지 이어지는 바다 풍경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관광열차로 갈아타는 번거로움 없이 이색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니 느릿한 KTX 속도가 답답하지만은 않다. 묵호역에서 500여m 떨어진 묵호항 어판장에는 청정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해산물이 넘쳐난다. 어른 양 손바닥만 한 살아 있는 러시아산 대게를 가장 처음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다를 뒤로하고 백두대간 자락으로 향하면 신선이 노닐었다고 해서 무릉도원이라고도 불린 무릉계곡이 나온다. 동해안의 숨은 진주 동해시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여파로 번잡한 관광지를 피해 휴식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늘면서 동해시가 새로운 휴식처로 떠오르고 있다. 강원도의 여느 산촌, 어촌과 달리 동해시는 40년 넘은 엄연한 산업 중심 계획도시다. KTX 영동선, 동해선 철도가 속속 이어지면서 수도권과 접근성도 크게 좋아졌다. 동해시는 동해안 시대의 거점 도시로 제2의 부흥을 꿈꾸는 중이다.

두 팔 걷고 나선 이는 심규언(67) 동해시장이다. 1981년 공직에 입문한 이래 선출직을 포함해 40년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동해시에서 봉직했다. 동해시의 역사와 함께 해왔기에 심 시장의 ‘동해 비전’은 유장하면서도 실용적이다. 2월 11일 심 시장을 만났다. 그의 행정 철학은 “4년 후가 아닌 40년 뒤의 동해시를 늘 꿈꾼다”는 말로 압축된다.

강원도의 여러 지역 중에서도 동해시는 지명부터 외부 사람들에게 생소하다는 느낌이 짙다.

“지명은 생소해도 묵호항, 망상해수욕장, 추암해변 등 누구나 알 만한 명소가 즐비한 곳이 바로 동해시다. 명주군 묵호읍과 삼척군 북평읍을 통합해 1980년에 독립 지자체로 설치됐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는 동해항을 중심으로 한 북방물류 임해공업도시로 구상돼 한국 현대사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진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제철소(삼화제철)가 이곳에 있었다. 동해항은 북한과 가장 가까워 금강산관광 여객선이 처음 출항한 곳이기도 하다. 묵호항은 설치된 지 85년 된 동해 경제의 요충지이며 동해항은 해군 1함대 사령부가 있는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산업 인프라는 어떤 편인가?

“본래 북방경제의 중심도시로 조성됐기 때문에 기본적인 산업 기반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쌍용시멘트와 DB메탈, 발전소, 해군 1함대 등이 있어서 정주 기반이 마련돼 있다. 또 LS전선이 그동안 1조원가량 투자해 세계 최고 수준의 해저케이블 단일 공장을 지었다. 지난해에는 1202억원을 2023년까지 투자하기로 투자협약을 맺었다. 인구가 많다고 잘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시정의 최종 목표는 시민의 삶이 행복한 도시를 만드는 거다. 시민의 소득을 높이고, 교육·보육 등 생활환경 수준을 높이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산업·관광 자원 풍부한 북방경제 중심 도시


▎동해항에 인접한 LS전선 동해사업장 직원들이 해외에 납품할 해저케이블 완제품을 점검하고 있다. 동해시는 환동해권 경제 중심도시로 도약을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다.
KTX를 타고 오다 보니 정동진을 지나 동해역까지 구간이 한적해서 마치 관광열차를 탄 기분이었다.

“바닷가 따라서 오니 구경하면서 오기에 더없이 좋긴 하다. 동해시를 찾는 관광객들은 만족도가 높은 것 같다. 다만 철로가 시내를 가로지르고 있어서 위치를 옮겨야 할 필요도 있다. 묵호는 역에서 내리면 바로 항구와 연결돼 관광지로 경쟁력이 있다. 울릉도, 독도로 가는 뱃길이기도 하다. 코로나 전까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일본 마이즈루를 오가는 화객선이 운항해 선박여행도 가능했다. 동해항은 금강산 여행 출발지였다. 관광하기에 좋은 요소가 많은 곳이다.”

KTX 동해선이 열린 뒤 관광객 유입 효과가 있나?

“서울에서 동해역까지 두 시간 반 거리다. 접근성이 좋아져 지난해 유료관광객이 전년도보다 78% 늘었다. 내년에 부산에서 동해까지 고속열차가 개통되면 역시 두 시간 반 거리로 관광객 유입 효과가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관광지로서 동해시의 색깔이 있다면?

“4년 전부터 동해시를 5개 권역으로 나눠 관광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무릉·추암·천곡·묵호·망상권역을 각각 특색을 살려 개발하고 이를 연계하는 전략이다. 황폐해진 폐광산을 친환경적으로 복원해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관광지로 개발하며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혁신사례로 평가받기도 했다. 쓸모없이 방치된 곳을 환경친화적으로 꾸며 인공미를 최소화한 게 동해시 관광의 특징이다.”

폐광지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한 무릉별유천지는 인터넷에서도 아름다운 곳으로 입소문이 나 있다.

“무릉별유천지는 시멘트 제조회사(쌍용C&E)가 50년간 석회암을 캤던 곳이다. 산허리까지 잘려나가고 커다란 웅덩이가 패어 있어서 흉물스러운 애물단지였다. 원래 법적으로는 채광이 끝나면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서 원래 상태로 복원해야 하지만, 완전히 본래 상태로 복구되지 않는다. 축구장 150개(120만㎡)에 달하는 광활한 폐허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원상복구 명령 대신 소유권을 기부채납받아 관광지로 개발하기로 했다. 석회질이 녹아 있어 에메랄드빛을 내는 커다란 웅덩이는 호수로 꾸미고 주변을 화원으로 단장했다. 깎여나간 산비탈은 스카이글라이더와 오프로드형 루지 등 액티비티 시설로 만들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준비됐나?

“2027년까지 개발을 마칠 예정인데, 지금도 대부분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국내에서 산업화로 파괴됐던 자연이 힐링 공간으로 재탄생한 사례로는 가장 규모가 클 거다. 조성사업이 끝나면 세계적인 산업재생 사례로 꼽힐 거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로 유명한 캐나다의 부차드 가든 못지않은 여행지가 되리라 확신한다.”

흉물로 남을 뻔한 폐광산이 관광지로 탈바꿈


▎동해시는 자연을 인위적으로 훼손하지 않으면서 특색 있는 관광지로 개발해 차별화를 시도했다. 폐석회광산을 활용한 무릉별유천지 관광단지와 현대식 펜션, 한옥, 캐러밴을 갖춘 망상오토캠핑리조트 전경. / 사진:동해시
시민과 관계 기관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2017년에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사례가 없어서 막막했다. 폐광지는 무조건 복구하게 돼 있는 현행법을 내세우는 환경부를 설득하고 환경영향평가 조사를 하는 데만 1년 6개월 걸렸다. 다른 곳은 대개 자연환경에 인공시설물을 덧입혀 관광지로 개발하는 데 반해 무릉별유천지는 파괴된 자연을 치유하면서 동시에 산업유산을 보존해 살아 있는 교육의 현장으로 삼고자 했다.”

앞으로 나타날 폐광을 활용한 재생사업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을 만한 것 아닌가?

“무릉별유천지 성공에 힘입어 작년 말에는 대한민국 지방자치 혁신대상에서 종합대상과 최고혁신단체장상을 받았다. 작년 11월 준공식에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도 참석해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다만 살림살이가 빤한 작은 지자체가 하기엔 비용부담이 너무 커서 정부가 지원을 확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망상해수욕장에 새로 만든 망상오토캠핑리조트는 관에서 만든 시설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고급스러웠다.

“본래 2002년부터 캐러밴과 캠핑장을 갖춘 오토캠핑장을 만들며 세계캠핑캐라바닝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던 캠핑의 성지였다. 그런데 2019년 4월 동해안 대형산불로 순식간에 잿더미가 됐다. 충격이 컸지만, 사계절 체류형 리조트라는 컨셉트로 새로 조성했다. 현대식 리조트와 한옥, 캐러밴 세 가지로 선택의 폭을 늘리고 물놀이터와 커뮤니티 시설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보강했다. 저렴하고 고급스럽다고 입소문이 난 덕분에 예약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기 명소가 됐다.”

굵직한 프로젝트는 기간이 길어서 민선 단체장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임기 안에 성과를 내려는 조바심 같은 건 없었나?

“두 번의 선거를 치르면서 지킬 수 없는 약속은 아예 공약으로 내걸지 않았다. 2013년 말 부채가 512억원을 넘을 만큼 재정 상태도 좋지 않았고, 전임 시장에게 물려받은 사업들을 마무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기본과 원칙을 지켜서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중요한 과제였다.”

(동해시는 역대 민선 시장 2명이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임기 중 구속된 뼈아픈 역사가 있다. 심 시장은 2012년 부시장 때 시장권한대행을 하면서 10년째 시정을 총괄해왔다.)

시민의 신뢰는 소통에서 시작된다. 소통에 관한 철학이 있나?

“다양하게 시도해봤는데 솔직히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렵더라. 직접 만나기엔 한계가 있어서 온라인으로 소통 창구를 늘리고 있다. 무엇보다 소통의 기본은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정말로 시에 말할 게 있어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기회와 채널을 여는 게 소통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목소리가 작은 이들에게 마이크를 쥐여주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임기 중 공약 이행률을 보니 98%에 달하는 걸로 집계됐다. 전국에서도 최상위권의 성과다.

“첫 임기는 50년, 100년 뒤의 동해시 모습을 그리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준비 기간이었다.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성장과 행복’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앞서 구상했던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4년의 준비와 4년의 실천이 공약 이행률 98%의 비결이라면 비결인 셈이다. 아직 마치지 못한 사업들도 예산은 100% 다 확보해뒀다. 올해 연말이면 공약 사업은 거의 다 마무리될 거로 예상한다.”

‘부채 제로’ 달성하고 재정운영 우수기관으로 탈바꿈

기억에 남는 성과는 무엇이 있나?

“2014년에 500억원이 넘었던 부채를 5년 만에 상환해 ‘지방채 제로’를 달성했다. 재정혁신에 매진한 결과 2020년에 이어 지난해에 재정운영 우수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제대로 일하려면 예산이 뒷받침돼야 하기에 국비 확보에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국비 확보 규모가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5대 권역별 특화 관광지 개발사업도 속속 완공되면서 동해시만의 관광 인프라가 서서히 제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미래의 일이지만, 동해항·묵호항 재개발과 신규 항로 개척으로 대륙과 해양을 잇는 환동해권 복합물류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한 것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은 게 서서히 결실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달라질 동해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가고 있나?

“내륙과 해양 관광을 결합한 체류형 관광도시를 꿈꾼다. 코로나로 지친 시민을 위로할 수 있는 힐링·치유에 특화된 휴양도시로 만드는 거다. 또 국가적 난제인 인구 감소에 대비해 일자리를 늘리고, 교육·문화 등 삶의 질을 높이는 데도 주안점을 두고 있다. 단기적인 인구 증대 정책보다 장기적으로 경제적·문화적 기반을 갖춰 살기 좋은 도시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을 깊이 고민하고 있다.”

아쉬움도 있을 것 같다.

“우리 시의 오랜 비전은 동해·묵호항과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환동해권 산업물류 중심 도시를 만드는 거다. 다행히 동해항 개발과 철도건설사업은 잘 추진되고 있는데 동해항 건설 당시 했던 항만 배후단지 조성 약속이 꼭 지켜졌으면 한다. 막대한 비용 문제로 미뤄져왔는데 차기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되길 고대하고 있다. 또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 망상1지구 개발사업이 본래 계획했던 명품관광지가 아니라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개발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관련 기관과 시민의 갈등이 지속하고 있다. 강원도와 사업 시행자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당초 목적대로 개발해주길 촉구한다.”

※ 심규언 동해시장
■ 1955년 출생
■ 춘천제일고등학교 졸업
■ 관동대학교 행정학 석사
■ 1981년 행정 7급 공채
■ 동해시 문화공보실장(사무관)
■ 동해시 행정지원국장(서기관)
■ 동해시 부시장 (시장권한대행)
■ 민선 6기 동해시장
■ 민선 7기 동해시장(현)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203호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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