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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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이슈] ‘고향사랑기부제’ A to Z 

지방소멸 위기 극복, 고향의 재발견에서 답을 찾는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1월 1일 고향사랑기부제 시행, 지역 경쟁력 회복 마중물 기대
연간 500만원까지 세액 공제, 답례품 등 관련 산업 동반 성장


▎2023년 1월 1일부터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된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인구감소와 재정난으로 소멸 위기에 봉착한 지방의 자립 기반을 갖추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 사진:getty images bank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은 2022년 한 해 동안 출생신고를 한 신생아가 단 두 명에 불과했다. 삼동면의 16개 마을 중 7곳은 3년째 신생아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면 주민의 73%가 65세 이상이다. 인구 감소는 비단 삼동면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에서 수년째 나타나는 현상이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전국 228개 시·군의 인구 변화를 조사한 결과 지방 소멸 위험도가 높은 지역은 59곳으로 나타났다. 행정안전부가 2021년에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한 시·군·구도 89곳에 달한다.

소멸을 막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다양한 지원책을 펼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정부 재정에 의존하는 것으론 지방의 자립 기반을 마련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국가적 정책과 재정 지원 외에도 지방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중요한 대책으로 꼽는다.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지역 자립 기반 조성을 돕기 위해 나온 제도가 ‘고향사랑기부제’다.

고향사랑기부제는 2021년 9월 28일 ‘고향사랑기부금법’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면 세제 혜택과 함께 지역 특산품을 답례로 제공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자체는 기부금을 주민복리 증진 등의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일본이 2008년에 시작한 ‘고향납세제’를 참고했다.

지방소멸 위기에 등장한 고향사랑기부제


기부자는 자신의 주민등록상 거주지 이외의 지자체를 선택할 수 있다. 연간 기부 한도는 500만원까지다. 10만원까지 전액 공제돼 연말정산 시 돌려받고, 초과분은 16.5%의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지자체는 기부자에게 기부금의 30% 한도 내에서 답례품을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0만원을 기부한다면 연말정산을 통해 10만원을 돌려받고, 3만원어치의 지역 특산품이나 지역사랑상품권 등을 받을 수 있다. 기부자로선 일석이조다.

정부와 지자체는 고향사랑기부제가 활성화하면 관련 산업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기부금 추정 규모는 연간 576억~7767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답례품 시장 규모도 172억원에서 233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KDI는 내다봤다. 답례품은 지역 특산물에 국한하지 않고, 지역상품권이나 관광·문화예술 콘텐트 등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다. 또 기부자와 지자체를 연결해 기부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답례품을 선택할 수 있는 플랫폼 산업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

이 같은 기대감은 일본의 사례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고향납세제 시행 초기 일본의 기부금 규모는 연간 5만4000여 건, 약 865억원의 기부금이 모였다. 이후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고향납세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이런 관심에 힘입어 2015년 ‘고향세 원스톱 특례제도’를 도입하면서 전년도보다 4배 이상 증가했고, 이듬해 ‘지방창생응원제도’를 도입하면서 다시 1.7배 증가했다. 2021년 말 기준 일본의 고향세 기부금 규모는 4447만여 건에 8조3000억원 규모로 100배가량 성장했다. 후루사토 납세총합연구소는 고향납세제의 경제 파급 효과가 28조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현재 일본의 고향납세제를 주도하는 것은 민간 플랫폼이다. 처음에는 일본 정부와 지자체들이 제각각 구축한 공공플랫폼을 통해 제도가 운영됐다. 그러다 보다 편리하고 사용자 친화적인 민간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참여 문턱이 낮아졌다. 현재 일본에는 40여 곳의 플랫폼이 홍보와 기부금 집행 대행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민간 플랫폼인 ‘후루사토초이스’가 취급하는 답례품은 46만 개에 달한다.

기부자의 관심을 사기 위해 지자체들은 저마다 기발한 기부 프로그램으로 어필한다. 인구 2만여 명에 불과한 일본 홋카이도 최북단 몬베츠시는 2021년에 고향세 모금액을 가장 많이 유치했다. 1년 예산의 절반 수준인 1530억원이 모였다. 몬베츠시가 ‘유빙(流氷) 보호’를 내건 게 국민적 공감대를 얻었다. 몬베츠시는 1~3월 오호츠크 바다 위를 떠다니는 유빙을 볼 수 있는 빙하 도시다. 기후변화라는 사회적 공감대와 맞아떨어진 게 흥행의 요인이다.

매년 수천 마리의 유기견을 살처분하느라 골머리를 앓던 히로시마 진세키고원은 고향세로 유기견보호소를 늘려 살처분율 제로를 달성했다. 그 밖에 상대적으로 지방 재정이 여유로운 도시지역에선 저소득층 가구나 소외계층에게 밀키트를 정기적으로 배달하는 방식의 나눔 프로젝트나 유기 동물 보호 등의 생활 밀착형 공익 프로젝트로 기부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기부자 공감 얻는 프로그램과 답례품이 경쟁력 좌우


▎우리의 고향사랑기부제와 유사한 고향납세제도를 2008년부터 시행 중인 일본은 다양한 펀딩 프로그램과 답례품으로 14년 만에 관련 시장 규모가 100배 가까이 커졌다. 유빙 관광지로 유명한 일본 홋카이도 몬베츠시가 내놓은 기후위기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과 답례품들. / 사진:후루사토초이스 홈페이지
정부는 고향사랑기부제 종합 플랫폼 구축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다. 행정안전부가 구축 중인 ‘고향사랑e음’ 플랫폼은 기부금 납부와 답례품 선택, 자동세액공제 처리 등 종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부자는 연간 기부 한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전국 243개 지자체의 답례품을 한눈에 비교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또 국세청과 연계해 연말정산 시 별도의 신청 절차가 없어 편리하다.

지자체들도 전담팀을 꾸리고 본격적인 홍보에 나설 채비에 분주하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답례품 선정을 끝냈다. 대개 지역 특산품이거나 지역 관광명소 숙박권, 지역사랑상품권 등이다. 자체 특산물 인터넷쇼핑몰을 운영하는 지자체는 쇼핑몰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답례품으로 제공한다. 마땅한 농특산물이 없는 지자체는 지역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을 답례품으로 선택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있다. 지자체가 관심 몰이를 위해 답례품 홍보에 주력하면서 기부 프로그램 개발에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것이다. 답례품 선정 과정에서 특혜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기부금 모집 경쟁에 치우치게 되면 답례품이 감사의 성의 표시가 아닌 유인책이 돼 본래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향사랑기부제 세액공제 비용은 지자체가 아닌 정부 재정으로 부담한다. 경기북부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답례품 경쟁에 치우치게 되면 제도의 본래 취지인 기부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데 소홀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구축한 고향사랑e음 플랫폼도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고향사랑e음이 지자체가 운영하는 특산물 쇼핑몰과 연동되지 않아 지자체 쇼핑몰의 포인트를 답례품으로 주더라도 이를 사용하기가 불편하다. 또 기부자가 고향사랑e음을 통해 선택한 답례품을 교환하거나 반품하길 원할 경우 이를 응대할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현재로서는 담당 공무원이 직접 일일이 응대하는 수밖에 없다. 고향사랑기부제가 온라인 플랫폼 위주로 운영되는 점도 디지털 약자들에게는 장애물이다. 대면 접수 방식은 기부자가 농협 창구에서 기부금을 내면 직원이 대신 고향사랑e음에 등록해주는 방식이다. 이후 기부포인트를 사용하려면 다시 농협 창구에서 신청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크다.

제도 자체도 개선해야 할 점이 노출되고 있다. 연간 500만원으로 묶인 기부금 한도 제한 등이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출향인이 고향에 더 넉넉한 금액을 쾌척하고 싶어도 500만원을 넘길 수 없고, 개인이 아닌 법인은 아예 참여가 금지돼 있다. 제도 시행을 한 달여 앞두고 행정안전부가 주최한 ‘7차 고향사랑기부제 정책연구회’에서 최환용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고향사랑기부제도의 보완 방향’ 발표를 통해 ‘제한’ 일색인 규제를 대폭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현 제도는 기부자, 기부 대상, 기부금 상한선, 기부 및 모금 방식, 답례품과 세액공제 한도, 기부금 사용처 등 거의 모든 과정에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사용처가 명확하고 투명하게 전달된다면 법인 기부도 연간 1000만원 이내에서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공제 제한 규정도 제도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지목된다. 기부금이 대개 전액 환급받을 수 있는 10만원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면서 3만원에 불과한 답례품의 질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경우 기부금 상한선이 없고, 소득공제 범위까지는 100% 공제 가능해 수백만원의 기부금을 내더라도 기부자에게 부담이 가지 않는 구조다. 이에 따라 고가의 답례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답례품 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진다. 사회적기업 '공감만세' 관계자는 “제도 시행 전이어서 여러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지만, 일본보다 디지털화가 앞서 있는 우리나라는 성장세가 일본보다 더 빠를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규제’ 투성이에 기부금 불균형 등 제도 개선 필요


▎행정안전부의 고향사랑기부제 설명 이미지. / 사진:행정안전부
다만 “고향사랑기부제가 지역 소멸을 막아주는 절대 반지가 되어주진 못한다”는 전문가의 지적을 귀담을 필요가 있다. 지자체 스스로 돈과 사람이 모이도록 행정의 혁신을 이루려 노력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특히 답례품 경쟁보다 사업 중심의 기부문화 조성에 더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향사랑기부제 관련 연구를 진행한 전북연구원은 기금 사업을 보고 지자체를 선택해 기부하는 일명 ‘크라우드 펀딩’ 방식을 제시했다.

신동철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7월 경남농협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고향사랑기부금제가 지방재정 확충 및 지역경제 활성화, 애향심 고취, 자치분권 확대, 조세 이미지 개선의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지자체 간 과열경쟁과 낮은 정책목표 달성 가능성, 지방분권 원칙 위배 등의 부정적 논쟁거리도 있다”고 말했다.

도시지역의 기부금 쏠림으로 지역 간 불균형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도시지역 지자체들이 지역화폐를 답례품으로 제공할 경우 접근성과 사용 편리성 때문에 기부금이 집중될 수 있어서다. 강삼규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정책위원장은 “수도권과 광역도시로 기부금이 쏠려 취약 지자체의 재정을 보완한다는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며 “농업·농촌 중심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301호 (20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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