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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다이사쿠의 일생(2)] ‘비핵(非核) 평화 주춧돌’ 세계시민 교육의 철학과 노정(路程) 

타국의 불행 위에 자국의 행복을 구하지 않는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군국주의에 항거한 스승 정신 계승해 전쟁 반대·핵무기 폐기 앞장
“한국은 문화대은·형님의 나라”… 세 차례 방문하며 각별한 애정


▎이케다 회장은 1972년과 이듬해 두 차례에 걸쳐 런던을 방문해 토인비 박사를 만났다. / 사진:SGI
"타국의 불행 위에 자국의 행복을 구하지 않는다.”

최근 타계한 이케다 다이사쿠 국제창가학회(SGI) 회장이 2010년 10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세계 국가들의 공동번영 첫째 원칙이다. 이케다 회장은 이 첫째 원칙을 국제사회로 확대하고, “환경문제 등 지구적인 문제 앞에 일치 협력해 연대를 키우는 것”으로 공동번영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유엔을 “인류가 구축한 평화의 탑”이라고 칭하며 “엄연하게 지키고 떠받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13년 전 이케다 회장이 제시한 이 같은 원칙은 현실에서 지켜지고 있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여전히 지구촌 곳곳은 전쟁의 포성과 통곡이 멈추지 않는다. 이케다 회장이 평화의 중심이 되길 바라마지 않았던 유엔(UN)은 국가와 민족 간 분쟁 앞에 무기력한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분명 이케다 회장이 그렸던 이상과 거리가 멀다. 평화의 길을 개척했던 이케다 회장의 노정을 다시 새기지 않을 수 없다.

“세계 평화는 단지 정치가들이 조약서에 서명을 한다고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참된 영속적인 평화는 생명 깊은 차원에서 사람들 간의 연대를 맺어나감으로써만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케다 회장이 평생에 걸쳐 가장 큰 방점을 찍고 전개해온 평화운동은 이 메시지에 응축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케다 회장은 대화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평화를 도모하고자 했다. 그의 평화운동은 생명존중의 불교사상과 인간의 창조적 힘에 대한 믿음, 인간 연대 구축을 가능케 하는 대화의 힘에 대한 확신을 바탕에 두고 있다.

불교철학을 전파하고 교육과 문화 교류에도 관심을 기울였지만, 특히 평화는 그에게 주어진 남다른 미션이었다. 소년 시절 전쟁의 비극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거니와 그의 스승인 마키구치 쓰네사부로와 도다 조세이가 군국주의에 항거했던 정신이 창가학회에 오롯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핵무기 반대’ 기치 내걸고 평화의 대화 전개


▎이케다 회장은 교육과 문화 교류에도 관심을 기울였지만, 특히 평화는 그에게 주어진 남다른 미션이었다. 사진은 원폭 피해자 위령탑을 찾은 이케다 회장. / 사진:SGI
그가 스승 도다 조세이와 창가학회의 철학을 선뜻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군국주의에 대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창가학회 초대 회장인 마키구치 쓰네사부로와 제2대 회장 도다 조세이는 군국주의에 반대하며 함께 투옥됐다. 마키구치 초대 회장은 끝까지 군국주의에 항거하다 옥중에서 숨을 거뒀다.

전쟁 당시 일본에는 약 1500개의 종교단체가 있었다. 그중 군국주의에 저항하며 투쟁한 종교는 단 둘뿐이었고, 지도자가 탄압을 받아 사망한 곳은 창가학회가 유일했다. 창가학회가 군국주의를 배격하고 평화를 강조하는 뿌리 깊은 전통을 계승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창가학회의 평화운동은 처음부터 목표가 구체적이고 확고했다. 1957년 창가학회 청년부 회합에서 도다 조세이는 핵무기를 이용해 인류 공동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자들을 강하게 비난했다. 도다는 “핵무기는 인간의 가장 어둡고 사악한 측면을 나타낸다”고 호소하며 “핵 폐기는 바로 창가학회 청년부의 사명”이라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SGI의 세계 평화운동 토대이자 중심이 됐다. 스승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이케다 회장도 수십 년 동안 핵무기 폐기를 주창하며 같은 목표를 가진 개인 및 단체와 공동 작업을 펼쳐왔다. 1998년에는 ‘핵 폐기 2000’이라는 국제적 서명운동을 이끌어 1300만 명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를 유엔에 제출했다. 199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라이너스 폴링 박사와 나눈 대담, ‘평생을 통한 평화의 추구’를 통해 핵무기 문제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하기도 했다.

또한 201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과 2007년부터 파트너로서 핵무기 금지와 폐기를 촉구하는 활동을 펼쳐오고 있으며, 공동으로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연대’展을 개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핵무기 제로’ 달성 위한 구체적인 해법 제시


▎이케다 회장은 사람들에게 핵 폐기에 대한 의지와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의식 개혁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사진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조지프 로트블랫 박사와의 만남. / 사진:SGI
이케다 회장은 핵 폐기를 위해 없어서 안 될 중요한 것은 핵 폐기에 대한 의지와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의식 개혁이라고 믿었다. 그는 “평화는 절망과 희망의 경쟁입니다. 이러한 사악한 파괴를 초래하는 도구를 만든 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혜의 힘으로 충분히 핵을 폐기할 수 있습니다”라고 역설했다.

2009년 9월 8일 도다 회장 탄생 110년을 기념해 이케다 회장은 재차 핵 폐기를 촉구하는 제언을 발표했다. ‘핵무기 폐기를 향한 민중의 연대를’이라는 제목의 기념 제언에서 이케다 회장은 “원자폭탄이 처음으로 완성된 이래, 세계를 전쟁에서 지키기 위해 완성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전쟁의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라는 아인슈타인의 경고를 인용하며 “핵무기가 세계를 분단하고 파괴하는 상징이라면, 그 핵무기를 이기는 것은 역사 창조의 힘으로 희망을 만드는 민중의 연대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이케다 회장이 제언에서 핵무기를 궁극적 자기방어 수단으로 삼으려는 명분을 불법(佛法)을 인용해 논파한 대목은 불교철학자이자 평화운동가로서 그의 통찰을 돋보이게 한다.

“불법에서는 언제나 순간순간 상대방보다 뛰어나기를 바라고, 남에게 뒤지는 일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얕보며 자기를 존귀하게 여기는 승타(勝他)의 욕망이 인간 생명에 있다고 설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는 욕망이 극도에 다다른 상태를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라고 설합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타자(他者)라는 존재는 한없이 작아지고, 어떤 희생이 발생해도 주저하는 마음이나 아픔 등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케다 회장은 그러면서 ▷정치 지도자의 의식 변혁 ▷핵무기를 금지하는 명확한 비전 ▷인간의 안전보장을 세계적으로 확립을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그는 변혁을 꿈꾸면서도 구상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단계적이었다. 우선 핵보유국들이 현상을 ‘동결’하고, 합의된 최저 보유량으로 ‘축소’해 핵무기 제로로 향하는 베이스캠프를 확보한 뒤 유엔을 비롯한 국제 시민사회의 참여를 통해 나머지 행로를 가로막는 장애를 제거해 나가자는 게 이케다 회장 제안의 골자였다. 이는 핵 군축 프로세스의 정석으로 통한다.

이케다 회장의 핵 군축과 평화운동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비핵화에 대한 남다른 의지다. 이케다 회장은 ‘동북아 비핵지대’를 꾸준히 주창했다. 이는 핵무기로 인한 대량학살을 실제로 경험하고 목도(目睹)한 지구상의 유일한 지역이란 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케다 회장은 “피폭국인 일본이 핵무장을 검토하거나 비핵(非核) 삼원칙을 변경하려는 행위는 도의적으로 허용할 수 없는 일”이라며 “하루라도 빨리 ‘영원히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명확히 선언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편 평화 실현에 있어서 이케다 회장의 염원은 종교를 이미 뛰어넘고 있었다. 그는 “종교는 평화를 위해 존재한다”고 단언했다.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은 석존의 마음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며, 마호메트의 마음”이라는 생각을 가진 이케다 회장은 일본의 대표 종교학자이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안자이신 박사와 자주 대화하며 ‘분쟁의 소방수’ 역할을 고민하곤 했다.

‘이케다 평화철학’의 핵심 사상은 대화의 힘과 가능성에 대한 강한 믿음이다. 대화의 영향력에 대해 이케다 회장의 믿음은 확고했다. 마하트마 간디나 마틴 루서 킹과 같은 비폭력 운동가들의 성취가 보여줬듯이 폭력으로는 긍정적이고 영구적인 평화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게 이케다 회장의 신념이었다.

“인류의 역사가 계속하는 한, ‘대화야말로 평화의 왕도’라는 명제는 우리가 영원히 관철해야만 하는 과제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냉소와 비판을 당하더라도 이 신념을 끊임없이 지키고 선포해야 합니다.”

대중의 얼어붙은 마음 녹여 우호의 토대 세워


▎이케다 회장의 핵심 사상은 대화의 힘과 가능성에 대한 강한 믿음이다. 사진은 창가학회 회원을 격려하는 이케다 회장. / 사진:SGI
이케다 회장의 평화운동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특징은 아시아 평화를 해친 과거 일본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침략행위에 관해 이케다 회장은 조금도 피하거나 희석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일본인만큼 잔혹한 침략자는 없었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대다수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일본은 일본군의 만행에 대해 그럴듯하게 얼버무리고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사과도 없었습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동남아시아로 팽창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듬해 1월 필리핀 마닐라를 완전히 점령했다. 퓰리처센터가 2019년에 발간한 자료에 의하면 일본이 점령한 3년간 필리핀 소녀 1000여 명이 성 노예로 끌려갔고, 그중 생존자는 단 10명뿐이었다. 또 1945년 2월 필리핀에서 퇴각하던 일본군은 마닐라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약탈과 강간, 학살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여러 조사에서 희생자 수는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이케다 회장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케다 회장은 1960년대부터 아시아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대응해왔다. 역사적 부당함을 솔직하게 밝힘으로써 서로에 대한 감정의 장벽을 허물었다. 특히 문화를 통해 상호 이해를 촉진하려고 애썼다.

이케다 회장은 올바른 역사관에 입각한 진실을 말함으로써 유대를 회복하고자 했다. 일본 창가학회회원들과 대화하거나 글을 쓸 때 필리핀 독립영웅호세 리살을 소개하곤 했다. 호세 리살이 인품이 뛰어난 영웅이자 의사, 문학적 천재였으며, 필리핀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30세에 생을 마감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1998년 피델 라모스 필리핀 대통령은 필리핀 독립 100주년 기념식에서 리살기사단의 리살국제평화상을 이케다 회장에게 수여했다.

또 이케다 회장은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와 예술을 일본 국민에게 소개하면서 일본과 아시아 국가간 다양한 문화적·교육적 교류를 주도했다. 이는 아시아의 우호와 평화적 관계 전환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강연과 대화에서 한국의 대표 위인을 소개하거나 문화 교류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했다.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에 앞장선 유관순과 안창호의 훌륭함을 알리고 한국을 ‘형님의 나라’, ‘스승의 나라’라고 높이기도 했다. 1990년 한국을 첫 방문하게 된 계기도 문화 교류를 통해서였다.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이케다 회장이 창립한 도쿄후지미술관이 소장한 서양명품회화 74점의 한국 최초 전시를 열며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이때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을 만나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며 양국의 문화교류 확대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2년 뒤에는 도쿄후지미술관에서 ‘고려·조선도자명품전’을 열어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한국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일본에 알렸다. 이케다 회장은 1998년 방한해 경희대학교 조영식 설립자와 평화 사상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고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에도 제주도를 찾는 등 세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 문화훈장 받기도


▎이케다 회장은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하는 데 결코 인색함이 없었다. 한국을 세 차례나 방문하고, ‘문화대은(文化大恩)의 나라’로 추켜세웠다. 1999년 제주대학교 명예학위 수여식에 참석한 이케다 회장 부부. / 사진:SGI
2012년 국내에 출간한 수필집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이케다 회장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한·일관계에 있어서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한국에 어떤 과오를 저질렀는지 낱낱이 밝히면서 일본이 한국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대은(文化大恩)의 나라’인 한국을 짓밟고 괴롭혀 왔던 역사는 사죄하고 또 사죄해도 부족하다는 것을 저는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에 깊이 새겨왔습니다.”

이케다 회장은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하는 데 결코 인색함이 없었다. 한국을 세 차례나 방문하고, ‘문화대은의 나라’로 추켜세웠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소련과 중국을 방문해 올림픽 참가와 지원 약속을 받아내 서울올림픽이 평화와 화합의 축제가 되도록 물밑에서 돕기도 했다.

당초 창가학회는 한국에서 포교하기가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창가학회가 처음 한국에 들어온 1960년대는 양국의 국교가 정상화되기 전이었다. 반일감정이 극에 달해 있었고, 일본의 종교와 문화 교류가 본격화하기 전이어서 부정적 인식이 컸다. 정부도 창가학회를 ‘왜색(倭色) 종교’로 치부해 포교를 금지했다. ‘창가(唱歌)’와 의미를 혼동해 ‘노래하는 사교(邪敎) 집단’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기도문인 ‘남묘호렌게쿄’를 종교 이름으로 잘못 아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진심은 통하는 법. 일본 내 혐한세력을 의식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는 이케다 회장의 선이 명확한 태도를 확인한 한국인들은 불신에 가깝던 시선을 호감으로 바꿨다. 독립유공자유족회는 1998년에 이케다 회장의 역사관과 양국 우호를 위한 행동을 높이 평가해 현창(顯彰)패를 수여했다. 2009년에는 한·일 문화 교류에 대한 공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화관문화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인류 평화 이바지할 세계시민 교육에 매진


▎이케다 회장은 과거 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보완하는 ‘이웃사촌’이라고 했다. 사진은 한복을 입은 이케다 회장 부부. / 사진:SGI
한국SGI는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규모가 크다. 일본에 대한 반감이 작지 않다는 걸 고려하면 상당한 성장이다. 이케다 회장은 과거 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보완하는 ‘이웃사촌’이라고 했다. 그는 양국 관계를 불법(佛法)의 이치로 명쾌하게 설명했다.

“니치렌 대성인은 ‘달은 서쪽에서 나와 동쪽을 비추고, 해는 동쪽에서 나와 서쪽을 비추니 불법 또한 이와 같으니라’고 하여 ‘불법서환(佛法西還)’이라는 사상체계를 구축하셨습니다. 이는 불교가 인도에서 서역을 거쳐 중국과 한국에 닿았고, 동점(東漸)의 종착역이라고 할 일본에 전해진 소위 ‘불교동점(佛敎東漸)’에 대한 보은의 마음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니치렌불법에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스승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백제가 일본에 불법을 전한 것은 6세기 중엽 백제 성왕 때라고 전해지고 있죠. 일본 문화의 발전은 6세기 중엽 한반도 문화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케다 회장 인생의 궁극적인 마지막 사업은 ‘교육’이다. 이케다 회장은 교육의 승리가 바로 인간의 승리라고 확신했다.

“인간과 자연의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가치를 온 생명으로 인식하고 이해하는 사람을 육성하는 교육을 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교육이야말로 평화를 향한 인류 문명의 영원한 투쟁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대담과 저술활동을 통해 대중이 스스로 깨우치도록 길라잡이를 자처했다. 이케다 회장의 유장한 노정은 그가 남긴 수많은 저술을 통해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케다 회장이 쓴 저서는 세계 51개 언어로 2000점 이상 번역·출판돼 세계인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인간혁명](전 12권), [신·인간혁명](전 30권), [여성에게 드리는 100자의 행복], [인생좌표], [해피로드], [지지 않는 청춘]을 비롯해 아널드 토인비와의 대담집 [21세기를 여는 대화], 고르바초프와의 대담집 [20세기 정신의 교훈], 하비 콕스와의 대담집 [21세기 평화와 종교를 말한다] 등 저명한 인사들과 나눈 수많은 대담집은 어느 것 하나도 빠지지 않는 수작(秀作)이다.

이케다 회장의 교육은 평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그는 “교육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인류에 대한 사랑과 타인과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젊은이를 육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케다 회장은 1930~40년대 초등학생에게조차 모형 총을 쥐여주고 군사훈련을 시켰던 군국주의의 맹목적 충성심 주입 도구를 직접 경험했다. 그 경험은 이케다의 교육철학이 정반대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철학적 기반이 됐다.

인류에 대한 사랑, 평화를 향한 헌신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과 만난 이케다 회장. / 사진:SGI
창가교육의 목적은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는 엘리트 양성의 도구와 거리가 멀다. ‘인류에 대한 사랑’, ‘평화를 향한 헌신’이라는 이상을 실현해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 사회를 창조하는 세계시민 육성이야말로 이케다 교육 이상의 중심이다. 이케다 회장이 창립한 소카대학교의 모토는 비단 소카대 학생이나 SGI 회원에게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시민을 꿈꾸는 전 인류를 향한 도전적 질문이다. ‘그대, 무엇을 위해 지혜를 연마하는가?’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401호 (202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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