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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의 핫피플 & 아트 (20)] 해외에서 주목받는 청년 미디어 아티스트 김대환 

“모든 벽은 세상을 잇는 훌륭한 캔버스” 

영국과 한국 오가며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전시 기획 디렉터로 활약
데미안 허스트, 뱅크시, 쿠사마 야요이 등 거장들과 협업 주목받아


▎미디어 아티스트 김대환은 벽과 스크린을 활용해 기존 거장들의 작품을 재해석한 과감한 시도로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국내에서도 아트 디스플레이 전시와 [프리즈 서울 2023]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 사진:김대환
"미디어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중간체(Medium)를 어원으로 하듯, 세상의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가령, 전통적으로는 도화지와 캔버스부터 조각에 사용되는 흙과 대리석, 그리고 현대에 가장 유행하는 디스플레이 스크린과 프로젝터까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영국을 주 무대로 한국을 오가며 아트 디렉팅(총괄기획)과 미디어 아트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는 김대환(영어명 Jason Kim)의 말이다.

그는 시각 예술(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세계가 주목할 만한 굵직한 전시를 기획하며 국외에서 먼저 알려진 떠오르는 기획자이자, 직접 디지털 미디어를 제작하는 역량 있는 아티스트다.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졸업 후, 영국 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Design)을 졸업한 그는 컬처 투 비즈니스(C2B)에 관한 논문에서 ‘문화력’의 중요성에 관한 연구로 최우수 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2019년에는 한국에서 반응이 뜨거웠던 반 고흐 디지털 몰입형 전시와 같은 해 LG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을 활용한 아트 디스플레이 전시 ‘더 블랙 페이퍼(The Black Paper)’를 총괄 기획한 바 있다.

2021년에는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 런던]에서 최초로 ‘디지털 파트너십’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당시 영국의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NFT(대체불가능 토큰) 작품과 대표작을 아우르는 전시를 개최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영국 첼시에 있는 ‘현대 미술의 성지’라고 불리는 사치갤러리(Saatchi Gallery)에서 현 시대를 대표하는 쿠사마 야요이, 뱅크시(Banksy) 등의 거장들과 ‘재해석된 시간’을 주제로 디지털 전시를 열기도 했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한 신예 미디어 아티스트


▎김환기의 1970년대 대표작과 김대환이 이를 미디어 아트로 재해석한 작품. / 사진:김대환
필자가 김대환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작년 9월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2023]에서다. 한국 추상회화의 선구자이자 20세기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김환기의 원작을 디지털로 재구성한 작품이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환기의 에세이집 제목이자, 뉴욕에 있을 때 완성된 1970년대의 대표적인 점화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화면 전체에 먹색에 가까운 짙은 푸른색 작은 점을 하나하나 찍어 중첩되고 번져나가면서 전체를 메우는 방식으로 그려졌다. 김대환은 이와 같은 지점에 주목했고, 디지털 영상으로의 재해석은 작가적 철학을 기반으로 새롭고 보다 의미심장하게 다가 왔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다양한 기획과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김대환은 원화의 원본성과 독자성을 확보하며, 비트(bit)와 픽셀(pixel) 정보로 기록해 가상적이고 환영적인 공간을 재창조해오고 있다. 특히 정보의 디지털 코딩 등 현 시대의 기술을 활용하되 디지털 그래픽 이면에 담긴 작가의 철학과 원작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점에 가장 중점을 둔다. 원화에 ‘생명성’을 부여하며 작품의 숨은 의미를 풍부하게 느낄 수 있도록 특유의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작품은 원작에 대한 아우라(Aura)를 온전히 전달할 뿐 아니라 김대환만의 철학이 공존하는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이는 여타의 미디어 아티스트와 결이 다른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 이론가이자 문화비평가인 마셜 맥루한은(Marshall McLuhan)은 “모든 미디어는 인간 감각의 확장이며, 개개인의 인식과 경험을 형성한다”고 했다. 오늘날 뉴미디어의 진보는 예술 분야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으며, 현대 미술관 역시 명작의 원화를 단순히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새로운 감각 경험을 관람객에게 제공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김대환의 디지털 영상으로 재해석된 미디어 활용 역시 전자기기의 발달과 더불어 대형 미디어 월을 통하거나, TV 스크린 등을 통해 진화를 거듭하며 무한변신할 것으로 기대된다.

OLED를 TV가 아닌 예술적 캔버스로 활용


▎김대환은 2021년 [프리즈 런던]에서 LG의 OLED TV를 활용해 영국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의 대표작과 NFT 작품을 전시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영국 첼시의 사치갤러리에서 쿠사마 야요이, 뱅크시 등과 개최한 ‘재해석된 시간’ 전시 장면. / 사진:김대환
영국에서 한국을 오가며 브랜딩 회사 ‘비자인(BESIGN)’ 대표로, 총괄기획과 제작을 하고 있다. 미디어 아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배경은?

“2020년부터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가족들이 걱정돼 영상통화로 안부를 전하곤 했다. 그때 사람의 온기가 내 손바닥의 작은 스크린을 타고 지구 반대편으로 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내가 경험한 놀라운 발견에 대해 프리즈(Frieze) 본사에 열심히 설명했다. 현실적으로 구현해줄 수 있는 파트너들이 필요해 OLED 기술에 있어 글로벌 선두기업인 LG에 최고의 캔버스를 요청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시간적·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넘어 세상의 모든 곳에 가치 있는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현대에 가장 진보한 디스플레이 기술인 OLED를 더 이상 TV가 아닌 예술적 캔버스(Canvas)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데미안 허스트와 전시를 진행한 [프리즈 런던 2021]의 NFT 프로젝트는 그의 원작과 NFT를 공존시켰다는 점에서 코로나 시대 현대미술의 새로운 전시방향을 보여주었다.

“코로나19라는 새로운 국면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생명력’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이러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해온 영국의 현대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를 통해 세상의 모든 벽이 시공간을 넘어 미술관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OLED라는 기술’, ‘아티스트의 철학’, ‘프리즈라는 텔링’ 방식으로 2021년 프리즈에서 디지털 파트너십이 이례적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모든 콘셉트를 ‘Light Gallery’로 기획했다. LG를 상징하는 동시에 빛의 예술이라는 점과 물리력을 초월해 세상에서 가장 ‘가볍다’는 의미와 세상에 또 다른 ‘빛과 같은 가치’를 전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상징적인 붉은색으로 공간을 만들고, 물리적 소통의 단절을 상징한 ‘벽’ 대신 반투명한 ‘패브릭’으로 신비로운 공간을 구축했다. 데미안 허스트의 일대 대표작들과 함께 최초로 그의 NFT를 프리즈에서 발표할 수 있었던 뜻깊은 순간이었다.”

재해석 작품에 원작가의 철학 녹이려 고민


▎지난해 9월에 열린 세계적인 아트 페어 [프리즈 서울 2023]에서 관람객들이 김대환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 사진:김대환
[프리즈 서울 2023]에서는 김환기의 원작을 디지털로 구현한 작품이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작가의 조형 형식을 과감히 변환시키며 재해석했다.

“스크린을 통해 전달되어야만 하는 근본적인 가치에 대해 매번 고민한다. 그것은 결국 원작가의 철학이었다. 그래서 매 순간 내가 아닌, 작가가 되기를 바란다. 작가가 읽던 책들, 살던 곳, 자주 갔던 카페, 즐겨 들은 음악, 마음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써내려간 글귀들, 만나고 영향을 받은 친구들, 감동받았던 철학 등 말이다. 이것은 멈춰 있는 작가의 완벽한 캔버스 이면으로 들어갈 수 있게 허락해주는 열쇠이자, 재탄생될 작품의 인풋이 될 수 있는, 분명하고 의미 있는 정보다. 동시에 이를 통해 비로소 다시 작가를 만나는 순간을 허락받게 된다. 컴퓨터로 특별한 명령어를 디자인하게 되었는데,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김환기의 작품을 이루는 모든 순수한 분자들이 자신의 색을 온전히 유지한 상태로 세상의 중력을 거부하고 자유로이 떠돌며 여행을 하라고, 그리고 다시 만나라고, 그리고 그것을 무수히 반복하라고!’”

2021년 런던 [사치갤러리(Saatchi Gallery)]에서 세계적인 작가들과 제너레이티브 코딩 기법에서부터 다양한 방식을 통해 원작을 재해석한 디지털 전시를 했는데, 한국에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김대환은 부푼 기대와 설렘을 안고 영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 탄 비행기가 히스로 공항에 착륙하기 직전에 찍은 창밖의 낯선 풍경 사진을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으로 꼽았다. / 사진:김대환
“작가들과 함께 그들의 가치를 COVID시대의 끝자락에 전하고자 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현대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 모두가 걸어 다니던 길을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는 통로로 재탄생시킨 뱅크시와 함께 한국, 중국, 영국의 젊은 아티스트들을 한자리에 초청했다. 원작 없이 모두 미디어 아트로만 구성했는데, 이를 통해 세상의 모든 벽의 TV를 통해 예술적 가치가 경계 없이 전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제로 증명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전시였다.”

일상의 공간에 예술적 가치 불어넣는 작품 활동 구상

미디어 아티스트로 세계 미술무대에서의 남다른 역할을 기대한다. 향후 진행될 프로젝트와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현대에 가장 효과적으로 세상과 가치를 나눌 수 있는 방식 중 하나로 미디어 아트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처럼 미디어 아트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던 세상 어느 곳에 있는 가치 있는 메시지를 세상 모두와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전하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으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소중한 이야기를 다시 세상과 나누는 것’이라 생각한다. 올해 인터내셔널 아트페어뿐만 아니라 아트페어를 벗어난 공간에서도 기획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방문하고 이용하는 공간들이 예술적인 가치를 지니며 철학을 전할 수 있는 또 다른 윈도가 되어 줄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사진 한 장이 있다면.

“영국으로의 유학을 결심하며 몸을 실었던 비행기가 영국 히스로 공항에 착륙하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다. 모두에게 당연하고 익숙한 중력과도 같았던 문명과 지리적·시간적·공간적 경계를 넘어, 정말 혼자서 새로운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오로지 나 자신이라는 중력을 믿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며 느꼈던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기대를 품고 항해하는 돛단배의 선원과 같은 심정이었기에 기억에 남는다.”

※ JOA(조정화) -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순수사진으로 석사 학위를, 조형예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고, 광주비엔날레 등 다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다. 단국대, 상명대 등에서 20여 년간 강의하면서 [포토닷], [디지털카메라매거진], [미술세계], [월간중앙] 등에 예술 관련 연재와 기고 글을 써오고 있다. 저서로는 [그래서 특별한 사진 읽기](2020년)가 있다.

202402호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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