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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전문기자 박정호가 만난 세상] 창립 60년 앞둔 ‘글쟁이 의사들’의 모임 ‘수석회’ 

“물과 돌의 화음처럼… 의학의 본업은 인문학” 

박정호 월간중앙 기획위원
한국 의학계의 ‘살아있는 전설’ 5인이 메스 옆에 펜을 간직해온 사연
의사는 시대의 아픔과 함께해야… 한국 사회 ‘의대 쏠림’ 두고 볼 건가


▎글쟁이 의사들의 모임인 수석회 회원들. 동인지 50돌 기념 [수석 반백년]과 최근 나온 58집 [전설이 지다]를 들고 서 있다. 왼쪽부터 오재원 한양대 의대 교수, 권성원 차의과학대 석좌교수,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 민성길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 정지태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돌과 물이 부딪치는 곳에 화음이 날 것인가, 잡음만이 들릴 것인가. 물은 물대로 돌은 돌대로 제각각의 소리가 날 만도 한데, 그래서 이름 지어 수석회라 했다.”

딱 58년 전이다. 1966년 10월, 수필 75편을 실은 에세이집이 세상에 처음 나왔다. 책 제목은 [물과 돌의 대화].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6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수필집이 계속 이어질 줄은…. 그것도 글로 먹고사는 문인이 아닌,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사들의 글모음집이란 점에서 각별했다. 청진기와 메스 옆에 펜과 원고지를 두고 진료실과 수술실을 지켜온 의사들의 문학 동인지가 이렇듯 오랜 생명력을 유지해온 것 자체가 한국 문화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58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동인지 발간

최근 발간된 58집 타이틀은 [전설이 지다]다. 무엇보다 ‘전설’이란 단어가 눈에 쏙 들어온다. 누구를 가리킬까. 지난해 개천절 날 95세를 일기로 저 하늘로 떠난 강신호 동아쏘시오홀딩스 명예회장이다. ‘국민강장제’ 박카스를 개발한 고인은 지난 세월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큰 어른이자 국가 경제를 일으킨 기업가 정신의 표상으로 이름 났다. 서울대 의대를 나와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의사이자 일평생 펜을 놓지 않은 에세이스트였다. 수석회 창립 멤버인데, 수석회의 수석도 고인의 아호에서 따왔다. 수석회 58집은 고 강신호 회장에 대한 헌사인 셈이다.

다시 시계를 거꾸로 돌려본다. 첫 에세이집이 나오기 1년여 전인 1965년 5월, 서울 중구 다동의 유명 양식점인 호수그릴에서 ‘멋진 의사’ 10여 명이 모여 결의를 다졌다.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는 물론 의료계를 포함한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생각을 글로 써보자고 뜻을 모았다. 바로 수석회의 출발이다. 매달 첫째 수요일 저녁에 모여 술과 얘기를 나누고, 또 작품도 발표하는 수석회(水夕會)로 시작했다가 ‘물과 돌의 만남’인 수석회(水石會)로 개칭했다. 반세기 훨씬 전에 발족한 모임은 이후 후배들을 계속 받아들였고, 지금도 매달 한 차례 어김없이 자리가 마련되고 있다. 유대감과 결속력이 대단하다.

수석회 58집 [전설이 지다]에도 전공도 개성도 각각인 의사 문인 15명이 참여했다. 일상 단상, 기행문, 예술론, 의료 평론 등 ‘지금 여기’ 우리가 숨 쉬고, 만나고, 사랑하고, 다투는 모습이 갈피갈피 펼쳐진다. 왜 이 의사들은 글을 놓지 못하는 걸까.


▎의학과 문학의 본령은 같다고 말하는 우리 시대의 의사들. 왼쪽부터 이성낙, 권성원, 민성길, 정지태, 오재원 박사.
‘전설’을 떠나보낸 ‘준(準)전설’, 아니 이제 ‘살아있는 전설’에 오른 명의 5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86·피부과), 권성원 차의 과학대 석좌교수(84·비뇨기과), 민성길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80·정신과), 정지태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70·소아청소년과), 오재원 한양대 의대 교수(65·소아청소년과)다. 이들 다섯의 의사 경력을 합하면 총 250년이 넘는다. 얼추 20년 나이 차가 나지만 그들은 인술이란 한 단어 앞에서 하나가 됐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살리는 ‘심의(心醫)’에 방점을 찍었다. 그들이 글을 쓰는 이유도 오직 그곳, 즉 사람에 있었다.

이성낙_ “의사만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만나는 직업도 없을 겁니다. 노숙자부터 대통령까지, 출생부터 임종까지 함께합니다. 그러니 글 쓸 자원이 풍부하죠. 사람들에게서 받는 감흥이 대단합니다. 혼자만 갖고 있기에 답답할 뿐이죠.”

권성원_ “이야기가 무궁무진합니다. 저는 비뇨기과를 ‘하수도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전 동대문 이화여대에서 일할 때 주변 청계천 평화시장, 흥인상가 사람들과 무수히 마주쳤습니다, 북한에서 내려온 ‘38따라지’가 대다수였어요. 모든 환자들이 드라마요, 영화였습니다. 그들의 간절한 사연을 묶어 우리시대 ‘아버지’를 주제로 한 책 3권을 냈습니다.”

민성길_ “정신과 의사니까 아무래도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사회 온갖 사람들의 마음과 만나게 되죠. 그 안에는 현대 한국인의 영광과 상처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20여 년 전부터 탈북자들 연구에도 눈을 돌리게 됐어요. 남한사회에서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리는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문학을 넘어 음악, 미술, 사진으로

‘글쟁이 의사’들의 관심사는 다양하다. 의창(醫窓)을 넘어 음악·미술·사진 등 예술 각 장르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점에서 의학의 본령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지태 박사는 개인전·단체전을 여러 차례 연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고, 오재원 교수는 클래식 교양서 [필하모니아의 사계](전 4권) 시리즈를 낸 음악 마니아로 유명하다. 이성낙 박사는 조선시대 초상화를 통해 본 옛 사람들의 질환을 연구해 미술박사 학위까지 받았고, 한때 ‘동대문의 스필버그’로 불릴 만큼 영화에 빠진 권성원 교수는 한국 의학계에 영상의학을 선구적으로 도입했다.

정지태_ “선친께서 소설가(‘금당벽화’ ‘전황당인보기’의 정한숙)여서 글쓰기를 싫어했어요. 비교가 되잖아요. 창작이 워낙 고된 일이라는 걸 어려서부터 봐왔죠.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때 격문 작성을 요청받으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현업 은퇴 후엔 사진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디지털 작업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호모 포토 디지토 모빌리쿠스(Homo photo-digito-mobilicus)를 자처합니다. 하하하.”

오재원_ “저는 글쓰기를 ‘동중정(動中靜)’으로 부릅니다. 의사라는 자리가 워낙 바쁘잖아요. 저만 해도 하루 120명의 외래환자를 봅니다. 그때 음악을 들으며 뭔가 적으면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정리가 되는 거죠. 그러면 환자를 대할 때도 한층 차분해집니다. 그들의 말을 더 깊게 듣게 되죠. 바이올린도 연주하는데요, 2003년부터 매달 마지막 주(코로나 기간 제외)에 환자들을 위한 음악산책 콘서트도 열어오고 있습니다.”

이들 ‘전설들’에게 글은, 또 음악과 미술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정신없이 바쁜 자기 자신에 대한 치유과정이자 나아가 고통스러운 환자들에 더 자상하게 다가가는 말 걸기에 해당한다.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한 대화로 볼 수 있다.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의학은 바로 인문학”이라고 동의하는 배경이다. 또 그런 만큼 2024년 오늘의 의료계가, 의사 교육이 인문학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반성과 비판의 죽비 소리이도 하다.

최후의 로맨티스트들, 낭만을 위하여!


▎매달 첫째 수요일에 모이는 수석회 멤버들. 어느덧 창립 60돌을 앞두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성낙, 정지태, 민성길, 권성원, 오재원 박사.
이성낙_ “의학의 기본은 인문학입니다. 1990년대 중반 아주대 의대 학장 시절 ‘의료인문학과’를 의대 교육과정에 처음 개설했어요. 지금은 많은 대학에 설치됐고, 또 의대 평가항목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자기 전공만 아는 ‘공부벌레’ 의사로는 충분하지 않은 거지요.”

정지태_ “프랑스에선 의대 안에 철학과가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 의철학을 전공한 그곳 인문학 교수를 만난 적이 있는데, 얘기하다 보니 정신과 의사였습니다.”

민성길_ “정신과는 내러티브 인문학이라고 합니다. 환자가 어린 시절 겪은 사건부터 차분하게 풀어가야 합니다. 가족환경, 교육여건 등도 살펴보고요. 다른 과 진료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겐 꿈과 같지요. 현실은 정반대죠. 대부분 3분 안에 급하게 처방을 내리지 않습니까.”

오재원_ “저는 수석회 초기 멤버들을 ‘최후의 로맨티스트’라고 부릅니다, 그 어려운 1960년대에도 의사들은 낭만을 잃지 않았습니다. 타인과 사회에 대한 애정이 살아 있었어요. 저희 후배들도 그것을 따르고, 또 다른 후배들에게 전하려고 합니다.”

의대 신입생 정원 2000명 증원을 둘러싼 갈등 등 정부와 의료계의 충돌이 격화한 요즘 사태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수석회 ‘맏형들’은 그러잖아도 심각한 의대 쏠림 현상이 가팔라지며 우리 사회 미래 먹거리인 과학·공학계가 더욱 위축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철저한 대책을 촉구했다.

민성길_ “1962년 제가 대학에 들어갔을 땐 물리학과나 공과대가 의대보다 커트라인이 높았어요. 공대에 진학한 학생들이 우리 경제를 살린 것 아닙니까.”

오재원_ “의대가 입시 1등인 나라는 퀄리티(품격)를 따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껏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거죠. 공부·지혜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게 말 그대로 필로소피(philosophy) 아닙니까. 지금 우리 의학교육에서 찾기 힘든 단어가 됐습니다.”

정지태_ “4년 전에 계산을 해봤는데 의사 한 명을 키우는 데 9억원이 듭니다 2000명 증원이면 1조8000억원이 필요해요. 그걸 국가에서 대주진 않겠죠. 그러면 나중에 의사들이 그 원가를 어디에서 메울까요. 환자들의 부담이 커질 게 분명합니다. 정부가 그것까지 면밀히 준비하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창립 멤버, 고 강신호 회장의 당부


▎수석회의 기틀을 닦은 고 강신호 동아쏘시오홀딩스 명예회장.
이날 참석자들은 격의가 없었다. 오랜 친구들처럼 서로 가슴을 열어 보였다. 가난과 성장의 시대를 거쳐 이해와 공존의 시대를 향한 희망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했다. 세대를 뛰어넘는 소통의 메시지다. 수석회 58집 곳곳에도 그런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나는 꼭 아기 손을 잡고 진료한다. 방긋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세상 어느 것보다 행복을 느낄 때가 많다. 내가 치료해주는 것보다 나를 힐링해주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천직으로 택한 것은 내 일생의 가장 큰 행운이다.”(오재원)

“30년 동안 청계천 상인들의 삶을 지켜보아 왔습니다. 진실로 세계 최고의 명품상인입니다. 그들은 북청물장수의 후예인 ‘니북(以北)’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분들의 ‘꿈에도 소원’을 압니다. 영변 약산으로 봄나들이를 가고 싶어 했습니다. 개마고원에서 트레킹하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엎드려 비옵니다. 하늘이여! 저들의 소원을 들어주소서.”(권성원)

“인격 모독을 당한 아파트 경비원이 분신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엄청난 사건의 중심에는 입주민의 언어폭력이 있습니다. 저품격 사회이기에 발생할 수 있는 비극입니다. 언어학자들은 누군가를 꾸지람할 때 존경어로 시작하면, 고성이 오갈 가능성을 현격히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존경어 언행을 생활화하면 오늘날 국회의사당에서 일고 있는 괴이한 관행은 설 자리를 잃고 말 것으로 생각합니다.”(이성낙)

참석자들은 ’전설의 전설‘인 고강신호 회장을 추모하며 다음 모임을 기약했다. 수석회 100년 행사도 소망했다. 그리고 강 회장이 남긴 말 한마디를 가슴에 담았다. 1969년 추석날 저녁 수석회 행사에서 고인이 메모지에 짧게 쓴 다짐이다. “인류에의 봉사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사업임을 나는 믿는다.” 아름다운 울림이었다.

- 글 박정호 월간중앙 기획위원 park.jungho@joongng.co.kr / 사진 박종근 비주얼실장 park.jongkeun@joongang.co.kr

202403호 (20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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