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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산림청 공동기획] 숲으로 잘사는 대한민국(7) 임도(林道)의 가치 

“‘숲의 동맥’ 임도는 ‘산림 지킴이’입니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임도가 산림 훼손한다는 거대한 오해에서 탈피해야, 산불 진화에 필수적 도움 줘
산림 선진국처럼 산림청 지속적으로 예산 늘려 임도 확장, 휴양·레포츠 기능 겸비


▎임도는 숲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 사진:산림청
2023년 5월 남성현 산림청장은 대형 산불과 산사태 예방 대책과 관련한 인터뷰를 YTN과 가졌습니다. 산림청 수장의 언론 인터뷰야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겠지만, 이목을 끄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숲길 ‘임도(林道)’, 산불 진화에 도움 vs 악영향”이라는 방송 자막이 그것이었습니다. 임도를 바라보는 상반된 두 가지 프레임이 압축적으로 드러납니다.

임도는 ‘숲으로 잘사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산림강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요, 아니면 환경을 훼손하는 부(負)의 요인일까요? 이에 관해 남 청장과 산림청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임도는 “산불 확산 방지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시선을 견지합니다.

2023년 봄 동해안 산불이 할퀴고 간 뒤, 남 청장은 ‘산불의 근본적 예방’을 제시했습니다. 총 10가지 대책 중 마지막 열 번째에 ‘인프라’를 언급했습니다. “산불 진화 임도, 고성능 산불 진화 차량, 산불 재난특수진화대, 악천후와 야간 산불에 투입할 수 있는 ‘고정익항공기’, 대용량 진화 드론” 중 가장 먼저 임도를 내세웠습니다.

대체 임도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거듭 강조할까요? 임도는 ‘산불 발생 초기, 발화 지점에 진화 인력과 차량이 신속하게 접근해 초동 진화를 하거나 야간에도 진화 작업을 전개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라고 정의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산림 경영과 관리를 위한 SOC(필수기반 시설)로서 임도의 중요성은 올라가고 있는 것이 트렌드입니다. 산림청이 2024년 작성한 ‘임도정책 발전 방향’ 문서에 의하면, “산림에 시설되는 임도는 산림 순환경영(심고, 가꾸고, 수확하는)을 위한 기본 인프라이자 사람으로 비유하면 ‘동맥’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특히 기후 이변 등으로 산림 재난이 더 잦아지고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이럴수록 ‘산불 진화 임도’는 지상 진화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임도가 제대로 설비돼 있어야 진화 차량과 인력이 현장에 빠르게 접근해 대응할 수 있게 됩니다. 폭이 넓은 산불 진화 임도에선 통행 속도가 시속 40㎞로 두 배 빨라집니다.

임도의 가장 큰 ‘위력’은 밤에 드러납니다. 어두워지면 산불 진화 헬기의 움직임이 제약될 수밖에 없습니다. 야간이라고 산불이 지쳐 쉬진 않습니다. 이럴 때 임도가 있으면 진화 효율이 무려 5배나 올라간다고 합니다.

또 하나, 임도의 미덕은 산림휴양, 산림레포츠 공간으로 활용이 가능한 데 있습니다. 임도를 산책하는 것은 물론 산악자전거, 산악마라톤, 산악승마 등이 가능합니다. 실제 캐나다, 핀란드 같은 임업 선진국은 산불 대응 외에 산림치유, 관광을 겸하는 다목적 포석으로 임도를 활용합니다.

이 가운데 임도가 효용성을 얻는 첫째 이유는 단연 산불 대응입니다. 남 청장은 “미국 내 대형 산불이 발생한 국유림을 대상으로 수행된 연구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임도 밀도’가 낮은 지역에서 연료의 연속성이 높아 큰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연구에 따르면, 임도로부터 1m 멀어질수록 산불 피해 면적이 1.55㎡씩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됐다”고 강조합니다.

임도 밀도와 길이 클수록 산불 피해 면적 줄여

임도에 관해 우리 산림청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나라가 핀란드입니다. 핀란드는 국토의 74%가 산림입니다. 이 가운데 침엽수림이 50%입니다. 우리나라의 산림률은 62.7%입니다. 이 가운데 침엽수가 36.9%를 차지합니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함께 있는 혼합림 비율은 31.3%입니다. 환경은 비슷하지만 임도의 개설 정도에선 적잖은 차이가 있습니다. 핀란드의 임도 길이는 13만㎞가 넘습니다. 반면 한국은 2023년 말까지 총 2만5848㎞입니다. 국가임도가 8670㎞, 지방임도가 1만7178㎞입니다. 1968년 처음 임도 조성을 시작한 이래 1990년대 성장기, 2000년대 정비기, 2010년대 안정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보다 앞선 길을 걸은 핀란드는 임도 덕분에 산불 피해면적을 건당 0.4㏊ 감소시킬 수 있었습니다. 일본 역시 임도를 활용한 산불관리 전략을 수립해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갈수록 임도를 중시하는 행정으로 전환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독일 54.0m/㏊, 오스트리아 50.5m/㏊, 일본 24.1m/㏊에 비해 4.11m/㏊ 수준으로 임도 밀도에서 현격한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산림청은 2024년 임도 예산을 국비 기준 2878억원으로 설계했습니다. 이 가운데 산불 진화 임도에만 44%에 해당하는 1258억원을 배당할 계획입니다. 임업 선진국 수준으로 임도 밀도를 높이려면 해마다 현재 투자액의 2~3배를 들여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내겠다는 목표입니다.

산림 경영 측면에서도 임도가 존재하면 이용가능 산림 면적이 5~8배 증가하는 효과가 나오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또 임도 밀도가 10m/㏊에서 20m/㏊로 두 배 높아지면 기계화 작업이 가능해지며 집재비의 약 35~47%를 절감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숲 가꾸기’를 하고 난 뒤 발생하는 부산물을 수집해 재활용하는 과정에서도 임도 인프라는 한몫합니다. 솎아베기와 가지치기 같은 숲 가꾸기를 한 숲은 그러지 않은 숲보다 산불 확산속도를 1.4배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 미국과 캐나다에서 ‘나무를 베는’ 숲 가꾸기를 지속하는 이유입니다.

나무 벨 곳은 베어주는 ‘숲 가꾸기’ 필요


▎임도가 있어야 산불을 끌 수 있는 차량이 신속하게 진입할 수 있다. / 사진:산림청
아무리 필사적으로 막으려 해도 산불은 나는 법입니다. 관건은 이를 얼마나 ‘선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느냐’입니다. 남 청장은 “점점 대형화·일상화하는 산불에 대응하기 위해선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진단합니다. 기존 대형 헬기보다 담수량이 2~3배 큰 초대형 헬기를 공중진화 주력 헬기로 전환하고, 분사 능력이 빼어난 고성능 산불 진화 차량이 필요합니다. 산불 재난 특수진화 인력을 지자체에도 배치해야 합니다. 이 가운데 차량과 인력은 임도와 결합할 때 역량이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2023년 4월 2일부터 5일까지 번진 전국 50여 건의 동시다발 산불은 임도의 가치를 새삼 실감하게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남 청장은 “2023년 3월 경남 하동 지리산국립공원에 산불이 났을 때, 임도가 없어서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다행히 비가 와서 산불이 확산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하늘이 돕지 않았다면 재앙은 걷잡을 수 없을 뻔했습니다. 이후 상대적으로 임도에 무심했던 지자체와 국립공원공단, 관계 행정부처 등이 그 가치를 재평가하게 됐습니다.

산림청은 임도를 우선적으로 설치할 곳에 관한 기준을 마련해뒀습니다. △소나무 단순림으로 대형산불 위험이 높은 지역 △민가 주변, 국가기간산업시설 등 주요 시설물과 인접한 산림 △보전·보호 가치가 높은 산림 △기존에 설치된 임도끼리 연결되지 않았거나 헬기 접근이 어려운 곳이 그것입니다.

일단 임도가 마련되면, 산불 진화 시 피해 면적을 53%, 진화 비용을 52% 각각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집계됩니다. 현재 우리나라 임도 밀도는 독일, 오스트리아, 일본 등에 비해 한참 못 미칩니다. 특히 국립공원의 경우, 1㏊당 0.28m 수준으로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2022년 3월, 경북 울진 대형 산불 때 소광리 금강소나무 군락지가 보존된 것도 임도가 방화선 역할을 해준 덕분입니다. 산불 진화 차량이 임도를 통해 신속히 접근해 물을 뿌릴 수 있었기에 200~500년 된 금강소나무 8만5000그루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비근한 사례로 2023년 3월 거의 비슷한 시기에 경남 합천과 하동에 산불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3.92㎞의 임도가 설치돼 있었던 합천 산불은 야간 지상진화율이 10%에서 92%로 증가했습니다. 그 덕분에 안전사고 없이 조기 진화가 가능했습니다. 반면 국립공원지역이라는 이유로 임도가 없었던 하동산불은 야간 진화율이 63%밖에 되지 못했습니다. 고성능 진화 차량이 진입하지 못했고, 안전사고(사망자 1명)도 발생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천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피해는 훨씬 더 컸을 터입니다.

산림청은 2024년 임도 확대를 위해 국비 2878억원을 투입할 예정입니다. 전년 대비 16.6% 증가한 금액입니다. 총 확장 길이는 1111㎞에 달합니다. 이미 3월부터 공사에 돌입했고, 동절기 이전 완료를 목표로 추진 중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산불 진화 임도 409㎞(1258억원), 간선 임도 650㎞(1353억원), 작업 임도 52㎞(81억원)로 배분돼 있습니다.

2027년까지 임도 3만6907㎞까지 확대 방침


▎대관령 임도. 임도는 산불 진화 기능뿐 아니라 힐링 자원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 사진:산림청
이 밖에 태풍 등 산림 재해에 대비하는 임도 관리를 위해 구조물 보강 등 구조 개량 98㎞(66억원)가 배정됐습니다. 또 1750㎞ 길이의 임도에 안전진단, 유지보수 비용으로 33억원이 투입됩니다. 그리고 27개소, 108명에 달하는 임도 관리단을 고용하고, 책임구역 지정을 통해 임도 관리, 응급조치 등 사후 관리 체제를 확립할 계획입니다.

산림청은 향후 2027년까지 임도를 3만6907㎞까지 확대해나갈 방침입니다. 특히 동해안 일대의 산불위험지의 산불 진화 임도는 누적 3332㎞까지 늘려나갈 것입니다. 2020년만 해도 산불 진화 임도는 64㎞가 전부였습니다. 이를 2023년 562㎞로 늘린 뒤 3332㎞까지 가겠다는 것입니다.

임도를 개설하면 산불 진화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경제적 효과가 상당합니다. 조림 등 산림사업비용이 약 30% 감소하고, 벌채 수확 시 임도를 통해 기계 장비를 활용하면 약 70~80%에 달하는 예산절감 효과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목재 생산 면적도 증가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파생되는 경제적 효과도 경시할 수 없습니다. 1㎞당 5억1700만원에 달하는 생산유발 효과가 생겨납니다. 1㎞당 취업유발 효과는 3.4인이 증가하며, 부가가치는 2억원 이상 창출된다고 합니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4월 11일 ‘봄철 산불특별대책기간’ 동안 경기도 광주시의 산불 진화 임도를 점검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남 청장은 “공중과 지상에서의 입체적 산불 진화를 위해 적재적소에 재난대응시설을 갖춰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405호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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