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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취재] 윤 대통령 ‘탄핵 뇌관’ 채 상병 사건, 제2막 열리나 

공수처 칼끝, 수사 외압 ‘스모킹건’ 경북경찰청 겨눈다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민주 “대통령이 수사 개입 의혹의 정점”… 공수처도 진실 향해 ‘성큼’
尹, 해외출장 이종섭과 개인 통화… 박지원 “국제전화는 모두 도·감청”


▎이종섭 전 국방장관은 지난해 7월 31일 대통령실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이후 이종섭 전 장관은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에게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한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7월 숨진 해병대원 고(故) 채수근 일병 (순직 뒤 상병으로 추서)의 사망 사건에서 비롯된 여야 정치 공방이 윤석열 정부 3년차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대통령실이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과정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단서가 속속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야당의 특검 추진론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사실 야당의 칼끝은 일찌감치 윤 대통령을 향하고 있었다. 윤 대통령을 채 상병 수사 개입 의혹의 정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의 명분과 정당성이 갖춰진다. 반대로 정부 여당으로선 결코 타협할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다.

“사건 진행을 180도 바꿀 인물은 손에 꼽아”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이첩 관련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수사단장이 지난해 12월 7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관련 첫 공판에 출석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야권에서 제기하는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은 대통령실, 더 좁히면 VIP(윤 대통령)가 채 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한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를 방해했는지 여부다. 당초 박정훈 대령이 이끈 해병대 수사단은 채 상병이 소속돼 있던 해병 1사단 임성근 사단장(소장)을 비롯해 여단장과 대대장, 중대장, 부사관 등 지휘 체계에 있던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피의자로 지목했다. 이종섭 장관도 수사 결과 보고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이튿날 이 장관이 수사 결과 이첩(경북경찰청)을 보류하라고 지시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날 예정됐던 수사 결과 브리핑이 갑자기 취소된 것은 물론이고 사건 책임자를 대대장 이하로 줄이라는 지시가 박 대령에게 전달됐다. 박 대령은 지시를 거부하고 수사 자료를 관할 수사기관인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해병대사령부는 박 대령을 즉시 보직 해임했고 항명죄가 적용됐다. 동시에 국방부 검찰단은 위법 가능성을 감수하면서까지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수사자료를 회수했다. 장관과 해병대사령관을 움직여 사건 진행을 180도 바꿀 수 있는 인물은 많지 않다.

이후 ‘윤 대통령 격노설’이 나오자 의혹이 정치 쟁점으로 비화했다.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수사 결과를 보고 받은 윤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질책했다는 내용이다. 이후 임성근 사단장을 피의자 명단에서 빼기 위해 수사 자료 회수 소동이 벌어졌다는 게 ‘윤 대통령 격노설’의 요체다.

당초 여권은 격노설을 부인했지만,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스스로 인정하면서 상황이 야권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9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사망자 수색 작업에 병력을 무리하게 투입한 데 대한 질책이었다”고 말했는데, 그런 이유라면 왜 처음부터 채 상병 사망 관련 논의가 대통령실에서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던 것인지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 장관은 지난해 8월 21일 국회에 출석해 ‘대통령실로부터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문자를 받거나 메일을 받은 게 없느냐’는 질문에 “문자나 전화를 받은 것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통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 장관이 위증한 셈이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윤 대통령이 이 장관과 통화한 수단이 개인 휴대전화였다는 게 드러나면서 의혹이 커졌다. 윤 대통령이 개인 휴대전화로 세 차례 이 장관에게 전화한 시점은 공교롭게도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한 직후였다.

“尹-이종섭 통화, 도·감청 됐을 가능성”


▎국방부 조사본부가 발표한 최종 보고서에는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의 범죄 혐의가 사라졌다. 임성근 전 사단장이 지난 5월 13일 조사받기 위해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개인 휴대전화로 장관에게 업무상 통화를 했다는 것부터 이미 정상적인 일처리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문재인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도종환 전 의원은 “대통령이 장관에게 직접 전화로 업무를 지시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더구나 당시 이 장관은 우즈베키스탄 출장 중이었다. 일반 휴대전화라면 도청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회에서 “우즈베키스탄은 과거 소련 연방 국가이고 지금도 북한 대사관이 있다”며 “국제전화는 모두 도청, 감청한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어 “우즈베키스탄뿐 아니라 북한도, 중국도, 러시아도, 또 다른 나라도 다 도청해서 기록을 갖고 있을 거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도·감청 위험에도 휴대폰 굳이 사용할 이유 있었나


▎검찰총장까지 역임한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과 비서실의 통상 업무 방식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정식 기록을 남기지 않고 수사 방향을 급하게 바꿔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을 거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용산 대통령실은 출범 초부터 도·감청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 지난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용산 대통령실을 도·감청한 게 드러나면서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도·감청에 취약한 개인 휴대전화로 구소련권 국가로 출장 중인 국방장관에게 전화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국민의힘의 한 재선 의원은 “대통령은 화가 난 상태에서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참모들이 막지 못했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권에서 특검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대통령이 보안이 허술한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했다는 건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는 게 정치권 시각이다. 지난해 대통령실을 뒤흔든 CIA의 도·감청 문건에는 국가안보실 내부의 구체적인 대화 내용이 담겨 있어 충격을 안겼다. 당시 대화는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과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이 대통령실에서 나눈 대화였다. 이 자리에서 이 전 비서관은 김 전 실장에게 우크라이나 포탄 지원에 대한 우려를 밝혔다.

당시 도·감청이 큰 파장을 불러온 또 다른 이유는 대통령실 내부의 단순 대화도 미국이 실시간으로 엿듣고 있었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단순 대화도 도·감청 대상이라면 개인 휴대전화를 통한 국제전화는 박 의원 주장대로 ‘모두 도청, 감청’되는 셈이다. CIA의 도·감청 문건이 공개된 직후 군사 전문가인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유리창에 보안 조치가 안 돼 있을 경우에는 유리창의 미세한 떨림을 통해서도 실내 회의 내용을 식별할 수 있다.”

통상 도·감청은 시긴트(Signal Intelligence)를 통해 이뤄진다. 시긴트는 전 세계 정보 당국이 가장 손쉽게 정보를 획득하는 방법이다. 시긴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전자신호만 낚아채면 되기 때문이다. 인적 관리가 필수인 휴민트(Humint)와 달리 기술만으로 원하는 정보를 얻는 셈이다. 김 전 의원의 주장처럼 주요국의 도·감청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보다 높은 보안이 요구되는 이유다. 러시아가 대표적이다. 오늘날 러시아 대외정보국(SVR)은 전 세계에 파견된 자국 블랙 요원들에게 텔레그램(Telegram)이 아닌 시그널(Signal) 사용을 장려한다. ‘철통 보안’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텔레그램도 믿지 못하는 거다. 지난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텔레그램이 시긴트의 대상이 됐다고 판단한 거다. 해외 출장 중인 국방장관과 대통령의 통화가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란 이야기다.

경북경찰청 내부 메모에 달린 공수처 운명


▎정치권에선 대통령이 개인 휴대전화로 장관에게 업무상 통화를 했다는 것부터 이미 정상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사진은 지난 2022년 9월 5일 저녁 불 밝힌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 / 사진:연합뉴스
평생 검찰에 몸담았고, 검찰총장까지 역임한 윤 대통령이 대통령과 비서실의 통상 업무 방식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정식 기록을 남기지 않고 수사 방향을 급하게 바꿔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을 거란 추론이 합리적이다.

야권에선 윤 대통령 부부와 사적 인연으로 얽힌 임성근을 구하기 위해 윤 대통령이 도·감청 위험을 무릅쓰고 휴대전화를 사용해 비공식적인 업무 지시를 내렸을 거라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김건희 여사 개입설’, ‘대통령실 실세 개입설’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다만,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할 뿐이다.

이때 주목되는 게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이 제기한 ‘고석 변호사 개입 의혹’이다. 박 의원은 지난 6월 12일 윤 대통령과 고 변호사가 김동혁 국방부 검찰 단장에게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고 변호사는 윤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을 지냈다. 고 변호사가 도마 위에 오른 이유는 경북경찰청이 국방부로 인계한 다음 날인 8월 3일 고 변호사가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준장),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을 보좌하는 이모 중령과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박 의원은 “김동혁 검찰단장과 고 변호사는 육사 동문에 같은 군 법무관 출신으로 끈끈한 선후배 사이를 유지하는 관계”라며 윤 대통령, 김동혁 검찰단장과 모두 친한 고 변호사가 8월 3일 이종섭 장관과 통화한 이유를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의 이런 주장과 관련해 고 변호사는 박 의원이 제기한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현재 이 사건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임성근 사단장 등 8명의 혐의를 담은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대한 이첩 보류 지시가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해병대 수사단 이첩 서류 위법 회수 여부 등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채 상병 수사에 공수처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본다. 공수처는 경북경찰청에 수사력을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해병대 수사단으로부터 수사 자료를 이첩받았다가 국방부 검찰단에 돌려준 과정에서 경북경찰청이 모종의 근거를 남겨뒀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찰청의 한 중견 간부는 “부처 간 업무 자료를 인수인계할 때 목록 등 구체적인 기록을 남기는 건 공무의 기본”이라며 “더구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어쩔 수 없이 수사 자료를 돌려줘야 할 상황이라면 향후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어딘가에 분명 자세한 근거가 담긴 메모를 남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만약 메모가 존재한다면 이는 향후 정국을 요동치게 할 스모킹 건이 될 수도 있다. 현재 드러난 통화 내역상으로도 지난해 8월 2일 윤 대통령이 이 장관에게 처음 전화한 뒤 경북경찰청과 국방부,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들 사이에 분주하게 연락이 오고 간 기록이 남아있다. 민주당 의원 보좌진 가운데 정책통으로 꼽히는 모 보좌관은 기자에게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스모킹 건이었던 ‘태블릿PC’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박 대통령 탄핵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사소한 단서가 탄핵의 물꼬를 트는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이미 경험해 봤다”고 말했다.

다만 공수처가 경찰 수사에 이르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해야 할 일에 비해 수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현재 (공수처는) 수사관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공수처 규모가 워낙 작아 수사에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

202407호 (202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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