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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민주주의 역사의 물줄기 바꾼 ‘탄핵의 정치학’ 

“탄핵의 최종 결정, 결국 민심이 한다” 

최근 30년간 세계 곳곳에서 2년에 한 번꼴로 탄핵 시도
민주주의 지키는 최후 수단… 민심 동의 없인 성공 못해


▎2017년 3월 10일 오전 부산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로 생중계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지켜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있은지 불과 7년밖에 안 된 상황에서 다시 대통령 탄핵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조차 정치권이나 국민 대다수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지난 대선에서 그를 지지했던 보수진영에서조차 최근 탄핵을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만큼 윤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반감이 커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설사 그럴지라도 대통령 탄핵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탄핵은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할 때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주의 확산과 함께 세계적으로 대통령 탄핵은 드물지 않은 일이 됐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들의 94% 정도가 헌법에 탄핵 조항을 두고 있는데, 지난 30년 동안 2년에 한 번꼴로 탄핵이 시도됐다고 한다. 대부분 상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기각됐지만, 브라질의 콜로르(1992년)와 지우마(2016년),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2000년), 필리핀의 조셉 에스트라다(2001년), 인도네시아의 압두라만 와힛(2001년), 리투아니아의 롤란다스파카스(2004년), 파라과이의 페르난도 루고(2012년), 우리나라의 박근혜(2017년) 등이 최근 30여 년 동안 탄핵으로 인해 자리에서 물러난 대표적인 대통령들이다.

이렇게 탄핵 시도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원인은 정치 양극화가 심해지는 경향과 무관치 않다. 정당 또는 정파들 사이의 극심한 대립이 정상적인 정치 수단이 아니라 탄핵 같은 극단적인 수단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미국을 예로 들면, 이전에는 정당들 사이의 이견과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고 국가의 주요 정책에 대해서는 정파를 넘어서 서로 협력하는 초당파주의(bipartisanship)가 정치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헌정질서의 중심축인 대통령직의 신성함에 대한 공감이 굳건해서 아무리 갈등이 깊어져도 탄핵이라는 최후의 수단에 이르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두 번이나 하원에서 탄핵을 당한 트럼프의 등장은 이제 시대가 달라지고 있다는 암울한 증표로 보인다.

정치 양극화와 갈등 깊어지면 탄핵 시도 증가


▎2004년 3월 12일 국회에서 박관용 국회의장이 여당 의원들의 반발 속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선언하고 있다.
여기에 제도적 요인도 한몫한다. 대통령제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 즉 대통령의 소속 정당과 의회 다수당이 다른 여소야대 현상은 언제든지 대통령 탄핵 시도에 불을 붙일 수 있다.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과 의회라는 이원적 정통성을 갖는 기구가 존재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갈등이 생길 소지가 있다. 그래서 정치적 타협이나 정상적인 제도로 갈등이 해결되지 않을 때 다수당은 대통령 탄핵을 통해서 국면을 반전시키고 정국 주도권을 가져오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탄핵 과정은 결국 의회가 주도하기 때문이다.

20세기 말 이후 세계적으로 빈번해진 탄핵의 물결에서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20년 사이 우리나라는 두 번이나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경우 많은 시민이 참여한 평화적인 촛불시위를 통해 성공했기 때문에 자랑스런 역사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즐겁기만 한 추억은 아니다. 대통령 탄핵이 성공했다는 것은 그 나라 국민의 정치의식이 높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상적인 정치 시스템으로 해결되지 않을 정도로 문제가 컸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탄핵이 자주 일어나거나 논의된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질서가 혼란스럽고 국정이 불안정하다는 증거다.

탄핵제도는 권력을 남용하는 권력자로부터 헌법과 국가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a last resort)’이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탄핵을 충족하는 문턱(threshold)을 상당히 높인 이유는 탄핵이 일상적인 정치과정이 되는 게 국가 전체에 매우 심각한 위협이기 때문이다. 성급한 탄핵 시도는 국민 사이의 분열을 더 심화시키고 정국을 불안하게 만든다.

따라서 대통령 탄핵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 불가피한 경우에만 시도돼야 한다. 단순한 정책 실패나 무능력, 인기 하락 등은 탄핵 사유가 되기 힘들다. 대통령의 헌법 및 법률 위배행위가 심각해서 탄핵하지 않으면 헌정질서와 국민의 권리 및 자유가 크게 침해당할 위험에 처했을 때, 그리고 탄핵으로 인한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판단될 때에 한해 매우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 뚜렷한 헌법 위반이나 범죄행위가 없는데도 함부로 탄핵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대 진영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정치 행태에 불과하다. 이는 정치발전과 안정에 전혀 도움 되지 않고 국민을 불안하게 할 뿐이다.

‘제왕적 대통령’ 권력 견제 최후 수단으로 도입


▎2017년 3월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대해 탄핵 인용을 선고하고 있다. 같은 시각 탄핵 촉구 촛불집회가 열리던 광화문광장 너머로 청와대가 보인다.
탄핵제도가 대통령제의 고유한 특성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의원내각제 전통이 시작된 영국의 유산이다. 이것이 식민지였던 미국으로 전해지고 다시 미국을 따라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들로 전파됐다. 미국의 탄핵제도는 권력 간 견제와 균형에 더 방점을 뒀다. 영국 국왕의 전제적인 통치를 혐오한 미국의 헌법 제정자들(Framers)은 어느 한 사람이나 기구가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견제장치를 고안했다. 그중 탄핵은 의회가 행정부와 사법부, 특히 행정부와 그 수장인 대통령을 견제하는 최후 수단으로서 도입했다. 그래서 초대 재무장관이자 대표적인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헌법과 제도의 기초가 되는 문서인 [페더럴리스트(Federalist)]에서 탄핵을 “입법부 손에 있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굴레”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우려하는 정서는 대통령 명칭을 정할 때도 드러났다. 처음에는 각 주의 행정수반을 뜻하는 ‘거버너(governor)’를 그대로 쓰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영국 국왕을 대신해 식민지를 다스렸던 총독을 의미하기도 하는 거버너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원래 회의체의 대표를 뜻하는 ‘프레지던트(president)’를 선택했다. 처음에는 의원내각제 채택을 고려했던 건국의 아버지들이 독립전쟁을 비롯한 여러 가지 위기를 겪으면서 강력한 리더십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결국 대통령제를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통령(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어느 하나도 독주하지 못하는 견제와 균형의 가치를 헌법에 구현하려고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오늘날 대통령제가 의원내각제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경직성(rigidity)이다. 의회가 내각을 불신임하면 언제든지 다시 총선이 치러질 수 있는 의원내각제와 달리 매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통령의 정해진 임기를 보장해줌으로써 정권의 안정성과 정치 일정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래서 탄핵은 매우 특별한 경우다. 임기 보장이라는 대통령제의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는 예외를 둔 것은 언제든지 대통령의 초법적 독재 가능성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미국에서는 총 4명(앤드루 존슨, 리처드 닉슨, 빌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에 대해 다섯 번의 탄핵이 시도됐다. 빌 클린턴은 르윈스키 사건으로 1998년에 하원에서 탄핵됐고, 가장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가 직권남용과 내란 선동 혐의로 각각 2019년과 2021년에 하원에서 탄핵당했다. 탄핵 국면에 자리에서 물러난 경우는 닉슨이 유일하며, 지금까지 상원에서 탄핵이 인용된 경우는 없었다.

20세기 후반 이후 탄핵 더 자주 시도되는 추세


▎미국은 역대 4명의 대통령에 대해 다섯 번의 탄핵 시도가 있었다. 그중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의회에서 두 번의 탄핵 시도가 이뤄졌다. 2018년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등장한 트럼프 탄핵 촉구 광고. / 사진:연합뉴스
230여 년 역사 전체로 볼 때 미국에서 대통령 탄핵이 빈번했다고 할 순 없지만, 어쨌든 20세기 후반 이후 탄핵이 더 자주 시도되는 추세다. 이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정치 양극화라는 두 가지 요소가 만나 생기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미국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가 동명의 책에서 분석했듯이, 전쟁이나 경제공황 같은 국가의 위기를 겪으면서 대통령의 권한이 점점 더 막강해지고 그에 따라 헌법이나 법을 넘어서 권력을 행사하려는 대통령의 욕구가 더 강해진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예전 미국 정치의 전통인 초당파주의가 점점 사라지면서 양당과 지지자들 사이의 대립은 더 격화되고 있다. 따라서 야당이나 그 지지자들은 어떻게든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려 하고 그 과정에서 탄핵 시도 유혹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국민 상식으로는 탄핵당해야 마땅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살아남게 하는 역설도 있는데, 그 뒤에는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와 강성 지지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2021년에 트럼프는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내란을 선동한 혐의로 하원에서 232대 197로 탄핵소추가 결정됐고, 상원에서는 57대 43으로 10표가 모자라 기각됐다. 물론 하원과 상원에서 각각 10명과 7명의 공화당 이탈표가 있긴 했지만, 탄핵 반대 여론이 높은 지역의 대다수 공화당 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졌다. 헌법 수호보다 자신들의 정치경력을 유지하는 게 우선이었던 것이다.

닉슨이 하원 법사위원회 결정만 나온 상태에서 사임을 결심한 배경에는 탄핵에 찬성한 공화당 의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당을 떠나 대통령과 행정부의 잘못을 따지고 권력 남용을 견제하는 의회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려 했다. 자당 의원들조차 지지를 철회하자 닉슨은 대통령직을 유지할 명분과 힘을 잃었다. 양극화된 미국의 정치 지형 변화가 탄핵의 본래의 헌법적 의미인 견제와 균형의 가치를 퇴색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남미의 대표적인 대통령제 국가인 브라질은 군사정권이 끝나고 민주화된 후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이 있었다. 민주화 이후 첫 번째 직선 대통령인 페르난두콜로르는 부정부패 혐의로 1992년에 상원의 탄핵심판 전에 스스로 물러났고, 2016년에는 브라질 최초 여성 대통령인 지우마 호세프가 국가재정 분식회계 혐의로 탄핵됐다. 그런데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콜로르의 탄핵 사유에 대해서는 여론이나 법학자들 모두 긍정했고 누가 보더라도 명약관화했다. 그래서 콜로르는 상원의 심판이 있기 전에 스스로 사임했다. 하지만 지우마의 경우는 처음 탄핵 절차가 시작됐을 때 그녀가 실제로 탄핵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여론이 급격히 나빠져 분식회계라는 다소 모호한 사유로 탄핵에 이르렀다. 지우마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브라질의 탄핵제도는 제도상 허점이 많다. 브라질은 ‘정치적 탄핵’과 ‘법적 탄핵’을 구분하고 있는데, 대체로 정치적 탄핵 성격이 훨씬 강하다. 그래서 상원에서 탄핵심판 중일 때도 여야 간 교섭이 이루어진다. 브라질 국민 누구나 연방하원에 탄핵 청원을 할 수 있어서 탄핵 시도가 남발되기도 한다. 정치 상황 변화에 따라 어떤 대통령이라도 쉽게 탄핵당할 수 있는 불안정한 정치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은 기각되고 박근혜는 인용된 이유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브라질 시위. 반대파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탄핵 절차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가능성이 거의 없었지만,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여론이 급격히 나빠져 결국 탄핵당해 2016년 8월 물러났다. / 사진:연합뉴스
제3세계에서 민주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인 우리나라도 짧은 기간에 두 번의 탄핵 시도가 있었다. 최근 20년 사이에 노무현과 박근혜 두 대통령의 탄핵이 시도됐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둘 다 국회에서는 탄핵소추가 결정됐으나 노무현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고, 박근혜는 인용돼서 파면됐다. 보수와 진보 각각 한 번씩의 탄핵 시도에서 보수는 실패했고 진보는 성공했다.

이런 결과 차이는 우선 탄핵 사유의 타당성에 있다. 우리 헌법 65조 1항은 탄핵 사유를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하는 경우로 명시하고 있다. 법 조항의 단순한 저촉이 아니라 헌법질서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인 위험성을 초래하는 경우에만 탄핵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야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사유로 삼은 선거법 위반은 누가 보더라도 탄핵해야 할 만큼 심각한 범법행위로 보기 어려웠다. 노 대통령이 발언을 좀 더 신중하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야당의 탄핵 시도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기 싫었던 야당은 극심한 여소야대 구도만 믿고 탄핵이라는 무리수를 두었고, 결과는 야당의 총선 참패로 이어졌다.

대조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헌법재판소가 공익실현의 위반, 기업의 자유와 재산권 침해, 국가공무원법 위반을 탄핵 사유로 인정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보다 법 위반이 명백해 보였고, 일반 국민이 보기에도 더는 대통령직을 맡겨서는 안 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오히려 정치권이 노 대통령의 전례가 있어서인지 탄핵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주저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원에서 탄핵심판을 하는 미국이나 브라질과 달리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가 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두 나라에 비해 탄핵의 사법적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도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을 박탈하려면 어쩔 수 없이 사법부도 국민의 여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헌법재판소가 여론재판을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사법적 성격이 강한 우리나라의 탄핵제도도 불가피하게 어느 정도 정치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탄핵 성공 여부의 가장 중요한 키는 여론과 민심이 쥐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탄핵이 사법절차인 동시에 정치적 행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당들의 의석 분포가 탄핵 여부에 중요한 변수이기는 하지만, 결국 최종 결정은 민심이 한다. 탄핵이라는 최후 수단이 그나마 의미 있게 작동하려면 결국 대통령을 그 자리에 있게 만든 국민의 의지가 중요하다. 주권자인 국민이 임기 끝날 때까지 대통령을 그 자리에 둘 수 없다고 판단할 때,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탄핵이라는 수단을 쓸 수 있는 것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잘 보여주듯이,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의석수만 믿고 성급하게 탄핵에 나섰다가는 민심의 역풍을 맞게 된다. 설사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언젠가 치를 대가는 혹독하다. 대조적으로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성공한 원인은 국민이 먼저 나섰기 때문이다. 2004년의 경험 때문에 정치권은 탄핵을 시도하는 것을 매우 조심했다. 그러나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점점 커지고 많은 국민이 공감하면서 어쩔 수 없이 정치권도 그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되고, 여당 의원 상당수가 탄핵에 동참하면서 2004년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당파적 이익이나 정쟁 수단으로 시도돼선 안돼

그러나 브라질의 지우마 대통령 탄핵의 경우처럼 여론재판의 성격을 띨 가능성도 항상 경계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최종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 대원칙이지만, 국민이 항상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오랜 민주주의 역사에서 인류가 얻은 쓰라린 경험이기도 하다. 탄핵제도를 두고 있는 대다수 나라는 의회보다 헌법재판소 같은 사법기관에 최종 탄핵심판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당파성을 벗어나 공정하게 판단하라는 취지다.

닉슨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결정하는 역할을 맡은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벌어진 일화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준다. 여야를 막론하고 처음에는 미국 헌정질서의 상징인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에 부담이 컸다. 하지만 닉슨이 부당하게 개입한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의원들은 탄핵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탄핵안이 통과됐을 때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도 큰 슬픔에 잠겼고 많은 의원들이 구석으로 가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대통령 탄핵은 역사가 요구할 때는 부담감을 무릅쓰고 성사시켜야 하는 엄숙한 헌법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것은 이유를 막론하고 국가 전체의 비극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탄핵은 결코 당파적 이익이나 정쟁의 수단으로 성급하게 시도돼선 안 된다.

- 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정치학박사)

202407호 (202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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