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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URY] 역사 오래됐다고 디자인 지루해선 안 돼 

번트 옵콘 발리 CEO 

레드와 화이트가 교차하는 발리의 상징을 보고 있노라면 스위스 국기가 떠오른다. 유럽 명품 브랜드 사이에서 160년 동안 잔잔하게 자리를 지켜온 발리의 글로벌 CEO 번트 옵콘을 만났다.

‘편한 신발’로 유명한 스위스 패션 명가 발리가 160주년을 맞았다. 꼼꼼한 스위스 장인의 솜씨가 자랑인 발리는 최근 전문경영인을 수장으로 맞으며 변화를 맞고 있다. 7월 4일 발리의 젊은 CEO 번트 옵콘을 하얏트 호텔에서 만났다. 날렵한 외모가 인상적인 옵콘 CEO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발리를 착용했다. 빡빡한 일정 탓인지 조금 피곤해 보였지만 기자를 보자 푸근한 미소를 활짝 지어 보였다.

160주년, 참 오랜 역사인데 패션 브랜드로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발리의 역사는 곧 다음 160년을 위해 전략을 세워야 하는 의무를 뜻한다. 현재의 발리는 과거의 디자인이 기록돼 있는 아카이브를 통해 새로운 디자인을 창출하려고 노력한다. 이 아카이브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취리히에 있는 스위스 대학과 협력해 아카이브를 완벽히 보존하고 분석하려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발리 역사 자료를 세계 최고의 아카이브로 만들고 싶다.”

1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 상품을 출시한다고 들었다.

“160주년 기념 라인이 9월에 나온다. 보통 남성 신발에 쓰는 테크닉인 복잡하고 디테일이 강한 ‘브로깅(가죽에 펀칭해 장식하는 기법)’을 여성 핸드백에 적용했다. 발리의 공예적 전통에 모던한 요소를 가미해 160주년 기념 라인을 출시한다. 기념 라인이라고 해서 단순히 아카이브에서 예전의 상품을 꺼내 카피하는 것은 지루하다. 우리는 박물관에 있지 않다. 과거 160년만 뒤돌아보는 게 아니라 앞으로 160년을 내다보는 철학으로 디자인했다. 과거 제품과 요소적인 관련성이 있으면서 현대인의 안목에 맞게 재해석했다. 누구나 엄마가 몇십 년 전에 산 제품을 다시 사고 싶진 않을 테니까.”

최근 발리는 디자인도 과감해지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취임 후 어떤 혁신이 진행되고 있나.

“디자인적으로 가장 많이 변했다. 항상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수많은 컨슈머 리서치와 제품 리서치를 했다. 또 팀을 만들어 새로운 것을 창조하도록 했다. 창의성만 고집하기보다는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고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 새로운 디자인을 내도록 했다. 발리의 DNA인 클래식·럭셔리·절제미를 유지하면서도 모던한 트위스트를 가미했다. 수준 높은 공예품이라고 해서 디자인이 지루할 필요는 없다.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는 동시에 흥미롭고 색다른 제품을 만들 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서 디자인팀을 새로 영입했고 제품 개발도 강화했다.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모던함과 장인정신을 접목하는 프로젝트도 추진했다. 세계 최고의 패션스쿨인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즈의 학생들을 초청해 발리의 장인들과 함께 일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발리를 인수한 라벨럭스가 럭셔리 브랜드들을 사들이고 있다. LVMH나 PPR과 경쟁하는 것인가.

“라벨럭스는 향수 업체와 가정용품 업체 패밀리가 만나 만든 회사다. 애초에 멀티 럭셔리 브랜드 그룹을 만들고자 했고, 내게 권유가 들어와 합류하게 됐다. 곧 4개 브랜드를 인수했고 그중 하나가 발리다. 인수 후 발리 CEO를 겸임하다 실적이 좋아 아예 발리 CEO로 이동했다. 라벨럭스의 전략은 럭셔리 브랜드들을 모아 멀리 내다보며 발전시키는 것이다.

다른 럭셔리 그룹과의 차이점은 속한 브랜드를 되팔아야 하는 촉박감 없이 장기적으로 브랜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저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최종 목표는 브랜드를 사서 되파는 게 아니라 키우는 것이다. 이런 철학을 발리에 적용해 내일을 위한 브랜드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것으로 키우려 한다. 럭셔리 브랜드가 가져야 할 최고의 자세다.”

CEO가 아닌 고객으로서 발리의 어떤 점이 가장 매력적인가.

“발리는 평범하지 않다. 질 좋은 재료를 쓰고 디자인적으로 한발 앞서며 실용적이다. 뭔가 특별하고 색다르다. 스위스 브랜드라는 아이덴티티도 중요하다. 스위스의 완벽함, 고품질, 디테일을 추구하는 전통과 깊은 관련이 있다. 발리가 신발을 만드는 과정은 스위스 장인들이 시계를 만들 듯 디테일하다. 스위스 전통과 모던함, 장인의 솜씨, 1851년부터 이어온 아카이브를 통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 발리의 매력이다.”

여러 분야에서 일했는데, 럭셔리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

“9년간 컨설팅 그룹의 럭셔리 분야에서 일했다. 그쪽이 내 성격과 맞는 것 같다. 분석력이 강하고 창의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소통도 잘해야 하고 디테일도 잘 봐야 하며 기억력도 좋아야 한다.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매할 때 왜 그 제품을 샀는지, 그 당시 상황이 어땠고 다른 제품들은 어땠는지 상세히 기억하는 까닭이다.”

이번에 한국 시장을 둘러본 소감은?

“한국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한국은 다이내믹하고 지식과 문화가 풍부한 곳이다. 디테일과 문화를 중시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한국은 발리가 발전할 수 있는 시장이며, 성장 기회가 충분하다. 어떻게 하면 다음 단계로 비즈니스를 끌어올릴 수 있는지 연구 중이다. 최근 발리는 싱가포르를 교두보로 중국-홍콩-일본-한국을 잇는 ‘아시아 럭셔리 쇼핑 루트’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발리 전체 수익의 35%가량을 아시아 시장에서 올리고 있다.”

160주년을 맞아 발리의 과거와 미래는 어떻게 다른가.

“과거의 발리는 어떻게 하면 내년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내가 취임한 2년 전부터 멀리 보려 했다. 모던한 장인정신과 고유의 브랜드 성격을 접목해 ‘Bally since 1851 Switzerland’라는 입지를 확실히 굳히는 데 포커스를 맞출 것이다. 경제 공황기에도 우리는 광고나 홍보를 줄이지 않았고, 매장 확장과 마케팅에 더 많은 투자를 했다. 곧 발리의 밝은 미래가 오지 않겠나.”

앞으로 글로벌 럭셔리 비즈니스의 화두는?

“브랜드 각자의 전문 분야를 찾아 열중하게 될 것이다. 모든 브랜드가 모든 것을 하려고 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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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호 (201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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