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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운하 파나소닉코리아 대표 - 한국의 마쓰시타를 꿈꾸다 

 

최영진 포브스 차장 사진 전민규 기자
글로벌 기업 파나소닉은 한때 TV와 오디오로 한국인에게 유명했다. 파나소닉코리아 설립멤버이자 최초의 한국인 CEO인 노운하 대표가 과거의 영광을 살리기 위해 현장 경영과 적극적인 사회공헌활동을 선언했다.

▎파나소닉코리아 최초의 한국인 대표인 노운하 대표는 전자업계의 산증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3년과 2014년 연달아 매출 80조원을 돌파한 일본 기업이 있다. 소니와 LG의 매출보다 크다. 이 뿐만 아니다. 전 세계에 500여개가 넘는 지사가 있다. 이 기업이 만드는 제품 가지 수는 6만종. 제품 카탈로그 책자 페이지만 2000페이지를 넘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의 제품 카달로그는 300페이지 정도 된다. 이 기업이 얼마나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지 알 수 있다.

TV, 스마트폰, 전구, 스위치 등의 B2C 제품부터 영상기자재 등 B2B 제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전 세계에 팔고 있다. “아니 그런 것도 만드나?”라고 놀랄만한 제품도 수두룩하다. 쉽게 말해 ‘없는 것 빼고 다 만든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 글로벌 기업은 2014년 인터브랜드 선정 ‘세계 100대 브랜드 가치 조사’에서 64위를 기록해 ‘일본 최대 종합 가전브랜드’라는 평가를 이어가고 있다. 바로 파나소닉이다.

파나소닉은 일본을 대표하는 글로벌기업이다. 한때 한국 소비자에게도 낯익은 브랜드로 통했다. 50대~70대 한국 소비자에겐 TV와 오디오 등으로 낯익은 브랜드지만, 삼성과 LG가 글로벌 가전브랜드로 성장하면서 파나소닉의 이름은 한국 소비자에게서 멀어져갔다.

하지만 파나소닉 브랜드의 힘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 시장에서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맞다. 대표적으로 TV, 스마트폰 등 대표적인 소비재 제품은 한국에서 판매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파나소닉 브랜드의 친밀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건강, 이·미용 분야로 눈을 돌리면 한국 시장에서 파나소닉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글로벌 기업이 진출하지 않았거나,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는 제품을 내놓지 못한 분야라면 파나소닉의 인지도가 높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조용하지만 강한 일본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노운하(55) 파나소닉코리아 대표는 “고객이 만족하는 상품만 팔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 대표는 파나소닉코리아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파나소닉코리아 설립 멤버이자, 파나소닉코리아 최초의 한국인 대표이기 때문이다.

파나소닉코리아 최초의 한국인 대표


▎파나소닉이 만드는 제품 가지수는 6만 종이 넘는다. 노운하 대표가 서울 서초동 파나소닉코리아 쇼룸에서 파나소닉의 제품들을 자랑하고 있다.
2000년 파나소닉코리아가 설립된 이후 대표는 일본인이 맡아왔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 뿌리내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2010년 파나소닉은 노 대표를 내세웠다. 당시 노 대표는 마케팅 부문 임원을 맡고 있었다. “파나소닉은 해외에 560여개 지사가 있는데, 본사는 각 지사 경영에 참견하지 않는다. 다만 회사의 원칙을 가지고 각 나라의 실정에 맞게 운영하는지 살펴보기만 한다. 그래서 나는 파나소닉코리아를 한국 기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어떻게 기여를 할 수 있을지가 나의 가장 큰 고민이다.” 노 대표는 배포있게 웃었다.

노 대표는 아남전자와 미래통신에서 경험을 쌓은 한국 전자업계의 산증인이다. 파나소닉과 노 대표의 인연은 아남전자에 있을 때부터 시작됐다. 한때 재계 19위까지 했던 아남그룹은 1997년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노 대표는 워크아웃 신청 이후에도 아남에 남아 1999년까지 마지막 정리 작업을 했다. 아남전자를 흑자로 돌려놓은 후 “이젠 아남에서 할 일이 없다”고 말한 후 미래통신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래통신은 전자업계에서 유명한 기업이었다. 무선호출기 ‘삐삐’를 만들었던 곳이다. 한 때 매출액이 1200억원이나 했다. “미래통신에 있을 때 일본으로 출장을 갔는데, 아남전자에서 일할 때 인연 맺었던 파나소닉 관계자에게 인사나 하러 파나소닉 본사에 잠깐 들렀다. 당시 파나소닉 과장이 지나가는 이야기로 ‘파나소닉코리아를 설립하는 데 함께 하자’고 했다. 그냥 인사치레로 이야기한 줄 알고 알았는데 그때 스카우트 제안을 한 것이었다.”

당시 파나소닉은 잘나가는 글로벌 기업이었다. 한 개 과(課)의 매출이 4000억원을 기록할 정도였다. 한때 재계 19위까지 올랐던 아남그룹의 아남전자 매출액은 2000억원이었다. 파나소닉의 한 개 과가 한국의 대표적인 그룹 계열사보다 매출액이 높았던 것. 그런 글로벌 기업에서 한국 지사를 만드는 데 노 대표를 창립멤버로 염두에 둔 것이다.

내가 아남전자에서 일했던 모습을 기억했던 것 같다. 미래통신으로 옮긴 지 1년이 안되서 고민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미래통신과의 의리 때문에 거절했다. 파나소닉에서도 상당히 놀랐다고 하더라. 파나소닉의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한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파나소닉코리아에 참여한다고 사표를 냈을 때 미래통신은 ‘승진’을 약속하며 붙잡았다. 전자제품 업계에서 노운하라는 이름은 한마디로 ‘능력있는 인물’로 통했던 것. 하지만 미래통신의 파격적인 조건을 뒤로하고 노 대표는 파나소닉코리아에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무엇보다 파나소닉 창업자의 정신이 마음에 들었다.마쓰시타 고노스케 창업주의 정신은 회사에서 돈을 버는 만큼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정신이 전 세계에 퍼져있다. 그게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는 파나소닉코리아에서 승승장구했다. 설립 6년 만에 등기임원인 영업마케팅부문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4년 만에 파나소닉코리아 최초의 한국인 대표가 됐다. 노 대표는 한국 소비자에게 친숙한 기업으로 성장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고용창출이다. 그리고 세금을 내는 것이다. 기업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다. 파나소닉코리아가 이런 활동을 확대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파나소닉코리아는 한국에서 헬스케어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고급 안마의자 ‘MA 시리즈’는 한국에 고급 안마시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JOBA’로 대표되는 승마기기도 한국에서 붐을 일으켰다. 이들 제품은 천만원을 넘는다. 파나소닉 제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노 대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혈액 냉장고, 세포배양기 등 의료기기 시장에서도 우리가 1위”라며 “파나소닉이 어떤 제품을 만드냐고 많이 물어보는데, 이야기하려면 24시간도 부족하다”며 웃었다.

“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일본에서 파나소닉은 ‘A Better Life, A Better World’를 내세우면서 헬스케어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고, 한국에서도 의료기기 분야에서 파나소닉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구강세정기 시장도 파나소닉코리아가 선점하고 있다. 구강세정기의 경우 세계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2007년 파나소닉은 자기혈당측정기용 센서를 업계 표준으로 만들기도 했다. 파나소닉은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을 이끌어 가는 선두주자인 셈이다.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의 선두주자


글로벌 시장 1위 제품은 이 뿐만이 아니다. 흔히 ‘바리깡’으로 불리는 이발기, 전기램프, 스마트폰 소재, LED 조명도 글로벌 1위다. 국제스포츠대회에서 사용되는 방송장비와 시스템도 대부분 파나소닉이 제공하고 있다. “1988년 캘거리동계올림픽과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파나소닉이 방송장비를 납품했는데, 그 이후 문제가 생긴 적이 없다. 국제 스포츠 대회의 방송장비는 파나소닉이라고 보면 된다”고 자랑했다. “파나소닉은 다양한 분야에서 1위를 하고 있다. 심지어 삼성과 LG는 매년 1조원어치 부품을 파나소닉에서 수입하고 있다”고 노 대표는 강조했다.

파나소닉코리아의 제품은 크게 4분야로 나뉜다. ‘컨슈머 상품군’ ‘웰니스 상품군’ ‘에코 솔루션 상품군’ ‘시스템 솔루션 상품군’이다. 시스템 솔루션 상품군에서 매출의 반을 올린다. 쉽게 말하면 방송용 장비, 프로젝터, CCTV 등 B2B 제품에서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컨슈머 상품군은 가전제품이라고 보면 된다.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헤드폰, 이어폰 등이다. 웰니스 상품군은 헬스케어 상품이다. 각종 의료기기와 파워툴, 핸드드라이어 등은 에코 솔루션 상품군으로 분류된다. “한국의 CCTV 분야에서 파나소닉이 1위다. 저명한 기업가의 집에도 파나소닉 CCTV가 설치되어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을 정도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파나소닉이 가전제품 대표 1위 기업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파나소닉의 가전제품을 보기 힘들다. 노 대표는 “삼성, LG 제품에 소비자들이 만족하는 데 굳이 파나소닉 제품을 팔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노 대표는 이를 ‘공존공영’이라고 설명했다.

“파나소닉의 철학은 공존공영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함께 발전하고 함께 살아나간다는 것이다. 경쟁사가 품질좋은 제품을 내놓으면 우리는 굳이 경쟁하지 않는다. 우리는 소비자가 만족하는 제품이 없는 분야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경쟁이 싫어서가 아니다. 파나소닉은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제품을 내놓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국 소비자들이 삼성과 LG 제품만으로도 만족하기 때문에 파나소닉은 굳이 한국에 TV를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파나소닉의 TV가 여전히 인기다. 각 나라의 상황에 맞게 제품 포트폴리오를 마련하는 것이다. 파나소닉코리아는 한국 시장에 TV 대신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등을 내놓고 있다. 어떤 제품도 한국 소비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만족하는 제품이 없는 시장에는 언제든지 파나소닉코리아가 진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요즘 노 대표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구강세정기 시장이다. 시장을 확산시키기 위해 국민구강건강캠페인도 실시하고 있다. “치아가 건강하지 못한 한국인이 800만 명이나 된다. 이들은 나이가 들면 치료비와 약값으로 많은 돈을 쓰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구강건강에 신경써야 한다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노 대표는 파나소닉코리아를 맡은 이후 CSV(Creating Shared Value, 공유가치창출)와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책임)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다. 연간 매출액 1000억원을 바라보는 중견기업이지만 사회공헌활동은 대기업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파나소닉코리아의 기업문화는 놀랍기만 하다. “중견기업인데도 대기업과 같은 활동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나의 목표는 파나소닉코리아를 존경받는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며 “직원들과 함께 사회에 가치있는 일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나소닉코리아는 직원들이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꼽힌다. 2011년과 2014년 여성가족부는 파나소닉코리아를 ‘가족친화 우수기업’으로 인증했다. 가족친화 우수기업 인증은 여성가족부가 3년마다 한번씩 진행하고 있다. 파나소닉코리아는 2번 연속 인증을 받은 셈이다. 이 인증을 받은 이유에 대해 “신문을 보다가 저 정도면 우리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어느 날 신문에서 가족친화기업 인증에 관한 소식을 발견했다. 내용을 보니까 우리 기업에서도 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신청을 했다”고 쉽게 설명한다. 하지만 노 대표의 말처럼 가족친화 우수기업으로 인증 받는 일을 쉽지 않다. 여직원의 출산 장려 및 육아지원 정책이 있어야 하고, 일과 가정을 병립할 수 있는 기업문화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노 대표는 출산과 육아지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CEO로 꼽힌다. 심지어 파나소닉코리아에는 출산장려금 제도까지 있다. “첫째는 100만원 둘째는 200만원 등 출산할 때마다 배로 장려금을 주고 있다.”

사회공헌활동으로 기업가치 높여


▎노운하 대표가 파나소닉코리아의 오랜 전통인 ‘CSR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복지지설을 찾았다.
매주 수요일은 ‘가정 사랑의 날’로 모든 직원이 퇴근을 1시간 일찍하고 있다. 이날 회사에서는 제철 식재료를 지원하기도 하고, 영화와 연극 등을 볼 수 있는 티켓도 임직원에게 제공한다. 업무 때문에 국내외 출장을 갈 때는 가족을 동반할 수 있는 제도를 실시해 임직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심지어 미혼 직원을 위해 결혼정보업체와 제휴를 맺기도 했다. “지난 해 결혼정보업체와 제휴를 맺었다. 올해 미혼 직원들이 결혼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노 대표의 회사 자랑은 계속됐다. 특히 ‘CSR 투어’ 이야기에서는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CSR 투어는 파나소닉코리아의 기업 문화를 대변하는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파나소닉코리아와 인연을 맺고 있는 복지시설은 110여 곳이나 된다. 임직원들은 매년 명절마다 팀을 구성해 30여 곳의 복지시설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4년이면 파나소닉코리아와 인연을 맺고 있는 복지 시설을 모두 돌 수 있게 된다. 15년 째 이어오고 있는 대표적인 사회공헌 활동이다.

“청소년 시설에 가면 중고등 학생에게 카메라를 모두 한 대씩 주고 있다. 예전에는 시설 한 곳에 몇 대 이런 식으로 줬다. 카메라를 공용으로 쓰게 하니까 별 효과가 없더라. 그래서 학생별로 1대씩 줬더니 아이들에게 다양한 변화가 생겼다.”

카메라를 손에 쥔 학생들이 사진을 통해 행동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삶을 바라보는 눈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촬영이 취미에만 그치지 않고, 뭔가를 해보는 계기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찍은 사진 중에서 좋은 사진은 모아서 전시회도 열었다. 사진을 잘 찍고 싶은 아이들을 위해 회사로 불러서 무료 사진 강좌도 열었다. 노 대표는 강좌에 참석한 학생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사진기 한 대가 아이들에게 꿈을 준다는 것, 놀라운 경험이었다.”

2015년 노 대표는 임직원에게 ‘우문현답’(우리 주변의 문제를 찾아 현장에서 답을 구한다는 의미) 캠페인을 진행한다고 알렸다. 현장 중심의 경영을 펼친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기업의 수명이 5년 밖에 안되는 시대다. 항상 변화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망한다.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변해야 한다. 그러려면 항상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장을 바라봐야 한다. 그것을 임직원과 함께 공유할 것이다.”

파나소닉코리아를 맡게 된지 5년째, 노 대표가 승부수를 던졌다. 파나소닉의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처럼 사회공헌에 기여하겠다는 그는 ‘한국의 마쓰시타’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중앙포토
글 최영진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전민규 기자

201504호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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