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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듀퐁 클래식에 새긴 그의 스토리(8)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 

소망을 붙들라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몰래 고액과외를 하다 대중 강의 강사로, 그 다음엔 온라인 교육 사업으로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을 쥐락펴락했던 손주은 회장. “내게 돈 내고 공부한 젊은이들이 허우적 대는 현실에 괴롭다”고 말한 그는 “그래도 소망을 붙들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교육 열풍은 ‘손주은’이란 이름에서 시작됐다. 비싼 학원비를 내면서 공부하고 대학에 간 학부모와 학생들에겐 애증의 대상이다.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이 최근 몇 년 새 부쩍 “후회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이유다.


그는 더이상 유명 강사도 아니다. 2010년을 마지막으로 강의 대신 수백 명에서 많게는 1만 명 이상이 운집한 종합체육관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을 한다. 기업인도 아니다. 사업을 분할해 계열사 대표들에게 경영을 맡겼다. 올해 6월엔 그의 동생 손성은에게 지분도 일부 넘기고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그런 그가 최근 사재 300억원을 출연해 ‘윤민창의투자재단’설립을 발표하기도 했다. 우선 중소기업청에 재단 등록을 하며 100억원을 출연했고, 나머지는 단계적으로 출연한다. 그는 “학생 돈 받아 나는 걱정없이 살게 됐는데 정작 그 학생들이 취업을 못하는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 난 그들에겐 빚쟁이다. 빚을 갚으려고 한다”고 했다.

14일, 메가스터디 본사 회장실에서 듀퐁 클래식 셔츠를 말쑥하게 차려 입은 손주은 회장을 만났다. 그의 셔츠 소매엔 ‘기적=Σ 열망’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유부혁 기자(이하 유 ): 사교육 거품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 후회한다는 발언을 자주 하신다. 이유는 무엇인가?

손주은 회장(이하 손 ): 5~6년 전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 같다. 세상이 변했다는 걸 체감하고부터다.

유: 체감한 내용은?

손: 한국적 사교육은 다른 나라와 다르다. 압축 성장의 부산물이다. 대학에 잘 간 사람들이 중산층으로 빠르게 편입됐다. 기업들이 매년 10%씩 성장하니 일자리는 많았다. 기업이 문어발식 확장도 할 때여서 계열사가 많아 승진도 빨랐다. 지금 50대 직장인들은 그걸 경험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공을 ‘대학’이라 착각한거다. 그러다 보니 경제성장률은 조금씩 내려왔는데도 대학진학률은 계속 올랐다. 사회 변화에 교육 업계의 대응이 너무 느렸다.

유: 느리게 대응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손: 고도성장의 향수를 간직한 부모들의 미련 때문이다. 성공하려면 대학가야 한다는 방정식은 이제 틀렸다. 이제서야 조금씩 인정하는 것 같다. 80%를 넘던 대학 진학률이 최근 68%까지 내려갔더라. 대학은 갈 사람만 가야 한다. 실제로 대입학원이 잘 안된다고 하더라.

유: 사교육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손: 맞다.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처럼 보편적인 형태로 변하고 있다.

유: 30년간 해 온 일이 왜 부끄럽다고 느껴졌나?

손: 내가 하는 일이 한국 사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열심히 가르쳐 대가를 받는 건 개인 윤리 측면에선 문제가 없지만 사회적인 불평등은 심화시켰다. 그래서 메가스터디를 매각하려 했지만 살 사람이 없더라. 난 세상의 발전에 있어 과거의 유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성공하려면 대학가라? 이제 틀렸다!


손주은 회장은 97년, 과외가 금지됐던 시절 20명 정도를 소수정예로 가르치는 고액과외 ‘몰래바이트’로 월 5000만원 소득을 올렸다. 36살엔 사립고등학교를 만들까 고민도 했지만 대중강의로 업을 바꿨다. 그는 그때를 떠을리며 “공교육에 대한 헌신보다는 사립학교 이사장으로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채우려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괴로웠다”고 했다. 1997년 당시는 학원이 허가제였기 때문에 과외만 하던 손주은을 학원가에선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결국 서울시 교육위원이던 친구에게 부탁해 학원 강사 자리를 부탁해 강남에서 가장 학생수가 적었던 대일학원 강사가 된다. (대일학원은 지금의 메가스터디 본원이 됐다.) 전공자가 아니면 해당 과목을 강의할 수 없다는 당시 학원법 규정으로 손주은은 사회 과목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유: 학원에서 인기를 얻은 비결은?

손: 90년대 말은 통합사회 바람이 불던 때다. 난 고액과외를 하면서 모든 과목을 섭렵했고 적어도 학습방법에 있어서 만큼은 통합교육이 익숙했다. 그래서 전단지에 ‘손주은의 통합사회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란 문구를 적고 10만 장을 뿌렸다. 5개월이 지나 2000명이 모였다. 다음해엔 강남, 서초, 송파, 압구정 학원을 돌면서 강의했는데 전날밤부터 4000명씩 줄을 서고 기다리더라. 대중강의로 한달에 4억씩 벌어들였다. (1997년부터 2010년까지 현장강의로 20만 명, 온라인 수강생까지 합하면 100만 명이 손주은 회장의 강의를 들었다.)

유: 그러다 변화의 바람을 느끼게 된 계기는?

손: 10년 전쯤 일거다. 입시철에 핑클의 옥주현씨가 진행하는 MBC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갔다. 그날은 옥주현씨가 개인 사정이 생겨 다른 아이돌 멤버가 대신 진행을 맡았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한 친구가 “유명하신 분이라면서요? 몰라뵀습니다”라고 하더라. 그러더니 “전 공부를 안해서요. 200점 만점에 87점 받았어요”하면서 웃더라. 순간 감명을 받았다. 공부 안했다는 걸 당당하게,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란 걸 알게됐다. 그 친구는 슈퍼주니어 신동이다. 포브스 발표를 보니 연 매출이 296억원이더라. 서울대 나온다고 연 300억 매출을 올릴 수 있을까? 쉽게 돈을 번 나는 결코 존경받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유: 대중강의를 하는 강사에서 다시 온라인 교육 사업가로 변신한 이유는?

손: 입시를 마친 학부모가 찾아왔다. 난 “성적 올라서 감사합니다”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학무모가 “집값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것이다. 당시 내가 대치동 은 마아파트 근처에서 강의를 했는데 그 아파트로 이사 올 형편이 안됐던 그 학부모가 큰 결심을 하고 손사탐 강의를 듣기 위해 은마아파트를 샀다는 거다. 그런데 6개월이 안돼 3억이 올랐다며 감사 인사를 온거다. 무서웠다. 대치동 사교육을 만든 주범이란 생각에. 공교육에 조금이라고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사교육의 지역적 불평등을 만들었다. 다시 나쁜 사람이 됐다는 게 마음 아팠다.

유: 그 다음은?

손: 새벽쯤 집에 돌아와 TV를 켰다. 케이블이 막 보급될 때였다. 39번, 45번에 홈쇼핑이라는 걸 하더라. 신기했다. 백화점이나 매장이 집으로 온거니까. 그때 머리를 스친 것이 “학원도 집으로 가면 되겠구나”였다. 그러면 제주도에서 부산에서 내 강의를 듣기 위해 몰릴 필요는 없고 교육의 지역불균형도 어느정도 해소될 거란 생각을 했다. 2000년에 메가스터디를 설립하고 온라인 교육 사업을 시작했다.

치열한 경쟁은 인생의 자산, 포기하지 말라


▎손주은 회장의 직업철학인 ‘기적=Σ열망’을 새긴 S.T.듀퐁 클래식 제품
유: 모든 게 순조로왔나?

손: 내가 학원 강사를 그만두고 온라인으로 넘어간다니 학원장들이 다들 가로막았다. 내가 받던 수업료는 학원 수강료의 70% 정도였는데 80%, 100%까지 주겠다는 것이다. 온라인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혹시나 온라인 강의시장이 커질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난 반대로 학원장들에게 지분투자를 권했고 그들 모두 지금 상당한 부자가 됐다.

유: 돌아와서. 윤민창의투자재단을 설립한 이유는 무엇인가?

손: 빚 갚는다는 생각이다. 윤민은 어릴 적 교통사고로 죽은 딸아이 이름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 재단 취지와도 맞기 때문에 사용했다. 처음 딸 아이 이름을 지을 때 정철이 쓴『관동별곡』의 구절을 생각했다. 정철이 선정에 대한 포부를 밝히면서 화룡소의 물을 비로 만들어 뿌리면 가뭄에 시든 풀이 잘 자랄 수 있을 것이라 말하는 부분이 있다. 민간영역에서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공익형 벤처캐피탈, 장학사업, 창업교육 등 구석구석에 도움을 주려고 한다.

유: 빚 갚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창업 지원을 하는 이유는?

손: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많이 생각한다. 나는 편안히 사는데 내게 돈을 내고 공부했던 젊은이들은 허우적대고 있더라. 한 사람이 큰 부를 얻는 건 그만큼 사회적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유: 셔츠에 새긴 ‘기적=Σ 열망’은 무슨 뜻인가?

손: 한국의 사교육이 약화되고 있지만 젊은 친구들의 치열한 입시까지 비판하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다. 치열한 경쟁은 인생의 자산이니까. 그래서 그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메가스터디가 운영하는 학원 출입카드에 새겨 넣은 문구이기도 하다. 끝까지 포기 하지 않고 소망을 붙들면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유: 경험이 있었나?

손: 99학번 나이의 이형철이란 학생이 있었다. 새벽 1시 반에 강의를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상담을 하자고 하더라. 내용은 아무리 공부해도 380점 이상을 받을 수 없어 고민이라고 했다. 새벽 4시가 넘어서까지 상담을 하고 아침 6시부터 강의를 하고 집에 가려는데 다시 그 친구가 찾아왔다. 학습 방법을 깨우쳤다고 했다. 목표를 398.5점이라고 했다. 그 친구는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398.5를 쓰고 공부를 했다. 수능 한달 전 꿈을 꿨다고 하더라. 손에 398.5점이란 숫자가 들어왔다고. 그 친구 정말 398.5점을 받았다. 이 이야기를 00학번 나이의 친구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한 친구가 다음날 짧게 자른 머리에 400을 새겨서 왔더라. 그 친구 역시 서울대 독문과에 입학했다. KBS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간다>를 만들고 있는 이창수PD가 그 친구다.(웃음)

-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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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호 (2016.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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