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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규 예일전자 대표 

골전도 스피커 기술로 글로벌 진출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이노비즈협회가 추천하는 1월의 한국 강소기업은 예일전자다. 휴대폰과 전기차에 들어가는 2차전지 부품 납품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업체다. 국내 대기업 하청업체에 머무를 수 있었지만, 강윤규 대표는 골전도 스피커와 진동소자 개발로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새로운 흐름을 읽고 대처한 덕분이다.

▎2016년 12월 초 인천 부평구 청천동 예일전자 본사에서 만난 강윤규 대표가 그곳에서 개발한 골전도 스피커와 진동소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970년대, 한국 농촌에서는 소 도둑이 기승을 부렸다. 충남 아산의 강씨 집안 농가도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소를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했다. 어느 날, 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단박에 이 고민을 해결했다. 자전거에 있는 스피커를 떼어다가 거실 마루 위에다 설치, 외양간 문을 열면 거실 마루에 있던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도록 한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어느 날 집에 설치해놓은 스피커가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크게 울렸다. 집에 있던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고 뛰쳐나가니 소 고삐를 풀고 나가려는 도둑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가버렸다. 사연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다시 온다면, 전기를 끊어버리고 소를 훔쳐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전기 없이도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도록 다시 만들었다.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소 도둑은 전기를 끊고 소를 훔쳐가려고 했지만, 집안에서 소리가 나자 부리나케 도망쳤다. 소 도둑은 그 뒤로 다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40여 년 전 소 도둑 퇴치용 방범장치를 직접 만들던 고등학생은 진동소자와 골전도 스피커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강윤규(57) 예일전자 대표다. 인천 부평구 청천동에 있는 예일전자 본사에서 만난 강 대표는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는 잘못했는데, 설계도를 그리는 거나 제품 만드는 것은 잘했다. 내가 그린 설계도를 교사에게 보여주면 다들 놀랄 정도로 손 기술이 좋았다”고 말했다.

1998년 설립된 예일전자는 당시 유행하던 무선호출기(일명 삐삐) 부품을 시작으로 이차전지 부품 소재 기업으로 성장했다. 스마트폰 배터리용 음극핀, 스피커용 Yoke,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부품인 터미널 등의 부품을 전문적으로 만들고 있다. 국내외에 등록된 특허만 60개에 이를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출원된 국내외 특허와 실용신안, 디자인 등을 합하면 117개에 이른다. 강 대표는 “관리직과 현장직을 모두 합하면 48명인데, 이중 부설연구소에서 8명의 연구원이 일하고 있다”면서 “부설연구소는 1팀(진동소자 분야)과 2팀(이차전지 분야)으로 나눠서 각자의 영역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일전자는 매년 매출액의 5~8%는 R&D에 투자하면서 기술 개발에 집중한다. 강 대표는 “엔지니어를 뽑을 때 학벌보다는 재능과 아이디어 그리고 열정을 본다. 머리가 좋다고 연구 결과가 좋은 게 아니라, 얼마만큼 일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연구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예일전자가 제조하는 2차전지 부품인 음극핀은 10여 년 동안 삼성SDI에 독점 공급을 할 정도로 경쟁사를 압도했다. 삼성SID에 납품을 하게 된 것도 기술력 하나만 믿고 맨땅에 헤딩하면서 이뤄냈다. 2000년대 초반 경기도 부평 서창동에서 직원 3명과 함께 함께 음극핀을 개발했다. 당시 휴대폰 전지에 들어가는 음극핀은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해서 사용했다. 국내 업체가 만든 부품은 품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제품을 완성한 후 삼성전자의 구매부 담당자를 만났지만 “사람도 얼마 없는 곳에서 어떻게 납품이 가능하겠느냐?”며 거절한 것. 그래도 ‘제품에 자신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뚫고 싶었던’ 강 대표는 삼성그룹의 2차전지 제조기업인 삼성SDI를 떠올렸다. “연구원들은 우리 제품을 인정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삼성SDI에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달라붙었다. 114에 물어서 삼성SDI 안내 데스크에 전화를 걸었고, 담당자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담당자를 알려줄 때까지 전화를 끊지 않겠다”고 무작정 버텼다.

운이 좋게도 담당자를 연결해줬다. “우리가 음극핀을 개발했고, 그쪽에 납품을 하고 싶다”고 전하자 “내일까지 천안 사무실로 내려와라”라는 희망적인 응답이 돌아왔다. 다음날, 제품을 본 담당자로부터 “이 정도 제품이면 납품이 가능하겠다”는 답변이 왔다. 매출도 거의 없고, 직원도 몇 명 안되는 구멍가게 수준의 업체에서 만든 제품이 삼성전자에 납품되기 시작한 것이다. 음극핀을 처음 납품할 때는 연매출 2억원 정도였지만 10여 년이 지난 후에는 최고 50억원까지 연매출을 올렸다.

예일전자는 유일하게 납품 단가를 올린 협력업체라는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 보통의 경우 대기업 협력업체는 매년 협상 과정에서 납품단가를 낮추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기업의 가격 인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09년 쯤 납품 단가를 30% 인상해달라고 요구했는데, 삼성SDI가 거절했다. 그 뒤로 삼성SDI가 우리 제품을 대체할 곳을 여러 곳 알아봤는데, 품질이 떨어져서 나중에는 우리 것을 다시 납품 받았다”고 강 대표는 말했다. 기술력에 집중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일전자는 전기차 배터리의 부품 중 하나인 터미널까지 제작하고 있다. 이 제품은 삼성SDI 자동차전지 사업부에 납품되어 BMW, GM 등의 글로벌 전기차 제조업체에 수출되고 있다. 강 대표가 안정된 대기업 협력업체에만 머물렀다면 글로벌 진출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구글·아마존 같은 글로벌 기업이 “함께 개발하자”며 예일전자에 협력을 요청하게 된 것은 남보다 앞서 개발을 시작한 진동모터 덕분이다. 2008년 예일전자는 삼성전기가 유일하게 양산하던 터치폰의 핵심부품인 리니어 진동모터 개발에 성공했다.

납품단가를 인상시킨 저력의 협력업체


▎예일전자의 골전도 스피커를 채택해 만든 해외 기업의 스마트 글라스
진동모터는 휴대폰을 터치하면 진동이 울리게 하는 부품이다. 강 대표는 “기존 타원형 진동모터는 내구성과 응답속도가 일자형 진동모터보다 떨어진다”면서 “이를 대체할 기술을 개발해보면 어떨까 싶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진동소자 개발에 들어갈 당시, 예일전자에는 이와 관련된 기술력이 없었다. 강 대표는 스피커 업체를 찾아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쪽에서 스피커 전원을 이용한 진동모터를 만들면 좋을 것이라고 힌트를 줬다”고 말했다.

당시 삼성전기도 비슷한 기술을 개발 중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2008년 진동 소자 개발을 완성했지만, 아쉽게도 삼성전기보다 1년이 뒤진 상황이었다. 당시 햅틱폰(화면을 터치하면 진동이 울리는 폰)이 인기를 끌었지만, 삼성전자 납품은 쉽지 않았다. 미래를 대비해 양산설비도 갖췄지만, 삼성전자에 납품이 어려워져 진동모터 특허를 다른 업체에 팔았다.

리니어 진동모터 개발에 성공한 후 강 대표는 골전도 스피커 개발에 뛰어들었다. 골전도 스피커는 소리의 진동을 두개골에 전달해 소리를 듣게 하는 것이다. 진동모터와 골전도 스피커가 진동을 이용하는 것을 비슷하지만, 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진동의 폭을 다르게 해야 한다. 강 대표는 “소리를 듣게 하는 골전도 스피커는 음이 일정해야 하는데, 그것을 만드는 게 상당히 어렵다”고 설명했다.

골전도 스피커의 기술을 완성하는 데만 3년 이상이 소요됐다. 골전도 스피커는 미국과 일본 등지에도 나와 있는 제품이지만, 상용화가 어려울 정도로 크거나 성능이 떨어졌다. 예일전자는 해외 제품보다 작게 만들었지만, 성능은 훨씬 좋았다. 한국의 중소기업이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적용할 수 있는 크기의 골전도 스피커를 완성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해외 글로벌 업체들이 협력의 손을 내밀기도 했다. 강 대표는 “2015년 구글 본사가 8000만원의 연구개발비를 주고 함께 웨어러블 디바이스용 골전도 스피커를 만들자고 했다. 아마존에서도 제안을 받았는데, 두 곳 모두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포기하면서 흐지부지 됐다”고 밝혔다.

구글과 아마존과 협업은 취소됐지만 예일전자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곳은 계속 나타났다. 스마트 글라스를 양산하는 프랑스의 Laster Technologies에 지난해 1만개의 제품을 수출했다. 스마트 글라스 양산을 준비 중인 프랑스의 Buhel도 예일전자의 골전도 스피커 적용을 검토 중이다. 강 대표는 “진동소자는 이탈리아·미국 등 5개국에 납품하고 있다”면서 “주로 안경이나 선글라스 같은 웨어러블 기기를 만드는 곳들이다”고 설명했다.

창투사로부터 50억원 투자 받아


국내 스타트업과 협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 C-Lab의 1호 스핀오프 스타트업인 이놈들연구소는 스마트워치 밴드에 골전도 스피커를 적용할 계획이다. 블루투스 기반의 선글라스 ‘정글 팬더’ 양산을 준비 중인 정글도 예일전자의 제품을 적용했다. 강 대표는 “2016년 하반기부터 골전도 스피커 매출이 시작됐고,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매출이 상승할 것이다. 2017년 예일전자의 매출 중 해외매출 비중이 30%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스타트업 닷이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 세계 최초의 점자 스마트 시계 ‘닷 워치’에도 예일전자의 기술이 채택됐다. 닷 워치의 핵심기술로 꼽히는 액추에이터(Actuator)의 조립을 예일전자가 맡은 것이다. 강 대표는 “내년부터 닷 워치가 세계 15개국에 팔리게 된다. 스타트업과 협업해서 글로벌 진출이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2012년 3월 대경창업투자와 아주 IB로부터 30억원의 투자 유치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50억원 정도의 투자를 받았다. 차세대 웨어러블 디바이스용 골전도 스피커 개발, 진동이어폰 개발 등 10여 개의 정부과제를 맡아 30억원의 투자금을 받기도 했다. 강 대표는 “대부분 창투사에서 먼저 전화를 했다. 투자를 받으면 설비에 투자를 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흔히 말하는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1983년 천안공업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군대에 다녀온 후 입사한 곳은 기계 10여 대를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제조 중소기업이었다. “전자제품 부품을 만드는 곳이었는데, 잘 모르는 분야여서 3개월 동안 밤낮 가리지 않고 기계에 대해서 마스터했다. 이후에 2개월마다 월급이 늘어날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고 강 대표는 회고했다. 10대에 불과했던 기계는 나중에 50여 대까지 늘어났다. 하청 물량이 늘어나고 회사가 커 나가는 것을 보면서 “사업, 별 것 아니네”라는 생각을 했다. 4년 만에 독립을 결심했다. 하지만 단견이었다. “5년 동안 내 젊음을 바쳤지만, 몇 억을 까먹고 실패했다”고 했다.

충남 논산에 있는 부품 제조 중소기업에 입사해 3년 동안 칼을 갈았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자 1998년 현재의 예일전자를 창업했다. “사업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돈 버는 것보다 내가 뭔가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에 맞게 회사 체질을 만들었다”고 강 대표는 말했다. 강 대표에게 2017년 목표를 물었다. “전세계가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대한 관심이 높다. 우리도 스마트 글라스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1701호 (2016.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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