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멤버십

CEO&People

Home>포브스>CEO&People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모자왕’의 글로벌경영 성공 방정식 

렉싱턴(미국)=심재우 중앙일보 뉴욕특파원 jwshim@joongang.co.kr
연간 1억 개 이상의 모자를 팔아 2억7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모자왕’으로 불리는 백성학(77) 영안모자 회장. 그는 모자와 별 상관없는 지게차, 버스, 자동차 판매사업 등에도 잇따라 진출하며 성공방정식을 보여주고 있다. 영안모자가 인수한 클라크 지게차 100주년 행사에 참석한 백 회장을 만났다.

▎영안모자가 인수한 클라크 지게차 100주년 행사에 참석한 백성학 회장.
백성학 회장은 2003년 브랜드만 남기고 죽어가던 켄터키주 렉싱턴의 토착기업 클라크를 750만 달러에 사들여 정상궤도에 올려놨다. 클라크는 1917년 창업자 유진 클라크가 지게차라는 제품을 처음 개발했다. 지난 5월17일(현지시간) 지게차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장에 전세계 딜러 400여 명이 모였다. 백 회장은 이 자리에서 “우리는 가족”이라며 “또 다른 100년을 준비하자”고 말해 참석자들을 열광시켰다.

까까머리 19살이던 1959년 청계천에서 영안모자점을 창업한 백 회장. 그는 이처럼 모자와 상관없는 지게차, 버스, 자동차 판매사업에도 진출해 성공방정식을 보여주고 있다. 백 회장은 “우리는 해외에 공장을 세우고, 생산과 판매를 함께 진행하되 철저하게 현지화하는데 강점을 지니고 있다”면서 “영안모자의 사업 노하우가 모든 사업에 접목돼 성공사례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52년간의 세계화 노하우가 넘쳐 흘렀다.

클라크 지게차 100주년 축하하며 격려


▎100주년을 맞은 켄터키주 렉싱턴의 토착기업 클라크의 지게차.
모자와 지게차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모자를 만드는 데 쉽지 않은 제조 노하우가 숨어있다. 그게 경쟁력이고, 판매의 동력이다. 그런 점에서 모자나 지게차는 크게 다르지 않다. 2003년 클라크를 인수했을 때 만신창이가 돼있었다. 전 주인이 건물은 다 팔아먹고 창고 2개 빌려서 부품재고를 나뒀더라. 창원 클라크를 갖고 있던 산업은행이 주선해서 750만 달러를 주고 사긴 했지만 초창기 고생이 심했다. 이란에 몰래 기계를 팔아먹은 부사장 때문에 소송비가 370만 달러나 들었다. 다음해엔 지게차에 다친 사람이 소송을 걸어 200만 달러를 주고 합의했다. 2차대전 당시 지게차 시장점유율이 80%까지 올라갔던 지게차 원조회사가 주인 잘못 만나 딜러들도 다 떠나고 아주 엉망이었다. 영안은 회사를 살려보려고 3년 이상 인내했다. (지금까지 영안모자가 클라크에 투자한 돈이 1000억원 정도이다.) 한국클라크를 인수해 미국에서 재생산을 시작했고, 2004년부터는 글로벌 운영체제를 갖췄다. 그러고나니까 돌아섰던 딜러들이 되돌아왔다. 지금 우리가 1만5000대 정도 팔면서 7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20년 1만8000대, 2025년 3만 대 판매 쉽게 간다. 틈새시장 진출용으로 소형화물운송차인 딜리버리 트럭(0.8∼1.2t)을 개발중이다. 2025년까지 이걸 4만 대 엮어주면 7만 대 되겠더라. 그러면 매출 15억달러는 무난하게 달성된다.

2015년 멕시코 공장 문을 닫고 미국으로 이전해 합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들으면 좋아할 일이다.

2011년 3월에 클라크 멕시코 공장을 설립해 운영했는데 영 전망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고심 끝에 2015년 말에 철수를 완료했다. 16년 5월까지 멕시코 공장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해 통합했다. 현재 미국 렉싱턴 공장 생산이 4000대 정도로 확대되면서 다시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그랬더니 미국 정치인들이 클라크 회생 스토리를 롤모델로 삼더라. 나도 미국 제조업이 다시 부흥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제조업 기반을 유지해야 한다고 미국 정치인들에게 얘기했다. 그래도 미국은 정보기술(IT) 기업 뿐만 아니라 클라크처럼 100년 된 보수적인 기업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너무 한쪽으로 몰고가면 안 된다. 밥상을 차리려면 밥을 짓는 사람도 있고, 설거지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모든 사람이 밥만 먹으려고 한다. 골고루 섞여야 한다. 30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중견기업의 제조기반이 버티고 서있을 만한 토대가 제공돼야 한다. 어묵장사하던 사람이 갑자기 IT하면 안 되는 것이다. 어묵으로 세계시장을 뚫어야한다.

클라크 본사에 한국 사람이 안 보인다.

내 원칙은 현지인에게 모두 맡기는 것다. 그 지역에서 성공하려면 그 지역문화를 아는 사람을 교육시켜서 맡겨야 한다. 돈 관리하는 사람도 현지인이다. 한국인이 주인이랍시고 현지에서 으스대기 시작하면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대신 세 가지를 강조한다. 허위보고하지 말라, 비자금 만들지 말라, 정리정돈 잘하자 등이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다가 실수했다고 쫓겨나는 사람 없다. 오래 같이 가는 게 원칙이다.

멕시코 공장시설 미국으로 모두 이전

클라크 미국공장의 생산성은 어떤가. 인건비가 비싸 경쟁력이 떨어질 것 같다.

전혀 그렇지 않다. 전세계 영안모자 계열 근로자의 임금을 비교해봤더니 한국 인건비가 가장 비쌌다. 창원 클라크 공장을 예로 들어보자. 생산직 근로자의 연봉을 100으로 봤을때 미국 생산직은 70%에 불과했다. 중국은 18%였다. 급여 이외에 복리후생으로 챙겨줄 게 많아서다. 이게 다 3∼4%의 귀족노조 때문이다. 조만간 중국이 조선과 중공업, 자동차까지 싹 쓸어담으면 어떻게 할건가.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쉬는 날도 너무 많다. 지난해 근무일수를 분석해봤더니 창원공장은 243일이었고, 미국은 252일이었다. 한국에서 납기를 맞추려면 시간외 근무수당을 주고 잔업을 해야 해서 생산단가가 높아진다.

백 회장은 007 가방 크기의 오래된 가죽 가방을 늘 들고 다닌다. 그 안에서 보여줄 것이 있다면서 기자에게 오려붙인 흑백 세계지도를 보여줬다. 미국 댈러스, 독일 뒤셀도르프, 싱가포르, 호주 시드니 등 전세계 30개 해외법인의 위치가 색깔을 달리한 형광색으로 구분됐고, 깨알 같은 글씨로 업종과 규모를 정확하게 표시해 놓았다.

“남한땅은 300억평인데 이중 63%가 임야라서 37%만 쓸 수 있어. 너무 좁아. 세계지도를 보면 가야할 곳이 넘쳐나. 요즘 누가 전쟁해서 땅을 넓히나. 기업인들이 해외로 진출해서 대한민국 영토를 넓혀야 해.” 클라크 지게차가 있는 켄터키주 렉싱턴도 그가 넓힌 영토다. 그의 글로벌 경영은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도 계열사 상장은 계획에 없나.

내 원칙이다. 영안모자 계열은 가족기업이다. 경인방송을 제외하고 가족이 100% 지분을 갖고있다. 세 아들이 모든 계열사의 지분을 똑같이 나눠줘서 싸울 일이 없다. 큰 아들 백정수 부회장이 계열전체를, 작은 아들 백병수 부회장이 버스를, 막내아들 백병수 부회장이 지게차 사업 등을 맡는다. 영안모자 창립 60주년이 되는 2019년에 명예회장으로 물러날 계획이다. 앞으로는 세계에 다니면서 배운 52년 노하우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외 중소기업에 봉사차원에서 컨설팅해주는 일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조금만 신경 쓰면 바닥을 치고 살아날 수 있는 기업이 많다

- 렉싱턴(미국)=심재우 중앙일보 뉴욕특파원 jwshim@joongang.co.kr

/images/sph164x220.jpg
201706호 (2017.05.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