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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 벤처기업협회장에 오른 안건준 크루셜텍 대표 

애플도 인정한 모바일 지문인식 기술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사진 최정동 기자
문재인 정부의 공약 중 하나가 중소기업청의 ‘중소벤처기업부(가칭)’ 승격이다. 그동안 말만 나왔던 이번 공약은 지켜질 것이라 예상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 2월 제9대 벤처기업협회장에 취임한 안건준 크루셜텍 대표에게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안 대표를 만나 새 정부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제9대 벤처기업협회 회장인 안건준 크루셜텍 대표가 지난 5월17일 경기도 판교에 있는 크루셜텍 본사에서 상용화 준비 중인 디스플레이 일체형 지문인식 솔루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2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에 한국의 중견기업 대표가 방문했다. 디스플레이를 담당하는 부사장급 임원이 요청해서 만들어진 자리다. 그 임원이 한국에서 온 기업인을 맞이했다. 한국의 기업인은 그 자리에서 “한국에 있는 중견기업을 어떻게 알고 이곳에 불렀나”라고 물어봤다. 애플의 부사장은 “당신들이 모바일 지문인식 기술로 최고가 아닌가. 그래서 당신을 만나고 싶었다”라고 답변했다. 애플 부사장의 말대로 애플에 초대된 한국의 중견기업은 2012년 세계 최초로 모바일 지문인식 모듈(BTP, Biometric TrackPad) 개발에 성공했다. 애플은 한국의 중견기업과 모바일에 사용되는 디스플레이 일체형 지문인식 솔루션 개발에 대한 협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애플은 2012년 7월 모바일 기기 지문인식 기술을 가지고 있는 오센텍이라는 기업을 인수해 자체적으로 지문인식 모듈을 개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기업인을 찾아서 협력을 모색했다는 것은 이 기업의 기술력을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지 알려주는 방증이다.

#. 2006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매년 열리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Mobile World Congress)에 위 중견기업이 참여했다. 이 기업이 들고 나온 제품은 초소형 모바일 광마우스(OTP, Optical TracPad)였다. 모바일에서 아주 조그마한 마우스를 사용하면 키패드에 있는 위아래 화살표 없이도 메뉴를 쉽게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 중견기업이 OTP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지만, 어느 기업도 이곳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의 중견기업 대표는 모바일 관련 세계적인 행사인 MWC를 공략하기로 했다. 당시 글로벌 모바일 시장의 강자는 블랙베리였다. 키패드가 있는 스마트폰으로 세계 시장을 휩쓸었다. 한국 기업 대표는 MWC 현장에서 RIM 부스를 찾아갔다. 부스에서 “이곳의 최고 임원을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고, 당시 책임자였던 블랙베리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소개받았다. 한국인 기업가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OTP를 꺼내 자랑했고, 한국을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제안했다. 블랙베리 CTO가 직접 한국에 찾아왔다. “당신의 기술력을 볼 수 있는 공장으로 가자”라고 블랙베리 측에서 요구했지만, 실상 조그마한 중소기업에는 변변한 라인 하나 없었다. 지방에 있는 넓은 공장 한쪽을 연구실처럼 만들고 각종 기기들을 세팅해놓았다. 블랙베리 관계자에게 그 공간만 보여줬다. 마치 목표를 향해서 무조건 뛰는 돈키호테처럼 그 기업 대표는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 하나로 세계적인 블랙베리의 임원을 상대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블랙베리는 어떤 레퍼런스도 없던 한국의 중견기업 제품을 블랙베리에 적용했다.

블랙베리와 단판 지어 계약 따낸 돈키호테


애플과 블랙베리가 인정한 한국의 중견기업은 세계 최초로 모바일 지문인식 모듈과 초소형 모바일 광마우스 개발에 성공한 크루셜텍이다. 블랙베리 부스에 혼자 가서 계약을 따낸 신화를 만든 이는 안건준(52) 크루셜텍 대표다. 듣기만 해도 흥미진진한 이 사례들은 크루셜텍이 한국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강소기업임을 알 수 있다.

안 대표는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R&D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기술력을 믿었기 때문에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진출을 꿈꿀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부산대학교 기계공학과를 나와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정밀기계학과 석사를 딴 부산 토박이다. 공부 잘했던 부산의 엔지니어는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삼성전자 기술총괄본부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능력을 계속 키웠다. 그는 “삼성전자에 입사할 때의 꿈은 제2인자, 즉 전문경영인이 되는 것이었다”면서 “하지만 삼성전자에서 연구뿐 아니라 기획·생산·마케팅까지 여러 분야를 경험하면서 제1인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매년 매출액의 10%를 R&D에 투자


삼성전자에서 그는 세계 두 번째로 개발에 성공한 광통신 핵심 부품인 초미세 세라믹 페룰 상용화에 핵심 역할을 했다. 광통신 신사업을 담당하면서 연구와 함께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고, 이 경험이 창업으로 이어졌다. 안 대표는 “나는 삼성전자가 싫어서 나온 게 아니라, 삼성전자와 같은 좋은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창업했다”고 말했다. 지인이 창업한 회사에서 CTO로 근무하면서 회사 경영에 대한 경험도 축적했다.

2001년 사회 경력 10년 만에 크루셜텍을 창업했다. 자신의 전문 분야인 광통신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이었다. 당시 그의 몸값은 엄청났다. IT 붐이 일면서 광통신 사업의 미래가 아주 밝았고, 그 분야의 기업들은 전문가들을 서로 스카우트를 하려고 경쟁하던 시기였다. 그가 창업한 크루셜텍은 글로벌 업계에서 인정을 받았다. 창업 초기부터 1400억원이나 되는 계약을 수주했다. ‘승승장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IT 버블이 꺼지면서 어느 누구도 광통신 사업에 투자하지 않았다. 1400억원의 수주액은 1년 만에 0원으로 추락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내 전문 분야를 계속 고수할 것인지, 시대의 흐름을 예측하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광통신 전문가로 인정받았지만 첫 위기는 빨리 찾아왔다. 그는 트렌드를 미리 파악해 세상에 없는 기술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 PC를 중심으로 인터넷 기술이 보편화되고 조만간 휴대폰을 가지고 인터넷을 하는 시대가 올 것을 예견했다. 그는 “광통신을 포기하고 편리한 모바일용 입력장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크루셜텍의 신화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블랙베리를 시작으로 HTC 등의 세계적인 모바일 기업이 크루셜텍의 초소형 모바일 광마우스를 채택했다. 크루셜텍의 매출은 날개를 달았지만, 터치폰의 등장으로 모바일 광마우스 시대도 일찍 저물었다. 안 대표는 “다행히도 OTP로 잘 나갈 때부터 다음 먹을거리인 모바일 지문인식 모듈 개발에 들어갔다”면서 “블랙베리의 위기는 곧 우리의 위기였지만, 지문인식 모듈 개발을 마무리해놓았기 때문에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매년 매출액의 10%를 R&D에 투자하면서 기술 개발을 쉬지 않은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안 대표는 “BTP는 센서IC, 패키징 등의 하드웨어뿐 아니라 알고리즘 및 펌웨어 등 소프트웨어 기술도 매우 중요하다”면서 “자회사를 만들어 균형 있는 개발을 시도했고, 현재 우리처럼 지문인식 관련 모든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없다”고 단언했다. “애플이 한국의 기업을 본사로 불러서 미팅을 한 것만 봐도 우리의 기술력을 알 수 있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애플을 포함한 글로벌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BTP의 다양한 기술 개발에 크루셜텍의 손을 잡고 있다.

대기업 위주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아야


창업 10년 만에 상장에 성공하면서 안 대표의 성공 신화는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크루셜텍은 한해 3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탄탄한 중견기업이 됐다. BTP 시장에서는 기술력이 있는 선두주자로 인정받고 있다. 2020년까지 4조원이 넘는 BTP 시장에서 30% 이상을 점유하는 게 현재의 목표다. 안 대표는 “창업을 했을 때부터 가장 큰 목표는 굿 컴퍼니를 만드는 것”이었다며 “모든 임직원이 기업문화에 만족하고, 사회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끼치는 기업으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요즘 집중하고 있는 것은 벤처기업협회장 역할이다. 지난 2월22일 제9대 벤처기업협회장에 취임하면서 그에게 거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중소기업청의 중소벤처기업부(가칭) 승격 공약으로 협회의 역할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는 “취임 2주일이 됐는데, 유권자로서 정말 행복했다”면서 “잘하는 대통령이라고 기대해도 될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벤처기업협회장으로서 새 정부에 바라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제자리에’ 되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는 다양한 분야의 중소·중견기업이 당당하게 가치를 인정받고, 엑시트(자본회수)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안 대표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 시스템은 더 이상 맞지 않고 한국 경제에 실익도 없다”면서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중소벤처 활성화 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제대로 세우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책임”이라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청의 승격에 대해서는 “공정한 시장 질서를 유지하고 대기업과의 균형 그리고 더 많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중소벤처기업 전담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산업통상부와 기획재정부 등 각 부처에 나뉘어 있는 중소벤처 업무를 일관된 방향으로 이끌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사진 최정동 기자

201706호 (201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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