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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 바라본 최고경영자의 휴브리스 

 

양미선 기자 yang.misun@joongang.co.kr
자본주의 사회의 정점에 오른 최고경영자는 휴브리스에 빠지기 쉽다. 자신이 신이 아니라 이카루스라는 것을 종종 간과한다.

태양 가까이 날자 밀랍이 녹아 날개가 떨어져나갔다. 이카루스는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인간의 표본이다. ‘휴브리스(hubris)’라는 라틴어는 이카루스처럼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의 지위를 넘보는 영웅을 조명하는 데 사용됐다. 현재 휴브리스는 오만·자기과신 등으로 통용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움직이는 최고경영자는 종종 신과 비견되곤 한다. 이 선입관은 가끔 최고경영자도 집어삼켜 파국을 낳는다. 최고경영자의 휴브리스가 기업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례는 예전부터 수없이 많았다.

박진규 중앙대 경영학 교수는 핀란드 기업 노키아(Nokia)의 몰락도 휴브리스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스마트폰이 혜성처럼 등장하기 전 휴대전화 시장은 노키아가 50% 이상 점유하고 있었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한 후 시장의 판도가 일반 휴대전화에서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을 때 노키아는 저가 휴대전화 시장에서의 성공에 도취돼 시장의 변화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스마트폰 시장을 더 이상 무시하기 어려워졌을 때는 이미 늦었다. 경영진이 노키아가 늘 1등일 것이라는 휴브리스에 빠져 있는 동안 기술 격차가 너무 벌어져 애플과 삼성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외 학계는 노키아가 몰락하기 훨씬 이전부터 최고경영자의 휴브리스(CEO hubris)를 연구해왔다. 현재 휴브리스는 경영학뿐 아니라 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지만, 학계는 인수합병시 최고경영자가 휴브리스에 빠져 있었는지에 먼저 주목했다.

1986년 리차드 롤(Richard Roll) UCLA 교수는 경영학계에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기업 간 인수합병이 실패한 이유가 세금, 시너지 효과, 비효율적인 경영이 아닌 최고경영자의 휴브리스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당시 미국에 팽배했던, 시장이 항상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인식을 정면으로 반격한 것이다. 인수합병이 항상 성공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기업이 다른 기업의 인수 계획 발표나 인수 성공 시 주가가 오르고 인수를 포기하거나 실패했을 때 주가가 내려가야 하는데, 롤 교수가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한 결과 정반대의 패턴을 보였다.

10여 년 후 뉴욕 주 코넬대의 매튜 헤이워드(Mathew Hayward)와 도널드 햄브릭(Donald Hambrick) 경영학 교수는 최고경영자가 오만에 빠졌는지 알 수 있는 기준을 마련했다. 두 교수는 1989년부터 1992년까지 1억 달러 이상 돈이 오고 간 인수합병 106건을 분석했다. 샘플링은 ‘기업 M&A 관련 증권 데이터베이스(Securities Data Corporation’s Mergers and Acquisitions)’를 활용했다. 분석 결과 기업의 최근 성과가 좋을수록, 최고경영자에게 언론의 찬사가 쏟아질수록 그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많은 돈을 주고 다른 기업을 인수했다. 인수 후가 더 문제다.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데 돈을 많이 쓸수록, 즉 최고경영자의 휴브리스가 심각할수록 기업의 향후 성과가 나빠졌다.

최고경영자가 자신의 연봉을 높게 책정할 때도 휴브리스가 의심된다고 헤이워드 교수와 햄브릭 교수는 말한다. 자신보다 직급이 한 단계 낮은 임원들보다 월등히 높은 연봉은 자만심의 외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사회 내에 사내이사 비율이 높고 최고경영자가 의장을 겸직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사회가 독립성을 잃어 최고경영자 감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이 경우 최고경영자가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시켜도 저지할 수 없다.

정신분석학 측면에서 보면 휴브리스는 심리적 증후군(syndrome)이 될 수 있다. 영국오만학회를 창립한 데이비드 오웬경(Sir David Owen)은 휴브리스를 권력을 가졌을 때만 증상이 나타나는 일시적인 성격 장애로 규정했다. 정신 질환은 아니다 하더라도 최소한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빠져 있는 것은 맞다. 마이클 마코비(Michael Maccoby) 박사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기고 글에서 자신이 최고라고 믿는 리더의 단점을 여럿 지적했다. 우선 매트리스 밑 콩 한 알에도 잠을 설치는 동화 속 공주처럼 비판에 민감하다. 자신의 말에 누군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화부터 낸다. 그래서 예스맨(yes-man)이 아닌 다른 사람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또한 공감 능력이 떨어져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 멘토링을 싫어 한다. 리더로 성장하는 데 교육이나 멘토 같은 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쓸데없는 경쟁심도 불태운다. 항상 생존을 위협당한다고 생각해 공포·불신·공격성을 내보인다. 예민하고 까다롭다고 알려진 스티브 잡스가 단적인 예다.

한국에서도 몇 년 전부터 최고경영자의 휴브리스가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해외 학계에 비해 연구가 상당히 미흡하다. 한국에서 발표된 논문 대부분이 경영학에 치중돼 있고, 일부는 해외 연구를 그대로 답습해 아쉬움을 남겼다.

다소 미진한 연구 실적 가운데서도 재벌의 최고경영자 자기과신 조절 효과에 관한 연구가 유독 눈에 띈다. 한국 경제를 논할 때 재벌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데, 서강대 경영학과 박종훈 교수와 김창수 교수는 재벌 기업 계열사의 최고경영자에겐 휴브리스가 나타날 가능성이 적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해체된 삼성의 미래전략실이 그랬던 것처럼 재벌 기업은 그룹 차원의 인사권을 행사해 각 계열사 이사회 임원과 최고경영자를 임명한다. 계열사 이사회는 자연스럽게 재벌가(家)의 이익을 대변하게 돼 최고경영자 감시 기능이 강화된다. 또한 재벌 기업 계열사의 최고경영자는 순환 보직이기 때문에 향후 경력을 위해 이사회가 제시한 의견을 잘 수용할 수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미래전략실 해체 선언 이후 삼성은 최고경영자 임명권을 각 계열사 이사회로 이관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임명권 이관 후 삼성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에게 휴브리스가 나타나진 않을지 우려된다.

최고경영자에게 적당한 자신감은 필수다. 그러나 자신감이 자만심을 넘어 휴브리스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여러 개의 방지 턱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해외 연구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기업 차원에서 최고경영자의 이사회 의장 겸직을 금지하고 사외이사 비율을 늘려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최고경영자 스스로도 휴브리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코비는 최고경영자가 빌 게이츠·잭 웰치처럼 생산적인 나르시시스트(productive narcissist)가 되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믿음직한 보좌관을 곁에 둔다. 조직에 자신의 가치관을 주입한다. 마음 속을 들여다본다. 빌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의 보좌가 있었기에 회사에서 한 걸음 떨어져 미래를 생각할 수 있었다. 잭 웰치는 기업 문화 전반에 자신의 색깔을 입혀 모든 직원이 최고경영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들었다. 휴브리스로 인해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최고경영자는 심리검사를 받는 것도 좋다.

- 양미선 기자 yang.misun@joongang.co.kr

201710호 (2017.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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