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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 창간 100주년 기념] 율곡과 슘페터의 가상 대담 100년 기업을 논하다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한국 산업화는 이제 50년을 넘어섰다. 경공업에서 중공업, 첨단 정보통신(ICT) 분야까지 성공적으로 영역을 넓혔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고 있는 지금, 산업 전반에선 아직도 방향을 고민하는 모습이 보인다. 고민을 나눌 멘토가 필요하다. 율곡 이이 선생과 조지프 슘페터 교수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문제점을 보고 줄기차게 혁신을 주장했다. 포브스코리아는 두 분 현인의 가상 대담을 기획했다. 이를 통해 한국 기업이 나아갈 길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추격자였다. 글로벌 1위 기업을 따라잡거나 앞선 기업들도 나왔다. 이젠 다른 이의 발자국이 아니라 눈 내린 들판에서 스스로 방향을 찾을 차례다. 하지만 아직 마켓리더의 역량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경험이 부족해서다. 한국 산업화는 이제 50년을 넘어섰다. 1962년 정부의 1차 경제개발계획을 시작으로 부지런히 달려왔다. 경공업에서 중공업, 첨단 정보통신(ICT) 분야까지 성공적으로 영역을 넓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계부채와 청년 실업률은 사상 최대다. 최대 무역국인 미국과 중국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여기에 ICT 변화 속도는 더더욱 빨라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고 있는데 산업 전반에선 아직도 방향을 고민하는 모습이 보인다.

고민을 나눌 멘토가 필요하다. 포브스코리아가 지금 대한민국에 절실한 마음으로 모시고 싶은 어른이 계시다. 율곡 이이 선생과 조지프 슘페터 교수다. 두 선각자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문제점을 보고 줄기차게 혁신을 주장했다.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는 저서 율곡 평전에서 “임진왜란 이후 조선 300년 역사는 율곡의 경장을 배우고 실천하는 시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며 “그가 강조한 공납 개혁은 대동법으로, 군정 개혁은 균역법, 서얼 차별에 대한 비판은 서얼의 관료 진출을 허락하는 허통으로, 노비 신분 개방 사상은 조선 후기 개혁가들의 지표가 됐다”고 설명했다.

슘페터 역시 혁신을 강조한 학자다. 그는 기업가정신, 경영전략, 창조적 파괴 같은 용어를 들며 혁신과 기업가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포브스는 1983년 슘페터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케인즈가 아닌 슘페터가 세계화라는 거친 바다의 가장 훌륭한 길잡이’라고 소개했다. 경제학자 갈브레이스는 슘페터를 ‘20세기의 가장 세련된 보수주의자’라고 칭한다. 비즈니스위크는 2000년 ‘50년이 지나 인정받은 미국의 가장 훌륭한 경제학자’라는 기사를 냈다. 그가 말한 창조적 파괴가 실제 경제 현장에서 나타나며 기업인과 기술이 자본주의에 미치는 영향을 해석하는 열쇠가 돼줘서다. 포브스코리아는 두 분 현인의 가상 대담을 기획했다. 이를 통해 한국 기업이 나아갈 길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포브스코리아:한국 산업화가 50년을 넘어섰습니다. 기업 환경도 빠르게 변하는 중입니다. 한국에서 100년 기업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율곡: “변화의 시기와 속도를 고민해야 합니다. 경장에도 시점이 있습니다. 이때 밀어붙여야 합니다. 혁신과 경장은 기득권의 반대를 불러옵니다. 백성에게 좋은 제도지만 탐관오리와 요행을 바라는 백성들이 모두 동의할 때까지 기다린 뒤에 경장을 하려 한다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음이 시기입니다. 지금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당시 조선은 건국 200년이 지나던 상황이었습니다. 창업(創業)과 수성(守成) 과정을 지난 경장(更張)의 시기에 들어섰습니다. 태조가 창업가였고, 세종이 국가의 기틀을 정비한 다음 세조가 경국대전을 제정하며 수성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중종 이후 국가 성장이 멈췄고 기존 법제도가 현실에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자리를 잡지 못한 기업이 혁신만 생각하면 무너집니다. 하지만 경장 시대의 리더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변화한 환경에 적응할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기존 제품을 만들고 손에 움켜쥔 시장만 지키면 필망입니다. 이는 병에 걸렸는데 약을 물리치고 누워서 죽기를 기다리는 격입니다. 한국은 제조 무역국가입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같은 주요 무역국가와의 관계가 순탄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여기에 기술 발전 속도가 더없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50년 전 사고에 얽매여 변화를 뒤로 미룬다면 병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 정부와 기업에 지금 경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슘페터: “율곡 선생 말씀처럼 변화에선 시점이 중요합니다. 패러다임이 바뀌는 산업혁명을 주목해야 합니다. 빠른 적응만이 살길입니다. 1차 산업혁명을 이끈 영국에서도 실패 사례가 있습니다. 면직물은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구조 혁신에 실패했습니다. 신기술을 노동조합이 거부했고, 심지어 방직기를 파손한 일도 있습니다. 신변에 위협을 느껴 미국으로 떠난 기술자도 여럿입니다. 같은 시기 독일 기업가들은 방직기를 적극적으로 도입합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개선과 학습, 모방과 경쟁이 벌어집니다. 리더는 이 과정을 면밀히 살피며 공격할 때와 지킬 때, 제도를 고칠 시기를 읽어야 합니다. 변화를 위해선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전통 산업의 승자들은 기존에 성공한 사업 모델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 기존의 것을 보완하는 데 주력합니다. 이런 방식으론 산업의 질서를 창조적으로 파괴하지 못합니다.”

그는 100년 전, 기술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리고 기술을 활용하는 환경이 가장 잘 조성된 국가로 미국을 꼽았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들이 미국에서 계속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이 등장하자 그의 이론이 다시 주목받았다. 1950년에 세상을 떠난 슘페터를 2000년대 들어서 ‘혁신의 예언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슘페터: “1930년대 들어 미국 기업들은 새로운 변화에 직면합니다. 철도와 석유화학 기술이 산업 패러다임을 바꿔 놓은 직후 입니다. 거대한 변화를 겪었기에 새로운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더욱 크고 과격한 변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전기 산업입니다. 발전소 성능이 향상되며 기업과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전기가 급증했습니다. 순식간에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고 또 사라졌습니다. 살아남아 시장을 리딩하는 기업의 공통점이 혁신이었습니다. 이들은 전기가 가져올 변화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가진 것을 모두 내놓고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저울 만들던 회사 IBM이 세계 최대 컴퓨터 업체로 변신했습니다. 이후 스티브 잡스가 등장해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공략하며 IBM의 지분을 빼앗아가지요. 지금 기술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산업 전반에서 창조적 파괴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인들에게 주문하고 싶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어떤 세상일 것 같습니까. 지금 당신이 가진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그대로 머물 것인가요 아니면 가진 것을 모두 버리더라도 도전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여기서 답을 찾기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의 혁신 기업들은 혁신을 사업의 일상적인 부분으로 만들었습니다. 혁신을 진행하는 중에라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면 도전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두 분이 직접 경험하고 노력하셨던 혁신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율곡: “당시 조선은 단순히 법과 제도 몇 개를 개선해서 고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조선을 ‘중병 환자’나 ‘기둥이 썩어 무너져 가는 집’에 비유했습니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시행되던 제도뿐 아니라 그 이면에 놓여 있는 지식인의 사상부터 백성의 대중문화까지 고민의 범위를 넓혀야 했습니다. 실천 방안으로서 먼저 모순된 법제를 손보려 했습니다. 그리고 국가체제 재정비, 공안·군정·조세 제도의 개혁을 추진했고 마지막으로 문화 향상을 위해 향촌질서 유지 및 농민생활 안정을 위한 향약의 실시를 준비했습니다.”

슘페터: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1919년 오스트라아 재무장관이었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모든 신체기관이 손상된 환자 같았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의 휴유증에 시달리는 중이었습니다. 제 임무는 경제를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단기적 경기 부양보다는 장기적인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한 정책을 입안했습니다. 기업을 늘려 일자리를 만들고 시장을 활성화해 경기를 회복해야 합니다. 기업가정신을 활성화해 산업의 혁신을 이끌며 시장의 신용을 회복하는 일이 제 경제 활성화 정책의 핵심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기업으로의 투자를 늘리기 위해 외국인 투자 규제를 풀었고, 오스트리아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수출할 수 있는 시장 개방, 즉 일종의 자유무역협정을 준비했습니다. 창업 지원을 위해 은행 대출 기준도 대폭 완화하려 했습니다.”

그의 개혁은 실패로 끝난다. 반대파들은 그가 오스트리아 자산을 해외에 헐값으로 넘기려 한다고 비난했다. 무역협정은 시작도 못했고, 창업 지원 정책도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그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1922년 장관직에서 물러난다.

율곡: “개혁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공직생활 20여 년간 나라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올린 상소가 70여 건입니다. 제 생전엔 단 하나도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임금님은 저를 챙겨주셨지만 정책은 하나도 안들어 주시고, 개혁 대상인 기득권은 반대만하고, 하도 힘들어서 그만두겠다고 사표를 쓴 일이 여러 번입니다. 나중엔 반대파에게 탄핵까지 당했답니다.”

율곡은 48세에 병조판서 자리에서 물러난다. 탄핵을 주장하던 반대파는 율곡이 개인 비리를 저질렀고, 이단 사상을 가진 소인이라고 비난했다. 선조는 어이없어하며 “너희 말이 다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제와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너희의 불충이다”라 말한다. 그리고 탄핵에 앞장선 인물을 파직한다. 이 와중에 율곡은 벼슬을 내려 놓고 고향 파주로 간다. 그는 1년 후 49세에 세상을 떠난다.

혁신은 과거의 지식이나 기술, 투자를 쓸모없게 만든다.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그는 창조적 파괴 행위가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경제 발전을 가져오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기업가라고 말했다.

슘페터: “하버드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강조한 단어가 있습니다. 기업가정신입니다. 논문과 책으로도 여러 번 설명했지요. 제 절친의 아들이자 제가 아끼고 존중하는 후학인 피터 드러커는 한국 경제 성장에 대해 “눈부실 정도다. 그 열악한 환경을 딛고 오늘날의 발전을 이룬 것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격찬했습니다. 이어 그는 “기업가정신이 세계에서 가장 강하게 발휘됐던 나라”라고 평가했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바가 있습니다. 지금 한국 기업들은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혁신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습니다. 혁신은 창조적 파괴를 가져와야 합니다. 가진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합니다.”

한국 기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떤 인재가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슘페터: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인재입니다. 기업가는 좁은 의미의 경제적 동기만으로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기업가가 혁신을 일으키는 동기는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기업가의 동기는 사적 제국 또는 자신의 왕조를 건설하고자 하는 몽상과 의지, 승리하고자 하는 의지 또는 성공하고자 하는 의욕, 창조의 기쁨 등에서 나옵니다. 조직이 성장하면 경영자도 변해야 합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던 기업가였지만, 대기업에선 아랫사람을 관리하는 역할로 움직이지요. 이때부터 기업은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모든 기업은 그 순간에만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조직입니다.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가정신이 사라지는 순간 기업은 사양길에 접어듭니다. 현상을 유지하자는 말은 달콤한 독약 같습니다. 리더는 조직에 긴장감을 주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도록 힘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율곡: “변화의 핵심은 원칙을 지켜 나가는 일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 인재가 필요하다면 전문 인재를 투명한 과정을 통해 선발하면 됩니다. 임금께서 어떠한 사람을 등용해야 하는가를 물으셨습니다. 저는 ‘전하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사람은 되도록 피하고 자기 일에 충성을 다짐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십시오’라고 진언했습니다.

사람 마음은 변합니다. 당장은 왕에게 충성을 다짐하지만 나중에 배신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 기술이 있고 또 이를 즐기는 사람에게 업무를 맡기면 배신하는 일이 훨씬 적어집니다. 인재 채용에선 출신보다 실력이 중요하다는 것도 누누히 강조했습니다. 그러려면 여당, 야당을 가리지 말고 당색을 초월해서 인재를 구해야 합니다. 당시 조선 조정에선 동인과 서인의 갈등이 심했습니다. 저는 ‘서인에 군자가 있으면 소인도 있고, 동인에도 소인배만 있는 게 아니라 군자도 있을 수 있다’며, 당파 위주로 서로 자기 당파 사람만 천거하고 끌어주고 밀어주는 인사정책에 반대했습니다.

작은 나라를 동서로 나누고 구분하다 보면 함께 일할 사람이 남아 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육 대상을 양반에서 평민, 서얼로 확대하고 공직 진출에도 제한을 두지 말자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여성인력도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여야 한다고 직간했습니다. 리더는 조직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조직원이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는 것입니다. 조직을 내부적으로 개혁하는 원칙을 지킬 때 문제를 고쳐 민생을 향상시키는 일이 가능해진다고 봅니다.”

※ 율곡 이이는


1536년 12월 강원부 북평촌에서 태어난다. 어머니는 신사임당. 모자가 만 원권과 5000원권에 나란히 얼굴을 올렸다. 과거시험에서 장원을 9번이나 한 수재다. 벼슬을 얻은 다음엔 줄기차게 개혁과 혁신을 주장했다. 건국 200년이 경과한 조선은 제도 정비가 절실했다. 율곡은 개국 초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며, 변법 경장론을 주장했다. 율곡이 세상을 떠난 지 8년 만에 임진왜란이 벌어지자 율곡의 경장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그가 경장의 핵심으로 제기한 공물 문제는 후기에 대동법으로, 군정 문제는 균역법으로 실현된다. 이조 전랑의 인사권도 영조대에 혁파된다. 성학집요, 동호문답, 격몽요결, 만언봉사 같은 저서를 남겼다. 성학집요는 조선 제왕 경연 교과서로 사용됐고, 만언봉사의 개혁안은 조선 후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 조지프 슘페터는


1883년 오스트리아 출생이다. 같은해 태어난 케인스와 더불어 20세기 전반의 대표적 경제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부유한 직물 제조업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편모 밑에서 자랐다. 빈 대에서 법학을 전공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의 재무장관과 비더만 은행 총재를 지내기도 하였다. 1932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 교수로 있으면서 미국에 귀화하여 여생을 그곳에서 보냈다.

전문가들은 20세기가 케인스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슘페터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는 ‘창조적 파괴’ ‘기업가 정신’ ‘경영 전략’ 그리고 ‘혁신’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주목받았다. 피터 드러커는 슘페터를 ‘주요 경제학자 중 유일하게 기업가의 역할에 주목한 학자’라고 소개했다. 대표 저서로 경기순환론과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가 있다. 1950년 1월 세상을 떠났다.

-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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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호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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