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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열정] 김덕수 교수 & 이어령 이사장 

문화 거장의 30년 우정, 디지로그 사물놀이로 꽃피우다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김덕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명맥이 끊겨가던 전통 농악을 타악 4중주로 재탄생시킨 사물놀이의 선구자다. 지난 40년간 최고의 예인으로 살아온 그의 열정에 날개를 달아준 이가 있다. 우리 시대의 영원한 지성으로 꼽히는 이어령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이다. 겨울바람이 매섭던 지난 2월, 두 문화 거장의 우정을 확인하기 위해 서울 평창동으로 향했다.

▎서울 평창동의 한중일비교 문화연구소에서 만난 이어령 이사장과 김덕수 교수. 구순과 칠순을 바라보는 두 문화 거장의 식지 않는 열정이 느껴졌다.
1957년 9월 9일 충남 조치원의 한 난장. 젖살이 통통하게 오른 다섯 살짜리 꼬맹이는 남사당 놀이꾼인 아버지를 따라 새미(고깔을 쓰고 어른들의 어깨 위에 올라 재주를 부리는 아이)가 됐다. 남사당꾼들의 어깨 위에 올라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야무지게 물구나무서기를 했다. 장터 한편에 마련된 공연장을 가득 메운 구경꾼들은 새미의 앙증맞은 춤사위에 매료됐고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후 꼬마에게 남사당 난장판은 언제나 신나는 놀이터였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어지는 공연에도 전혀 힘든 줄 몰랐다.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미친 듯이 장구를 치고 상모를 돌렸다.

훗날 ‘장구 신동’ 소리를 들으며 어엿하게 성장한 청년은 국립민속예술단 일원으로 북미, 아프리카, 중남미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신들린 듯 장구를 두드려댔다. 해외 순회공연을 다니며 우리 소리가 전 세계에 울려 퍼지는 그 날까지 장구채를 놓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20대 중반에는 사라져가는 민속예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사물놀이’라는 새로운 예술 영역을 구축했다. 전통 농악에 바탕을 둔 사물놀이는 당시 시대상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고 한국을 넘어 세계를 무대로 뻗어나갔다. 사물놀이 선구자이자 이 시대 최고의 광대로 손꼽히는 김덕수(66)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야기다.

“1978년 2월 22일 서울 원서동 공간사랑 소극장에서 꽹과리·징·장구·북 4개의 타악기로 구성된 풍물패가 탄생했습니다.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이 사물 악기로 앉아서 연주하는 형식을 만들어주시고 이름도 지어주셨어요. 마당에서 하던 남사당놀이가 실내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공연으로 다시 태어난 거죠. 우리 신명의 뿌리를 찾기 위해 열심히 고심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올해가 벌써 40주년이네요.”

‘사물노리안(samulnorian, 사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란 뜻)’이란 신조어가 나올 만큼 사물놀이가 대중화되고 세계화되는 데는 40년이란 인고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 덕분에 1984년 영국 더럼대학 음대에서 사물놀이가 정식과목으로 채택된 것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서 사물놀이팀이 만들어졌다. 현재 전 세계 50여 개국에 사물놀이팀이 있고, 미국에는 대학만 해도 200개가 넘는다. 사물놀이로 논문을 쓴 교수가 수십 명이고, 그 제자들도 배출되고 있다.

사물놀이 명인, 시대의 지성을 만나다


▎지난 30년간 사제의 돈독한 정을 나워온 문화계 두 거목의 꿈은 후대들에게 제대로 된 우리의 신명을 물려주는 것이다.
이처럼 지난 40년간 우리의 신명을 지구촌 곳곳에 전파하는 데 한평생을 바쳐온 김 교수의 예술혼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지해온 이가 있다. 바로 김 교수가 “만날 때마다 영감 정도가 아니라 눈을 번쩍번쩍 뜨게 하는 깨달음을 주시는 하느님 같은 분”이라고 말하는 이어령(86)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이다.

지난 2월 7일, 서울 평창동의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서 김 교수와 함께 만난 이 이사장은 설명이 필요 없는 우리 시대의 지성이다. 그의 현란한 달변과 박식은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사실을 뒤집어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시대를 직관하는 통찰력으로 생명자본주의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그는 하나의 수식어만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 1972년 ‘문학사상’을 창간한 그는 평론을 하는 동시에 소설과 희곡을 쓰고,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생산한 에세이스트였다. 또 촌철살인의 언론인이자 후학을 양성한 교수였고, 한국 고전문학의 연구자이자 기호학자였다. 무엇보다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개·폐회식을 세계적인 문화이벤트로 만든 문화기획자였다. 정부에 문화부가 생겼을 당시 초대 장관을 맡은 인물도 바로 그다.

지난 30년간 이 이사장은 김 교수의 정신적 지주이자 멘토로서 우정을 나눠왔다. 문화계의 두 거목이 20년이란 나이 차를 극복하고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던 데는 사물놀이란 공통분모가 있었다. 우리 것을 지키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사명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했다. 이 이사장은 “88올림픽 때 처음 이 사람을 만났는데 그때만 해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혈기왕성한 젊은이의 모습이었다”며 “1990년 문화부 장관이 되고 난 후에는 여러 국가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나와 동고동락한 사람”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어령과 김덕수가 매치됐을 때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대체 무슨 인연이 있는 거지?’ 하고 말이야. 근데 내가 사물놀이에 관심을 갖고 주목하게 되면서 나라에 큰 잔치가 있을 때마다 사물놀이는 빠지는 일이 없었지. 88올림픽 때 슬프면서도 기쁘고, 절망적이면서도 희망이 있는 역설의 우리 문화를 단 몇십 분 만에 보여줄 수 있는 건 사물놀이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내가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이지만 한국의 긴 역사를 말로는 다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넌버벌 커뮤니케이션인 사물놀이에 주목하게 된 거야. 처음 얘기하는 거지만 김덕수는 참 대단한 사람이야. 사물놀이 하면 악기가 떠올라야 하는데 김덕수라는 퍼포머가 떠오르니 말이야.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언어로는 설명이 안 되는 우리 역사를 전 세계에 보여줬으니 말이야.”

그간 이 이사장이 사물놀이에 보여준 애정은 남달랐다. 1990년 남북음악교류의 일환으로 평양에서 치러진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시작으로 1991년 대한민국의 UN 가입을 기념하는 미국 뉴욕 카네기홀 공연,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문화예술축전 공연, 1993년 대전엑스포 로봇 사물놀이 협연, 1997년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 공연, 1999년 새천년맞이 국민대축제 공연 같은 굵직굵직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 이사장은 김 교수에게 신명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었다. 이 이사장은 “그간 이런저런 행사를 하면서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았다”며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스키 타는 사람들, 금메달리스트들에게 사물놀이를 알려주기도 했어. ‘사물놀이는 손으로 치는 게 아니라 오금으로 하는 것이다’ 하고 말이야. 흔히 오금을 못편다 그러잖아. 오금이 여기야, 여기. 무릎 뒤 오목한 곳. 발을 펴려면 먼저 오금을 펴야 해. 모든 동작은 오금에서 나오는 거야. 사물놀이의 기본 동작이 오금을 폈다 접었다 하는 것이고, 스키도 오금으로 타는 것이야. 스키도 엉거주춤한 자세잖아. 이게 얼마나 재밌어? 선 것도 아니고 멈춘 것도 아니고, 뛸 수도 있고 춤출 수도 있고. 오금이 모든 신체의 기본 동작이 되는 거다. 한국의 독특한 신체적 퍼포먼스의 시작이다. 우리가 올림픽을 하든,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하든 오금을 펴러 오는 거다. 다이내믹한 한국적 율동은 오금에서 나오는 거다.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선수들을 모아 놓고 그렇게 오금 강연을 했더니 다들 흥미 있어 하더라고.”

후대에 물려줄 이론서 남기고파

이 이사장과 김 교수의 인연은 2010년 1월 발표한 ‘디지로그 사물놀이-죽은 나무 꽃 피우기’로 정점을 찍었다. 2006년부터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통합을 역설해온 이 이사장이 직접 쓴 대본을 바탕으로 김 교수의 사물놀이, 한국무용가 국수호의 춤, 명창 안숙선의 소리에 첨단 디지털 기술로 구현된 가상현실세계가 어우러진 독특한 형식의 공연이었다.

공연마다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디지로그 사물놀이는 이 이사장이 그간 설파해온 디지로그 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관객들에게 우리 전통의 미래상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김 교수는 “사물놀이 탄생 40주년에 맞춰 사물놀이 4.0시대를 선언할 계획”이라며 “디지로그 사물놀이의 완성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강릉에서 있었던 IOC 총회 개회식 공연에서도 디지로그 사물놀이 공연을 선보였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예정에 없던 다음 날 만찬에도 초대될 정도였으니까요. 앞으로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완전히 결합해 볼 생각이에요. 극장 전체가 디지털로 만든 홀로그램 영상과 아날로그 사물놀이의 라이브 음악을 결합한 작품이 될 겁니다. 대본도 이미 나왔고, 이름도 ‘사물놀이전’이라 붙였어요. 혼란스러운 요즘 시대를 얘기하는 작품이죠. 3월쯤에 초연할 예정인데 성공하면 장기 공연도 고려하고 있어요. 브로드웨이에 가면 수십 년 씩 공연하는 뮤지컬이 있잖아요. 사물놀이전도 잘되면 그렇게 해볼 계획입니다.”

김 교수의 꿈은 이 이사장의 감수를 받아 대한민국 타악을 총정리한 ‘타악대강’을 펴내는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정립해 세계 음악 수업에 사물놀이가 정식으로 들어가길 바란다. 또 전 세계 태권도 보급에 중요한 역할을 한 세계태권도협회처럼 세계사물놀이협회도 만들 계획이다. “이사장님과 저의 만남은 필연 같아요. 가장 오랫동안 저에게 가르침을 주시고 이끌어주신 분이 바로 이사장님이세요. 실기의 기를 가르치는 분들과는 달라요. 제가 항상 궁금해하는 질문을 던지면 ‘얼씨구!’ 하면서 추임새가 나오죠. 조만간 사물놀이를 집대성한 책을 써서 이사장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사장님과 함께 후배들에게 제대로 된 사물놀이 이론서를 물려주는 게 저의 남은 인생 목표입니다.”

-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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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호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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