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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열정] 엄홍길 대장 & 박상원 교수 

나누고 베푸는 인생 2막의 동반자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서로 가는 길은 다르지만 통하는 게 있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한 평도 채 안 되는 정상에 오르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다. 그동안 분에 넘치도록 받은 사랑을 이제는 사회에 돌려주려 한다. 인생 2막의 든든한 동반자로 같은 길을 가려 한다. 산악인 엄홍길과 국민배우 박상원의 브로맨스 스토리다.

▎서울 인왕산 수성동계곡에서 만난 엄홍길 대장과 박상원 교수. 두 손을 맞잡은 그들의 모습은 한 편의 멋진 브로맨스 영화였다.
“ 서울 시내에 이런 데가 있었다니 정말 놀라운데요.”

“ 그러게요. 저도 여기는 처음 와봤는데 참 좋네요.”

“ 녹음이 우거진 여름에 왔으면 더 좋을 뻔했습니다.”

“ 그럼 우리 나중에 다시 와서 계곡물에 발 담그고 막걸리 한잔하시죠.”(웃음)

지난 2월 9일 서울 인왕산 기슭의 수성동계곡. 그곳에서 엄홍길(58) 대장과 박상원(59) 서울예술대학교 교수를 만났다. 포브스코리아 창간 15주년 기념 커버스토리 ‘우정과 열정’의 주인공으로 선정된 두 사람은 설빙이 빚어내는 멋진 경관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윽고 시작된 커버 사진 촬영.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완벽한 찰떡궁합(?)을 자랑했다. 때로는 장난기 어린 친구처럼, 때로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형제처럼 두 손을 맞잡고 환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은 한 편의 멋진 브로맨스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세계 최초로 8000미터 16좌 완등에 성공한 산악인 엄홍길과 드라마 [모래시계]로 대중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국민배우 박상원. 닮은 데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이들이 지난 15년간 남다른 우정을 유지해온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덕수궁 옆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그들과 마주 앉았다.

지금부터 두 분의 우정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처음에 엄 대장께서 박 교수님과 함께 나오겠다고 하셨을 때 사실 좀 의외였습니다. 재밌는 조합이 될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두 분은 어떻게 친분을 쌓게 되셨나요?

엄: 우리 인연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면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돼요. 2000년대 초반쯤 됐을 거예요. 가수 노영심 씨가 대학로에서 ‘작은 음악회’를 하는데 저를 게스트로 초청했어요. 그때 노영심 씨와 가깝게 지내는 건축디자이너 분을 만나게 됐죠. 아주 재미난 분이었어요. 실력도 있으시고. 공연이 끝나고 그분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는데 거기에 가수 이문세씨도 오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박 교수와 죽마고우였던 거예요. 그게 인연의 시작입니다.

박: 제가 그 음악회에 안 갔던가요? 영심이 음악회면 분명히 제가 있었을 텐데 기억이 잘 안 나네요.(웃음)

엄: 아무튼 그 자리를 계기로 이문세씨와 가까워지면서 산에도 같이 다니게 됐고 그게 인연이 돼서 박 교수까지 연결된 거죠. 이문세씨는 산을 너무 좋아해요. 2004년 8000미터 15좌에 도전할 때였죠. 얄룽캉 8505미터 등반에 성공하고 내려왔을 때 문세 씨가 베이스캠프까지 와서 산상음악회를 열어줬어요. 박 교수는 영화 [히말라야]의 배경이 된 에베레스트에 오셨었죠. 2004년 에베레스트 8750미터 고지에서 박무택 대원이 숨을 거두고 1년 후에 제가 휴먼원정대란 팀을 이끌고 거기에 갔을 때예요. 거기서 악전고투하고 있을 때 박 교수가 격려해주러 오셨는데 정말 큰 힘이 됐었죠.

그럼 두 분이 처음 만나신 건 언제인가요?

박: 이문세와 ‘와드’라는 연예기획사를 잠깐 했었는데 그때 오셔서 축하를 해주셨죠. 나중에 문세와 네팔에 학교 지으러 갔을 때도 뵀고요. 그때가 아마 2002년이나 2003년쯤 됐을 거예요.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네요.

산악인과 국민배우의 농도 찐한(?) 15년 우정

보통 ‘우정’ 하면 학창시절 친구들을 떠올리게 마련이죠. 그럼에도 두 분이 10년 넘게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산이라는 매개체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박: 물론 산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이 좀 닮아 있어요. 엄 대장이 산을 정복하는 과정을 보면 엄청난 고통이 뒤따릅니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치열하게 도전하고 극복하면서 성취감을 얻게 되죠. 근데 막상 산에 올라가 보면 정상은 한 평도 채 안 되는 공간이에요. 누구에게나 손을 내밀지만 아무한테나 자리를 허용하지 않아요. 그렇게 보면 내가 가는 배우의 길도 똑같은 거죠. 땀과 노력으로 도전하고 극복하고 고통을 이겨내는 그런 것들이 서로 닮아 있어요.

엄: 분야도 다르고 추구하는 목표는 다르지만 결국 정상은 하나잖아요. 가끔 만나 술 한잔하면서 서로 닮은 모습에 동질감을 느끼고 공감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마음도 맞고 서로 통하는 부분이 생기더군요.

박: 옛말에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 낫다고 했잖아요.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도 좋지만 자주 보는 사람이 더 가까운 법이죠. 엄 대장과 만난 지는 15년 됐지만 농도가 아주 찐한(?) 15년이에요.(웃음) 그래서 30년도 더 된 거 같습니다. 사실 우린 어제도 만났고, 오늘도 만나서 이렇게 같이 있고, 내일은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보러 평창에 갑니다.

엄: 그동안 나름 예술가나 연예인들을 많이 만나봤어요. 다들 훌륭하고 마음 따듯한 분들이셨죠. 그중에서 특히 박 교수는 정말 진실하고 정이 많아요. 항상 베풀려고 하고 도와주려고 하죠. 제가 엄홍길휴먼재단을 만들어 네팔에 학교를 짓는다고 할 때마다 일주일씩, 열흘씩 따로 시간 내서 와주시는 분이에요. 근데 사실 그게 쉬운 일이 절대 아니에요. 오지에 학교를 짓다 보니 며칠씩 걸어야 하고, 열악하고 척박한 환경을 참고 이겨내야만 하죠. 하지만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고 가서도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그 자체를 즐기면서 말이죠.

박: 사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제가 네팔에 가보겠어요. 엄 대장을 몰랐다면 네팔에 갈 일도 없었을 거고, 설사 간다고 해도 쉽지 않았겠죠. 그래서 제가 항상 이런 말을 해요. 에베레스트 쪽에 왔다 갔다 한 숫자가 동네 산에 간 숫자와 비슷하다고요.(웃음) 히말라야 산맥의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마칼루는 물론 티베트 사이드, 네팔 사이드까지 엄청나게 많이 다녔습니다.

두 분 사이에는 ‘나눔’이란 공통분모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성공도 하셨고 남은 인생 편히 지내셔도 될 것 같은데 대장께선 오지에 학교를 짓고 교수님은 그 먼 데까지 따라가시니 말이죠.

엄: 박 교수는 국민배우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누리고 살아도 돼요. 저도 산에 오르느라 고생했으니까 다리 쭉 뻗고 편하게 살아도 되죠. 근데 이렇게 누릴 수 있는 삶을 살게 된 건 많은 분의 도움 덕분이에요. 이제 갚아야 할 때가 된 거죠. 나만 받고 나만 누리고 끝내겠다,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박 교수나 저나 지금까지 받은 것에 비하면 그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못 갚고 있어요. 앞으로도 나누고 베풀고 봉사하는 열정으로 살아갈 생각입니다.

박: 대중에게 박수 받고 돈 많이 버는 게 성공은 아닌 거 같아요. 인생을 잘 살고 잘 마무리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 아닐까 싶어요. 엄 대장도 마찬가지에요. 8000미터 16좌 정복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죠. 지금까지 대중에게 받았던 박수들을 후배들이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있는 힘을 다해서 돌려주는 것이 마지막 의무라고 생각해요.

두 분이 함께 산을 오르면서 재밌는 일도 많았을 거 같습니다.

박: 2016년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보다 더 높은 데까지 올라갔었어요. 칼라파타르라는 곳인데 에베레스트 정상이 가장 잘 보이는 뷰포인트예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는 5400미터고 거기는 한 5700미터 정도 되죠. 한참을 올라가다 정상을 20미터 남겨 놓고는 죽어도 못 가겠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해’ 하고 내려가려는데 셰르파 한 명이 전화기를 갖고 오더군요. 전화기 너머로 엄 대장이 무조건 오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안 올라오면 쫓아오겠다면서. 할 수 없이 속으로 쌍욕(?)을 하면서 올라갔는데 나중에 엄청 고맙더라고요.(웃음) 고작 20미터를 남겨두고 포기하려는 순간에 엄 대장이 기를 팍팍 불어넣어줬고 결국 칼라파타르 정상을 밟을 수 있었죠.

엄: 한참을 안 와서 물어보니 다음에 오겠다면서 내려가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이란 게 언제냐고, 그렇게 고생하고 막판 3분 때문에 후회할 거냐고 다그쳤죠. 그래도 제가 정상을 16번이나 밟아본 사람 아닙니까.

박: 당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20미터 더 올라가서 보나, 여기서 보나 똑같을 거라고 말이죠.(웃음) 사진만 찍고 내려가려다 딱 걸린 거죠. 근데 막상 정상에 올라가 보니 그 성취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더군요.

서로에게 어깨 내주는 살가운 존재


▎2016년 히말라야 칼라파타르 정상에 선 엄홍길 대장(가운데)과 박상원 교수(왼쪽).
말씀을 들어보니 서로의 인생에 자극제가 되는 거 같습니다.

박: 엄 대장의 삶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워요.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에베레스트의 논리를 적용하죠.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한테 산에 오르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얘기해줘요.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항상 준비해야 한다, 체력과 정신력이 있어야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이죠. 꿈을 향해 달려가는 제자들한테 그보다 좋은 교육은 없어요. 정상에 올라가는 과정은 결국 인생과 똑같더라고요. 저는 엄 대장의 16좌 정복 스토리를 인생의 지침으로 삼고 있어요. 사실 이런 얘긴 별로 안 했는데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언제나 제게 목적의식을 심어주고 자극을 주니까요.

엄: 박 교수와 저는 정상에 서본 사람들이에요. 배우로서 산악인으로서 말이죠. 그래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 쉽게 동화되는 거 같아요. 박 교수는 인생의 든든한 동반자 같은 분이에요. 제가 지치고 힘들 때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이죠.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엄: 박상원은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에요. 어떤 일이든 열정적으로 완벽하게 소화해내야 직성이 풀리죠. 어느덧 반환점을 돌아 새로운 목적지에 가야 하는 시점이 됐네요. 인생 2막을 향해 더욱 분발하길 바랍니다.

박: 엄홍길은 참 바지런하고 행복한 사람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이 덕업일치라고 하잖아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 같아요. 엄 대장도 어린 시절부터 산을 동경했고. 수많은 역경과 난관을 딛고 세계적인 산악인이 됐어요. 근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정상 이후의 삶을 굉장한 휴먼 스토리로 써나가고 있죠. 아직 돌아갈 길이 만만치 않으니 건강을 잘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약주도 좀 줄이고. 핵심은 그겁니다.(웃음)

-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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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호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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