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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로 ‘후계자의 길’을 다루는 이유 

후계자가 먼저다 

권오준 기자
인공지능, 로봇, 4차 산업혁명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하며, 지속경영을 이끌 리더다. 리더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냉정하게 선정하고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포브스코리아가 한국의 기업을 이끌 후계자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다.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후계자를 선정하거나 직접 육성해야 한다.
경영 환경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의 등장으로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중국, 인도 등 신흥국들이 턱밑까지 쫓아왔다. 기업가 정신으로 똘똘 뭉친 창업자 세대가 저물고, 온실 속에서 곱게 자란 후계자(후손)들로 자리바꿈하고 있다. 상황은 더 어려워졌는데도 경영자의 자질은 예전보다 못해진 셈이다. 포브스코리아가 5월호 커버스토리로 한국 기업의 후계자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은 도전과 혁신의 정신으로 똘똘 뭉친 제2의, 제3의 ‘정주영’(고 현대그룹 회장)·‘이건희’(삼성전자 회장)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우리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인간은 죽는다. 아무도 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 다만 누구는 일찍 죽고, 누구는 오래 산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100년, 200년 장수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10년, 20년 단명하는 기업도 있다. 오래 살고자 하는 마음은 사람이나 기업이나 별반 차이가 없지만, 기업의 평균수명은 인간보다 못하다. 대부분 창업 초기에 사라진다. 국내 창업기업의 3년 생존율은 41%에 불과하다. 가족기업의 경우 살아남은 41%에서 2대까지 생존하는 비율이 30%다. 3대까지는 14%, 4대까지는 4%로 뚝 떨어진다(가족기업 전문가 존 워드 박사의 연구 결과). 세대가 바뀔수록 생존의 문은 급격히 좁아지는 게 현실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기업이 겪는 일이다. ‘4대-4%’라는 희박한 확률 게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은 미래에 일어날 불행한 일에 대비해 위기감을 갖고 준비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답은 ‘아니다’이다. 단적인 예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글로벌 시장에선 활발하게 활동 중이지만, 한국에만 없는 부서가 있다. 바로 가업승계 컨설팅을 전담하는 ‘패밀리비즈니스팀’이다. 후계자 문제를 비공개로 내부에서 처리하거나, 애써 외면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후자 쪽에 가깝다. 왜 그럴까.

후계자의 육성은 한국 기업의 핵심 과제

첫째, 기업사가 짧다는 점이다. 한국의 기업사는 1960년대에 본격화됐다. 이제 겨우 50~60년 정도의 역사다. 200년 이상 장수하는 기업이 일본엔 3100여 개, 독일엔 1500여 개가 있다. 한국엔 하나도 없다. 일부 대기업은 4대까지 이어진 사례가 있지만, 대다수가 2~3대째다. 중소·중견기업은 2대째로 넘어가는 단계다.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최근 가업승계와 후계 프로세스에 관한 고민이 본격화됐다. 대기업들의 잇따른 혈육 간 상속 분쟁을 지켜보면서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위기감을 갖게 됐다.

둘째, 체계적인 후계 플랜 수립을 오너 경영인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대기업 임원들은 “누가 감히 오너에게 후계자 문제를 꺼낼 수 있겠느냐”며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고 토로한다. 상속 분쟁으로 지금까지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롯데그룹이 반면교사다. 롯데그룹은 10여 년 전 로펌 및 회계법인 등과 함께 승계(상속)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관계자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승계안을 마련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창업주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에게 보고하지 못하고 미루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유야무야됐다는 것이다.

셋째, 경영권은 무조건 자녀에게만 물려주겠다는 오너 경영인의 의지가 지나치게 강하다. 한국 대기업은 ‘후계자=자녀’라는 공식을 고집하고 있다. 중소·중견기업도 다를 바 없다. 물론 미국이나 일본, 유럽에도 가족기업은 많다. 그러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넷째, 후계자 플랜에 대한 절박함이 부족하다. 한국의 후계자들은 대개 미국 유학을 다녀와 임원으로서 경영 수업을 받은 뒤 검증 없이 경영권을 물려받는다. 철저한 교육과 검증을 거쳐 경영권을 승계하는 선진국 기업들과 비교된다. 독일 가전회사 밀레는 1899년 친칸 가문과 밀레 가문이 공동으로 설립했다. 양 가문에서 수십 명이 경합해 최종 후보에 선정되면 4년 이상 다른 회사에서 경영 실무를 쌓아야 한다. 이후 업무 능력 시험과 최종 면접을 거쳐 후계자로 선정되는데 그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다섯째, 그러다 보니 지속경영의 관점에서 승계를 고민하지 않고, 지분 상속의 문제로 한정짓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고세율 50%에 달하는 과도한 상속세(OECD 최고세율 26.3%)도 이런 분위기를 부추긴다. “상속세 때문에 어떤 기업이든 가업승계가 2, 3대만 지나도 공기업이 될 것”이라는 중견그룹 한 오너 경영인의 호소가 허투루 들리지만은 않는다.

한국 기업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먼저 후계자 선정과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자본주의 시장은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정글의 왕 사자도 강가에서 물을 먹다가 악어에게 물리면 빠져나오지 못한다.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후계자를 선정하거나 직접 육성해야 한다. ‘호랑이 새끼는 결국 호랑이가 된다’거나, ‘피는 속일 수 없다’는 주변의 듣기 좋은 소리에 속으면 곤란하다. 자녀에게 호랑이의 자질이 보이지 않을 때는 지분만 세습하고, 경영권은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자녀를 위해서 더 나은 선택이다.

빠를수록 좋다. 최고경영자 곁엔 항상 준비된 후계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갑작스런 최고경영자 부재 상황에 대비할 수 있을뿐더러 상속분쟁도 막을 수 있다. 자신의 건강을 자신하고, 자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아버지 오너와 아들 후계자의 갈등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이라면 회사 내에 별도의 ‘명문 장수기업 추진실’(가칭)을 둘 것을 제안한다. 가업승계는 일시적 이벤트가 아니다. 선대의 경영철학과 경쟁우위의 DNA, 기업문화 등을 계승하고 혁신하는 과정이다. 이 부서에서 세계 장수기업들의 장수 비결과 한국 기업의 특수성을 연구해서 해당 기업 현실에 맞는 장기 플랜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이나 조직은 ‘내부의 적’에 의해 무너진다. 오너경영인, 전문경영인, 직원 등 조직원은 누구나 내부의 적이 될 수 있다. 물론 가장 무서운 내부의 적은 절대적 권한을 가진 오너경영인(CEO)의 오만과 무능이다. 포브스코리아는 한국 기업의 후계자들이 내부의 적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계승과 혁신으로 선대보다 더 뛰어난 경영자로 우뚝 설 수 있기를 희망한다.

- 권오준 기자 kwon.ojune@joins.com

201805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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