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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가족기업의 후계자 교육 

카길, 이금기에서 배운다 

이기준 기자·박지현 기자
가족기업 후계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뛰어난 판단력과 경영능력을 꼽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세계 굴지의 가족기업들이 후계자 교육에서 중시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원만하고 안정된 심성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 가족의 문화와 가치를 이해하고 온전히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이 후계자 교육의 첫째 과제였다. 유명 가족기업의 후대 교육 프로그램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가업은 마라톤이다. 일반 기업에 비해 매년 치러지는 실적평가나 주주의 압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그만큼 먼 곳을 바라보며 뛸 수 있지만, 자칫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뛰기도 십상이다. 이를 방지해주는 것이 가족 사이에 공유된 가치와 문화다. 오랜 세월에 걸쳐 문화가 축적되면 멀리 보며 오래 뛴다는 가족기업의 장점이 십분 발휘된다.

바바라 촐만 한독상공회의소 대표는 “주로 중소기업인 독일 가족기업은 사업을 번성시켜 다음 세대로 넘겨 주기 위해 제품과 사업모델을 끊임없이 현시대에 맞춰 바꿔나가며 기업을 유지한다”며 “반면 한국 중소기업은 문을 열었다가 금세 닫고 다른 사업을 다시 시작한다. 자기 사업에 애착이 적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잡아서 돈을 버는 일에 더 관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대기업으로 성장한 가족기업이 대부분 지방 소도시의 중소기업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가족기업엔 그만큼 지속적 성장의 기회가 적었던 셈이다.

촐만은 독일 기업의 장수 비결 중 하나로 직원 교육 프로그램(Ausbildung)을 꼽았다. “이 방법을 통해 충성심 강한 직원은 회사를 깊이 이해하고 회사가 필요로 하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 독일 기업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가업을 승계하고 있는 해외 기업들은 예외 없이 확고한 가족의 가치를 확립하고 있으며, 이를 강화하고 공유하기 위해 교육 프로그램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미국 식료품 업체 카길은 2017년 매출 1100억 달러(11조6820억 원)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족기업이다. 카길 가문이 지분의 90%를 쥐고 있다. 올해로 창업 153주년을 맞은 카길은 2003년부터 가족관계·교육사업부를 신설하고 가족 구성원의 교육 제도를 체계화했다. 가족 구성원 8명과 가족자산관리 회사인 웨이크로스사의 CEO로 구성된 이 부서는 단지 후계 경영자를 육성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부서는 다음 세대에 전인교육(hollistic education)을 실시하고 가족 구성원 간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카길 측이 공개한 이 사업부의 목표는 크게 다섯 가지다. 원만하고 안정된 심성을 기르는 것, 각자가 추구하는 바를 이루도록 지원하는 것, 효과적인 주주가 되도록 돕는 것, 미래의 지도자를 가려내는 것, 카길사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다.

카길사의 후대 교육은 집단교육과 개인교육이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집단교육 프로그램으로는 하계가족모임, 공장 견학, 주주총회 참석, 가족 태스크포스 참여, 스터디그룹 등이 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하계가족모임에서 교육생은 카길의 각종 사업부에 대한 강의를 듣거나 공장 시설을 방문하는 등의 경험을 쌓는다. 18세부터는 2년마다 개최되는 주주총회에 참석할 자격을 얻는다. 개인교육 프로그램엔 심리검사, 인생상담, 인턴십, 외부강연 참여, 비영리 이사직, 봉사활동 등이 포함된다.


가족기업에서 교육은 ‘팀 빌딩’이다

웨이크로스에서 교육사업을 담당하는 조안 켐프마이어는 “카길사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은 회사를 더 친숙하게 여기게 되는 동시에 서로 간에 친분도 두터워지는 효과를 얻는다”고 말했다. 켐프마이어는 차세대 지도자를 교육하려는 가족기업이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을 설명했다. 첫째 지금 당장 시작할 것, 둘째 전인교육을 실시할 것, 마지막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자 수업에 앞서 먼저 성격이 원만하고 정서가 안정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원칙이다.

7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미국 투자사 레어드노튼도 교육을 통한 가족 가치의 공유와 가족 구성원 간의 연결고리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레어드노튼은 후대 교육을 위해 레어드노튼대학을 운영한다. 이곳에서 선대 경영진은 후대에게 직접 재무제표 읽기, 매출과 비용 계산하기 같은 경영과 경제의 기본을 가르친다. 과학 연구나 기타 연주 같은 특기 계발도 아낌없이 지원한다. 이 역시 전인교육이다. 레어드 콜다이크 전 레어드노튼 회장은 “젊은 세대에게 우리 가문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육이었다. 역사는 우리 가족의 아이들을 끈끈하게 묶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콜다이크가 말하는 레어드노튼의 교육방식은 이렇다. “우리 가족의 교육 프로그램은 참여와 통합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어린 자녀 세대를 교육하는 데 중점을 둔다. 우리가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1991년부터 시행해온 여름캠프다. 매년 가문의 10대 청소년들이 모여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가문의 역사와 문화를 익힌다. 또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가문의 역사를 담은 색칠놀이 책을 만들고, 기본적인 경영관리 게임이나 리더십 놀이를 만들어 아이들이 즐길 수 있게 한다.”

켐프마이어도 가족기업에서 교육의 주된 목적은 참여라는 데 동의했다. 그는 가족기업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세계 각국의 가족기업 관계자를 만나 교육과 관련된 얘기를 들었다. 켐프마이어는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는 걱정은 가족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 방법이었다”며 “특히 가족의 수가 많아지고 친척들까지 기업에 참여해 일종의 가족 연합체(consortium) 단계에 이르면 그들이 서로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다”고 설명했다. 카길은 젊은 세대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직접 사회봉사 프로젝트를 주도하게 하거나 웹사이트 운영을 맡기기도 한다.

켐프마이어는 “교육은 최대한 즐겁게 이뤄져야 하고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내가 아는 한 가족기업은 다음 세대 가족 구성원에게 일정 금액을 매년 쥐어준 뒤 원하는 단체에 기부하도록 한다. 그러면 그 아이들은 1년 뒤에 돌아와서 그 돈을 어디에 기부했으며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됐는지 보고해야 한다. 내 생각엔 아주 훌륭한 아이디어 같다”고 덧붙였다.

굴소스로 잘 알려진 홍콩 소재 식료품 업체 이금기홀딩스(LKK)도 자녀가 어릴 때부터 가족기업의 가치를 몸소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LKK는 1888년 설립돼 지금까지 4대째 성공적으로 가업을 승계해왔다. 그러나 LKK 역시 가족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서로 만날 일이 적어지면서 가족 간 연대가 느슨해지는 데 우려하기 시작했다.

이에 LKK 3대, 4대 경영진의 부인들은 가족 내에 ‘슈퍼맘 위원회’를 설립하고 엄마들을 중심으로 자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문의 기원인 중국 남부지방을 탐방하거나 가족이 한데 모여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게 하는 것이다. 리와이헝 LKK 미국·유럽지사 회장은 “아이들이 아주 즐겁게 교육에 참여하고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간다. 아이들은 즐겁지 않으면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LKK 측에 따르면 이 교육은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젊은 가족 구성원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술가의 길을 택한 한 21세의 LKK 가족 구성원은 자신의 재능으로 어떻게 회사에 기여할지 고민한 끝에 제품 로고를 디자인한 일도 있었다.

미국 가족기업컨설팅그룹의 에이미 슈먼 대표는 “가족기업에서 교육은 ‘팀 빌딩’이다.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의 가족을 이해하고 서로 간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며 “가족기업 최고의 교육은 가족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족 구성원들이 해묵은 갈등을 해결하고 새로운 우정을 쌓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스기사] 글로벌 명사들의 후계자론


“내 아들 존은 부엌 요리사부터 시작해 지난 30년간 내 뒤를 이어 CEO가 될 준비를 해왔다. 만약 내가 내 마음을 따랐더라면 존을 후계자로 선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존에게 회사를 맡기는 것은 존에게도, 메리어트에도 좋은 결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존은 메리어트에서 일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고, 결국 회사를 떠났다. 쉽지 않았지만 옳은 결정이었다. ”
- 빌 메리어트,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회장





“7세대에 걸친 가업이다. 그 역사는 아주 무겁고 중요하다. 역사책에도 나온다. 어느 시점에서 스스로에게 ‘이 이름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이름을 짊어질 것인가 아닌가’를 물어야 한다. 돈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다. 세상에 부자는 얼마든지 있지만 사람들이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장소는 아마 아프리카의 정글 정도를 제외하면 없을 것이다.”
- 아리안 드 로스차일드,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 CEO





“사업 승계의 본질은 가장 우수한 인재를 지명하는 것도, 언제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날지를 정하는 것도 아니다. 기업 내부의 자발적인 힘에 의해 그 시기에 최적의 지도자를 선발할 메커니즘이 있는지 여부다. 회사 경영수법에는 수명이 있고 언젠가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활력이 있을 때 스스로의 죽음을 결정하고 그 이후에 새로운 재생으로 향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만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다.”
- 장루이민(張瑞敏), 하이얼그룹 회장





“나는 48세로, 인터넷 사업을 하기엔 더는 어린 나이가 아니다. 알리바바의 다음 세대가 인터넷 생태계를 관리하기에 더 적합한 능력을 가졌다. 우리는 조직이 아직 어릴 때 조직의 연속성에 대한 규칙과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미래를 쟁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에 얽매이거나 현상 유지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젊은 세대에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다.”
- 마윈(馬雲), 알리바바그룹 회장





“자녀에게 성장할 기회를 줘라. 나는 에델만 경영에서 내 아이들이 성과와 리더십을 보이지 않는 한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자녀들이 고생은 하겠지만 이렇게 해야 경영을 배울 수 있다. 또 경영자는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참가하는 스포츠 경기를 빼놓지 않고 관람했고 저녁 8시가 되면 휴대전화를 껐다.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배워야 한다. 나는 CEO인 지금도 부모님과 매일 대화한다.”
- 리처드 에델만, 에델만 CEO

- 이기준 기자·박지현 기자 lee.ki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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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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