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Home>포브스>Management

벤처 30년 사건과 인물들(6) 

‘벤처 어게인’을 꿈꾸다 

최영진 기자
2000년 10월부터 터지기 시작한 ‘4대 게이트’는 벤처생태계의 몰락을 불러왔다. DJ 정부 말기에는 ‘벤처 활성화’ 대신 ‘벤처 건전화’라는 단어가 등장할 정도였다. DJ 정부를 이은 노무현 정부도 벤처에 대한 관심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경제의 활력소라는 칭찬을 받았던 벤처는 어느덧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셈이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서도 벤처인들은 꿈을 잃지 않았다. 이번 호에는 노무현 정부 초기 ‘벤처 어게인’을 꿈꾸던 이들의 고군분투기를 살펴본다.

▎2005년 2월 28일 벤처기업협회는 2005년도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6가지 과제를 담은 ‘벤처비전 2010’을 발표했다. / 사진:벤처기업협회 제공
“형님이 정책 대안을 만들어주면 정부 부처에 대한 설득은 제가 하겠습니다.”

2004년 8월, 장흥순 당시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벤처 업계의 큰형님으로 통하는 이민화 메디슨 회장을 만나 이런 제안을 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벤처업계에 대한 지원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벤처업계는 풀이 죽어 있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되돌리기 위해 벤처인들이 직접 나서야만 했다. 벤처협회를 중심으로 ‘벤처 어게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노무현 정부의 지원과 정책을 이끌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민화 회장과 장흥순 협회장의 만남 이후 벤처협회를 중심으로 벤처 재도약을 위한 ‘10대 어젠다’ 작업이 시작됐다.

터부시되던 ‘벤처’ 대신 ‘혁신형 중소기업’이 사용돼

2003년 2월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초기부터 ‘벤처’라는 단어를 터부시했다. 벤처라는 단어 대신 ‘혁신형 중소기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DJ 정부 말기에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4대 게이트’ 때문에 ‘벤처=사기꾼’이라는 공식이 성립할 정도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어느 누구도 벤처생태계 활성화를 주장하기 어려웠다. 당연스럽게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벤처기업 육성 정책이나 지원이 부족했다. 오히려 2002년 2월 정부가 발표한 ‘벤처 건전화 방안’(벤처생태계에 대한 관리와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었다.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 회장이 당시 분위기에 대해서 “새 정부(노무현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벤처 건전화 정책’으로 타격을 받은 벤처생태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고 분석할 정도였다. 당시 정부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는 벤처라는 단어가 없을 정도였다고 알려졌다.

2003년 8월 당시 장흥순 벤처협회 회장과 이민화 메디슨 회장의 회동 이후 벤처협회는 ‘벤처 어게인’을 위한 TF를 구성했다. 당시 오형근 벤처협회 부회장, 김영수 벤처협회 실장 등이 주축이 되어 벤처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어젠다 작성을 준비했다. TF와 별개로 장 회장 등 벤처인들은 주요 정부 인사들과 접촉해 벤처 활성화의 필요성을 알리는 노력들을 지속했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당시 변대규·김형순·조현정·전하진·안철수 부회장 등이 바쁘게 일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벤처인들은 협회를 중심으로 정부 부처와 국가균형 발전위원회 등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면서 ‘벤처 어게인’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당시 정부도 시간이 지나면서 벤처생태계 활성화의 필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한국 경제의 부진과 실업자가 증가하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장기적인 내수 부진으로 실업자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벤처산업을 활성화해 고용 창출을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벤처인에게 기회가 주어지기 시작했다. 벤처기업협회는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 고위인사에게 벤처 정책의 필요성을 전달하고 싶었다. 김영수 벤처기업협회 전무는 “2004년 노 대통령 해외 방문에 장흥순 당시 협회장이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VIP와 정부 고위 관계자들에게 30여 분 동안 벤처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면서 대통령에게 벤처 정책의 필요성을 알릴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 2004년 11월 초 정책기획위원회가 주최하고 대통령과 국무총리, 경제관료가 참여하는 국가 혁신경제 토론 자리에 장흥순 회장이 발표자로 참석하게 됐다. 장 회장이 벤처산업에 대한 총론을 발표하고, 조현정 부회장이 혁신경제를 위해 벤처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각론을 발표한 것. 대통령부터 경제관료까지 ‘벤처 어게인’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된 자리였다.

벤처를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 변화는 빠르게 진행됐다. 2004년 11월 8일 당시 이헌재 부총리는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벤처기업 CEO와 간담회를 열었다. 벤처기업 대표 19명과 이헌재 부총리, 중기특위 위원장, 산자부 장관, 중기청장 등이 참석한 자리였다. 당시 이 부총리는 “벤처시장을 다시 일으키려니 장맛비에 다 젖은 나무에 불을 붙이는 느낌이다. 불쏘시개만으로 안 되고 석유를 뿌리든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당시 이 자리에 참석한 이희범 산업자원부장관도 “대기업 횡포와 불공정거래를 예방하기 위해 업계 자율의 대·중소기업 업종별 대표자회의도 지원해나갈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정부가 ‘벤처 어게인’을 받아들였다는 신호탄이다. 당시 연말까지 벤처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책을 담은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벤처인들 사이에선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보다 제도 개선을 바란다는 요구가 높았다. 장흥순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동안 벤처기업들은 학습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본격적인 성과를 낼 때”라며 “과거 실패를 경험 삼아 벤처생태계를 형성하도록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벤처 부흥을 담은 ‘디지털 뉴딜 정책’ 추진

벤처인들은 이 부총리의 발표에 환호했다. 이 부총리의 발표에 벤처인들도 다양한 제안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 언론에 나온 벤처인들의 목소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기업이 고용창출이나 성장산업에 기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천덕꾸러기’가 된 벤처기업에 다시 눈을 돌린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된 옷을 입혀줘야 한다.”(이금룡 이니시스 사장) “벤처산업의 기반이 되는 인프라 전반에 쇄신이 시급한 상황이다.”(변대규 휴맥스 사장) “재무제표보다 비즈니스 모델이 튼튼하면 코스닥에 진입할 수 있는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우성화 티켓링크 사장) “정부가 기업을 직접 지원할 것이 아니라 기초기술 투자 및 매칭펀드 등을 활용해야 한다.”(나성린 한양대 교수)

벤처기업협회는 정부의 발표에 화답하기 위해 ‘1인1사 채용운동’, ‘대한민국 창업대전’, ‘벤처 패자부활 프로그램 시행’ 등으로 벤처 활성화를 이끌었다. ‘1인1사 채용운동’은 당시 정부의 골칫거리였던 고용창출 효과를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2005년 이 프로젝트에 193개 업체가 참여해 신규인력 3000여 명을 채용하는 성과를 거뒀다. 기존 채용된 인원과 신규인력을 합하면 당초 목표였던 2만여 명을 초과 달성한 것이다.

2005년 2월 말 벤처기업협회 회장으로 조현정 비트 컴퓨터 회장이 6대 협회장으로 선임됐다. 4년 동안 협회를 이끌어온 장흥순 회장의 임기가 끝났기 때문이다. ‘벤처 어게인’ 어젠다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정부의 벤처 활성화 대책에 벤처인들의 요구를 전달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신임 회장으로 취임한 조현정 제6대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정기총회에서 ‘글로벌 벤처강국 2010 비전’을 발표했다. 2010년까지 매출이 1조원을 넘는 1조클럽 20개사, 1000억원대 기업인 ‘1000억 클럽’ 300개사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조 회장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휴맥스 등 글로벌 기업의 매출을 포함하면 올해(2005년) 벤처업계의 연 매출은 1조원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그러나 핵심 벤처기업 3만 개를 육성하면 2010년께 GDP 10%를 웃도는 130조원 매출 창출이 가능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200만 명 고용도 문제없게 된다”고 말했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벤처인들은 죽어가던 벤처 생태계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쉼 없이 달렸다. 그 성과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박스기사] ‘벤처 어게인’ 10대 어젠다


▎2004년 11월 8일 당시 이헌재 부총리(사진 중앙)는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벤처기업 CEO와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이 부총리는 벤처업계의 목소리를 받아들이고 벤처 활성화를 위한 대책과 지원을 약속했다. / 사진:벤처기업협회 제공
2004년 8월부터 벤처기업협회를 중심으로 벤처인들의 생각을 모은 정책이다. 이 어젠다는 2004년 말 당시 이헌재 부총리가 발표한 ‘제2 벤처붐’의 근간이 됐다. 벤처협회가 마련한 10대 어젠다는 다음과 같다. 당시 발표된 10대 어젠다는 현재도 유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 코스닥시장 활성화: 코스닥시장은 중소 및 성장형 기업 중심 고수익을 추구하는 모험형 투자가 활성화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고위험(High Risk) 고수익(High Return)’을 지향해 성장형 기술혁신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도록 해야 한다.

2. M&A 활성화: 창업 → M&A → 재창업하는 선순환적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M&A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3. 벤처캐피털 활성화: 벤처캐피털은 투자회수지원 또는 실패 등으로 운영난이 가중되고 있으므로 우선 현금화되지 않은 현물 자산에 대해서는 기간을 연장하고 세제지원을 늘리며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4. 공정거래제도 확립: 별도계약에 의하지 않는 원가계산서, 부품구성도, 특허 등 영업 강요하는 불공정거래행위를 제도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5. 벤처 패자부활 기반 마련: 실패한 기업의 기술 및 경험이 사장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사업정리 119제도’, ‘사업재도전펀드 운영’, ‘실패 경험도 사회적 자산이라는 분위기 조성’, ‘획기적 창업지원 대책 마련’으로 벤처생태계 복원이 필요하다.

6. 벤처기업특별법 종료 재검토: 벤처기업특별법이 2007년에 종료될 예정이다. 벤처산업의 지속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벤처기업특별법의 법상시한을 연장해 확인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

7. 벤처 자율 역량 강화: 다수의 벤처기업 및 벤처기업가가 참여하는 공익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해 벤처문화재단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8. 부품소재산업 활성화: 부품소재산업은 제조업 성장과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나 주요 품목의 수입 규모와 비중은 계속 증가 추세에 있어 부품 소재 국산화가 시급하다.

9. 소프트웨어산업 활성화: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의 원동력이 제조업이라면 소프트웨어산업은 제조업 공동화와 청년실업 문제 등을 해결하면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 수 있는 원동력이다.

10. DMB 서비스 조기 상용화: 지상파 DMB 단말기 개발을 장려하고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 세계시장 선점을 위해 시장개척을 지원해야 한다.

[박스기사] 김영수 벤처기업협회 전무- “창업가 패자부활 기반 마련이 중요한 어젠다”


김영수 전무는 벤처기업협회 역사의 산증인으로 통한다. 협회 초창기에 참여해 지금까지 협회 사무국을 지켜오고 있다. 그는 2003년 8월 만들어진 ‘벤처 어게인’ TF에 참여해 ‘10대 어젠다’를 작성한 주역이기도 하다. 김 전무에게 당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DJ 정부 말기부터 노무현 정부 초기까지 벤처업계의 암흑기였다.

2000년 10월부터 4대 게이트가 터지기 시작하면서 벤처 위상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4대 게이트는 벤처인이 아닌 벤처를 사칭한 금융사기꾼들이 벌인 사기였지만, 일반인들은 ‘벤처=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고, 당시 협회에서 많은 정책을 제안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그만큼 정부가 벤처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벤처업계의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가 벤처에 대한 생각을 바꾼 중요한 계기가 뭔가?

2004년 노 대통령의 해외 방문에 당시 장흥순 회장과 변대규 부회장이 함께 간 적이 있다. 그때 대통령 면담이 이뤄졌고 벤처업계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다. 노 대통령이 면담 이후 벤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가장 중요한 계기라고 할 수 있다.

10대 어젠다 작성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벤처업계 상황을 반등시키기 위해서 협회가 ‘벤처 어게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03년 중반 즈음에 이민화 회장이 저에게 전화를 해서 ‘벤처에 대한 캠페인을 시작해야 한다. 정책 어젠다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정책 준비에 나섰다. 10대 어젠다 작성의 실무적인 총괄을 내가 맡았다. 4~5개월 정도 준비를 했다. 그동안 협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정책과 유관기관의 협조를 얻어서 10대 어젠다를 작성했다.

10대 어젠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패자부활 기반 마련일 것이다. 벤처 특성상 끊임없이 실패하기 마련이며 실패도 자산이다. 실패가 성공의 발판인데도 창업에 실패하면 창업가는 신용불량자로 살아가야만 했다. 실패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2004년 11월 초 이헌재 부총리가 벤처 기업인과 만난 자리에서 벤처 활성화를 이야기했다.

당시 만남은 부총리가 좌장이 되어 마련한 자리로 기억한다. 당시 벤처기업인과 이 부총리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이 부총리가 ‘석유를 부어서라도 벤처 활성화를 해야 한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했다. 당시 예정된 시간보다 간담회가 길어질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images/sph164x220.jpg
201901호 (2018.12.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