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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욱의 對話(14) 허남석 전 포스코ICT 사장 

“안전한 나라가 선진국이다”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세월호 사고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섰다며 샴페인을 터뜨렸지만, 고도성장에 취해 기본을 망각해온 악습은 예상치 못한 참사를 계기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참사, 반복되는 지하철 스크린도어 참사 같은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안전불감증’을 지적하는 뉴스가 쏟아졌지만, 반복되는 ‘인재(人災)’를 막는 사회적 시스템은 여전히 요원하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은 깊은 트라우마에 빠졌다. 승객 476명을 태우고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 여객선이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304명이 목숨을 잃은 대형 참사가 벌어진 날이다. 특히 사망자 중 다수가 수학여행 길에 오른 단원고 학생들이서 비통함을 더했다.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인재라는 케케묵은 진단이 또 한 번 전문가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손욱의 대화 열네 번째 순서에선 허남석 전 포스코ICT 사장을 만났다. 허 전 사장은 1974년 포항제철 입사 이후 ‘철강보국’ 한 길을 걸어온 기술경영자(CTO)다. 30여 년간 포스코그룹에서 일한 허 전 사장은 특히 광양제철소를 세계 최고 수준의 제철소로 성장시키며 한국 철강의 고도화를 이뤄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광양제철소는 자국산 제품 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일본 도요타에 최고급 자동차용 강판을 납품하며 한국 강판의 본원 경쟁력을 세계에 뽐냈다.

허 전 사장은 특히 ‘안전리더십’의 대가로 꼽힌다. 공정상 사고 위험성이 매우 높은 제철소장 재임 기간 동안 ‘무재해 1000만 시간’이라는 대기록을 써내기도 했다. 관행이나 무신경 일색이었던 작업환경을 안전 제일주의로 바꿔놓은 혁신 리더십을 통해서였다. 세월호 사고에 이어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등 예기치 못한 리스크가 시대의 숙제로 떠오른 지금, 허 전 사장을 만나 안전한 기업과 사회가 반드시 갖춰야 하는 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손욱: 대학에서도 금속공학을 전공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철강맨’이십니다. 광양에는 언제 가신 거죠?

허남석: 대학 졸업 후 1974년에 당시 포항제철에 입사했습니다. 포항에서 10년 정도 있다가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1985년에 광양제철소 초창기 멤버로 합류했죠. 당시 고로에서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제선공장은 제가, 쇳물로 강철을 만드는 제강공장은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이 맡았어요.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사명감으로 준비에 매진한 끝에 1987년 대한민국 두 번째 제철소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손욱: 당시만 해도 철강업뿐만 아니라 대부분 제조업체에서 안전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강조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허남석: 그때만 해도 워낙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아무리 안전을 외쳐봐야 생산에 밀려 뒷전이었죠. 공기 단축, 증산이라는 말이 항상 안전 앞에 있었습니다. 제선은 뜨거운 쇳물을 다루다 보니 화상, 가스 누출 등 사고가 잦았어요. 제선부장으로 승진한 후부터 안전에 힘쓰기 시작했습니다. 부장이 직할하는 공장만 6~7개, 직원은 1000명 정도 됩니다. 협력업체 직원도 1000명이 넘죠. 제철소에서 부장 정도 되면 비로소 자기 경영을 펼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져 너무 힘들던 차에, 비로소 안전경영을 강조하기 시작했죠.

손욱: 안전한 작업환경을 위한 시스템을 어떻게 갖춰가셨습니까? 업계에서 ‘살아 있는 안전’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허남석: 제 전임 부장도 안전을 무척 강조하셨어요. 하지만 사고는 매 순간 되풀이됐죠. 급기야 ‘우리 제선부는 어쩔 수 없나 보다’는 체념이 작업 현장 전반에 뿌리내렸습니다. 그때부터 ‘똑같은 방법으로는 어렵다. 근본적으로 악습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직원들의 의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결심했죠.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작업표준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이를 무시하기 일쑤였고, 직원들 스스로도 자신이 얼마나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1995년 ‘제선인의 훈’ 5개 항목을 제일 먼저 만들었습니다. 불안전 행동을 지적받으면 고마워하고, 동료의 불안전 행동을 과감히 지적해 안전한 일터 만들기에 노력한다는 내용이죠. 교대시간이나 모임 활동이 있을 때마다 이를 복명 복창하면서 머릿속에 완전히 각인되도록 했습니다. 또 한 달에 5건 이상 동료의 불안전 행동을 지적하게 했습니다. 물론 지적하고 지적받는 행위 바탕에는 모두 감사히 여기는 마음을 강조했어요. 점점 직원들 스스로 서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고, 지적을 받아도 감사히 수용하는 자세를 갖추게 됐어요. 리더의 간절함과 진정성이 직원들에게 먹혀들어간 거라 봅니다. ‘우리 부장이 건성으로 하는 게 아니구나, 진정성이 있구나’ 하는 마음이 통했어요. 그렇게 해서 100만 시간, 200만 시간 무사고를 이뤄갔습니다. 저는 물론 제선부 직원 모두가 놀라운 경험을 한 거죠.

손욱: 인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현장의 구체적인 안전 시스템입니다. 어떻게 만드셨습니까?

허남석: 반장, 주임 같은 현장 책임자들부터 안전의식을 갖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툴박스미팅’이라고 안전을 주제로 한 사례 발표 경진대회를 정례화했죠. 선의의 경쟁을 유도한 겁니다. 처음에는 일하기도 바쁜데 이런 것까지 해야 하냐며 불만도 있었어요. 하지만 점차 직원들이 주도적으로 개선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부장 대신 현장 책임자들이 아이디어를 내놓고 직원들이 이를 따라오게 하니 스스로 불합리한 점들을 찾아 발표하며 고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제선부부터 안전 시스템을 갖춰놓은 다음에 계속 토론을 유도했어요. 이를 집단지성으로 발전시켜가면서 프로세스를 바꿔나갔죠. 결국 1997년 9월에 500만 시간 무사고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100점 만점에 40점 그친 안전 평가


손욱: 당시 유럽이나 미국, 일본같이 우리보다 산업 경쟁력이 앞서 있던 나라들과 비교하면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허남석: 질문을 들으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세계적으로 작업환경이 가장 안전한 곳이 듀폰입니다. 호주의 BSL 제철(Blue Scope Steel Limited)도 3년간 듀폰의 컨설팅을 받았죠.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1996년 BSL 관계자를 초청해 우리의 안전관리 제도를 점검해달라고 했어요. 당시 200만 시간 무사고를 달성했던 터라 자신감이 있었고, 무엇보다 제선부의 안전성을 검증받고 싶었습니다. 방문 이틀째 되는 날 어떤가 물었지요. 그랬더니 웬걸요. “100점 만점으로 치면 우리는 80점, 너희는 40점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너희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답을 내심 기대했는데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손욱: 40점이면 기대치 절반에도 못 미쳤다는 건데 이유가 뭐였습니까?

허남석: 제선부는 철광석을 녹이는 고로가 주요 작업 현장입니다. 당시 BSL 관계자가 100m 훌쩍 넘는 고로 안을 보수하는 작업을 참관했는데, 작업자들이 안전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담배꽁초까지 아무 데나 버리더랍니다. 작업 중 에너지원 차단도 이뤄지지 않았고요. 엄밀히 말해 고로 보수는 제선부 일이 아니에요. 주로 외부 인력들이 맡았고, 그것도 정비부 소관이었죠. BSL 관계자에게 “이건 내 소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더니 “제선부 지역에서 이뤄지는 모든 작업은 제선부 소관”이라고 하더군요. 호주에선 그렇게 한다면서요. 작업을 대하는 기본적인 인식 자체가 우리와 달랐던 겁니다. 이른바 작업 현장에서 모든 걸 주관하고 책임지는 ‘에어리어(area)’ 개념이었죠. 자부심이 컸기에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손욱: 당연히 후속 작업이 이뤄졌겠죠?

허남석: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죠. 일단 제선부가 관할하는 현장에서 이뤄지는 작업은 모두 제선부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공표했습니다. ‘제선지역 통합 안전활동’을 전개해 제선부에 들어오면 제선부 안전기준을 따르는 에어리어 개념을 적용했죠. 1998년에는 작업환경 안전과 직원 건강을 위해 금연공장 선포식도 열었어요. 조업·정비를 통합하는 조직 개편도 구상했습니다. 작업 전문성에서 프로세스 중심으로 전환한 거죠.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2006~2008년 제철소장을 맡아 비로소 통합을 이뤄냈습니다.

손욱: 대개 중후장대 산업이 비슷한 거 같습니다. 예를 들어 설비 내부에 작업하러 들어가면 가스, 전기 등을 다 차단해야 하죠. 자기들끼리는 약속하고 들어간다 해도, 엉뚱한 사람이 만지는 실수가 나오곤 합니다. 그럴 때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거죠. 잠금(로킹)장치를 해놓는다 해도, 그걸 또 누구든 열 수 있어요. 그래서 열쇠 박스를 또 관리하게끔 하죠.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안전 문제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이중삼중 시스템을 만들어놓는 겁니다.

허남석: 우리도 태그 부착 방식을 자물쇠, 즉 시건장치로 바꿨죠. 태그를 달아봤자 밸브를 열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우리 직원들을 BSL로 직접 보내서 벤치마킹했습니다. 설사 실수를 하더라도 재해가 안 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였죠. 대표적인 게 ‘ILS(Isolation Locking System, 모든 설비에 안전장치를 해 우발적인 사고를 막는 시스템)’ 도입입니다. 에너지원을 사전에 차단 격리하고 잠그는 시스템인데요. 밸브 잠금장치에 이어 잠금장치 박스를 또 로킹하고 암호를 걸어 놓는 방식입니다. 작업이 끝나고 책임자가 승인해야 로킹을 풀어주죠.

손욱: 현장에서 반발은 없었습니까? 작업 효율에 밀려 안전이 뒷전이기 십상이지 않습니까?

허남석: 처음엔 로킹을 푸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불편하다며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럴수록 호주에 몇 번이나 직원들을 보내서 실제 눈으로 보게 했죠. 제선부가 가장 먼저 ILS를 도입했고, 제철소장을 맡으면서는 전 사업부에 시행하게 했습니다. 압연 부서에서는 특히나 반발이 컸어요. 압연은 거대한 롤러로 철판을 가공하는 과정인데, 작업 중 문제가 생겨서 수리하려면 전원을 끊어야 해요. 그런데 그전까지는 전원장치를 누구나 쉽게 만질 수 있었어요. ILS 이후로는 아예 접근 자체를 못 하게 만들었습니다. 시스템을 도입하기 앞서 “정말 안 되느냐” 물으니 “어렵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압연 책임자를 호주로 보냈습니다. 그 후 “할 수 있겠느냐” 물으니 그제야 오케이하더군요. 제철소 전체에 ILS를 도입하는 데만 2년이 걸렸습니다. 이후 포항으로도 확산했죠. 제철소 전체 공정에 ILS를 도입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모든 설비에 로킹 장치를 적용해야 했으니까요. 방대하면서도 매우 체계를 요하는 작업이죠. 예산도 많이 들고요. 하지만 이후 사고율이 눈에 띄게 떨어지면서 직원들의 인식도 바뀌었습니다.

리더의 인식이 안전 시스템을 완성한다


손욱: 역시 리더의 생각과 결단, 실행이 중요하다는 걸 말씀을 들으며 다시 되새기게 됩니다.

허남석: 광양제철소 상무가 돼 전 공정을 관장하게 된 게 2003년 무렵입니다. 그때만 해도 부 단위 안전활동이 제각각이었어요. 조업, 정비 등 파트마다 다 달라 프로젝트 주관부서의 조정 능력이 미흡했죠. 안전 슬로건만 있지 실천도 안 되고 있었고요. 그래서 전소 통합 안전표준을 수립했습니다. 더 중요한 건 실천이에요. 요즘 마스크 안 쓰면 지하철 못 타는 것처럼, 안전검사(Safety Audit) 활동을 강화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부서를 방문해서, 부장이 직접 어떤 안전활동을 했는지 주도해서 발표하게 했어요. 제가 직접 안전 스태프로 참여해 공장별로 체크했죠. 처음 안전 수준을 엄청나게 끌어올렸습니다. 그때부터 안전의 대명사로 불리기 시작했죠. 부소장 1년 하고 난 뒤 본사 기술개발실장, 연구소장으로서 3년간 일했습니다. 이후 2006~2008년에 광양제철소장을 맡아 포스코의 안전 시스템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비전이 자동차 강판 전문 제철소였는데 이를 3년 만에 구현했죠. 안전과 시스템이 바탕이었습니다.

손욱: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워도 포스코가 잘 버티는 이유가 자동차 강판에 강하다는 겁니다. 도요타는 품질이 떨어지면 받아주지 않는 걸로 유명하죠. 그걸 다 통과해서 납품에 성공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성과입니다. 고부가가치 강판으로 포스코의 경쟁력 기반을 갖춘 것이죠. 그 바탕에 안전을 우선시하는 의식과 시스템이 있었군요. 무재해 1000일이면 3년간 사고 한 번 없이 제철회시가 돌아갔다는 건데,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예측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다만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 근본 원인을 파고들어가서 진짜 원인을 찾아 대책을 세우고 제도를 만들면, 다음에 재발되지 않는 것이죠. 하지만 대부분은 응급조치에만 급급합니다. 누전되면 전선을 테이프로 감든가 교체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죠.

허남석: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특히 현장을 관리하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데요. ‘산업재해 사망률이 높다’는 건 법과 표준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준법정신과 안전의식이 약하다는 거죠. 이를 지속적인 안전교육과 훈련으로 바꿔내야 하는데, 결국 리더가 얼마나 안전의식을 중시하고 실천 의지가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세월호 사고에서 얻은 교훈이 바로 그것이죠. 윤리의식의 실종, 법과 규정 미준수가 원인 아니겠습니까? 선장의 윤리의식도 큰 문제가 됐죠. 결국 재해의 고리를 끊는 핵심은 리더의 간절함과 진정성입니다.

손욱: 세월호도 어떤 기상 조건에서는 출항해선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법과 규정을 어긴 것이죠. 화물 적재 규정, 엔진 가동 규정 등 모든 게 무시됐어요. 누군가 화물 과적을 지시했을 테죠. 리더의 관리감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선원과 관련자들에게 법과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윤리의식이 없었다는 거예요. 세월호뿐 아니라 우리 사회 많은 분야가 아직 이렇습니다. 독일에선 운전자가 규정을 어기면 반드시 고발당해 벌금을 물게 마련이에요. 노인들이 창가에 앉아서 오고가는 차들을 보고 있다가 누군가 신호를 위반하면 신고하는 거죠. 카메라나 경찰이 없어도 될 정도입니다. 모두가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려면 정해진 룰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인식 때문이죠.

허남석: 법규를 어겼을 때 공동체가 나서 적극적으로 고발하는 건 윤리의식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존감이 공동체 의식으로 승화된 거죠. 자존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비윤리적인 일에 발을 담그기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 전체의 윤리의식을 높이려면 개개인의 자존감부터 강화해야 합니다.

손욱: 자존감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선행을 하면 됩니다. 그런 마음은 감사가 있으면 생기죠. 모든 것에 감사하면 도움과 선행을 펼치게 되고, 그게 쌓이면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윤리의식을 갖추게 됩니다. 선진국에선 길거리에서 들리는 말의 26%가 ‘땡큐’라고 해요. 결국 리더가 해야 할 일은 감사와 배려라는 조직문화 만들기입니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법을 정하고 벌금을 더 내게 하는 등 처벌을 강화해서 사고를 막으려 하죠. 근본적인 처방과는 거리가 멉니다. 문화 자체를 바꿔야 하죠. 세월호라는 가슴 아픈 사고 이후 어떤 제도와 시스템이 바뀌었습니까?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제도와 시스템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죠.

허남석: 2010년 포스코ICT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긍정적인 조직 만들기에 주력한 것도 시스템 이전에 문화를 먼저 갖춰야 한다는 절실함 때문이었습니다. 광양제철소에선 재해 없는 현장, 즉 안전과 이를 통한 품질 개선이 꿈이었다면, 포스코ICT에선 기업문화 정착을 기반으로 조직 통합에 주력했죠. 당시 포스코ICT는 그룹 엔지니어링 업체인 포스콘과 막 합병한 처지였어요. 이질적인 두 사업체의 화학적 결합이 결국 제철소의 안전경영에서 출발해 성공한 셈입니다.

손욱: 결국 진짜 선진국은 GDP가 아니라 안전한 사회인가 아닌가에서 갈립니다. 그런 개념으로 안전을 봐야 해요. 정신문화를 바꾸는 행복지수가 선진국의 기준이죠.

허남석: 정부도 안전을 강조하는 건 좋은데, 하드웨어적인 것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요. 새로운 규제나 법규, 즉 제도와 규제 강화에 집중하기 전에 더 중요한 게 인식의 전환입니다. 정신과 문화를 강화해야 해요. 두 개가 어긋나면 사회 전체가 삐그덕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 손욱 전 회장은… 40여 년간 삼성그룹에서 근무한 정통 ‘삼성맨’이자 국내 최고의 기술경영자(CTO)로서 평생을 혁신에 전념해왔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을 최측근에서 보좌했고, 삼성그룹의 프로세스 혁신과 정보 시스템 구축도 그의 작품이다. 삼성인재개발원장, 삼성종합기술원장 이후 농심에서 현역 생활을 마친 손 전 회장은 현재 한국형리더십연구회 회장, 감사나눔운동 전파 등 사회문화 운동으로 또 다른 혁신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2009호 (20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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