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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 유라통상 대표 

명품 장수기업의 꿈 

1920년대 세계 최초로 체인톱을 개발한 독일의 스틸. 미국 내 점유율 1위 잔디깎이 제조사 론 모어, 세계 최고 품질로 23개국에 화목용 장작 제조기를 수출하는 핀란드의 마셀란 코네 오위. 유라통상이 독점으로 공급 계약을 맺은 글로벌 기업들이다.

▎유라통상은 30여 년간 미국·유럽 명품 브랜드의 장비를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고 있다.
1985년 설립된 유라통상은 건설업·임업·조경업·농업 관련 장비·부품 전문 기업이다. 미국, 유럽 국가의 선진화된 제품을 수입해 국내 대형 제조사와 대리점에 납품한다. 1987년 미국의 브릭스 앤스트래톤(BRIGGS & STRATTON CORPORATION)과 독점 공급 계약을 맺으며 사업의 막을 올렸고, 1993년 독일의 스틸(STIHL)과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해 시장에서 입지를 굳혔다. 브릭스앤스트래톤과 스틸은 업계에서 세계 최고로 불리는 명품 브랜드다.

“브릭스앤스트래톤은 세계 최대의 소형 가솔린 엔진 제조사이고, 스틸은 1920년대 벌목에 쓰이는 체인톱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독일 기업입니다. 브릭스앤스트래톤에서 가솔린 엔진, 발전기, 잔디깎이 등 건설 및 조경 관련 장비를 수입하고 스틸에선 체인톱, 벽체절단기 등 농업·임업·조경 관련 장비를 들여오고 있습니다. 유라통상은 이들 기업과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약을 이어오고 있어요.”

지난 7월 31일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유라통상 본사에서 만난 이창수(46) 유라통상 대표가 한 말이다. 그는 “이 외에도 유라통상은 10여 개 기업과 계약을 맺고 있는데, 고품질 제품만 수입하기 위해 현지의 공장 시스템, 직접 제조하는지 등을 꼼꼼하게 확인해 계약을 진행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유라통상은 브릭스앤스트래톤, 스틸 외에도 브릭스앤스트래톤의 자회사인 미국의 페리스(FERRIS)·빌리 고트(BILLY GOAT), 호주의 빅타(VICTA), 핀란드의 마셀란 코네 오위(MAASELAN KONE OY) 등 5개 사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탈리아, 중국의 조경업·임업 관련 장비 브랜드 5개 업체와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1980년대, 일찌감치 건설업·임업·조경업 관련 장비 산업의 시장성을 보고 유라통상을 창립한 이는 평생을 무역인으로 살아온 이 대표의 부친 이종관 회장이다. 이 회장은 1980년대 초부터 건설업·농업·임업 등과 관련된 해외 유명 제조사들을 탐방했고, 이들과 신뢰를 쌓기 시작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그의 출중한 영업력은 업계에서도 유명해 이 회장이 해외 출장을 갈 때면 삼성·현대 등 대기업에서 출장지를 추적해 따라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제가 듣기론 1987년 브릭스앤스트래톤과 독점계약을 맺을 당시에도 현대와 계약 경쟁이 붙었는데 결국 이 회장님의 손을 들어줬다고 해요. 그뿐만 아니라 당시는 국가에서 수입을 허락한다는 허가증이 있어야만 수입을 할 수 있던 시기였어요. 허가를 못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회장님이 무역업을 하며 각별하게 지내던 위스콘신 주지사가 직접 한국에 방문해 허가받는 걸 도와줬다고 들었습니다.”

브릭스앤스트래톤은 1993년 유라통상이 독일의 스틸과 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도 큰 도움을 줬다. 이 대표는 “당시 우리나라에 스틸의 유통사가 있었지만 스틸 측에서 불만족스러워 다른 곳을 찾고 있었다”며 “브릭스앤스트래톤에서 우리 회사를 추천해 계약을 맺게 됐다”고 설명했다.

업력이 오래되지도 않은 데다 대기업만큼 자금이 충분하지도 않았던 유라통상이 세계적인 장비 제조사들의 독점 계약권을 따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이 물음에 이 대표는 ‘성실함과 신용’이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유라통상의 경영 철학은 정도경영입니다. ‘국가와 거래처에 거짓말을 하지 말자’는 신념으로 사업을 해왔습니다. 30년 넘도록 외상 한 번 한 적이 없어요. 나사 한 개를 사도 세금계산서를 끊을 정도로 정직합니다. 또 한 가지 산업 분야에만 매진한 것도 우리의 강점이죠. 많은 기업이 돈 좀 벌면 부동산에 투자하고, 다른 사업거리 찾곤 하는데 유라통상은 이 산업에서만 묵묵히 일했어요. 성실함으로 쌓은 신용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유라통상은 단순한 유통 채널에 그치지 않고 애프터서비스(AS), 제조까지 뛰어들어 사업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이 대표는 “100% 자체 제작은 아니지만 1987년부터 브릭스앤스트래톤의 엔진을 수입해 한국 실정에 맞는 도로커터기, 발전기, 펌프 등을 만들고 있다”며 “이 중 뱅가드라는 이름의 도로커터기는 국내 점유율이 70~80%에 이를 정도로 잘 나간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같은 건물 지하 1층에 있는 AS실로 안내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각종 부품과 장비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고, 직원들은 장비를 수선하느라 분주했다.

“웬만한 부품은 모두 구비하고 있습니다. 수리는 물론 뱅가드 같은 우리 제품들도 이곳에서 제조하죠. 우리에게 없는 부품이 필요할 때는 해외에서 부품을 들여오는데, 고객에게 배송비는 따로 받지 않습니다. 어느 품목이나 수입품의 가장 큰 단점으로 AS의 불편함이 지적되는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 AS를 강화한 것입니다. 국산품처럼 신속하고 저렴하게 고쳐주죠. 최근엔 수요가 늘어 올해 말쯤 충북 혁신도시에 생산시설을 신설해 이사할 예정입니다.”

2016년부터 이창수 대표 체제에 들어간 유라통상은 대내외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맞고 있다. 새로운 브랜드와의 계약으로 글로벌 시장이 확대됐고, 인재 양성 등 사회 공헌 활동으로 국내 제조업의 혁신에 기여하고 있다. 놀라운 건 이 대표는 무역 관련 경험이 전혀 없는 삼성전자 출신의 IT 디자이너라는 점. 다른 분야의 전문가였던 이 대표가 유라통상을 어떻게 이끌고 있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글로벌 브랜드 확장과 인재 양성에 주력


▎이창수 대표가 직원과 AS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유라통상에 입사하며 가장 먼저 바꾸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간단히 내 이력을 말하자면, 미국에서 IT 디자인을 전공하고 미국의 IT 기업, 삼성전자에서 사용자경험디자인(UX) 1세대로 관련 업무를 했다. 그러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2013년 유라통상에 입사했다. 산업, 업무 프로세스 등 모든 게 새로웠다. 솔직히 다소 선진화되지 못한 부분이 많이 보였다. 특히 결재나 비용 처리 등 대부분의 업무를 수기로 하고 있었는데, 직접 해보니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우선 업무 프로세스를 전산화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미국과 국내 대기업에서 전산 프로세스를 보고 익힌 데다 IT 관련 작업이라 자신 있었지만 구축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렸다. 프로그램을 사용하기만 했지 어떤 회사가 잘 만들고, 돈이 얼마나 드는지를 몰랐던 거다. 그래서 각종 세미나를 다니고 스마트팩토리 관련 공부를 하며 조금씩 그림을 그려나갔다. 이젠 영업 관리, 결재, 회계, 물류관리, 재고관리 등을 모두 전산화했다. 사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약간 회의감이 들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재택근무를 하게 되며 가장 잘한 일이란 확신이 생겼다.

유라통상이 값비싼 명품 장비만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계는 무기와 같아서 안전과 직결된다. 품질이 좋아야 안전성 면에서도 안심할 수 있다. 또 우리가 계약한 브랜드들은 대부분 삼림 관련 규제가 까다로운 국가들의 것으로, 환경문제까지 신경 쓰고 제품을 만든다. 예를 들어 기계를 작동하게 하는 체인오일을 시중에선 품질이 안 좋은 저렴한 오일을 쓸 때가 많은데 연기, 찌꺼기 등이 삼림에 매우 안 좋다. 우리가 취급하는 브랜드의 제품들은 대부분 식물성, 즉 친환경적인 오일을 쓰기 때문에 삼림을 파괴하지 않는다.

자체 브랜드를 만들 생각도 있나.

국내에서 임업, 조경, 농업 쪽 장비는 99% 이상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산업 규모가 작아 새롭게 장비를 개발하고 제조하는 것보단 좋은 장비를 수입해 들여오는 게 이익인 셈이다. 제조를 해도 중국, 베트남 등과 가격경쟁에서 이기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제조는 국가의 힘이다. 유라통상 또한 언젠가 제조를 하고 자체 브랜드도 만들고 싶다.

대표로 취임하고 나서 세 군데와 추가로 계약했다. 비결은.

대기업은 브랜드의 가치를 중요시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브랜드의 가치를 올리기보단 영업과 판매에만 집중한다. 우린 중소기업이지만 브랜드 가치를 올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 일환으로 장비를 가장 잘 홍보할 수 있는 전시회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단순히 장비들을 순서대로 디스플레이하던 관습에서 벗어나 스토리를 담은 부스를 기획하는 게 우리 전략이다. 한번은 농가의 창고처럼, 한번은 박물관처럼 만들어 방문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또 제품 브로셔를 업그레이드해 제작하고 있다. 종이부터 내지 디자인까지 모두 세련되게 바꿨다. 모두 디자인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브릭스앤스트래톤이 엔진과 완제품을 우리와 다른 회사 두 채널을 두고 따로 공급하고 있었는데, 채널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유라통상을 선택했다. 이를 계기로 브릭스앤스트래톤의 3개 자회사와 모두 계약을 진행하게 됐다. 전시 부스, 브로셔 등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제대로 높여 홍보한다는 점을 높이 샀다고 전해 들었다.

2018년부터 교육기관과 산학협력 MOU를 활발하게 맺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농업, 임업, 조경업은 아직 인식이 좋지 못하다. 관련 교육기관은 한국산림과학고, 강원대·영동대의 산림 전문학과 세 곳뿐이다. 이곳에서도 이론 수업만 진행하고 실습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이 중 한 곳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기자재가 하나도 없어 충격이었다. 컴퓨터 수업을 컴퓨터 없이 배우고 있는 셈이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취업 후 현장에서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 학생과 기업에 모두 손해다. 그래서 학교와 현장(기업)의 괴리를 줄여주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세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기자재를 무상 공급하며 주기적으로 직원들을 보내 기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해마다 고등학생들을 인턴으로 채용해 교육도 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임업, 조경업, 농업이란 산업은 아직 파이가 너무 작다. 하지만 산업을 단기간에 키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을 먼저 키우고, 그들이 서서히 산업을 키워나가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학생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목표는.

외국엔 100년 넘은 기업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다. 유라통상을 한국을 대표하는 장수 기업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기업문화와 일하는 방식 등을 수시로 바꿔나가며 급변하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 지금 유라통상은 2세대다. 3세대, 4세대, 그다음 세대에도 굳건한 기업이 되길 바란다.

인터뷰를 마치고도 한동안 그는 평소 고민들과 꿈꿨던 계획들을 쏟아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세대가 다양합니다. 가치관과 문화가 다른 이들을 잡음 없이 통합하려니 고민이 깊어요. 더 늙기 전에 에코피스리더십센터처럼 개발도상국 마을의 리더를 가르치고 키워서 그 마을을 재건하는, 의미 있는 일도 해보고 싶네요. 일이며 대외활동이며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은퇴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일하려고 합니다.(웃음)”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

202009호 (20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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