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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의 무역이 바꾼 세계사(14) 

기술과 부의 지도 다시 쓴 도자기 무역(1) 

몽골제국 시대 이후에는 도자기 산업의 패권에 따라 국가의 부의 흐름이 바뀌었다. 세계 각국의 바닷속에서 발굴되는 해저 유물선에는 도자기만큼 많이 실렸던 품목이 그리 많지 않다. 특히 근대의 도자기 기술은 요즘의 반도체 기술과 비슷한 지위라고 보면 된다.

유라시아 장사꾼들에게 도자기는 비단, 향료, 말과 더불어 가장 돈 되는 히트 상품이었다. 필자가 초등학생이었던 1970년대 경기도 파주에서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미제 코닝 그릇들을 보고 순백의 깔끔함과 가벼움에 경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류가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해외의 신기한 상품이 주는 경외감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경외감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컸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 50여 년 동안 모아온 그릇들을 보면 내가 출장을 다니면서 사 온 한국 도예품과 중국, 동남아 등의 관광 기념품들도 있지만 가장 많은 품목은 어머니와 아내가 수십 년간 틈틈이 수집해온 유럽과 미국의 그릇들이다. 남자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머니와 아내의 그릇 사랑을 보면 여자들의 도자기, 그릇 사랑은 도자기의 탄생과 같이 시작된 듯하다. 물이 새지 않으면서 아름답고 가볍고 단단한 그릇을 만드는 기술은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류의 기술과 부의 지도를 바꿔왔다.

도자기를 만들 때 온도를 올리는 가마 기술이 힘든 부분이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청동기, 철기 등 금속 제련 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마이센 도자기로 잘 알려진 뵈트거는 원래 연금술사로 금을 만들려다 실패하고 유럽 최초의 자기를 만들었다. 한반도에서는 삼한 시절부터 철을 많이 수출했는데 아마 도자기 생산 기술과 연관 있을 것이다.

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는 도자기 국산화로도 큰돈을 벌었을 것이다. 또 중국이 도자기를 잘 만들었다고 도자기를 중국의 옛날 이름 진나라에서 따온 ‘China’라고 부를 정도다. 전 세계 어떤 박물관을 가도 옛날 도자기를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도자기가 오랜 기간 원형이 보존되는 특성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는 인간, 특히 여자들이 가장 가지고 싶어 하는 상품이었고 또 인류 역사상 큰돈이 되는 사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특히 몽골제국 시대 이후에는 도자기 산업의 패권에 따라 국가의 부의 흐름이 바뀌었다. 특히 근대의 도자기 기술은 요즘의 반도체 기술과 비슷한 지위라고 보면 된다.

청화백자의 당초문(唐草文)은 당나라 풀 무늬 또는 이국풍의 덩굴무늬란 의미이지만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그리스에서 발전했고, 유라시아 여러 지역에서 독특한 형식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13세기 몽골제국 때 만들기 시작해 인류사에 손꼽을 만한 히트 상품인 청화백자의 무늬로 사용됐다. 페르시아와 유럽은 중국 청화백자에 열광했고 명나라, 청나라는 떼돈을 벌어들였다. 유라시아 전역에서 청화백자에 대한 선호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17세기 베스트셀러 『하멜 표류기』가 불러 온 유럽의 조선 판타지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 중국 도자기관의 청화백자 코너.(출처: 중앙포토)
임진왜란 직전, 16세기 일본의 오다 노부나가는 조선제 막사발 하나를 주면서 피한 방울 묻히지 않고 시바타 군대가 복속하게 했다. 조선의 다완을 탐냈던 일본은 도자기 전쟁이라 불리는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조선 도공을 데려가 도자기 수출로 돈을 번 세력들은 그 돈으로 철선과 대포를 사서 메이지 유신에 성공했다. 근대 유럽에서는 좋은 도자기 한 점이 집 한 채보다 비쌌고, 독일 작센의 아우구스트 2세는 도자기 151점을 받기 위해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에게 정예기병 600명을 넘겼다. 영국의 웨지우드는 산업혁명 때 도자기를 대량 생산하면서 최초의 근대적 공장으로 마케팅과 산업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오늘날 도자기 기술은 반도체와 통신, 우주선에 쓰이는 실리콘, 세라믹으로 발전했고 1800도 고열을 견디는 우주왕복선의 몸체로도 쓰인다. 21세기에는 현대판 도자기 기술인 반도체 기술이 없으면 패권국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중국이 반도체 굴기에 국운을 걸고 있고, 미국은 필사적으로 반도체 기술을 지키려고 하고 있다. 한국도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 리더십을 놓친다면 폭망할 상황이다.

요즘은 중국 경제가 급부상해서 중국 도자기들이 세계 경매시장에서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조선 도자기들은 세계에서 제일 비싼 도자기였을 정도로 조선은 중국과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의 도자기를 생산했었다. 조선의 도자기 기술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갔고, 일본의 도자기 기술은 다시 유럽으로 넘어가 꽃을 피웠다. 근대의 세계경제를 이끌었던 도자기 무역으로 중국(송, 원, 명, 청)과 일본이 돈을 쓸어 담을 때 조선은 세계적 기술로 뛰어난 도자기를 만들고도 돈을 벌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선원이었던 하멜은 일본으로 가다가 표류하여 13년간 조선에 억류돼 겪었던 고된 여정을 증거 기록으로 제출하고 14년간 밀린 월급을 받아냈다. 이 기록이 『하멜 표류기』로 출간됐다. 미지의 나라 조선을 유럽에 소개한 이 책은 50년간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으로 유럽 사람들은 조선에 대해서 많은 사실을 알게 됐지만, 네덜란드 선원들이 13년간 머물렀던 조선은 중화사상에 갇혀 이들을 통해 중국 바깥 세계의 기술과 정세를 알아내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 17세기 전 세계 바다를 휩쓸고 다녔던 네덜란드는 베스트셀러가 된 『하멜 표류기』에 자극을 받아 그동안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조선과의 교역을 바로 추진했다.


▎네덜란드 호린험에 세워진 헨드릭 하멜의 동상. (출처: Wikimedia)
그 이전부터 네덜란드는 조선과의 직거래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조선과의 무역을 독점한 대마도 사람들이 세 배 장사를 하는 것을 보고 자기들이 하면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조선에 세 차례나 원정대를 보냈지만 풍랑으로 실패했다. 1609년에는 당시에 귀했던 후추를 60㎏이나 들고 대마도(對馬島) 번주를 찾아가서 조선과의 무역을 허락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듬해 네덜란드의 군주 마우리츠는 당시 막부의 최고권력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조선과 무역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국서를 보내기도 했다. 네덜란드와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할 때 접촉을 시도했지만, 조선의 무역독점권을 가졌던 대마도 번주가 이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콧대 높고 지체 높은 조선의 유학자들도 영국과 네덜란드의 야만인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당시 조선은 바다를 철저하게 막았다. 조선에 들어올 수 있는 외국 배는 특별히 허가된 일본 배들뿐이었다. 조선과 일본 간 무역은 대마도가 독점하고 있었고 네덜란드는 이런 시장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하멜과 같이 조선에 억류됐던 선원들은 조선에 후추, 사슴가죽, 백단향, 유럽산 직물을 팔고 조선의 도자기를 수입한다면 대박이 날 것이라고 보고했다. 당시 유럽의 왕과 귀족, 상인들에게는 중국산 청화백자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청나라가 남하하면서 정성공(鄭成功) 등 명(明)나라 잔당을 고립시키기 위해 바다를 막아 도자기 수출을 막아버리는 해금 정책을 시행했다. 청화백자 공급선이 끊기자 유럽 장사꾼들은 미칠 노릇이었다. 그래서 네덜란드는 중국 도자기의 대안으로 조선 청화백자를 수입하고 싶어 했다.

『하멜 표류기』가 출간되고 이듬해인 1669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000톤급 상선에 ‘코레아(Corea)’라는 이름까지 붙였고, 1670년 코레아호는 조선과 직교역하기 위해 동인도회사 본부가 있던 자카르타에 도착했다. 동인도회사 본부는 출항 일정을 잡으려고 나가사키 앞 인공섬 데지마에 있던 일본 지점장인 데지마 상관장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부정적인 답장이 돌아왔다. 네덜란드가 조선과 직접 교역을 하면 일본 막부가 데지마 상관을 폐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조선인들이 어떤 거래도 원치 않을 것이고, 가난한 농업국가라서 장삿거리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당시 일본은 동인도회사에서 수입한 무명과 후추를 조선에 되팔면서 수십 배, 수백 배 남는 장사를 하고 있었으니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조선의 직거래를 결사적으로 막은 것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결국 미래가 불확실한 조선시장을 포기하고 오랫동안 짭짤하게 이익이 났던 일본 시장을 지키기로 결정했다. 16세기부터 조선의 은 제련 기술을 수입해 일본의 은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7세기 초 일본은 전 세계 은의 3분의 1을 생산했고, 임진왜란에 들어간 군자금도 이 은을 팔아서 마련했다. 페루의 포토시 광산과 더불어 세계적 은 광산이었던 이와미 광산의 은 매장량 덕분에 일본은 별 볼 일 없던 주변국에서 벗어나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일본은 은을 수출하고 중국 비단, 도자기, 생사와 조선의 인삼, 면포 등을 수입하며 아시아 무역에 참여하고 유럽의 지식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했다.


▎한국에서도 출판된 『하멜표류기』
막대한 군사비용으로 적자에 허덕이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지속적으로 고수익이 창출되는 최대 시장, 일본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코레아호의 조선 출항 무산은 결과적으로 일본 도자기의 유럽 수출을 가속화했다. 만약 코레아호가 조선에 도착해서 무역을 요청했다면, 조선은 이를 받아들였을까?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전 세계에서 수준급의 백자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가 명나라와 조선뿐이었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까지 토기만 만들어 쓰고 자기는 중국 대륙에서 수입해 쓰다가 자기 기술까지 도입해서 삼국시대부터 자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통일신라 말기 중국 대륙의 혼란기에 중국 도공들이 한국으로 망명했고, 장보고가 동아시아의 해상을 장악했을 때는 당나라 월주요의 해무리굽 청자 생산기술을 빼내 와서 서남해 일대는 이미 토기를 사용하는 문화권에서 벗어나 자기를 사용하는 문화권으로 진입하게 됐다. 당시 해무리굽 청자는 장보고 선단의 최대 수출품으로 일본과 중국에 수출했다.

※ 김정웅 대표는…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약 30년간 4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 2000년 기업 간 전자상거래회사인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반도체 중고장비 분야 세계 1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자폐전문 박람회 Austism Expo 조직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5년 6월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10월 무역의 날 대통령상 수상, 2018년 9월 Forbes Asia 200대 유망 기업에 서플러스글로벌이 선정됐다. 2015년부터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간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와 인류 무역사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들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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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호 (202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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