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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생각 여행(24) ‘땅끝마을’이 들려준 시작 그리고 마감 

 


▎대한민국 남쪽 땅끝에 서 있는 ‘땅끝탑’. 이곳에서 시작해 북서쪽으로 중국·시베리아·유럽까지 거대한 대륙이 펼쳐지고, 남쪽으로 남해가 거대한 대양으로 연결된다.
어느덧 올해의 마지막 달 12월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어수선했던 지난해와 올해를 돌아보니 벌써 2년이 다 돼가는 시점이다. 달력이 한 장밖에 남지 않은 연말을 맞을라치면 많은 이가 한 해를 정리하고 또 새해를 계획하느라 분주해진다. 개인은 물론이고 기업과 공공기관들도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시작할 중요한 타이밍이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니 옛날 동양고전 『대학(大學)』에 나오는 ‘시작과 끝’에 관한 문구가 생각난다. “사물이나 사건에는 근본과 끝이 있고 일에는 마침과 시작함이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도(道)에 가까울 것이다(물유본말 사유종시, 지소선후 즉근도의: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올해는 어떻게 시작했고 무엇을 근본으로 했으며 어떻게 마감을 해야 할 것인가 곰곰이 떠올려본다.

매년 연말이면 신용카드 회사에서 새해 다이어리를 보내주곤 한다. 그 속에 재미와 의미가 있는 페이지가 등장한다. 처음 몇 장을 들추어보면 ‘퍼페추얼 캘린더, PERPETUAL CALENDAR(만세력, 萬歲曆)’라는 두 페이지가 있는데 “이 차트를 사용하면 1775년부터 2100년까지 모든 연도의 요일을 찾을 수 있습니다. 관심 있는 연도를 찾으십시오. 뒤에 오는 숫자는 14개 달력 중 하나에 해당합니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첫 페이지 왼쪽 반에는 1775년부터 2100년까지 325년 동안의 연도 뒤에 1에서 14까지 숫자가 있다. 나머지 오른쪽 반과 두 번째 페이지에는 14칸으로 정리되어, 위에는 1월부터 아래 끝의 12월까지의 달력이 있다. 재미로 다음 해인 2022년 1월 1일의 요일을 찾아보았다. 2022년의 뒤에 7이 있어 오른쪽 7번 달력에서 1월 1일을 찾아보니 토요일이다.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다시 2023년 1월 1일을 보니, 1번 달력에 1월 1일은 일요일이다. 스마트폰 달력으로 확인해보니 2023년 1월 1일은 확실히 일요일이다.

325년 동안의 만세력. 그 속에는 부모님 세대가 태어나서 별세하신 시간도 있고, 우리 또래가 태어난 날부터 오늘까지의 과거라는 시간, 앞으로 남은 한정된 생의 기간인 미래라는 시간도 포함되어 있을 터다. 이에 더해 우리 다음 세대의 인생도 포함해 세 세대의 인생 일정을 한눈에 보여준다. 선대 조상들은 무엇을 근본으로 하여 살아오셨고, 마지막은 무엇으로 마감하며 우리 세대에게 전수해주었을까? 우리는 무엇을 근본으로 하여 살아왔고, 또 향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리고 어떤 근본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며 마감할까? 우리 이후의 다음 세대는 무엇을 근본으로 삼아 미래를 살아갈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세상만사에 깃든 시작과 끝


▎키웨스트에 있는 ‘헤밍웨이 하우스’의 서재. 헤밍웨이가 저술할 때 사용한 타이프라이터가 인상적이다.
어려서부터 지도를 보거나 세계지리를 공부할 때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컸다. 미지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상과 풍습, 지형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특히 시작점과 마지막 지점에 호기심이 강했다. 시작과 끝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의 답을 찾기 위해서 어떤 때는 의도적으로, 또 어떤 때는 우연을 가장해 방문한 곳이 많다.

#1. 우리나라의 ‘땅끝마을’ 해남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지만 그저 마음속 막연한 희망이었을 뿐, 기회가 없어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러던 중 많은 동료와 해남에 골프 여행을 갈 기회를 맞았다. 내친김에 하루는 골프를 치지 않고 혼자서 해남 ‘땅끝탑’을 방문했다. 우리나라의 남쪽 땅끝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해안을 따라 잘 정리해놓은 산자락의 보드워크 위로 한참을 걸어가니 대한민국 남쪽 땅끝에 세워놓은 땅끝탑을 만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남해가 보이고 크고 작은 섬들이 멋진 풍광을 이루고 있었다.

아시아 대륙 동북쪽에 자리한 한반도. 그 남쪽 끝단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이곳에서 시작해 북서쪽으로는 중국과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대륙이 펼쳐져 있다. 남쪽으로는 남해가 거대한 대양으로 연결되어 있다. 거대한 대륙과 대양의 출발점이 바로 이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생각이 겹치면서 땅끝탑 옆에 게양된 태극기 주위를 돌아보며 ‘인증샷’도 몇 컷 남겼다.


▎‘미국 대륙의 남단’의 이정표인 부표에 ‘쿠바까지 90마일’이라고 쓰여 있다.
#2. 미국은 주재원으로 근무하며 살아본 적도 있고 출장도 수없이 다닌 나라다. 특히 헤밍웨이가 살며 저술 활동을 했던 미국의 남단인 키웨스트에 꼭 가보고 싶었다. 미국 대륙의 남쪽 끝이라는 상징성에 더해 헤밍웨이가 그 유명한 『노인과 바다』를 저술한 곳이 바로 키웨스트이기 때문이다. 벼르고 별러 발걸음을 실행에 옮긴 건 대략 20년이나 지나서였다. 드디어 기회가 되어 많은 섬을 연결한 고속도로 다리를 건너서 키웨스트군도 남쪽 끝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사람 키보다 좀 더 크고 풍선이나 조그만 우주선처럼 생긴 콘크리트 부표 조형물이 서 있었다. 부표 위에는 ‘쿠바까지 90마일, 미국 대륙의 남단 끝(90 Miles to CUBA/SOUTHERN MOST POINT, CONTINENTAL U.S.A.)’이라고 쓰여 있다. 이정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자니 마음속에 ‘시간이 길거나 짧게 걸릴 뿐 소망(Wish)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3. 뉴욕에서 현지 법인장을 하던 시기, 남미 대륙 북단에 있는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콜롬비아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에콰도르에 있는 ‘적도탑’을 방문한 기억이 떠오른다. 지구 한가운데를 가르는 적도의 한 지점이자 우리나라와는 거의 반대쪽에 위치한 곳이다. 지구의 배꼽 같은 이곳은 평생에 한 번 가보기가 어려운 곳이라서 나름 큰 의미를 부여하며 돌아보았다. 지구의 적도는 어디서 시작해 몇 나라를 거쳐서 어디서 끝날까?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그때 찍은 사진을 보여드릴 수 없어 너무 아쉽다.

#4. 미국 태평양 연안에 있고 우리 교민도 많이 거주하는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하면, 꼭 시간을 내서 서쪽 방향으로 드라이브를 해보기를 권한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산타모니카 해변을 거닐었다. 야자수가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과 탁 트인 서쪽으로 펼쳐지는 광대한 태평양을 만나면 뻥 뚫린 가슴으로 낭만에 젖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변가에 조그만 유원지가 있는데 눈에 띄는 이정표가 있다. ‘산타 모니카-66-트레일의 끝(SANTA MONICA-66-End of the Trail)’이라고 쓰인 66번 국도 표지판이다. 위키백과에서 설명을 찾아봤다. “미국 66번 국도(US Route 66)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군 산타모니카를 잇는 길이 3945km의 국도다. 이 도로는 1926년에 완공되었으며, 당시 미국 최초의 동서 대륙횡단 고속도로 중 하나였다. 1985년 미국 지도에서 삭제됐지만, 2003년 들어 복원이 마무리되었다. 현재는 주로 관광객들이 이용하며 옛 추억을 떠올리는 미국인들이 많이 찾는 미국의 도로 중 하나다. 윌 로저스 고속도로(Will Rogers Highway), 미국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 of America) 또는 모로(Mother Road)라는 명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미국 동쪽 끝의 대서양과 마주한 뉴욕에서 시작해 시카고를 거쳐 66번 국도로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까지 대륙을 횡단하는 상상을 해본다. 동부에서 대서양의 일출을 보고 달리기 시작해 한두 달 동안 미국 대륙을 동서로 가른 후 서쪽 태평양에서 일몰을 본다. 상상만으로도 흥분되는 여정이다. 세상만사에 ‘근본과 마감’, ‘시작과 끝’을 개인의 인생사나 기업 경영, 나아가 국가 경영에 이르기까지 여러 경우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아마도 훌륭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통해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


▎‘플로리다주 키즈 군도’ 43개 섬을 연결하고 있는 고속도로를 남쪽으로 달리면 북아메리카 대륙의 남쪽 끝에 도착한다.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동양고전 『논어(論語)』를 공부하면서 첫 페이지의 시작 문장과 마지막 페이지의 끝 문장이 궁금했다. 연말을 맞아 마지막 세 문장을 먼저 살펴보고 첫 문장을 돌아보면서 올해의 칼럼을 마감하려 한다.

『논어』의 마지막 요왈편(堯曰篇)을 마무리하는 문장 3개가 가끔 머리를 맴돈다. “명(命)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부지명 무이위군자야: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예(禮)를 알지 못하면 설 수 없고(부지례 무이립야: 不知禮 無以立也), 말(言:언)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부지언 무이지인야: 不知言 無以知人也).” 왜 『논어』는 이 3개 문장으로 끝을 맺었을까? 나름대로 주관적인 해석을 해본다.

첫째, 지명(知命)은 개인이 생을 살아가거나 리더들이 특정 분야에서 활동할 때 가장 근본적인 가치관의 토대를 생각해보게 한다. 예를 들어 각 분야 리더들이나 미래의 리더를 꿈꾸는 경우에 경영자는 경영철학이, 정치인은 정치철학이, 군인은 군인관이, 교육자는 교육 철학이, 공직자는 국가관이, 샐러리맨은 샐러리맨십 등 각자가 갖추어야 할 천명이나 운명에 대한 근본적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근본적 사고와 행동이 바탕이 되지 못해 본인이 처해 있는 명을 알지 못하는 부지명(不知命)이 되면, 각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리더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지례(知禮)는 사회생활을 하며 주변과 관계를 정립할 때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뉴욕에서 주재원으로 일할 때 만났던 많은 미국인, 25년이 넘도록 덴마크계 글로벌기업 경영에 참여할 때 다양한 유럽인을 만났을 때도 글로벌 무대에서 사회적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성공 요소는 예절과 에티켓이었다. 세계 어디를 가든 한국적 예절은 훌륭한 모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다양한 외국인과 교류하며 얻은 교훈이다. 예를 들어 덴마크에 사장단 회의를 가면 모든 일정표가 제공되며 그에 따른 드레스코드 정보도 안내된다. 글로벌 무대에서 리더십과 협상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의 있고 세련된 매너가 필수 요건이다. 요즘 뉴스나 SNS를 보면 무례한 장면이 많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어떤 사회나 조직이라도 예의를 모르는 부지례(不知禮)한 사람은 리더로 설 수 없다. 성공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예의를 중시하는 훌륭한 전통을 갖고 있다. 가정이나 사회에 예의를 기본으로 하는 미풍양속을 잘 이어나가서 모두가 성공의 길을 함께 걷기를 바란다.

셋째, 지언(知言)으로 끝맺음을 한다. 사람은 말로 생각을 표현하고 의사를 전달한다. 따라서 말은 그 사람의 평소 생각과 품격을 나타낸다. 왜 『논어』는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장을 말을 알지 못하면(不知言) 사람을 알 수 없다고 했을까? 그만큼 말의 비중과 무게가 크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옛말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했을 것이다. 품격 있는 말을 통한 의사소통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 있는 반면, 큰 낭패를 보는 사람도 많다. 『논어』마지막을 장식한 ‘말’의 소중한 의미에 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본다. 어려서부터 수없이 많이 들어본 구절이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說呼.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어려서부터 정말 많이 들은 문장이지만 이제야 그 참뜻을 헤아려본다. 스승이나 타인에게 배우고(學), 그 배운 바를 자신이 시간을 투자하여 반복하고 되풀이해 익히는(習) 학습에서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경험을 얻었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배우기는 하는데 자신이 익히는 노력을 게을리하여 그 기쁨을 얻지 못하는 것 같다. 수영이나 골프, 스키 같은 운동, 노래나 악기 연주,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학습의 경우에도 배운 것을 익숙해질 때까지 끊임없이 연습해야 소망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랬을 때의 기쁨은 참으로 크다. 『논어』의 첫 문장이 알려주듯, 어떤 분야가 되었든 평생 학습하며 배움을 얻는 인생은 참으로 행복하고 멋질 것이다. 모든 사물이나 사건에는 근본과 끝이 있고 일에는 마침과 시작함이 있다. 연말을 맞아 보람으로 끝맺음을 하고, 희망찬 새해를 시작해보자!

※ 이강호 회장은…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112호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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