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AI 기술, 마주 달리는 기차처럼 점점 더 격해지는 미중 패권경쟁, 11월에 내린 갑작스러운 폭설, 세계경제의 가중되는 불확실성에다 계엄과 탄핵까지 미래를 예측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레거시 반도체업계에서는 2025년 초 경기반등을 예측했으나 2024년 하반기 들어서 불황이 장기화되는 국면으로 급속히 바뀌었다. 반도체 시장의 파이는 커지고 있지만 그 수혜는 주로 AI 관련 기업들에 돌아가고 있다. 특히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AI의 수혜를 못 받는 레거시 반도체산업은 역대급으로 혹독한 불황을 겪고 있다. 요즘 뜨는 AI 업계조차도 일부 생성형 모델 관련 사업을 제외하면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중국 제조업 경쟁력이 강력해지며 한국의 반도체, 전자, 철강, 화학, 조선 등 거의 모든 기간산업이 위기에 처했다.세계적인 경제학자, 애널리스트, 미래학자들의 말을 믿고 사업을 벌였다가는 큰일 나는 시대가 되었다. 잘나가던 기업들이 2~3년 만에 위기를 맞고 있다. 시장의 변화는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점점 더 커진다. 미중 패권경쟁 때문에 한국은 고래 사이의 새우가 될 수도 있다.생존에 대한 갈망은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두어 번 회사가 망할 뻔한 경험 덕분에 지금은 작은 일이라도 벌어지면 최악의 상황까지 시나리오를 짜는 버릇이 생겼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분기 매출이 100억원에서 10억원 아래로 폭락할 때 쓰러져가던 회사를 살린 경험이 있다. 절망하지 않고 일주일에 100시간 넘게 일하면서 회사를 살렸다. 작은 기회에도 최선을 다하면서 기회를 사업으로 바꿨다. 경쟁사들은 절망하고 포기할 때 지독하게 일하고 공부하면서 내공을 쌓았고, 빈틈을 찾아 시장을 창출했다. 그때 나를 움직인 힘은 회사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망하는 게 무서워서 치열하게 일했다. 그 혹독한 시절을 겪어내고 회사는 괄목상대하게 성장했다.인류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 숲속의 야수들이 숨어 있을까 봐 무서워서 일단 도망갔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건강검진 결과 나쁜 수치를 보면 그로 인한 최악의 병을 상상하고 조심하려 노력한다. 아무리 어려운 시장환경이라 할지라도 시장의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면 반전의 기회가 있다. 공대 출신이어서 그런지 최악의 상황을 확률적으로 계산해서 두려움 편향의 오류에서 벗어나려 한다.담대한 꿈과 비전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나한테 가장 큰 동력은 위대한 꿈이 아니라 두려움과 생존에 대한 강렬한 욕구이다. 두려움을 동력으로 바꾼다면 이 혹한기를 지나서 또다시 괄목상대할 회사가 되 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