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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의 테넷 | 디자인과 AI, 신뢰의 언어를 빚다 

 

세계적인 그래픽디자이너 폴라 셰어가 미국 연방정부와의 협업에 AI 프로세스를 과감히 도입해 화제다. 기술과 예술의 조합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성과를 홍보하는 웹사이트 화면.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폴라 셰어가 이끄는 디자인팀인 펜타그램과 협업해 제작됐다.
2024년, 미국 연방정부와 세계적 그래픽디자이너 폴라 셰어(Paula Scher)가 이끄는 디자인 스튜디오 ‘펜타그램(Pentagram)’의 협업에 많은 이의 관심이 쏠렸다. 그 이유는 폴라 셰어와 그녀의 디자인팀이 디자인 프로세스에 인공지능(AI)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연방정부 성과를 대중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웹사이트(performance.gov)에서 관료적이고 난해한 정보를 더 많은 이가 부담 없이 이해하도록 길을 열었다. 목적은 분명하다. 투명성 강화, 신뢰 회복.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의외로 차가운 기술처럼 보였을 AI와 따뜻한 손길이 담긴 디자인이 맺은 창의적 결합이었다.

펜타그램의 창의적 접근법: 손끝과 알고리즘의 공명(共鳴)

펜타그램 팀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AI와 디자인의 교차점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 그 접근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1. 글쓰기 스타일 개선: AI 기반 언어 모델을 활용해 공적 문서를 대중 친화적이며 유려한 문체로 재구성했다. 관료적 산문은 필요와 맥락에 따라 부드럽게 흐르는 텍스트로 바뀌었다.

2. 사진 활용 방식 혁신: 이미지 인식 기술로 선별된 사진들은 정보 전달력의 첨병으로 자리 잡았다. 단순히 ‘보기 좋은’ 사진이 아닌, 핵심 메시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시각적 문장’으로 기능한다.

3. 일러스트레이션 스타일 개발: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더욱 섬세해진다. 초기 단계에서 디자이너는 직접 손으로 일러스트를 그렸다. 그 온기가 담긴 원화를 AI에 학습시킨 뒤, 다양한 텍스트 프롬프트를 입력해 새로운 스타일과 형태를 실험했다. 이는 미드저니(MidJourney) 같은 AI 툴과 인간 디자이너의 손끝이 함께 빚어낸 시도였다.

처음 시안은 조금 거칠고 투박했다. 클라이언트는 “디자인이 너무 거칠다”는 피드백을 건넸고, 폴라 셰어팀은 다시 AI의 힘을 빌려 더 부드럽고 세련된 결과물을 모색했다. 하지만 이번엔 “이미 본 듯한 느낌”이 문제가 됐다. 결국 이들은 초심으로 돌아갔다. 디자이너가 직접 그린 손맛을 유지한 채, AI에 더 구체적이고 정교한 프롬프트를 제시해 명확한 스토리를 가진 일러스트를 완성했다. 이를 통해 AI를 활용하면서도 사람 손길이 닿은 듯한 온기가 살아 있는, 독창적이고 친밀한 이미지를 비교적 단시간에 얻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일러스트레이션은 웹사이트 곳곳에서 섹션 헤더, 그래프 장식 요소, 설명용 아이콘으로 살아 숨 쉬었다. 이제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 나열이 아닌,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이미지 언어’로 번역됐다. 이는 정보의 벽을 허물고, 사용자가 마치 친근한 안내자를 만난 듯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게 하는 경험이다.

AI와 디자인을 통한 정부 효율성 향상

전 세계 여러 정부는 이미 AI 도입으로 행정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분투한다. 맥킨지(McKinsey) 보고서에 따르면 AI 적용은 정부 운영 전반에 절약과 정확성을 가져오며, 정교한 데이터분석 기술이 정책 결정을 한층 신뢰성 있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특히 자연어처리(NLP) 기술은 챗봇이나 가상 비서를 활용해 시민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내가 원하는 정보’를 바로 직면하게 해준다. 이는 단순한 효율성 제고를 넘어 시민에게 ‘정부가 이해 가능한 언어로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감각을 제공한다.

미국 외에도 AI와 디자인의 결합으로 공공 데이터를 재해석하는 실험들은 계속되고 있다. 영국(GOV.UK)에서는 AI 추천 알고리즘과 음성 보조 기능으로, 관료적 미로 속에서 길을 잃기 쉬운 사용자를 위한 ‘맞춤형 정보지도’를 그렸다. 그 결과 GOV.UK는 단순한 데이터 창고가 아닌, 시민이 필요에 따라 길잡이를 얻는 ‘경험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한편 싱가포르(GovTech)는 교통·환경 데이터를 실시간 대시보드에 직관적으로 시각화함으로써, 복잡한 수치가 하나의 풍경화로 재해석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민들은 무미건조한 데이터 대신, 눈에 보이는 흐름을 확인해 의사결정에 나서며, 정책 이해와 참여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기술과 디자인의 결합

미국 정부와 펜타그램의 협업은, 기술과 디자인이 결합해 공공 정보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AI는 단순한 생산성 도구가 아니라, 디자이너의 창의성과 감각을 배가하는 촉매제가 된다. 그 결과물은 단순히 효율적일 뿐 아니라, 공감 가능한 서사와 시각적 쾌감을 지닌다.

이는 정보 소비자를 능동적 참여자로 바꾸며, 시민과 정책 사이에 더 깊은 공감과 이해를 불어넣는다. 더 많은 정부와 기관이 이러한 흐름에 동참한다면, 공공 서비스는 효율성을 넘어 인간적 감각과 경험 기반의 새로운 신뢰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직접 확인하고 싶다면 performance.gov를 방문해보자. AI와 디자인이 손을 맞잡고, 정보가 하나의 ‘체험’이 되는 이 과정은, 우리가 미래를 어떤 언어로 이해하고, 또 어떻게 함께 만들어갈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 이상인 - 이상인 디자이너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미국 본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근무했다. 베스트셀러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리즈의 저자이다.

202501호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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