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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인가, 장자인가, 차자인가? 

본질은 제쳐두고 정치쟁점으로 비화해 피바람 불어
프리즘 | 조선의 예송논쟁 

글 신명호 부경대 교수 [smh@pknu.ac.kr]
정치란 모든 상황을 본질과 상관없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해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도구로 쓴다. 조선 중기의 ‘예송논쟁’도 그랬다. 충분히 합의를 거쳐 발전적 견해를 도출할 수 있었음에도 자신과 다른 의견은 모두 ‘불충’으로 몰아붙여 피바람을 불렀다. 그 주인공이 바로 <어부사시사> 등으로 잘 알려진 윤선도다. 이 같은 행태는 작금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예송논쟁을 들여다본다.
1659년 효종은 만 40세가 되었다. 왕위에 오른 지도 10년이나 됐다. 즉위 10주년을 맞이한 효종은 자신의 필생 사업인 북벌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다. 하지만 효종의 즉위 10주년은 시작부터 불길한 조짐으로 뒤덮여 있었다. 겨우내 눈도 내리지 않고 비도 오지 않던 것이 해가 바뀌어도 여전했던 것이다.



농민들은 봄가뭄으로 보리농사를 짓지 못했다. 굶주림에 지친 농민들은 먹고살기 위해 농우를 내다팔았다. 봄가뭄에 더하여 농우까지 없으니 그 해 농사는 포기 상태였다. 덕분에 즉위 10주년 새해 벽두부터 효종은 날씨와 농사 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3월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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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호 (200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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