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밭에 물 주러 간다
나 말고 우리 엄마
빗물은 어디로 갔나 누가 다 퍼갔나
제철소의 증기가 구름의 씨앗을 말린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소나기가 사라진다는 것은
영원히 국수를 먹지 못할 입 속처럼 허전하다
목구멍 가득 넘어가는 밀가루 없이 여름을 어떡해
고구마 밭에 물 주러 간다
엄마가 화가 나면 빗자루로 호스로 막 때렸는데
구석에 몰려 용서받을 때는 시원한 감도 있었는데
공용 화장실 수도꼭지에 호스를 꽂고
뱀처럼 끌고 나와 고구마 밭에 물줄 때
아버지는 소나기처럼 내릴 것이다
구청 직원이 뭐라 해도
죽은 아버지를 이길 수는 없다
사라진 소나기를 이길 수는 없다
빗물의 가치를 따져보는 여름 저녁
나도 엄마도 돌아간 아버지도
다 같이 외롭다
가슴 속에 노랗고 뜨거운 고구마 하나씩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