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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의 미인별곡 | 조선말 ‘나쁜 여인’ 나합 

나주 정승(羅閤)이냐고요? 벌린 조개(羅蛤)올시다 

4월 영산강변은 유채꽃 반 나비 반이다. 늘어진 버들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로 갈리는 서러운 이별가에 몸을 떠는 듯 하늘거린다. 호남 최대의 포구에 누렁돛배 흐를 때 나루터 주막에는 홍어를 찾는 식객이 흘러넘친다. 나주곰탕 국물에 홍어·묵은지·막걸리를 곁들인 홍탁을 펼쳐놓고 입맛을 다시거나 홍어애보릿국을 뜨는 술꾼들은, 작가 황석영이 홍어 맛을 처음 본 뒤 터뜨렸다는 그 기분에 휩싸인다.



“참으로 이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버리는 맛의 혁명일세.” 큼큼하고 노릿노릿하고 흉흉하다는 홍어애로 끓인 보릿국은 둘이 먹다 하나가 죽으면 두 그릇 먹는다는 그 클클한 맛이다. 나주에 홍어요리가 정착하게 된 것은 고려말이었다. 정부는 흑산도 주민들이 왜구에 시달리자 아예 섬을 비워버리는 공도(空島)정책을 쓴다. 흑산도 어부들이 몰려온 이후로 나주 영산포는 홍어1번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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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호 (201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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