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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의 편지 | 신(神)께] 저를 남김없이 다 쓰게 하소서 

문득 바람처럼 달빛처럼 당신의 존재를 느끼자 당신께서는 온 세상에 가득하십니다 

해가 바뀌고 새해가 겨우 시작되었습니다. 문득 당신에게 편지를 쓴 것이 참으로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어렸을 때 간절한 갈구가 있었겠지요. 아마 그때 작은 두 손을 모으고 무엇인가를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했겠지요. 그 후 제 기억 속에 당신께 편지를 쓴 일은 없는 모양입니다. 아마도 삶이 간절하지도 않았고, 지독히 슬픈 일이 생기지도 않았고, 사나운 고통이 심장을 갉아먹지도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당신을 찾지 않았겠지요. 슬픔과 고통 속에서 그 무기력의 절망에 닿지 않고는 당신의 발밑에 꿇어 엎드려 통곡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던가요?



‘자신의 비참함을 알지 못하고 신을 안다는 것은 오만을 낳고, 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비참함을 안다는 것은 절망을 낳는다’는 사실은 파스칼에게만 진실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커다란 슬픔과 고통 없이 지금껏 세상을 살아올 수 있도록 허락하신 당신께 얼마나 감사드리는지 모릅니다. 인생이 비교적 편안했기에 저는 당신을 알지 못했고, 그 긴 세월을 당신 없이 살았던 것입니다. 그 자체가 바로 축복이었음을 또한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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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호 (201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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