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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명이야기 - 함께 늙어 한 무덤에 묻히는 바닷속의 해로동혈(偕老同穴)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바다수세미와 동혈새우는 찰떡부부의 사랑 맹세마냥 한 쌍이 평생을 의지하고 살아가

▎유리 섬유로 만들어진 속이 빈 원통형 모양의 해로동혈(위). 설거지용 수세미를 닮았다고 해서 바다수세미로도 불리는 해로동혈은 산호 틈에 서식한다.



부부의 금실과 연관된 말에는 거문고(琴)와 비파(瑟)가 합주하여 조화로운 화음(和音)을 내는 것처럼 두 부부 사이가 다정하고 화목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금슬상화(琴瑟相和), 부부의 인연을 맺어 평생을 같이 즐겁게 지낸다는 백년해로(百年偕老), 이 말에 버금가는 것에 같이 늙고(偕老)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힌다(同穴)는 ‘해로동혈’이 있다. 생사를 함께하는 찰떡부부 사랑의 맹세를 비유한 말들이다.

3000여 년 전 중국 <시경(詩經)>에 금슬지락(琴瑟之樂)인 해로동혈(偕老同穴)이란 말이 있다 한다. 허나 요새 유행하는 말이 백 번 맞다. 부부란 청년기엔 애인(lover), 장년기엔 친구(friend), 노년기엔 간호사(nurse)란다.

그리고 환과고독(鰥寡孤獨)이라고, 아내 없는 이를 홀아비[鰥], 늙어 남편이 없는 이를 과부[寡], 어리고 아비 없는 이를 고아[孤], 늙어 자식이 없는 이를 외로운 사람[獨]이라 하니, 이 넷이 천하에 궁벽한 사람들로서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이라 한다지. 아직까지 ‘마누라’가 큰 탈 없이 살아 있어줘 더없이 고맙고 행복해 할 일이다.

바다수세미로 불리는 해로동혈(Euplectella aspergillum)은 근육계·신경계·소화계·배설계의 분화가 거의 없는 갯솜동물(海綿動物·porifera)의 한 종으로, 폭 1~8㎝, 높이 30~80㎝ 쯤 되며 심해(深海)에 살기에 허여멀끔한 양태(樣態)를 띤다. 유리섬유(glassy fibers)로 만들어진 속이 빈 원통형의 바구니 꼴이라 ‘Venus’ flower basket(비너스꽃바구니)’라고 부르며, 국명으론 마치 설거지용 수세미를 닮았다 하여 ‘바다수세미’라는 별호가 붙었다.

해로동혈은 다름아닌 해면동물, 바다수세미렷다! 해면은 석회해면·육방해면·보통해면 등 3강(綱·class)으로 나뉘는데 ‘바다수세미’는 육방해면(유리해면·glass sponge)에 속하고, 여럿이 다닥다닥 떨기(무더기)로 어우렁더우렁 모여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의 서귀포, 세계적으로는 일본·필리핀·서태평양·인도양 등지에 산다.

해면동물은 원생동물보다 한 단계 발달(진화)한 것으로 현재 세계적으로 1000여 종이 알려지는데, 고착생활을 하며, 몸에 편모를 가진 동정세포(금세포·襟細胞)가 있어 물과 함께 들어온 플랑크톤이나 유기물을 잡아먹는다. 몸 안은 ‘위강(胃腔)’이라는 빈 공간이며, 물은 몸 벽에 있는 수많은 소공(小孔)으로 들고 꼭대기에 있는 한 개의 대공(大孔)으로 난다.

그런데 유리를 닦거나 하는 해면이 바로 이 해면동물의 골편(骨片)인데, 요새는 그 구조와 모양을 본 딴 인조해면을 쓴다. ‘해면(海綿)’을 직역하면 ‘갯솜’ 아닌가. 그래서 해면동물을 갯솜동물이라 하며, 갯솜은 몸 안이 비고 틈이 무척 많아 물을 한가득 품는 것이 특징이다. 인조해면을 물에 살짝 담가뒀다가 손으로 짜보면 그 특성을 이해한다.

원래의 자연해면은 지중해에서 큰 해면을 따서 오래 놔두면 살이 녹고 뼈대만 남으니 그것을 깨끗이 씻어 모양 나게 자른 것이다. 그런데 바다수세미는 심해(어떤 것은 수심 3㎞ 근방에 서식함)에 있으면서 반듯하고 깔끔한 것이 수세미처럼 얼금얼금, 유리질 골편으로 된 그물눈 모양이라 물살이 느리고 유기물이 적은 심해의 바닷물이 쉬 드나들 수 있다.

해로동혈이 부부애의 대명사로 불리는 것은, 그 안에 평생을 함께 살다 죽는다(해로)는 한 쌍의 가재 닮은 동혈새우(Spongicola venusta)가 오롯이 서로 끼고 살기 때문이다. 암놈 성체의 길이가 1.5㎝ 정도라 하며, 그 좁은 공간에서 붙박여 살면서 짝짓기 해서 낳은 알은 부화하여 유생인 조에아(zoea), 미시스(mysis) 등 여러 단계로 탈바꿈(변태)하면서 플랑크톤생활(부유생활·浮遊生活)을 한다.

몸집 커지면서 좁은 ‘창살문’에 갇히는 꼴

이렇게 어린 애벌레 시절에는 ‘꽃바구니’의 틈새를 가까스로 비집고 들락거리기도 하지만 이내 자라 덩치가 커지게 되면 ‘창살문’이 좁아져 갇히는 꼴이니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된다. 그 깊고 깜깜한 바닷속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꼼짝없는 신세가 되고 보니, 애오라지 두 마리가 노상 거기서 바투 붙어 살아간다! 와글와글 여럿이 갇혔다면 꼭 둘만 남고 나머지는 다그치고 내쳐 결국 죽임을 당할 것이고, 처음에는 암수가 일정하지 않아 자라면서 암수로 성전환을 한다. 헌데 깊은 바다에 사는 지라 연구가 덜된 것이 무척 아쉽고 딱하다.

바구니 틈(구멍)새로 먹을 것이 들어오고, 단단한 실리카로 된 버성긴 어레미꼴(망상·網狀)의 그물 속에 들어 있어 다른 포식자에게 습격당할 위험도 없으니 연약한 새우가 살기에는 이보다 더한 안성맞춤이 있으랴! 근년에 새 연구결과에 따르면 몸집이 큰 암컷은 옴짝달싹 못하고 감금상태지만 몸피가 작은 수놈은 무시로 나들이를 한다고 한다.

생존과 번식이 생물의 본능인 것! 아무튼 유생들은 스스로 새 가정을 꾸리려고 제가끔 그물코 밖으로 나가 또 다른 해면을 찾아 나선다. 너른 바다 다 놔두고 말이다. 세포에 박힌 유전자가 무섭긴 무섭구나!

이렇듯 여러 해면 안에 공생동물이 살고 있으니, 갑각류인 따개비나 환형동물인 갯지렁이들이 숨어 살아, 해면은 이들 동물이 먹고 남은 찌꺼기나 배설물, 또는 시체를 먹이로 삼고, 공생체들은 천적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공생(共生)한다. 바다수세미와 동혈새우도 그런 관계로, 새우는 바다수세미의 몸 안을 청소해주고, 해면은 새우에게 먹이를 제공하는데, 근자에 해면에 있는 세균이 발광하여 다른 미생물을 유인하고 그것을 새우가 먹는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얗고 연약한 해로동혈 밑동을 사람 머리카락만큼이나 가늘고 긴 해면골격인 유리섬유 뭉치가 바닥에 친친 달라 붙인다 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 해면을 채취하여 실리카(silica)를 뽑아 윗길(上品)의 광섬유(fiber optics)나 태양광전지(solar cells)를 만드는 데 쓴다고 한다. 세상에 필요없는 것이 없다! 영국에서는 각별히 매무새가 고졸(古拙)하다 하여 비싸게 팔리고 일본에서는 곱게 말려 결혼 날에 사랑의 징표로 선물한다고도 한다.

어쨌거나 주례사엔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 살라 하고, 축의금 겉봉투에는 ‘百年偕老’라고 쓰여있지 않던가. 진정 일흔 고개를 넘고 보니 새벽도적처럼 달려든다는 죽음이 그리도 두렵다. 세월아 네월아 가지를 마라. 선배나 고우(故友)를 조문하면서 그것이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 않은 요즘이다.

나 죽으면 영정사진은 어떤 것을 쓸까, 누가 문상을 올까, 화장하면 얼마나 뜨거울까…, 이런 부질없고 덧없는 생각에 잠기기 일쑤다. 그래 그래,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셨듯이 ‘자는 잠에 죽어야’ 할 터인데. 착하게 살다 아름답게 죽겠다고, 선생복종(善生福終)을 염불처럼 왼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201304호 (201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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