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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비판 - “박 대통령 남은 임기 굉장히 힘들 것 같아 걱정” 

박근혜 캠프 ‘정치 이데올로그’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글·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사진·김현동 기자
- 대통령이 국정원 댓글사건 특별검사제 수용해 대치정국 풀어야 - 국회선진화법 위헌 주장은 새누리당의 자기부정이자 자가당착 - 현 정부에서 공기업 부채폭탄 터져 제2 IMF 부를 가능성 높아 - 통진당 해산 심판 청구, 헌재 6명 찬성 받아내기 쉽지 않을 것 - 국정원 개혁은 국내파트·해외파트 분리해 한국판 FBI 신설해야

▎새 정부 출범 후 정책이 실종됐다고 우려하는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박근혜후보 경선 캠프는 전부 70~80년대에 대학 다닌 이들로 짜여 있습니다. 세대가 다 바뀌었죠. 박정희 대통령 시절 권력을 행사하던 사람은 박 후보 캠프에 없다는 뜻입니다.” 지난해 7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 캠프의 정치발전위원으로 만난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열띤 논조로 박근혜 후보의 개혁 플랜을 소개하면서 박근혜 사단 내에서의 세대교체 작업을 이렇게 자랑했다. 그는 나아가 “박 후보 주변에는 3공, 4공에서 혜택 받은 사람은 없다”고 단언하다시피 했다.

이후 16개월 만에 <월간중앙>과 다시 만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에게서 예전의 열정이나 투지 같은 게 잘 와닿지 않았다. 그가 호언했던 세대교체는 오간 데 없고 지금 여권에서는 ‘신386 세대(1930년대에 태어나 60년대에 사회활동을 시작하고 80세를 바라보는 이들)’가 다시 권력의 핵으로 부상했다. 그 맨 앞 열에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서 있으니 이 교수로서도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나아가 지난해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국민에게 약속한 주요 공약이 집권 후 왜곡되거나 변질되는 현실은 예기치 못한 낯선 풍경들이다. 국회선진화법의 후퇴 조짐, 국정원 댓글사건을 대하는 여권의 의뭉스런 태도 등도 그가 생각한 정치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한때 박근혜 대선후보의 정치 이데올로그로서 정치적 영감을 불어넣어준 그도 이제는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평가하고 비판하는 대열에 합류한 듯하다. 그의 정치실험은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난 것일까? 11월 13일 <월간중앙> 대회의실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지난해 대선 이후 어떻게 지냈나?

“올 초 오랫동안 몸담은 중앙대를 명예퇴직한 후로 주로 책을 읽었다. 세계 경제에 대한 진단, 유럽의 쇠퇴, 테러와의 전쟁에서 실패한 미국 등에 관한 책들이 손에 잡혔다.”

상훈 소식도 들렸다.

“전임교수로 29년 6개월간 근무했으니 정부로부터 근정포장을 받았다. 근무 햇수에 따라 훈장과 포장이 주어지는데 한 해 정도 모자라 훈장을 못 받은 것 같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이름으로 된 근정포장이라 다행이다. 1996년에는 김영삼 대통령(YS)으로부터 환경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은 적이있다. 두 분 다 내가 좋아하는 대통령이라 상을 받는 기분이 좋았다. 이것도 인연이다.”


▎지난해 2월 이상돈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 새누리당사 앞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격려 집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첫해는 특별히 하는 게 없어”

YS와의 인연이라면?

“1997년 6월인가, YS가 유엔환경특별총회에 갔다 오더니 환경 관련 인사 대여섯 사람을 오찬에 초청했다. 나는 교수 대표로 참석했다. 차남 현철 씨가 비리사건에 연루돼 수감 중일때라 좀 쓸쓸해 보였다. 하지만 YS는 내색하지 않고 많은 얘기를 했다.

그때만 해도 가을에 외환위기가 닥쳐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실무적으로는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그런 사람을 임명한 대통령의 책임도 적지는 않다. YS가 요즘 건강이 꽤 안 좋다는데…, 그래도 시대적 과업을 잘 알았던 ‘준비된 대통령’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좀 뜻밖이다. 임기 말이 불행했던 대통령인데….

“취임 첫해만 따지면 YS가 가장 성공한 케이스다. 임기 첫 해인 1993년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하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해 ‘문민정부’가 뭔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게다가 12·12(1979년 신군부에 의한 12·12 군사쿠데타)와 5·17(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탄압의 신호탄이 된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을 심판했다. 그것만으로도 역사에 의해 평가될 것이다.”

임기 첫해가 대통령의 성패를 가른다고 보나?

“임기 첫해 야당·언론과의 허니문 기간 동안에 새 정권은 할 일을 해야 한다. 김영삼·김대중 정권에서 보지 않았나? 첫해에 많은 일을 한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임기 말은 힘들었다. 대통령 당선도 어렵지만 임기 5년을 끌고 가는 것도 정말 어렵다. 첫해에 할 일을 못하는 정권은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첫해는 어떤 것 같나?

“돌아보니 박근혜 정부의 첫해는 특별히 하는 게 없는 듯하다. 정부기관 대선 댓글사건 뒤치다꺼리하다 세월을 다 보낸 것 같다. 경제민주화·복지·일자리 창출은 아직 피부에 와닿지 않으니까.”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새 정부 출범 이후 우리가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단어는 ‘국정원’, ‘검찰’, 그리고 무슨 무슨 ‘의혹’이었다. 대통령이 추구하는 국정 방향이나 정책은 실종되고 온통 정치적 논쟁이 판을 쳤다. 그나마 내놓은 ‘창조경제’는 주무 장관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지 않는가?”

게다가 대통령이 국민에게 한 약속을 깼다는 비난도 인다.

“대선 전에 박 대통령을 상징하는 단어는 ‘신뢰’ ‘원칙’ 그리고 ‘약속’이었다. 2012년 7월 대선 출마선언 당시 내건 약속은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와 ‘깨끗하고 투명한 정부’였다. 대선 과정에선 ‘국민 대통합’, 그리고 강도 높은 ‘검찰개혁’과 ‘정치쇄신’이었다. 경제민주화·복지·일자리 공약은 아직까지 체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아주 안 지켜진 것은 아니므로 공수표라고까지 말하긴 어렵지만 기초노령연금 20만원 공약은 이미 변질되고 말았다. ‘검찰개혁’도 언제 그런 말이 있었나 싶다.”

그럼에도 국정 지지도는 60%선을 오간다. 여권은 선방하는 걸로 보는데.

“박 대통령에게는 기본적인 지지율이 따른다. 약 35% 정도는 불변의 지지층이다. 게다가 응답률이 낮다는 점도 고려해야한다. 주로 응답하는 층이 나이든 분들이다. 걸려온 전화에 짜증을 내며 확 끊어버리는 사람들은 대개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저조한 응답률에 따른 반사이익이 10%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현 정부에는 국정 주도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응집력이랄까, 유대감이 약해 보인다. 청와대고 내각이고 임기가 끝나면 본업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라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다음 정권도 창출해보겠다는 주인의식을 가진 이가 드문 게 요즘 여권 내부의 현주소다. 과거에는 안 그랬다. YS·DJ(김대중 전 대통령)와 노무현 대통령 시절엔 모두가 동지고 탄탄한 팀워크를 이룬 것 같은데 지금은 어쩐지 그런 끈끈한 결속력 같은 게 느껴지지 않는다.”

박 대통령 스타일이 원래 그런 걸 선호하지 않는 건 아닐까?

“글쎄 잘 모르겠다.”

요즘 공기업 기관장 등 요직의 물갈이가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힘쓴 사람들 중에서는 기용된 예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전언이다. 물론 이 교수도 그렇고.

“언젠가 그간에 있었던 일을 정리해서 책으로 낼 기회가 있을 것이다. 내 심정은 그 책에서 말하기로 하겠다. 하지만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6~7년 동안 외곽에서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이 갖는 상실감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12년 총선 때 서울 강북과 경기도 열세 선거구에 나가 장렬하게 낙선하고, 새누리당 대선후보 당내 경선과 대선 당시 현지에서 열심히 뛴 사람들을 보자.

나는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가장 많이 애쓴 사람이라고 본다. 이들 중에는 전문성을 갖춘 사람도 많다. 낙하산처럼 임명된 지금의 장관에 견줘 결코 전문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배신감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면 정권에 좋을 게 없다. 하다 못해 이명박 대통령도 자기를 도와준 사람은 많이 챙겼다.”


▎2011년 12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이상돈 비대위원(맨 왼쪽)과 박근혜 비대위원장(왼쪽에서 셋째).



“MB정부 옹호하느라 야당과 척질 필요 있나”

실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권 창출에 기여한 이들의 진로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MB정부의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정부 출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눠줄 자리가 동났다고 한다. 지원자는 많은데 마땅히 보낼 곳이 없는 상황에 이르자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여권으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때 이 전 대통령이 아이디어를 하나 냈다고 한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민간기업, 공기업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기업체에 자리를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그 뒤로 적지 않은 대선 공신들이 민간기업에 둥지를 틀었다는 후문이다.

요즘 누구를 자주 만나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자주 본다. ‘대통령 리더십’에 관한 책을 같이 준비 중이다. 얼마 전에는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을 만났다. 사석에서 나눈 말이라 공개할 수는 없지만 박 대통령에게 실망이 커 보였다.”

지난해 ‘박근혜 대선후보 경선 캠프’ 하면 이 교수와 함께 김종인 전 보사부장관을 떠올리게 된다.

“김 전 장관은 근래에 뵙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김 전 장관을 비롯해 박근혜 경선 캠프에 참여한 외부 인사들이 지난해 7월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당시 비당원이 후보 선대위에서 활동하는 것은 당규 위반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때 이 교수도 입당했나?

“나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중에 가장 먼저 입당했다. 당을 위한 선거운동에 나서고자 지난해 19대 총선 전인 3월 경기도당에 입당계를 제출했다.”

당적을 계속 가질 계획인가?

“박 대통령 임기 동안에 탈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시작을 같이 했으니 임기 끝까지는 가는 게…. 하지만 임기 첫 해가 이렇게 지나면 남은 임기 동안 굉장히 힘들 것 같아서 걱정이다.”

꽉 막힌 정국을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국정원 사태를 대통령이 풀지 않으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과거 정권에서 일어난 일을 깨끗하게 털지 못하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이야 어차피 심판 받을 게 많지 않나? 4대강도 그렇고, 해외 자원개발도 의혹투성이다. 전 정권에서 생긴 일을 옹호하느라고 야당과 대결할 필요가 어디 있나? 그러면 국회는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이명박 정권처럼 날치기도 못하지 않나?”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다면?

“결국 국정원 댓글 사건은 특별검사제 도입으로 가야 할 것 같다. 다른 길이 없다. 야당이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특검 아니면 안 되겠다는데 받아야 하는 것이지.”

국정원 댓글사건은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이라 특검을 도입하지 못한다는데.

“간단하다. 진행 중인 수사를 중단하면 된다. 여권이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의 정당성이 훼손될 가능성, 그로 인해 시비가 일 텐데.

“댓글이 선거결과에 어떤 영향을 줬는가를 계량화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령 그렇다 해도 본인, 선거사무장, 회계책임자, 배우자 직계존비속 중 누군가 당선무효형을 받아야 당선이 무효된다. 국정원 댓글사건은 이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공소시효 6개월도 지났다. 특검 결과에 따라 필요한 경우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유감을 표하는 선에서 매듭짓는 게 상책이다.”

지난 10월 정홍원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에서 사건의 실체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약속하지 않았나?

“늦었다. 댓글사건이 불거졌던 지난봄이나 여름 사이에 단호하게 수사해서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말을 했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 무마하고 덮고 넘어가려는 모습으로 비쳐지다 보니 일이 꼬였다. 10월 말 총리가 엄벌 의지를 밝히기 전에 단 한 사람의 연루자가 있더라도 단호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어야 했다. 검찰은 수사 의지가 없었고, 여권은 마냥 뭉개는 통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국회법 85조) 개정 및 헌법 소원 검토 등을 말한다.

“국회선진화법은 박 대통령이 비대위원장으로 새누리당을 이끌 때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법률이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발의한 법안으로 4·11총선의 중요 공약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새누리당 일부 의원이 위헌이니 뭐니 하는 것은 완전한 자기부정이고 자가당착이다. 유사한 제도는 미국 상원에도 있다. 미국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를 종결할 때는 의원의 60%가 찬성해야 한다.”

“국회선진화법 위헌으로 보기 어려워”

국회선진화법은 왜 탄생했나?

“2010년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당하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고배를 마신 한나라당이 거의 와해 일보직전에 다다른 적이 있다. 당시 한나라당 의석은 19대 총선에서 얻은 153석보다 오히려 많았다. 새누리당은 새로 태어나는 각오와 반성이 필요했다.

그 상징으로 쟁점 법률안의 경우 재적의원 과반이 아닌 5분의 3(180명)에게 동의를 얻도록 하는 국회선진화법을 제안했고 소수파인 민주당도 흔쾌히 동의했다. 4·11총선의 주요공약으로 내세웠다가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 국회선진화법을 되돌리겠다는 것은 코미디와 다름없다.”

헌재는 이 조항을 어떻게 판단할까?

“위헌이라고 보지 않을 것이다. 헌법 49조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률에 특별한 규정(국회법 85조)을 둔 이상 문제가 될 게 없다. 또 법률에 과반수 아닌 특별한 규정을 둔 예는 많다. 각종 법률에 의결정족수를 3분의 2(대통령 탄핵소추 의결, 국회의원 제명 등), 4분의 1(임시 국회 소집) 등으로 정한 것도 다수결 원칙을 부정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여당 의원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까?

“새누리당 의원들 중에서 침묵하는 이들은 지금의 상황을 시니컬하게 보는 거다.”

정치선진화법 개정 주장은 정기국회에서 법률과 예산 통과에 협조해달라는 여당이 야당에 보내는 메시지로 읽히기도 한다.

“야당이 협조할 이유가 없다. 국정원 댓글사건에 특검을 도입하면 몰라도.”

의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으면 국회선진화법 개정하겠다, 이런 식으로 말인가?

“새누리당이 바라는 방향으로 국회선진화법을 고치는 것도 국회의원 5분의 3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니 야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한 글자도 못 고친다. ”

그럼에도 여당이 저렇게 나오는 건 여론을 등에 업어보겠다는 심산이 아닌가?

“우호적인 여론이 생길 리 만무하다. 한심한 노릇이다.”

법학자로서 통진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의 결말을 예상해본다면?

“통진당 해산청구는 정부로서는 해볼 만하지만 헌법재판소에서 ‘6대 3’ 이상의 판결을 받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법무부가 하기에 달렸다. 소명을 위한 자료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망신만 산다.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재판도 그렇다. 검찰이 얼마나 구체적 입증을 해내느냐가 관건이다. 형법상 내란음모 유죄 판결을 받아내기도 쉽지는 않다고 본다.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하는 것과는 다르다. 정당해산 심판청구, 내란음모 유죄 입증 둘 중 하나라도 헝클어지면 후폭풍이 굉장할 거다.”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가?

“정치적 목적에서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말이 당장 나온다. 언론에 보도된 것으로 보면 정당해산도 내란음모 처벌도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법관은 언론 보도를 보고 판결하는 게 아니다. 구체적인 증거에 입각해 판단한다. 그래서 정당해산 심판 청구과 내란음모 기소는 법무부와 검찰의 실력을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교수는 공기업 부채가 우리 경제의 잠재된 ‘폭탄’이라고 말한다.



“내년 지방선거 야권 분열로 새누리당에 유리”

법무부는 통진당 해산 심판 청구 준비를 하면서 독일과 터키의 사례를 집중 연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에서는 1951년 극우·극좌 정당에 대한 두 건의 정당해산 청구가 있었다.

하나는 나치즘을 표방했던 사회주의제국당이고, 또 하나는 공산주의를 내세웠던 독일공산당이다. 독일공산당 해산은 1950년 한국전쟁과 맞물려 있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독일 공산당은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에 연방의회 의석을 보유했었다. 1948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들어서 실시된 연방의회 선거에서 독일공산당이 원내 진입해 성공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면서 독일공산당도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에 앞서 그리스에서는 1949년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내전이 발발하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공산당이 민주기본질서에 위험을 끼치고 있느냐 아니냐를 두고서 공방을 거듭한 끝에 결국 1956년에야 해산 결정이 내려졌다. 이 교수는 “해산될 당시 독일공산당은 연방의회에 의석을 갖고 있지 못했다”면서 “원내 정당인 통진당 해산은 정당해산 기준이 뭐냐는 논리공방에서 법무부가 선방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국정원 개혁안을 놓고 정치권이 한바탕 힘겨루기에 나설 것 같은데.

“미국·영국·독일 등 많은 선진국이 해외정보 활동과 국내정보 활동을 각각 다른 기관에 부여하고 있다. 몇 년 전 미국에선 FBI(연방수사국)가 CIA(중앙정보국) 내 반역자를 체포한 적이 있다. 한 개의 기관이 정보활동을 독점하면 그 기관의 내부 반역자를 적발하기가 어렵다.

우리의 국가정보기관은 너무 비대하다. 필요없는 국내 정치, 사회 분야 정보까지 수집한다. 국정원은 우리나라는 북한의 위협 때문에 국내와 국외정보 활동을 분리할 수 없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보다 안보 위험이 몇 배나 심각한 이스라엘도 해외정보는 모사드, 그리고 국내정보는 신베드로 분리하고 있다.”

이스라엘 안보 환경이 실제로 우리보다 더 열악하고 위험한가?

“아마 열 배는 더 위험할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1953년 이후 전쟁이 없었지만 이스라엘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레바논에서 전쟁을 치렀다. 건국 이후 주변 아랍국과 수시로 물리적 충돌을 빚은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그런 나라가 국내정보 기관과 해외정보 기관을 분리한 배경을 잘 살펴봐야 한다.”

검찰·경찰 조직을 전면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하는데 그 근거는 뭔가?

“지난 대선 당시 모든 후보가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기소와 수사의 분리를 약속했다. 검찰에서는 검경 수사권 분리를 점진적으로 장기적으로 추진할 과제라고 하는데 공약이란 게 10년, 20년 뒤를 보고 내놓는 게 아니다. 임기 중에 해야 한다. 그렇다면 검찰이 수사권을 상당히 놓아야 되는 것 아니겠나? 경찰은 자치경찰제를 도입해야 한다.

경기도 화성에서 연쇄살인사건이 났는데도 도지사나 화성시장은 아무런 일도 못하고 책임질 일도 없었다. 경찰 기능을 각 시·도에 나눠주고 남는 중앙경찰 기능에다 국정원과 검찰에서 분리되는 수사 기능을 모아 새로운 형태의 국가 수사기관을 창설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한국형 FBI 같은 기구 말이다. 분명한 건 국정원과 검찰이 너무 비대하다는 점이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검찰은 내부 파동으로 경황이 없는 것 같다.

“한심하다. 검사들끼리 치고받고 싸우질 않나. 그렇게 보면 군도 마찬가지다. 경질당한 장군(기무사령관)이 신문에다 터뜨리고…. 예전에는 이런 일 못 본 것 같다.”

내년 지방선거에 이에 대한 평가가 반영될 텐데, 지방선거 판도를 어떻게 내다보나?

“야권이 변수라고 본다. 야권이 뭉치느냐 분열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민주당과 통진당은 이제 완전히 갈라선 사이다. 통진당이 그때까지 해산되지 않는다면 야권 분열은 불가피하다. 통진당에서 여론을 등에 업고자 이를 악물고 후보를 낸다면 새누리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이 교수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보수진영이 사람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박근혜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참패를 당한 뒤로 여권의 인재양성 통로가 막혔으므로 여당 후보가 집권해서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박 대통령은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고 보나?

“YS 시절엔 진짜 많은 인물을 키워냈다. 이회창 총리, 손학규 보건복지·이인제 노동장관이 배출됐다. 김문수 경기지사, 이재오 의원도 이때 국회에 진출했고…. 그 사람들이 지금까지 한국정치를 이끌어온 것 아니냐? 박근혜 정부에서는 그런 포석에 따른 인사는 별로인 것 같다. 중용되는 이들은 대부분 교수·관료 출신들이다.”

“경력 화려하다고 좋은 정책 결정자가 되는 건 아냐”

이른바 ‘신386 세대’가 뜨는 중이다. 마음이 착잡하겠다.

“과거에 고위 공직을 역임하는 등 화려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 반드시 좋은 정책 결정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예를 보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또 그 전쟁을 잘못 이끌어간 데는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책임이 크다. 체니는 포드 대통령 때 비서실장을 하고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국방장관을 지냈다. 럼스펠드는 포드 대통령 밑에서 국방장관을 지냈다.

경력이 화려한 두 사람 모두 자신감에 넘쳐서 CIA와 합참의 전문적 견해를 듣지 않았다. 1970년대 냉전 마인드에 사로 잡혀 오만과 독선에 빠진 거다. 이라크 전쟁을 반대한 육군참모총장을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해임시켜버렸다. 참모총장은 이라크 장악에 40만 명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봤고 럼스펠드는 14만 명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럼스펠드 주장대로 14만 명만 투입했다가 이란·시리아에서 넘어온 테러리스트의 역공을 받는 등 생고생을 했다. 게다가 안보보좌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는 동유럽 정치를 전공한 학자라서 중동문제와 테러에 무지했다. 오만한 ‘올드 보이’와 무능한 참모가 미국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 대통령은 시대에 걸맞은 사람, 또 시대가 요구하는 사람을 기용해야 한다.”

일부 전문가는 재정위기 도래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하는데.

“정부와 공기업 부채가 연간 GDP(국내총생산)의 100%를 넘고, 민간 부채도 눈덩이처럼 불었다. 한국은 41개 공기업 부채(520조원)가 정부 부채(480조3000억원)보다 더 많은 나라다. 어느새 부채공화국이 됐다. 이자율이 오르면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공기업 부채 폭탄이 박근혜 정부에서 터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4대강 사업에 참여한 수자원공사,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주도한 LH공사, 해외 자원개발에 간여한 석유공사·가스공사·광물자원공사 등이 지난 정권에서 부채가 큰 폭으로 늘었다. 이들 회사에 대해선 강도높은 조사를 해서 사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는데, 정부는 새 경영진을 임명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 같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공기업을 개혁하려다 촛불정국에 휘말려 때를 놓쳐버렸다. 박 대통령도 타이밍을 놓치는 건가?

“현 정부에서는 국정원 댓글사건이 발목을 잡는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한국 경제가 체력이 남아 있어 버텼는데 이제는 빚이 쌓이면 지탱하기 어렵다. 앞서 두 번의 대통령이 실패했는데 셋째로 실패하면 대한민국의 실패가 되는 것 아닌가? 박 대통령이 그런 위기감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청와대 경제 참모들은 철학이 없다.

박 대통령은 집권과 동시에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처럼 공기업을 확 뜯어고쳤어야 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경영마저 방만한 공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그랬다면 국민들이 박수를 보내고 지지율도 훨씬 높았을 것이다.”

여권 인사들이 이런 공기업에 못 가서 안달이다.

“지난 2008년 미국 경제위기도 공기업 부실에서 촉발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공기업인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이 사고를 쳤는데 결국 그 부채를 연방정부가 떠안고 말았다. 이 두 회사는 워낙 부실한 공기업이라 회사의 대표가 워싱턴 사교 모임에 가면 다른 사람들이 사람 취급도 안 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너나 없이 부실 공기업 사장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나? 이들이 무슨 재주로 그 회사를 정상화시키겠나? 손 놓은 정부도 한심하다. 공기업 몇 개 무너지고, 재벌기업 몇 개 더 넘어지면 문자 그대로 ‘제2의 IMF’가 오는 것 아닌가?”

201312호 (201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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