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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 절수(節水)의 제왕 선인장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일반 식물보다 더 많은 숨구멍으로 물을 증발시켜 무더운 사막에서 열을 배출…줄기 감싸는 큐티클과 밀랍 성분이 숨구멍 외에 다른 부위의 수분 증발을 막아

▎선인장은 세계적으로 1500종 이상이 분포하는 다년생 초본식물이다.



집집마다 종류에 관계없이 한두 종의 선인장을 키우고 있다. 선인장 하면 사막을 연상케 하며, 더위와 가뭄에 강한 것이 특징이요, 잎을 가시로까지 바꿔(퇴화)버리는 적응의 도사로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산다. 필자도 한때 선인장에 미쳐 족히 200종 넘게 모아 꽃 피우고 씨 받아 새끼치기를 하였고, 접목선인장도 만들어 키워봤다. 무엇보다 한 겨울 보관이 어려운 게 탈이었지만,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였으니, 자잘한 씨앗을 보드라운 흙에 뿌리고 투명한 유리판을 씌워 싹을 틔웠던 기억도 난다.

선인장(仙人掌, 신선의 손바닥)이란 쌍떡잎식물 선인장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을 총칭하며, 대개 잎이 없어진 다육질의 줄기를 가진 현화식물(꽃식물)로 엽록체를 품은 녹색줄기에서 광합성을 한다. 수분(꽃가루받이)은 곤충(주로 벌)·벌새(humming bird)·박쥐들이 매개하고, 씨앗은 열매를 먹은 새들의 대변이나 포유류의 털에 묻어서, 또 바람을 타고 퍼지지만 개미도 한몫한다.

그리고 멕시코 등지의 사막에서는 군락(群落)을 이루며 산다. 말이 났으니 말인데, 필자도 미국의 애리조나 사막을 지나면서 보았다. 신기하게도 사막의 선인장들이 사람이 일부러 심은 듯 바둑판 모양으로 서로 거리가 아주 정연하게 서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여느 식물도 다 끼리끼리 땅(거름)과 햇빛 싸움을 심하게 벌이기에, 사막에서도 저절로 두 식물 사이의 간격이 너무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게 줄을 가지런히 맞춰 늘어선다.

식생의 데드라인은 55℃

선인장(cactus)의 주산지는 멕시코·미국 남서부·페루·볼리비아·칠레·아르헨티나·브라질 동부를 포함하는 남서 안데스지역이다. 살집이 많은 다육식물(多肉植物)은 사막이나 고산 등의 고온·건조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줄기나 잎에 수분을 많이 저장하는 식물을 말하는데, 선인장도 거기에 속한다. 빳빳한 바늘처럼 뾰족하게 돋친 가시(spine)도 종류에 따라 가지각색인데, 이것은 초식동물을 찔러 기겁해서 도망가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분증발을 막는다.

잎이 변한 가시 난 식물을 통틀어 ‘cactus(복수는 cacti)’라 부르는데, 가장 큰 것은 몸집이 대부등(大不等, 아름드리 나무)만하고, 키가 간짓대(대나무로 된 긴 장대)만 한 것이 무려 19.2m나 되며, 작은 것은 1㎝에 불과하다고 한다. 작은 것 일수록 둥근 공(球)모양을 하여 부피는 최대한 크게 하여 물을 많이 담는 반면에 표면적은 가능한 적게 하여 수분증발을 줄인다. 보통 때는 자람을 멈춘 휴면상태로 지내지만 우기에는 넓게 퍼진(멀리 2m를 뻗지만 깊이는 12㎝를 넘지 않음) 뿌리가 물을 흠씬 빨아들여 엄청나게 빠르게 휙휙 자란다. 뿌리는 땅 표면을 기면서 아주 가늘지만 어떤 것은 굵고 곧은 뿌리(taproot)를 가진 것도 있다.

또 세계적으로 1500~1800여 종의 다종다양한 선인장이 산다는데, 잎이 있는 나뭇잎선인장(pereskia), 잎은 없고 줄기만 넓적한 부채선인장(opuntias), 줄기가 하나의 기둥 꼴을 하는 기둥선인장(cactoids) 등 세 무리로 나뉜다. 또 나무처럼 가지가 생기는 것, 굵은 외줄기가 자라는 것, 키가 작으면서 오글오글 수북이 모여 나는 것, 줄기가 길게 수양버들 가지처럼 축 늘어진 것 등 다양하게 있다.

그런데 아무리 잎이 없어지고, 줄기조직에 물을 85~90% 이상 저장한다고 쳐도 그 절절 끓는 사막에서 무슨 재주로 모진 삶을 살아갈까? 선인장줄기에는 보통 식물보다 더 많은 숨구멍(기공, 氣孔)이 있어, 이를 통해 물이 증발하므로 기화열이 선인장의 열을 빼앗기에 온도조절이 가능하다(선인장은 55℃가 넘으면 죽음).

한데 선인장의 숨구멍은 볼록 튀어나왔고, 더군다나 테두리에 아주 많은 하얀 털이 났는데(보통 1㎟에 많은 것은 1239개나 됨), 쑥 내민 것은 수분증발을 쉽게 하기 위함이고, 은빛털이 있어 빛을 반사하여 열을 덜 받는다. 또 줄기 겉은 거친 큐티클(cuticle)과 밀랍(wax)성분이 덮어서 기공 외에서 일어나는 수분증발을 막는다. 아무튼 물 없이는 살지 못하기에 절수(節水)에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하는 선인장이다.

접목선인장은 한국이 최대 수출국

놀랍게도 우리나라 제주도에 자생(自生)하는 선인장이 있다. 줄기가 납작한 부채 모양을 하여 ‘부채선인장’이라고도 불리며, ‘백년초(百年草)’라고도 하는데 이는 오래 자라야 개화한다는 뜻이다. 선인장은 스페인어로 사포텐(sapoten)이고, 제주선인장의 학명은 ‘Opuntia ficus-indica var. saboten’인데, 흔히 선인장을 ‘사보텐’이라 부르는 것은 이 학명에 까닭이 있다.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 등지에 자생하니, 천연기념물 제429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백년초의 줄기표면에 길이 1∼3㎝의 굵고 긴 가시가 5∼7개씩 돋아나 있고, 5~6월에 2~3㎝ 정도의 황색 꽃이 일시에 무더기로 피는데, 꽃받침조각이나 꽃잎 및 수술이 많지만 암술은 하나다. 서양 배(pear)를 닮은 여러 개의 자주색 장과(漿果, 과육과 액즙이 많고 속에 씨가 들어 있는 과실)가 열리고, 열매(과육)에는 적색 베타시아닌(betacyanin) 색소가 풍부하게 들었으며, 그 속엔 자잘한 종자가 한 가득 들었다. 제주도에 가면 이 선인장으로 만든 잼·젤리·술·피클·초콜릿·가루 따위를 판다.

그런데 멕시코 특산인 다육식물 용설란(龍舌蘭) 수액을 채취해두면, 하얗고 걸쭉한 풀케(pulque)라는 텁텁한 탁주가 되는데, 이것을 증류한 것이 주정도(酒精度) 40도 정도의 무색 투명한 술 테킬라(Tequila)다. 필자도 흉내를 내봤지만, 이 술을 마실 때는 손등에 소금을 올려놓고 그것을 술안주로 핥는다. 또 멕시코에서는 식용 선인장 열매를 시장에서 판다고 하는데, 동남아에 흔한 용과(龍果, dragon fruit) 또한 선인장 한 종의 열매다.

접목선인장 하면 ‘코리아’가 세계 수출시장의 70%를 차지하는데, 꽃의 나라 네덜란드에도 수출한다고 한다. 밑대(대목, 臺木)로 쓰는 길쭉한 모가 난 녹색 선인장을 면도날로 머리 위를 자르고, 그 위에다 노랑·빨강 선인장(접지, 椄枝)을 역시 예리하게 잘라 맞대어 올려놓고 실로 꼭꼭 묶어놓는다.

엽록체가 없어져 스스로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 접지는 접붙이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돌연변이체다. 두 선인장은 진(수액)이 굳어지면서 서로 달라붙고, 위의 선인장은 밑의 선인장이 만든 양분을 얻어먹고 사니 일종의 기생체(寄生體)다. 환골탈태(換骨奪胎)라, 선인장은 어찌 이리도 아예 변치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잽싸게 알아차렸담! 변화가 곧 진화(進化)인 것. 날이 날마다 갈수록 바뀌어 점점 달라지지 않을 쏘냐!

201407호 (201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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