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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피어나는 집 | 경기도 화성 송문희·강말희 부부의 평현재(平現齋) 

아날로그적 감성이 숨쉬는 프로방스풍 보금자리 

글 고혜련 월간중앙 기획위원, 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 사진 지미연 기자

▎동탄신도시 초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멀지 않은 단독 주택마을에 자리한 소박하고 예쁜 송문희· 강말희 씨네집. 부부가 세 아들과 주말의 오후를 만끽하고 있다.



“세상에나! 여기 화성 맞아?” 서울 강남에서 대략 40㎞, 경부고속도로 동탄IC에서 나와 10분 거리, 경기도 화성시 동탄중앙로에 들어서면 눈이 휘둥그래진다. 요즘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급변한다지만 새삼 상전벽해(桑田碧海), 격세지감(隔世之感)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도시 전체가 과거 이 도시의 우울한 분위기를 벗고 디지털시대를 향한 궐기대회를 하는 듯하다고나 할까. 60층이 넘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하늘을 찌를 듯 경쟁하며 도열해 있는 그곳은 외견상 웬만한 최첨단도시를 능가한다. 파도가 넘실대는 듯한 스카이라인도 파노라마 같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동탄신도시의 전부는 아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옛것과 새것, 높음과 낮음, 자연미와 인공미, 치열함과 느슨함이 조화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직장이 가까운 화성시 반송동에 자리한 초현대식 고층 아파트에서 살면서 입버릇처럼 “이건 아닌데…” 하던 송문희(48·화성 반송초등학교 교사)·강말희(45·수원 매현초등학교 교사) 씨 부부에게 아파트를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은 멀지 않은 곳에 들어선 나지막한 주택단지.

아파트 밀집지역에서 불과 10분 거리지만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반석산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펼쳐진 도시 한쪽 끝에는 디지털시대의 아찔함과 차가움에 반기를 드는 듯 조용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풍겨온다.


▎마당 한쪽에 놓인 주물 벤치. 화사한 꽃 바구니가 걸려 있는 이곳은 온 가족이 모여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내 마음에 꼭 드는 집이죠”

송씨 부부는 이곳의 변화를 눈여겨보다 2년 전에 덜컥 ‘나만의 집 짓기’에 돌입했다. “말만한 남자아이들 셋(초·중·고교 학생)과 아내와 함께 모두 다섯 식구가 아파트에 살면서 늘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집주인 송씨가 과감하게 새로운 모색을 시도한 이유다.

그들이 말하는 “내 마음에 꼭 드는 집”은 이랬다. 우선 아이들의 학교가 멀지 않아 학교생활이나 친구 사귀기에 적합할 것, 부부가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에 자리할 것, 그러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나무와 꽃을 가꿀 수 있는 곳, 거기에 반들거리지 않고 다소곳이 소박하게 들어선 집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개인 주택들이 속속 들어서는 이곳 풍경을 보니 이곳이야말로 그 네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집을 지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근거리에 편의시설도 많아 아이들의 문화적 욕구도 충족시켜줄 수 있으니 더없이 좋다.

이곳 단지에는 송씨네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경기도 일원의 중산층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76평 대지로 구획된 엇비슷한 크기의 반송동의 집들을 보면 마치 단독주택 전시장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집의 외형이 주인들의 개성을 대변하듯 제각기 다른 모습이다. 저마다 취향과 경제력, 기대치가 다를 수 있지만 기본은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장점만을 한데 모은 집에서 살아보자는 욕구가 만들어낸 외형들이다.

3백여 세대의 단독주택과 타운하우스가 들어서 있는 이 마을을 둘러보던 송씨 부부는 이미 완공된 집 중에서 자신들이 바라던 집과 유사한 외형의 집을 발견하고는 가슴이 더욱 설 다. ‘바로 이거다’ 하는 마음에 두 사람은 내 집 짓기에 착수했다.

소박하고 편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예쁜 집, 이름하여 ‘프로방스 스타일’의 집이다. 프랑스 남부 지역의 주거문화를 일컫는 이 주거양식은 안주인인 강씨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했다. “그 집을 보자마자 막연하게 그려왔던 집의 형상이 현실 속에 모습을 드러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그녀가 말했다.

“경제적인 문제 등이 있어 망설였지만 온 식구가 강렬히 원해왔던 것을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는 생각에 집 짓기를 밀어붙였죠. 온 가족이 만장일치로 합의했고요. 늘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미래는 불확실, 불투명하잖아요.” 그 말속에서 이들 가족이 얼마나 마당 있는 집에서 흙냄새를 맡고 자연을 가꾸며 살고 싶었는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시골에서 낳고 자란 남편 송씨도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건 마찬가지다.


▎아치형의 현관 출입구와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하는 빈티지한 느낌의 지붕기와와 바닥벽돌, 클래식한 램프가 잘 어울린다.



필봉산을 바라보는 탁 트인 뷰

송씨네는 마침 프로방스 스타일 집을 전문으로 하는 인근의 건축업체 베른하우스(www.bernhaus.co.kr)에 설계·시공을 의뢰했다. 이들이 원한 것은 새집증후군이 전혀 없는 친환경 주택이었다.

송씨 부부는 이미 조성된 크기(76평)의 대지이지만 꽃과 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마당의 폭을 7.5m는 남겨 달라고 특별주문을 하기도 했다. 조금은 집이 작아지더라도 시야가 확 트이고 한 그루 나무, 한 포기 풀이라도 더 심어 푸르름을 확보하고 싶어서였다.

집의 방향도 건너편 필봉산으로 가는 산책로를 바라다볼 수 있는 쪽으로 해달라고 주문했다. 1, 2층을 합친 이 집의 연건평은 모두 165㎡(50평:1층 32평, 2층 18평)이었다(2012년 대지 구입비는 3.3㎡에 470만 원, 건축비는 550만 원이 들었다).

이 마을에서 단연 이색적인 모습으로 눈길을 끄는 프로방스풍의 집은 한국에 흔하지 않다. 프랑스를 여행하거나 유럽의 목가적인 집들이 소개되는 영화나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은은한 파스텔톤의 살구색으로 마감처리된 송씨네 집은 우선 외관부터가 행인들의 눈길을 끈다. 도회적 감성의 세련된 멋이 요즘 고급 아파트나 주택의 대세적 특징이라면 이 집은 작심하고 시대를 거슬러가는 집이라고 해야 할듯하다.

새것이 아닌 오래된 것으로부터 오는 친숙함, 편안함을 살린 것. 마치 처음 만나도 오랜 지기를 만난 것처럼 금방 친숙해지는 사람을 닮았다. 이 집은 보고 있노라면 목가적이다, 정겹다, 예쁘다, 다소곳하다, 아기자기하다, 여성스럽다, 감성적이다 등의 수식어가 떠오른다.

“이 예쁘고 귀여운 집이 주는 행복감이 이리 클 줄 몰랐어요. 집을 드나들고 살면서 ‘참 좋다’라는 생각이 수시로 들거든요.” 송씨 부부는 서로 확인이라도 하듯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적 본 동화책에서 집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때 흔히 넣는 삽화나 사진의 집을 닮은 이 목조주택의 분위기는 건축디자이너의 세심한 기법과 연출이 동원된 결과다.

집의 외관을 살펴보면, 먼저 칼로 자른 듯 납작하고 차가운 느낌의 박스형 콘크리트 지붕은 배제됐다. 집의 중심 구조물을 포함해 좌우의 날개처럼 생긴 공간 위에도 비스듬한 기와 박공지붕을 얹어 균형미를 느끼게 하는 멋스러움을 추구했다.


▎지붕이 있는 벤치, 흰색테이블과 의자, 나무화분을 얹은 낮은 담이 어우러져 정원에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빛 바랜 듯 푸근한 느낌 주는 외관

높이와 크기가 각기 다른 지붕들은 집 전체의 실루엣에 로맨틱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20도가량 경사가 진 지붕에는 핑크와 브라운, 베이지 등 여러 가지 색깔이 혼합돼 마치 빛이 바랜듯한 U자형 기와를 뒤집어 포개 앉혔다. 오래된 파벽돌이 주는 거칠고 투박한 느낌과 비슷하다. 고온에서 구운 점토기와인 이 U자형 기와는 지붕에 공기층을 만들어줘 시멘트 철근구조로 된 집에 자주 쓰이는 아스팔트 소재의 너와(슁글)보다 집의 단열과 보온에 좋다고 한다.

집의 네 벽면은 페인트를 튀겨 바른 듯 오톨도톨한 질감이 느껴지는 회반죽 세공인 스터코(stucco) 치장을 한 표면 위에 일일이 수작업을 했다. 스폰지, 헝겊, 붓을 이용해 눈에 보일 듯 말듯한 은은한 음영을 그려 넣는 에이징(aging) 기법을 사용해 세월의 흔적을 녹였다.

이 마을에 10여 채의 집을 지은 베른하우스 정기웅 이사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감성적인 여성들이 섬세한 터치로 외관 전체를 일일이 손으로 칠하는데 나흘 정도 걸렸다”며 “집이 은은한 멋을 풍기는 것은 정성을 들여 일일이 손으로 붓질을 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이 집에 친근감을 더해주는 여러 가지 장치 중에는 대문과 현관문 등에 둥근 아치형 구조를 채택한 것도 눈에 띈다. 사람들은 보통 둥글려진 선에 푸근함과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거실의 전면창 위에도 차양막을 설치하듯 기와를 얹은 처마를 만들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빈티지룩을 한 집 안팎의 장식용 벽돌은 일반 벽돌보다 사이즈가 조금 커 보인다. 회전 벨트에 돌려 기존의 강한 색상을 퇴색시키고 칼로 자른 직육면체의 모양을 파괴한 것이다. 집 외관에서 빛 바랜 듯 세월이 느껴지는 이유다.

요즘 주택에서는 보기 힘든 육면체의 굴뚝이 마치 금방 밥 짓는 연기를 토해낼 듯 지붕 위에 자리하고 있어 집 전체의 분위기를 옛스럽게 해준다. 집 안에서 때는 장작난로를 위한 굴뚝이니 실용과 장식 두 가지 역할을 해낸다. 집 바깥 곳곳에 있는 클래식한 분위기의 외등 램프가 그러하듯.

출입구나 마당 바닥 역시 모두 오래된 느낌의 파벽돌을 써서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대문도 투박한 통나무 원목을 굵은 쇠못으로 이어 박아 집의 분위기와 일체감을 주었다. 대문과 담장 밑의 인도까지도 집 전체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올드한 느낌의 타일을 붙여놓았다. 푸른색, 주황색, 흰색 타일이 촌스러운 듯, 어색한 듯 잘 어우러져 있다.


1 이층으로 오르는 투박한 나무계단과 격자무늬의 작은 목창. 2 초·중·고교생인 세 아들이 함께 쓰는 복층형 난간은 놀이공간과 휴식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3 층고를 높여 다락 같은 붙박이 난간을 설치한 아이들 방.



“새집증후군요? 모든 게 친환경이죠”

집의 벽면을 장식하는 여러 개의 나무창에는 파스텔톤의 나무 덧문을 단 것이 눈길을 끈다. 밖으로 열어 젖힌 작은 창들이 정겨움을 준다. 집 안에 별로 가릴 것이 없다는 듯 낮게 조성된 담에는 큰 목재 화분이 편안하게 올라앉도록 맨 위를 움푹움푹 도려냈다. 나무화분에 심은 빨간 제라늄들이 집주인을 대신해 행인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실내 구조는 아주 간결하다. 1층은 집주인의 제안대로 한켠에 장작 난로를 놓은 거실과 부엌, 부부가 쓰는 안방 하나가 전부다. 안방에는 구석에 문이 달린 작은 공간하나를 별도로 마련했다. 바깥일을 끝내지 않은 사람이 옆 사람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들어가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작은 서재다. 마당이 한눈에 들어오는 안방의 창문턱에도 강렬한 색깔의 꽃이 놓여져 살구색 외벽과 잘 대조를 이뤄 집 전체를 환하게 해준다. 천장 일부에 박힌 나무 서까래도 목가적인 멋을 더해준다.

2층에는 두 개의 방만 배치했지만 복층으로 만들어 아이들 셋이 함께 쓸 수 있도록 방안에 별도공간을 마련했다. 아이들 방 하나의 층고를 3.5m로 높여 한쪽에 다락 같은 붙박이 난간을 설치했는데 아이들의 놀이공간, 낮잠 잘 수 있는 공간으로 제격인 듯하다. 아이들은 방의 바깥 공간에 설치된 아치형 입구의 테라스에 나가 바깥바람을 쐬고 정원을 내려다볼 수도 있다. 이 작은 테라스 역시 시멘트가 아닌 투박한 원목 나무판을 치마처럼 둘러 만들었다.

고교 1년생인 장남 송성경 군은 “동생들과 마음껏 뛰어놀아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 좋죠. 산책도 같이 가고 자전거도 함께 타고 마당에서 토끼도 함께 키우고. 이상하게 예전과 달리 온 식구가 활기차고 재미있어 해요”라면서 환한 표정을 지었다.


1 부엌창의 작은 꽃무늬 면 커튼과 주전자, 나무 컵걸이 등이 목가적 집안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2 거실 한쪽에는 참나무 장작을 태울 수 있는 난로가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3 아치와 기둥으로 유럽풍 장식을 한 선반과 고색창연한 무늬의 접시들이 이국적인 정취를 풍긴다.
집 안 집기는 대부분 시공사가 건축주의 의견을 듣고 직접 짜준 수제 가구다. 공통점은 무광택의 소박한 모습. 광택을 배제하니 절로 친환경적인 데다 자연스레 따뜻한 느낌을 발산한다.


▎시원한 개방감을 주기 위해 상부 수납장을 없앤 부엌. 무광택의 수제 가구가 소박한 멋을 풍긴다.
온 가족이 집 앞 텃밭 가꾸는 즐거움도

친환경 소재를 쓰겠다는 약속을 지켜서인지 집을 완공한 다음날 곧바로 입주를 했는데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안주인 강씨는 “새집증후군이 걱정돼 1주일 동안이나 빈 집인 상태로 문을 활짝 열어놓고도 입주할 때 찜찜했던 아파트와는 사뭇 달랐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리 넓지 않은 주방은 열린 공간을 느끼게끔 머리 위에 찬장을 매달지 않았다. 모자라는 수납공간은 별도의 접시걸이 장을 만들어 보완했다. 부엌이 어수선한 느낌을 줄이기 위해 가급적 시야에서 비껴선 보조주방을 많이 활용하도록 한 것이다.

모든 가구에도 샌딩 작업을 해 반질반질한 느낌을 줄였다. 가구에 붙어있는 녹이 슨 듯한 놋쇠손잡이 장식, 격자무늬의 원목으로 만든 작은 창문, 일직선의 날카로움을 둥글려 편안함을 살린 집안 내 벽 모서리 등도 일관된 느낌을 준다. 시각적으로 편안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이 집 안 곳곳에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마루 또한 맨발로 디디면 나뭇결이 발바닥에 청량감을 줄 수 있도록 오크를 사용했다. 휴일이면 이 집 식구들은 집 앞 빈터에 가꾼 텃밭에 다 모인다. 식탁 위에 오르는 웬만한 채소는 다 조달해주는 이곳은 행복의 원천이다. 앵두·살구·대추·감 등 유실수를 심은 마당은 살아 있는 자연 교육장이나 다름없다.

안주인 강씨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가족 모두의 소망을 일찍 이룬 것 같아 행복해요. 비록 작은 마당과 텃밭이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이 거기서 계절의 변화와 생명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소중한 일이 있을까요. 더 늦기 전에 이렇게 실천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감사할 뿐이죠. 바람에 나부끼는 보송보송한 빨래, 직접 기른 버섯을 햇볕에 말리는 기분, 다른 이들은 모를 거예요. 하하.”

그래서 붙여진 집의 이름이 ‘평현재’다. 평범한 가족의 꿈이 실현된 집이라는 의미란다. 그러고 보니 온 몸에 소탈함이 배어 있는 이 집 식구들, 집의 분위기와 사뭇 닮아 있다. 집이 곧 사람을 말해주는 거다.

201407호 (201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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