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아시안게임 폐막 기획 | 북한 스포츠가 달라졌다 - “리틀 메시 이승우? 우리 공격수들과 비슷하더만!” 

인천AG서 금 11개 일군 북한, 亞 청소년축구 우승 등 국제대회에서도 잇단 호성적… 김정은 ‘체육강국 건설’ 구호에 과감한 투자, 유럽 유학생도 많아 


북한 선수단이 2014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인공기를 앞세우며 입장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최근 쏟아져 나오는 북한의 정치, 사회, 경제 관련 뉴스는 복잡하고 시끄럽다. 그런데 유독 북한이 ‘잘한다’는 결과로 주목받는 것이 있다. 바로 체육 분야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7월 북한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대표팀의 연습경기를 관람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 사진·노동신문
북한은 10월 4일 막을 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종합 7위(금 11, 은 11, 동 14)를 차지했다. 특히 북한 역도는 인천 대회에서 세계신기록 5개를 세웠고, 여자축구는 세계 최강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또 북한 남자 청소년축구는 9월에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16세 이하 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누르고 우승컵을 껴안았다. 10월 열린 기계체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북한 체조 스타 리세광이 남자 도마에서 금메달을 땄다. 베일에 가려져 있는 북한 스포츠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숨어 있기에 이 같은 호성적을 거두는 걸까?

북한은 전통적으로 축구, 탁구, 역도 등에서 아시아 상위권의 경기력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이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맡자 북한의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부쩍 좋아졌다. 김정은의 적극적인 체육정책 때문이란 평가다.

2012년 11월 북한 노동당은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발족 시켜 뒷받침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체육 정책과 사업을 총괄하는 기구로, 이후 평양에 운동센터나 빙상장이 새로 생기는 등 눈에 띄게 체육관련 시설이 확충됐다. 지난해에는 평양체육단이 체육과학연구기지를 완공하는 등 체육과학에 대한 투자도 늘어났다.

김정은의 ‘체육강국 건설’ 꿈


북한의 김은국이 인천아시안게임 남자역도 62㎏급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후 경례를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노동신문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체육강국 건설’을 유난히 강조해왔다. 10월 13일자 노동신문에는 북한의 체육절(10월 12일)을 맞아 ‘온 나라에 체육열풍을 더욱 세차게 일으키자’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다.

과거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은 스포츠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미국프로농구(NBA) 시카고 불스의 열렬한 팬으로, 올 초에는 시카고 불스에서 뛰었던 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먼을 평양으로 초청해 극진한 대접을 하기도 했다. 김정은은 축구에 대한 애정도 상당하다. 그는 지난 여름에는 남녀 축구대표팀 연습경기를 직접 관람하면서 9월 인천아시안게임에서의 선전을 기원했다. 연습경기를 관람한 자리에서 자필 편지를 써서 격려하기도 했다.

김정은의 높은 관심과 일련의 지원책 덕분인지 북한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 11개를 수확했다. 이 같은 성과에 대한 대대적인 내부 선전도 뒤따랐다. 10월 2일 북한 여자축구가 금메달을 따냈을 때는 그날 저녁 조선중앙 TV가 긴급 소식으로 금메달 소식을 전하며 밤 11시부터 일본과의 결승전 경기를 녹화중계했다. 노동신문은 다음날 1면에 ‘선군조선의 존엄과 영예를 떨친 장한 딸들에게 열렬한 축하를!’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노동신문은 ‘이번 승리는 우리 당의 체육강국 건설 구상이 빛나는 현실로 펼쳐지고 있음을 확증해주는 뜻깊은 사변’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은은 뛰어난 성적을 낸 북한 선수들에게 각종 ‘선물’을 제공하며 격려해왔다. 지난해 10월 평양에는 특별한 아파트가 생겨났다. 대북 라디오방송인 북한자유방송의 김성민 대표는 “평양 통일거리에 ‘선물 아파트’를 지어서 예술인과 체육인들에게 줬다. 40층으로 지어진 아파트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여기에 입주한 체육인들은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이다. 북한은 그동안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등에서 입상한 선수들에게는 노력영웅, 인민체육인, 공훈 체육인 등의 각종 칭호를 주고 아파트나 승용차 등의 특별 선물을 주기도 했다.

“장군님 품으로 가기 위해 뛰었다”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북한 선수단이 말끔한 단복 차림으로 선수촌으로 들어오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북한 선수들에게는 예외 없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좋은 성적에 대한 공을 온전히 ‘지도자’에게 돌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화려한 수사와 과장된 표현을 사용해서다.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역도 56㎏급 용상(170㎏)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엄윤철은 우승 후 소감을 묻자 난데없는 ‘사상론’을 펼쳐 화제가 됐다. 그는 기자회견 도중 “여기 있는 기자 선생님들께 묻고 싶다. 달걀로 바위를 깬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기자들에게서 아무런 답이 없자 엄윤철은 대뜸 “달걀을 사상으로 채우면 바위도 깰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 덕에 인공기를 펄럭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자 역도 62㎏급 인상(154㎏)·합계(332㎏)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김은국은 “우리는 더 바라는 게 없다. 원수님과 전 인민들에 기쁨을 드리는 것이 행복이자 자랑이다. 앞으로도 그것을 위해 더 많은 기록을 낼 것”이라고 했다.

북한 선수들이 경쟁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정성옥의 1999년 세비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마라톤 우승이다.

강명도 경민대 교수(북한 인민무력부 보위대학 연구실장을 지냈고 1994년 탈북했다)는 “당시 정성옥이 우승 직후에 기자들이 몰려들어 우승 비결을 묻자 ‘결승선에서 김정일 장군님이 두 팔을 벌려 맞이하는 듯했다. 장군님 품으로 가기 위해 뛰었다’고 했다. 정성옥은 그 한마디 덕분에 영웅이 됐다. 단번에 가장 높은 등급이라 할 수 있는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았고, 귀국할 때 100만 명이 연도 환영 행사에 동원됐다. 집과 차를 받은 것은 물론이다. 말 한마디 잘해서 팔자를 고친 것이다”고 설명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의 인천아시안게임 특집 방송에서 RFA의 정영 기자는 “정성옥을 보면서 북한 주민 사이에서는 ‘입 덕에 부자 됐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아마 이번에 인천아시안게임에 온 북한 선수들은 머릿속에 ‘내가 1등 하면 무슨 말을 할까’라는 생각만 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북한 스포츠가 성과를 내는 것은 단순히 선수들에게 엄청난 당근을 주고 혹독한 스파르타식 훈련을 시키기 때문만은 아니다. 북한은 생활체육 시스템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북한 사회주의헌법 55조는 ‘국가는 체육을 대중화, 생활화하는 데 대한 방침을 관철하여 전체 인민을 로동과 국방에 튼튼히 준비시키며 우리 나라 실정과 현대 체육기술 발전 추세에 맞게 체육기술을 발전시킨다’는 내용이다. 북한은 매달 둘째 일요일을 체육의 날, 10월 둘째 일요일은 체육절로 지정해 대대적인 체육행사를 한다.

김성민 북한자유방송 대표는 “북한의 학교에는 다양한 체육활동 소조(동아리)가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종목을 골라 방과 후에 클럽활동 식으로 운동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학교는 어떤 종목의 소조가 강하고, 저 학교는 또 다른 종목의 소조가 강하다는 학교별 특성이 뚜렷하다. 체육 대회 역시 학교별 소조 대항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강명도 교수는 “북한은 1960년대부터 ‘국방을 위해 인민의 건강이 중요하고, 그래서 체육 대중화를 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나도 어릴 때부터 운동을 많이 배워서 축구·농구·배구·탁구를 두루 잘한다. 여기서 탁구를 치면 사람들이 웬만해선 나를 잘못 이기더라”고 했다.

탄탄한 생활체육 시스템 통해 선수 발굴


지난해 동아시안컵 여자축구 시상식에서 남북 선수들이 서로 끌어안고 기뻐하고 있다. 우승은 북한이 했다. / 사진·중앙포토
북한은 생활체육을 기반으로 뛰어난 어린 선수를 찾아낸 뒤 재능이 뛰어난 유망주를 모아 철저한 엘리트 시스템을 거치게 한다. 북한 육상대표 출신 탈북자 박세영 씨는 “북한에서는 체육이나 예술 혹은 외국어 인재 같은 경우 ‘대학 전문반’에 진학한다. 예를 들어 평양체육대학 전문반은 중학교 과정부터 있다. 10명 안팎으로 선발된 학생들이 중학교 과정부터 고교, 대학까지 전문반 과정을 쭉 함께 듣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완전히 그 분야의 전문가로 육성된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국가종합팀(대표팀)에 들어가면 말 그대로 스파르타식으로 훈련한다. 선수들은 사상전·투지전·기술전·속도 전의 네 가지 구호를 모두 수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상전과 투지전은 정신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훈련이고, 기술전은 말 그대로 기술 훈련이다. 속도전은 스피드와 체력 등을 키우는 체력 훈련을 뜻한다.

북한의 주요 엘리트 스포츠단으로는 4·25 체육선수단, 2·8체육선수단, 압록강 체육선수단, 기관차 체육선수단이 있다. 4·25 체육선수단과 2·8체육선수단은 군(軍) 팀이고 압록강 체육선수단은 내각 사회안전성 소속, 기관차 체육선수단은 우리로 치면 철도청 팀이다. 북한 대표선수 대부분이 이 팀에서 배출된다.

김성민 대표는 “지금 북한은 먹고 살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일단 국가종합팀에 들어가면 굶지는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강력한 동기부여인데,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평양에서 집을 마련하고 가족까지 모두 평양으로 불러서 살 수 있 다”고 설명했다.

김정은이 ‘체육강국 건설’을 내세우면서 스포츠에 대한 투자는 더욱 늘어났다. 강명도 교수는 “북한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갔을 때만 해도 돈이 없어서 유니폼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당시 재일동포 정대세의 유니폼이 과거 또 다른 재일동포 안영학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 위에 페인트를 덧칠해서 정대세의 이름을 새긴 것이었다. 그 정도로 열악했다. 그런데 이번에 인천아시안게임 때 온 북한 선수들의 유니폼과 옷은 확연히 달랐다. 모두 북한이 자체 제작한 새 옷이었다. 김정은이 선수 지원에 과감하게 돈을 썼다는 증거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북한의 성적이 좋았던 것은 그만큼 큰 보상을 약속했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돼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 북한 입장에선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적진의 심장에서 공화국기를 올렸다’는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최고의 인기 종목은 뭐니뭐니해도 축구다. 북한은 인천아시안게임 여자축구 금메달, 2014 아시아청소년축구(U-16) 우승을 하는 등 올 한 해 축구에서 좋은 성적을 이어갔다. 북한 축구인 출신 탈북자 문기남 울산대 고문은 이러한 북한 축구의 약진(躍進)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문 고문은 1970년대 북한축구대표팀의 공격수로 뛰었고,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남북 단일팀이 출전했을 때 북측 지도자로서 팀 코치를 맡았고, 2000년 레바논아시안컵 때는 북한 감독을 지냈다. 또 북조선축구연맹 경기처 임원을 하다 2004년 탈북했다)

문 고문은 북한의 축구 시스템, 특히 유소년 육성 시스템 은 완전한 유럽식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이 스포츠보다 예술에 관심이 지대했던 것으로 알고들 있는데, 김정일이 스포츠 전반에는 큰 관심이 없었을지 몰라도 축구에 대 한 애정만큼은 굉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정일이 1970년대에 ‘세자 책봉’된 이후에 ‘축구 유망주 육성 시스템을 유럽식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북한 사회에서 유일하게 유럽식인 것이 바로 축구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북한 유소년축구는 유럽 시스템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서 뛰고 있는 한국 축구 유망주 이승우. / 사진·뉴시스
북한 축구는 유럽의 선진시스템을 받아들여서 어린 유망주에 대한 보호가 철저하다. 문 고문은 “인민학교(초등학교)나 중학교의 축구구락부(클럽) 훈련 같은 경우 새벽이나 오전 훈련이 금지돼 있다. 훈련은 무조건 수업 후에만 해야 한다. 성적을 내려고 이를 어겼다가 적발되면 지도자가 곧바로 제명된다”고 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북한이 유소년축구 교육에서 기본기와 기술을 크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문 고문은 “학교 대항 전국 대회가 열리면 단순히 경기 결과만 갖고 우승팀을 가리는 게 아니다. 경기 전에 각 팀 선수의 기본기 평가를 한다. 축구연맹 기술위원들이 심사위원이 돼서 선수들의 볼트래핑, 슈팅, 드리블 등에 점수를 매긴다. 기술 점수가 기준점이 하인 팀은 경기를 하지도 못하고 곧바로 탈락하고, 기술 점수를 높게 받은 팀은 경기 스코어 외에 가산점을 준다”고 했다. 문 고문은 “나는 선수 시절 기관차 체육단 소속이었다. 우리 팀은 당시 연락(패스)을 잘하고 기술적인 축구를 했다. 요즘으로 치면에스빠냐(스페인) 같은 스타일이었다. 북한의 축구단들은 각팀 별로 개성이 뚜렷하고, 자신의 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북한 여자축구는 집중적인 투자 덕분에 급성장을 이룬 경우다. 김성민 북한자유방송 대표는 “여자축구는 남한에서 그렇듯이 북한에서도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끄는 종목은 아니다. 하지만 김정일과 장성택이 특히나 여자축구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고, 1990년대 이후 실력이 급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인천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에서 북한 선수들이 이라크를 상대로 연장 결승골을 터뜨린 후 환호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북한 축구는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 최초로 월드컵 본선 8강에 올랐다. 북한 여자축구는 2006년 20세 이하 청소년월드컵에서 우승했는데, 이는 남북한 통틀어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월드컵 대회 첫 우승이었다.

2012년 김정은 체제 이후 북한 축구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됐다. 비결은 적극적인 ‘축구 유학정책’이다. 스위스에서 유학을 했던 김정은은 이전 정권의 폐쇄적인 스포츠 정책을 버리고 유망주들을 적극적으로 해외로 내보내고 있다.

북한 축구의 발전된 모습이 단적으로 드러난 게 바로 9월에 열린 16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다. 이 대회 결승에서 북한은 한국에 2대 1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했다. 한국에는 ‘리틀 메시’로 불리는 FC바르셀로나(스페인) 유소년팀 소속의 이승우가 있었지만 북한의 집중견제에 발이 묶였다.

당시 결승전을 앞두고 북한의 연광무 감독은 “이승우는 훌륭한 선수지만 우리 공격수들과 비교하면 비슷한 수준”이라고 도발했다. 그런데 결승전 경기를 치러보니 연 감독의 말이 허풍이 아니었다. 최진철 한국 감독은 결승전 패배 후 “북한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한 면이 있었다”고 했다.

유소년 축구선수의 유학을 주선하는 스페인 유학원 운영자 박재현 씨에게 바르셀로나 현지에 있는 각국의 축구 유학생 분위기를 들었다. 그는 “북한이 2012년 말부터 바르셀로나에 유소년 선수 10여 명을 유학 보냈다. 연령대는 열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다양하다. 주로 공격 쪽에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이다”고 전했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아시아 축구 유학생의 대다수는 중국 선수들인데, 이들이 대부분 돈을 내고 팀을 찾아오는 연습생 수준이라면 북한 선수들은 실력이 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도 했다.

이번에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한 북한의 16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는 모두 6명의 ‘유럽 유학파’가 포함됐다. 한국과의 결승에서 동점골을 넣은 한 광성과 역전골을 넣은 최성혁, 그리고 또 다른 공격수인 한광성이 마르세 재단을 통해 스페인에서 유학했다. 한광성은 이 대회에서 4골을 넣어 이승우(5골)에 이어 득점 2위에 올랐다.

“굶는데 누가 한가하게 스포츠 보나”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기계체조 남자 도마 경기에 참가한 리세광. / 사진·중앙포토
이 밖에 수비수 세 명은 이탈리아에서 축구를 배워왔다. 수비형 미드필더 김의범, 중앙수비수 김위성, 왼쪽 수비수 최진남이다. 이 선수들은 이탈리아 페루자의 ‘이탈리아 사커 매니지먼트’라는 기관에서 훈련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김위성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의 이승우를 거칠지만 기술적으로 집중 마크해 눈길을 끌었다.

북한은 유럽 지도자를 자국으로 모셔가기도 한다. 연광무 감독은 아시아선수권 결승전을 승리한 후 기자회견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김정은)이 평양에 국제축구학교를 세우셨다. 외국인 코치를 데려와 어린 연령대부터 교육하고 있다”면서 “이번 대회에 나온 선수들이 1기 선수들이다. 체계적으로 성장한 선수들이 있어서 우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 스포츠가 나름의 전통과 저력을 갖고 있지만, 분명히 한계도 있다. 문기남 고문은 “북한에서 요즘 스포츠가 큰 인기를 얻고 있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긴 곤란하다. 인민이 굶고 있는데 누가 한가하게 스포츠 경기를 보겠느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월드컵이니 아세안경기대회 여자축구니 이런 걸 중계를 해줘도 사람들 반응은 냉소적 이라고 들었다. ‘김정일 때는 자기가 예술을 좋아한다고 예술을 강조하더니 이제 김정은이는 체육이냐’며 비아냥대는 사람도 많다. 내가 북에 있을 때도 다들 뒤에서는 김정일을 옆집 꼬마아이 이름 부르듯이 말하면서 욕했다. 그런데 지금 나이도 어린 김정은에 대해서는 오죽하겠느냐. 체육강국 건설 한다고 강조를 해도 인민의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요즘 북한 축구 경기를 아예 보지 않는다.”

북한의 지도층이 스포츠를 체제 선전도구로만 이용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강 교수는 “북한 선수들이 성적을 내고 지도자를 찬양하는 것은 대외적인 것보다도 북한 주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카리스마를 획득하는 데 가장 편한 방법이 이런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스포츠맨십 실종, 북한 스포츠의 한계

국제대회 성적만을 강조하다 보니 북한 대표팀에서는 정작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스포츠맨십을 찾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최근 북한을 상대했던 한국 선수들은 북한이 지나치게 거칠게 경기를 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인천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의 임창우는 “결승전에서 북한 선수들은 ‘간나새끼’라고 욕을 하거나 험악한 얼굴로 ‘너 평생 운동 그만두고 싶네?(거친 반칙으로 다치게 만들어서 앞으로 운동을 못하게 만들겠다는 협박)’라고 하더라. 플레이가 굉장히 거칠었다”고 했다.

북한은 연령별 대회에 규정을 어기고 나이가 많은 선수를 내보낸다는 의혹을 받기도 한다. 문기남 고문에게 “아시안게임 남자축구는 23세 이하 선수들이 나와야 하는데, 북한 선수들은 그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선수가 많더라”고 묻자 “사실 그러면 안 되는데, 북한에서는 나이 많은 선수를 종종 내보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북한 체조는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여자 기계체조에서 연령제한을 어긴 게 밝혀져 2년 동안 국제대회 출전금지 징계를 받은 적도 있다. 어릴수록 평형감각과 유연성이 좋기 때문에 기계체조에서는 만 16세 이하 선수는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국제대회 성적만을 강조하는 풍토는 ‘북한 선수들은 우승 못하면 아오지 탄광에 끌려간다’는 오해를 낳기도 했다. 실제로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8강에 올랐던 북한 축구대표 팀이 대회 후 아오지탄광에 끌려갔다고 한다. 강명도 교수는 “당시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이긴 선수들이 8강전을 앞두고 술을 먹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8강에서 포르투갈에 3대 5로 역전패했다. 귀국한 선수들이 사상투쟁을 하고, 결국 탄광에 끌려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오래전 일이고, 일반적인 일도 아니라고 한다. 문기남 고문은 “우승하지 못하면 사상투쟁을 하는 건 맞다. 그런데 2~3일 정도 공사장에서 노역을 하는 수준으로 끝난다. 김정일 체제 이후에는 사상 투쟁이 많이 완화됐다”고 말했다.

북한의 운동 선수들은 금메달 하나로 하루아침에 팔자를 고치기도 하지만, 반대로 억울한 이유로 갑자기 처형당하거나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긴장과 공포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표적이 되는 셈이다. 문기남 고문은 “잉글랜드월드컵 북한대표팀 주장이던 신영규는 대지주의 아들이란 이유로 은퇴 후보위부에 체포돼 요덕수용소에 갔다. 또 국제간첩단 조작사건 때 월북해서 북에서 활동 중이던 축구감독들을 죄다 간첩혐의로 잡아가기도 했다. 당시 김병화 국가보위부장이 김일성에게 성과보고를 하기 위해 체육인들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스포츠가 뛰어난 성적에 걸맞은 국제 스포츠계의 존중과 존경을 얻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이야기다.

201411호 (2014.10.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