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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스타농민의 산실 ‘한국벤처농업대학’의 힘 

논밭에서 벤처CEO 키운다 

글 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사진 김성태 프리랜서
농업도 경영과 마케팅 차별화만이 살 길… 설립 15년 동안 2000여 명 졸업생 배출해 신기술 개발 돕고, 자신감 심어 부농의 길 열어줘

▎한국벤처농업대학은 스타 농민의 산실이다. 석청농장 대표 백석환(사진) 씨는 벤처농업대학에서 배운 경영 노하우로 한우 사육기법을 차별화해 연매출 1억8000만원을 올리고 있다. 그는 2011년 한우 분야 최초의 농업기술명인이 됐다.
대전시 유성구 신동에서 한우 100마리를 키우고 있는 백석환(58·석청농장 대표) 씨. 그는 2011년 한우 분야 최초의 대한민국 농업기술명인이 됐다. 한우의 육질 최고 등급인 1+ 등급 출현율은 전국 평균 40%. 하지만 백씨의 한우는 85%에 달한다. 품질이 좋은 만큼 가격도 높게 받는다. 720kg짜리 일반 한우 1마리의 최근 5년간 전국 평균 가격이 570만원인 반면, 백씨의 한우는 720만원을 넘는다. 게다가 사료값도 이웃 농장들보다 55%나 덜 든다. 겨와 옥수수 껍질·버섯 등을 섞은 ‘자가농산물배합사료’를 개발해 사용한 덕분이다. 연매출 1억8000만원에 순익이 65%를 넘는다.

백씨는 “내가 성공한 한우 농가가 된 데는 한국벤처농업대학의 역할이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 지인의 소개로 충남 금산에 있는 한국벤처농업대학(www.vaf21.com)에서 공부했다. 충남 금산군 추부면 성당리 서대산 자락에 자리 잡은 이 대학은 2001년에 설립됐다. 교육부가 인가한 정식 대학은 아니며 성공 가능성이 큰 농어민에게 1년 과정으로 마케팅과 경영기법을 가르친다.

대한민국 한우 명인 1호 백석환 씨

백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농장 규모를 키우는 데만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한국벤처농업대학 강사진은 그에게 전혀 다른 길을 보여주었다. 농장 규모는 그대로 두거나 조금 확장하되, 다른 농장과 차별화 전략을 마련하라고 조언했다. 비용을 절감하면서 고급육을 생산하자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백씨가 개발한 사료는 당시 한국벤처농업대학에 다니면서 터득한 것이다.

백씨의 농장에선 축산농가의 ‘흔한’ 악취가 나지 않는다. 파리 등 벌레도 거의 없다. 축사 바닥은 톱밥이 고운 모래처럼 깔려 있다. 유산균 등 미생물발효제를 뿌린 덕분이라고 했다. 축사에는 클래식이 음악이 흘러나온다. 백씨는 “동물도 사람처럼 환경이 더럽고 불쾌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제대로 클 수 없다”며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고 난 뒤로 소가 온순해지고 폐사율도 크게 낮아졌다”고 말했다. 석청농장은 영농후계자와 학생들의 필수 견학코스가 됐다. 한 해 500여 명이 이 농장을 찾는다.

백씨가 한국벤처농업대학을 다니면서 달라진 건 또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부인 오청자(57)씨와 영화나 오페라·뮤지컬 등을 관람한다. 한국벤처농업대학이 “농민도 문화생활을 즐기며 여유를 가져야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조언하자 이를 실천에 옮겼다. 그는 “시골에서 죽어라 하고 일만 하는 농민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다”며 “문화생활을 하고 보니 생활에 활력이 생기고 일에 자신감도 생겼다”고 했다. 백 씨의 부인과 축산과학원 연구원으로 일하는 아들 열창(33), 공기업에 근무하는 딸 미애(35) 등 온 가족이 벤처농업대학을 다녔다.

올해로 설립 15년을 맞는 한국벤처농업대학은 정부나 지자체 등 외부의 도움없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게 특징이다. 연간 등록금 120만원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벤처농업대학을 설립한 민승규 전 농촌진흥청장은 “보조금을 받으며 농사를 지어온 농민들에게는 낯선 조건이지만 농업인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등록금을 스스로 부담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벤처농업대학은 ‘스타농민’의 산실이다. 지금까지 졸업생 2000여 명 가운데 50여 명이 농림부 장관상을 받았고, 200여명이 농촌진흥청장 상을 받았다. 대한민국 식품명인과 최고농업기술명인 중 상당수는 벤처농업대학 출신이다. 백석환 씨를 비롯해 서울의 대한민국 최대 허브농장 주인 조강희 사장, 연간 1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전남 광양의 청매실농원 홍쌍리 대표,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농업벤처기업으로는 최초로 ‘이노비즈(혁신기업)’ 인증을 받은 장생도라지 이영춘 사장 등이 이곳 출신이다. 1기 졸업생 수는 27명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180명이 졸업했다. 한국벤처농업대학이 배출한 대표적인 스타 농민을 소개한다.

스토리텔링 접목해 장류 판매하는 ‘피앗골 처녀’ 김미선 씨


▎지리산 피앗골 이장 김미선(사진) 씨는 농업벤처대학에서 배운 스토리텔링 마케팅 기법을 적용해 자신이 운영하는 장류 제조업체의 매출을 연간 5억원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직전마을. 화개장터에서 자동차로 15분 쯤 가야 도착하는 해발 600m의 지리산 피앗골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직전마을은 피 직(稷)에 밭 전(田), 즉 피밭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30여 가구 60여 명의 주민이 산다. 대부분 식당이나 민박집을 운영한다. 마을에는 ‘지리산피앗골식품’이란 업체가 있는데, 된장·청국장·장아찌 등 장류 제품을 만들어 연간 5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 이 업체를 이끄는 이는 김미선(30) 씨로 주변에서는 그를 ‘피앗골 아가씨’로 부른다.

김씨는 중학교 때부터 마을에서 식당을 하는 부모님을 도우면서 장 담그는 법을 배웠다. 전주에서 대학에 다닐 때도 틈틈이 고향집에 내려와 장을 담가 등산객들에게 팔았다. 등산객들 반응이 좋았는데 비법이 있었다. 지리산 자락에서 채취하는 고로쇠 수액을 사용한 까닭이다. 물 대신에 100% 고로쇠 수액만으로 만든 장류다. 김씨는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고로쇠 액으로 장을 담그면 물로 담는 것보다 덜 짜고 감칠맛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 다니면서 피앗골에 전통발효식품 테마체험공원(농장)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2006년 졸업을 한 뒤 곧바로 고향에 내려왔다.

2011년 사업자등록을 하고 2013년 정부의 전통식품산업화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지원금 등 2억5000만원을 보태 지리산피아골식품을 차렸다. 1층은 약 333㎡ 크기의 가공 공장, 2층은 판매장과 야외 카페를 만들었다. 부모님 민박집에 농촌 체험 프로그램까지 운영할 목적이었다.

제품라인도 더욱 다양화했다. 고로쇠 수액을 이용한 된장·간장·청국장의 기본 메뉴에다 냄새 없는 청국장, 장아찌 등이 추가됐다. 오미자·솔잎·매실·개복숭아 등을 이용한 진액(엑기스)도 있다. 제품은 주로 온라인으로 판다. 된장은 연간 50t가량을 생산하는데 인기가 좋다. 사업이 잘되자 2010년에 동생 지혜가 대학을 휴학하고 고향으로 내려왔고, 2014년 막내 애영이도 합류했다. 그래서 지금은 세 자매가 공장을 함께 운영한다.

김씨는 올해로 5년째 피밭 마을 이장까지 맡고 있다. 그는 “동네 나이 드신 분들이 ‘젊은이가 나서는 게 화합도 잘되고 일도 잘 처리될 것 같다’며 맡겼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 4월 한국벤처농업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전국의 농어업인이 한자리에 모여 다양한 농업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하는 게 벤처농업대학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벤처농업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배웠다. 그래서 올해부터 회사 홈페이지에 자신을 ‘장 담그는 처녀’로 소개한다. 왜 창업을 하게 됐는지, 지리산 계곡은 어떤 곳인지 등을 재미있게 꾸며 소개하고 있다. 김씨는 “스토리텔링이 소비자들에게 믿음을 준 것 같다”며 “올 들어 3월까지 매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허브농사로 부 일군 조강희 씨


▎경기도 양평군의 풀로윈㈜ 양승기 대표가 ‘초록콩나물’ 공장에 서 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서 허브농장(허브 다섯메)을 운영하는 조강희(60) 씨. 대도시에서 부를 일군 보기 드문 농민이다. 조씨는 100여 종의 허브를 길러 연간 1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허브 다섯메’는 ‘다섯 개의 산을 가득 채우는, 허브향 가득한 세상을 꿈꾼다’라는 의미를 담았단다. 그는 1975년 인덕실업고(현 인덕고)를 졸업하고 꽃농사를 해왔다. 영농을 하면서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방송통신대 농학과를 졸업했다. 84년 ‘다섯메 꽃동산’이란 농장을 열고 꽃을 재배하던 중 ‘허브가 좋다’는 말을 듣고 97년부터 작목을 허브로 바꿨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허브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할 때였다. 조씨와 거래하던 도매상들이 허브 재배를 권했다. 조씨는 “꽃 재배보다 고소득 작물이 유망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방이동(1만5000㎡), 경기도 광주시(3만9600㎡), 강원도 평창(9000㎡) 등 3곳에 허브농장을 갖고 있다. 날씨가 무더운 여름철에는 고랭지인 평창 농장에서 허브를 생산한다.

허브는 푸른 풀을 뜻하는 라틴어 허바(Herba)가 어원이다. 몸에 좋고 향이 짙어 음식이나 차(茶)의 재료로 많이 쓰인다. 로즈마리·제라늄·레몬 바베나 등이 있다. 종류에 따라 효능과 쓰임새가 다양하다. 카모마일 등 향을 지닌 허브차는 웬만한 카페에서 모두 취급한다.

조씨는 이런 시장의 수요를 감안해 허브를 생산하고 있다. 조씨는 “자신만의 특별한 요리를 개발하고 싶어하는 요리사들 사이에서도 허브는 인기”라고 말했다. 조씨는 허브를 활용한 음식도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베이 잎을 우려내 만든 허브커피, 가든세이지로 만든 와인, 민트를 넣은 모히또 제조 방법 등을 홈페이지(www.herb5.co.kr)로 소개하기도 한다. 부인 함영주(60)씨와 함께 농장을 운영하는 그는 전국의 관광농원·수목원·학교·호텔·식당 등에 허브를 판매하고 있다.

조씨는 2004년에 벤처농업대학을 다녔다. 그는 “당시만 해도 농업교육은 교육을 시키는 사람이 농민들에게 돈을 줘가며 오라고 했는데 벤처농업대학은 사람들이 자기 돈을 내고 갔다”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서 입학했다”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주먹구구식으로 허브를 재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며 “벤처농업대학에 다니면서 농장 운영을 체계적으로 하게 되고 시장의 수요와 공급 상황 등을 따져가며 재배할 허브의 종류를 바꾸기도 했다”고 말했다.

‘초록 콩나물’ 역발상으로 성공 이룬 양승기 씨


▎이창효 씨를 주축으로 96개 농가가 참여하는 영농조합법인 ‘다자연’은 평지에 대규모 녹차밭을 만들고 기계화를 도입했다. 연간 매출은 40억원에 이른다. 이씨는 2005년에 벤처농업대학을 다니면서 영농 기계화를 설계했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중원산로에 있는 풀로윈㈜은 국내 유일의 초록재배 회사다. 콩나물 머리가 초록색이다. 1800㎡규모의 콩나물 재배농장에는 대낮에도 LED(발광다이오드)조명을 켜놓는다. 커다란 통에 콩과 물을 넣고 차광막을 씌워 키우는 일반 콩나물 재배 방법과는 사뭇 다르다.

이 회사 양승기(53) 대표는 2004년부터 올해로 12년째 콩나물을 재배하고 있다. 그는 2011년 ‘왜 콩나물은 노란색이어야만 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모든 식물은 햇빛으로 광합성을 해야 잘 자라고 영양분도 풍부하지 않을까. 콩나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양씨는 밝은 곳에서 콩나물을 키우기로 했다. 2년간 연구 끝에 2013년 ‘광합성하는 초록 콩나물’로 특허 등록했다. 그는 “초록 콩나물은 일반 콩나물에 비해 숙취 해소에 좋은 아스파라긴산이 4배, 여성질환 개선에 효과가 있는 이소플라본이 4배, 비타민 C와 비타민 D2는 각각 4배, 25배 많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광합성으로 콩나물을 키우기 위해 처음에는 양동이에 물과 콩을 담아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뒀다. 하지만, 빛이 일정하지 않은 탓에 발아가 잘 안됐다. LED조명으로 채소를 키우는 농가가 있다는 사실을 안 그는 햇빛 대신 LED조명을 설치했다. 2014년부터 일반 콩나물에 비해 2~3배 높은 가격으로 이마트에 납품을 시작했다. 160g들이 한 봉지 값은 2980원이다. 양 대표는 “영양소가 풍부한 수퍼푸드 인기가 높아지자 초록 콩나물도 주목받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초록콩나물 재배에서 초록콩나물로 만든 기능성 두유 개발, 광합성작용을 보여주는 전시관 설립, 콩 관련 음식을 취급하는 채식뷔페식당 운영 등으로 확대해 나갔다.

양 대표는 지난해부터 쌀밥 쉐이크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물을 부으면 바로 죽이 되는 밥이다. 양 대표는 “벤처농업대학에 다니면서 배운 벤처정신과 역발상 마인드로 1년간 노력한 끝에 새 상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고향 전북 김제를 떠나 상경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한 것이다. 이후 의류 땡처리 장사꾼 등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그는 “2013년 지인 소개로 한국벤처농업대학에 다녔다”며 “농업 관련 교육은 곳곳에 널려 있지만 열정을 키우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는 교육기관은 벤처농업대학이 유일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밭 작물 심던 평지에 국내 최대 녹차밭 일군 이창효 씨


▎국내 최초로 유기농 벼농사를 시작한 전양순 씨(왼쪽)는 딸 강선아씨(오른쪽)와 함께 쌀과 매실 등의 가공품을 생산하는 체험형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전씨는 두 차례 벤처농업대학을 다니며 사업가적 능력을 키웠다.
대개 ‘녹차(綠茶)’하면 생각나는 곳이 전남 보성과 경남 하동이다. 거친 산비탈에 있는 녹차 밭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나 지역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경남 사천시 곤명면 금성리 진양호 변에는 단일 면적(50만㎡)으론 국내 최대 규모의 녹차밭이 있다. 그것도 산이 아닌 평지에 자리 잡고 있는 게 눈길을 끈다. 진양호는 1970년 남강댐에 의해서 생긴 인공호수로,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곳에 있다.

녹차밭은 원래 농민들이 콩 등의 작물을 심던 곳이었다. 2003년 이창효(71)씨를 주축으로 땅을 갖고 있는 96 농가가 영농조합법인 ‘다자연(모두 자연이란 의미)’을 설립하고 녹차를 한꺼번에 심기로 뜻을 모았다. 2004년 150만 그루의 녹차를 심었다. 이씨는 “단순한 영농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생각에 농민들을 설득했고 한국에 논과 밭 등 평지에서 재배하는 녹차가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말했다.

이들 농가는 영농의 기계화에 힘을 쏟았다. 녹차밭이 평지여서 기계화도 수월했다. 잎을 따는 일도 기계(채엽기) 두 대가 해결한다. 채엽기 두 대로 이 넓은 밭의 찻잎을 15일 만에 수확할 수 있다. 사람이 직접 찻잎을 따는 것보다 연간 10억원 정도의 인건비를 아낄 수 있다고 한다. 이씨는 “소규모 산지재배와 수작업에 의존하는 차(茶) 생산만으로는 수입 차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보고 기계화를 서둘렀다”고 말했다. 찻잎을 따는 데 들어가는 인건비가 한국은 ㎏당 5440원으로, 중국(1360원)뿐만 아니라 일본(2880원)에 비해서도 높다고 영농조합측은 설명했다.

농민들은 농약을 살포하지 않은 친환경 농법으로 연간 150t의 차 잎을 생산한다. 제품은 2007년부터 ‘다자연’이란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 연간 매출은 40억원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기존 차 제품 외에도 가루녹차·녹차음료수·녹차음식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들 제품은 동서식품 등 국내 차음료 제조 업체에 납품한다. 사천시는 녹차원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이곳을 시 관광자원과 연계한 테마관광단지로 만들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농가소득을 높이겠다는 목표다. 이씨는 “신품종 녹차 등을 집중 재배해 5년 뒤 매출을 100억으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2005년 벤처농업대학을 다니면서 녹차산업의 미래를 설계하는 등 농업 경영에 눈을 뜨게 됐다”며 “벤처농업대학이 내게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했다.

국내 최초 유기농 쌀 생산 농가 전양순 씨


▎벤처농업대학의 학생들의 연령과 직업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이완섭(사진) 서산시장도 지난해 4월부터 1년간 이 대학을 다녔다.
꼬막으로 유명한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 30년 넘게 유기농 벼농사를 짓고 있는 전양순(60) 씨. 그는 유기농 벼농사를 하는 우리원농장, 매실 등의 가공품을 생산하는 우리원식품, 우리원교육원(체험시설)을 운영하며 연간 15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 2008년 완공된 교육원에는 농부·대학생·가족단위 여행객 등 매년 5000명 이상이 찾는다.

전씨는 증산(增産)이 국가적 과제이던 1970년대에 화학비료·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 농사를 시작했다. 쌀농사 부문에서 1995년 정부로부터 국내 첫 유기농 품질인증을 받았다. 유기농 인증은 유기농법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나야 신청할 수 있으며 우리원이 풀무원공동체에 유기농 쌀을 납품하던 초기에는 정부 인증이 없었다.

전씨의 남편은 2010년 1월 30일 고흥군 영남면 팔영산의 한 토굴에서 단식수련 도중 숨진 고(故) 강대인 씨다. 평생 유기농법을 실천한 친환경농법의 대부이자 국내 유기농의 선구자였다. 그런 남편의 유지를 이어 이젠 부인이 그 유기농법을 실천하고 있다. 강씨의 딸 선아(33) 씨도 부친이 세상을 떠난 직후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짓고 있다. 전씨는 “사람은 자연의 섭리를 따라 키운 작물을 먹어야 비로소 건강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부부는 국내 최초로 벼 부문 유기재배 품질인증을 획득했다.

전씨는 1984년 남편과 함께 1만5000㎡의 논에 유기농 농법을 시작했다. 수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만의 유기농 농법을 완성했다. 제초제와 농약을 쓰지 않아 논은 잡초로 엉망이 됐고 병충해가 심해 수확을 포기하는 때도 많았다. 오리농법·우렁이 농법을 국내 처음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침수농법’을 개발했다.

일반 농가에서는 모내기할 때 8일 된 모를 심지만, 전씨는 40일 된 모를 심고 물을 1.5~2배 정도 깊이 댄다. 이렇게 하면 햇빛이 지면에 닿지 않아 잡초가 자랄 수 없어 김매는 노동력을 줄일 수 있다. 전 대표는 “오리 농법·우렁이 농법 등 안 해본 방법이 없지만, 침수 농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쉽게 말하자면 시골에서 뛰어논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도 건강하듯 모판에서 오래 기른 모를 건강한 땅에 심기 때문에 더욱 자생력 있는 벼로 자랄 수 있고 인건비도 줄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재배면적을 점차 늘려 현재는 11만2200㎡(3만4000평)에서 연간 42t의 쌀을 생산하고 있다.

전 대표는 백·흑·적·녹·자색 등 5가지 색의 쌀을 생산한다. 오색 쌀은 작고한 강씨가 품종을 개량해 생산하는 것이다. 흑미는 중국에서 가져온 종자를 토착화시킨 것이다. 재래종 흑미는 단종됐다. 중국 것보다 알이 약간 검붉고 향이 나 흑향미라 이름을 붙였다. 백미보다 칼슘과 비타민 B1, B2가 더 많이 들어 있다.

자색미는 자연의 선물이었다. 흑향미 옆에 백미를 심었는데 자색미가 나왔다. 단백질·지방 함유량이 백미보다 높다. 녹미는 진도에서 재배되는 것을 품종 개량했다. 동의보감은 녹미가 비위를 좋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렇게 생산한 쌀값(1kg에 1만원)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전 대표는 “소비자들에게 질 좋은 쌀을 싼값에 공급하고 싶어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씨는 2005년과 2009년 두 차례나 벤처농업대학에 다녔다. 전씨는 “벤처농업대학은 그야 말로 벤처정신을 키워준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농업도 사업을 하는 것처럼 용기가 필요하다”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얻은 게 큰 소득”이라고 했다. 그는 “생산한 쌀 가격을 주변 시세에 맞춰 정한 게 아니고, 팔리지 않을 것을 각오하고 적정 가격을 스스로 판단해 정했다”고 했다.

배 농사 명인 이윤현 대표, 청매실 농사 특화한 홍쌍리 회장

이들 말고도 한국벤처농업대학이 배출한 스타농민은 수없이 많다.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현명농장 대표 이윤현(70) 씨는 1921년부터 3대째 배를 재배한다. 9만2000㎡의 농장에서 배를 수확해 한해 1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 배 재배 기술로 얻은 특허만 41개에 이르는 그는 2009년 농촌진흥청에서 대한민국 최고 농업 명인으로 선정됐다. 2002년 이후 해마다 배꽃이 활짝 피면 고객들을 초청해 음악회를 연다. 이씨는 1970년대 초 현재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인근에 있던 자신의 배 밭 1만5000㎡을 팔고 황무지나 다름없는 지금의 자리로 농장을 이전했다. 이씨는 “가업인 배 농사를 계속하기 위해 금싸라기 땅을 과감히 포기했다”고 말했다.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청매실 농원. 15만㎡의 터에 10만 그루 이상의 매화나무를 기르고 있다. 청매실 농원의 탄생은 홍쌍리(74) 회장의 시아버지 김오천(1988년 사망) 씨가 일제 때 광부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1931년 귀국하면서 매화나무 5000그루를 가져와 심은 게 계기가 됐다. 시아버지 밑에서 매화나무 농사일을 배우던 홍 회장은 밭에 떨어진 매실 즙으로 손을 닦아보니 비누로도 잘 지워지지 않는 탁한 흙물이 말끔히 없어지는 것을 보고 매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홍 회장은 그때부터 수십 년간 해마다 묘목 2000~3000그루씩 심었다. 1996년부터는 매실 건강식품을 개발했다. 청매실 농원은 매실 가공식품 등을 팔아 연간 1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

한국벤처농업대학은 학생들의 면면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1~2기 학생들만 해도 쌀·버섯·인삼·오미자 등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민이나 농업 관련 기업 종사자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대형마트·홈쇼핑 업체 직원, 지자체장, 공무원, 대학교수 등 각계 각층의 인사가 모인다. 민 전 청장은 “처음에는 50~60대가 대부분이었는데 지난해 입학생의 30%가 30대일 정도로 학생층이 젊어졌다”며 “이곳을 졸업한 부모가 자녀를 보내는 경우가 있고, 젊은 농민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벤처농업대학 학생 점점 청년화… 각계 벤치마킹도 활발

이완섭(59) 서산시장도 지난해 4월부터 1년간 벤처농업대학을 다녔다. 이 시장은 지난 3월 19일 마지막 수업인 패션쇼에 여왕 복장을 하고 참가하기도 했다. 이 시장은 2년전 벤처농업대학에 특강을 하러 왔다가 농민들의 열정에 감동해 학생이 됐다. 이 시장은 수업에 단 한차례 빠지지 않았으며 해외 출장 갔다가 귀국길에 공항에서 곧바로 벤처농업대학으로 가기도 했다. 그는 “농업은 지역 산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며 “지역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농업을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입학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전국에서 모인 농민들과 대화하고 배운 지식을 서산 농업현장에 접목할 수 있는 것은 큰 소득”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벤처농업대학 졸업생들은 기부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벤처농업대학 수업을 들으면서 배운 지식으로 성공했으니 사회에 되돌려 주기로 한 것이다. 경남 합천의 별빛농장 이현주 대표와 대전중앙청과 송미나 대표, 김치명인 유정임 대표 등은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4000만원을 여성가족부 산하 농어촌청소년육성재단에 기부했다. 별빛농장은 2만8000㎡규모의 하우스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고 있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20억원 정도다. 우리원식품 전양순 대표도 2010년부터 국립농수산대학에 500만원씩 장학금을 기탁하고 있다.

- 글 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사진 김성태 프리랜서

201605호 (201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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