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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로드 클래식 | 걸리버 여행기–‘야후(인간과 문명)’를 향해 날리는 유쾌한 ‘똥침’ - 유토피아에는 ‘유토피아’가 없다 

이상과 현실의 분열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 떠나기 위해 돌아오는 걸리버, 그가 찾은 궁극의 길은 대자유 

고미숙 고전평론가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는 당대 사회와 인간 전반에 대한 분노가 스며 있다. 하지만 스위프트의 은유와 수사학에는 위트와 해학, 유머와 역설이 주는 즐거움이 함께 한다. 분노가 불이라면 명랑은 물이다. 물과 불이 마주치면? 아이러니가 분수처럼 쏟아진다!
여기 쉬지 않고 길을 떠나는 인간이 있다. 1699년 5월 4일, 영국 서남부 브리스톨에서 출발했으나 거센 폭풍에 휩쓸려 어딘가로 밀려갔다. 소인국 릴리퍼트. 그곳에서 9개월 13일에 걸쳐 산전수전 다 겪고 돌아와 가족의 품에 안겼지만 두 달 만에 다시 바다로 간다. 희망봉을 거쳐 마다가스카르 해협을 지난 뒤 몬순폭풍에 밀려 어디론가 떠내려갔는데, 이번엔 거인국 브로브딩낙. 2년 동안 ‘볼꼴 못 볼꼴’ 다 겪은 후, 독수리에 채여 바다에 빠진다. 9개월을 헤매다 1706년 6월 3일 다시 귀향, 아내의 신신당부에도 다시금 동인도제도로 가는 배에 오른다. 이번엔 폭풍이 아니라 해적선에 쫓기다 ‘천공의 섬, 라퓨타’에 도착한다. 1709년 5월 6일, 라퓨타를 떠나 일본 에도를 거쳐 다시 5년 6개월 만에 귀환. 5개월간의 ‘꿀맛’같은 휴식을 취한 뒤, 임신한 아내를 두고 다시 바다로 간다. 이번엔 해적들에게 포로 신세가 되어 어디론가 보내졌는데, 그곳은 흐이늠(말·馬)의 나라. 거기에서 ‘야후’라는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동물을 만난다. 그것은 다름아닌 ‘인간’이었다.

자, 이것이 걸리버의 여정이다. 떠났다가 돌아오고 돌아오면 다시 떠나고…. 장장 16년 7개월을 이렇게 ‘싸돌아다닌다’. 대체 이 사람에게 집이란 무슨 의미일까. 간이역? 혹은 텐트? 하기사 어디 걸리버만 그렇겠는가. 인간이란 모두 떠나는 자들, 떠나기 위해 돌아오는 자들이 아닌가. 생에서 죽음으로. 청년에서 노년으로. 고향에서 타향으로. 나는 떠난다, 고로 존재한다! [는 워낙 인기 고전이라 다양한 번역본이 있다. 박용수 번역본(문예출판사)을 기본으로 하되, 송낙헌 본(서울대출판문화원), 이동진 본(해누리) 등을 두루 참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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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호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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