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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 세계 5대 연안습지 순천만에 千鶴이 날아든다 

람사르습지 등록 8년 만에 국내 최대 흑두루미 월동지로 자리매김… 습지와 정원을 테마로 삼아 대한민국 ‘에코수도’로 도약 

순천만(順天灣)의 진경을 맛보려면 겨울이 제격이다. 천혜의 이 갯벌에는 지금 흑두루미를 비롯해 저어새 등 겨울 철새들의 천국이다. 도시 바깥의 버려진 땅이나 마찬가지였던 습지를 사람과 흑두루미, 게, 짱뚱어, 갈대, 정원이 더불어 사는 생명의 땅으로 만들어낸 순천만 사람들. 유순하고 따뜻한 그들의 순천만 사랑에는 특별한 이야기들이 있다.

▎풍부한 생태자원을 갖춘 드넓은 순천만의 갯벌은 철새들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준다.
전남 순천시 대대동. 겨울 순천만 갯벌과 맞닿은 너른 ‘인안뜰’에 올해도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 들었다. 이맘때면 만릿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겨울을 나는 천연기념물 제228호이자 순천시 시조(市鳥)로 지정된 흑두루미 가족들이다.

“저 멀리 무리 지어 있는 새들을 한번 보세요. 사람들이 다가가는 것을 민감해하는 친구들이라서 가까이 갈 수가 없으니 멀리 떨어져서 봐야 합니다.”

김성현(43) 순천만 생태해설사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탐조경을 좌우로 움직여가며 자세히 들여다봤다. 1m가 다 되는 큰 키에 가늘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음을 걷는 흑두루미는 몸 전체가 흑색인데 머리에서 목까지는 하얗고 이마 위는 화룡점정을 한 듯 붉은색이었다. 탐조경을 들여다보자 흑두루미 몇 마리가 사위(四圍)를 두리번거리다 고개를 숙여 모이를 먹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옆의 또 다른 흑두루미 가족은 벼이삭을 주워 먹는 것도 지쳤는지 옆의 무논으로 날아들어 선 채로 움직이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 녀석들은 우리가 논이나 농로에 뿌려준 벼이삭도 잘 먹지만 갯벌에 가서 게도 먹고 짱뚱어도 먹고 무엇이든 잘 먹어요.”

옆에서 망원경으로 흑두루미들을 살펴보던 순천만 철새지킴이 단원 김영태(65) 씨의 설명이다. 흑두루미는 10월 중순에 날아와 3월에 시베리아로 돌아가기 전까지 순천만에서 월동하며 체력을 비축하는데 벼나 보리와 같은 곡식의 낱알 이외에 작은 물고기와 게, 곤충류는 물론 식물의 뿌리도 먹는단다. 그래서 김씨 등 철새지킴이들은 아침마다 흑두루미들이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벼이삭을 수확이 끝난 농경지와 농로에 뿌려둔다. 김씨는 흑두루미 등 겨울철새가 월동하는 기간 동안 철새들의 안정적인 서식환경 조성을 위해 농경지안에 탐방객들의 출입을 제한한다고 했다. 철새지킴이 활동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철새 전문가 못지않게 흑두루미들의생태를 누구보다 잘 알게 됐다.

“흑두루미는 암수와 어린 새 두 마리 정도의 가족이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데 재미있는 특징이 있어요. 보통 가족 단위로 움직이고요, 네 마리가 사방에서 경계를 서다가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울음소리로 신호를 보내 위험을 피합니다. 낯선 사람이 100m 밖에서만 다가가도 자리를 옮길 정도로 민감해요. 하지만 우리 지킴이들은 이제 익숙해졌는지 50~70m까지도 갈 수 있지요.”

김씨는 흑두루미의 먹이터는 농경지이지만 휴식처와 잠자리는 근처 갯벌과 무논습지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천연기념물 흑두루미들이 늘어난다


▎1. 겨울 순천만 갯벌과 맞닿은 너른 ‘인안뜰’에 올해도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들었다. 천연기념물 제288호이자 순천시 시조(市鳥)로 지정된 흑두루미 가족이다. 2. 철새지킴이들은 흑두루미 등 겨울철새가 월동하는 기간 동안 철새들의 생태를 모니터링하고 농경지 안에 일반관광객들의 진입을 차단하는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다. 3. 흑두루미는 암수와 어린 새 두 마리 정도의 가족이 무리지어 생활한다.
순천만 주변에는 학산리와 선학리, 송학리, 학동, 황새골 등 새와 인연이 깊은 지명이 많다. 순천만이 흑두루미를 비롯한 많은 철새의 서식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순천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흑두루미를 학(鶴)이라고 불렀다. 동양문화권에서 학은 고고한 기품과 선비적 기상, 장수와 행운, 부부애, 고귀함을 상징한다. 순천만으로 날아드는 흑두루미는 시베리아 남부와 아무르강, 중국 북부에서 번식하고 주로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지낸다. 최대 월동지는 매년 1만여 마리가 날아드는 일본의 가고시마현(鹿児島県)의 이즈미시(出水市)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현재는 순천만이 최대 월동지다. 매년 10월 중순이면 약 3천km를 날아와 6개월여간 순천만에서 월동하고 이듬해 3월 말경 떠난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흑두루미의 월동지이자 중간 기착지였다. 1950년대까지는 30∼50마리의 흑두루미가 대구와 구미 등 낙동강과 천수만, 한강하구 등 서해안을 따라 이동하면서 강변과 농경지에 내려앉아 머물다 가는 것이 목격됐다고 한다. 하지만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낙동강 주변에 흑두루미 개체수가 급속히 줄어들었는데 1990년대부터는 서해안으로 이동해 이곳 순천만을 찾는 개체수가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

흑두리미와 재두루미, 검은목두루미 등 두루미류는 1996년 70여 마리가 순천만에서 처음으로 관찰된 이래 2004년에 202마리, 2009년에 350마리, 2012년에 693마리, 2013년 871마리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풍부한 생태자원을 갖춘 드넓은 순천만의 갯벌이 서식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순천만 갯벌에는 두루미류가 좋아하는 갯지렁이와 게가 많고 짱뚱어, 맛조개, 새꼬막, 참꼬막, 낙지, 키조개 등이 서식한다. 순천만으로 흘러드는 동천 하구 일대의 갯벌이 간척되어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는데, 겨울이면 수확이 끝난 논에 벼이삭을 주워먹기 위해 두루미 등 철새들이 즐겨 찾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순천만의 철새지킴이들과 생태해설사들은 겨울이 되면 흑두루미의 개체수를 일주일에 한차례씩 세고 있다고 했다. 올해는 월동초기에 860여 마리가 날아들었다가 현재는 720마리가 월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일일이 숫자를 다 셀수 있을까?

“흑두루미가 무리를 지어 기러기처럼 하늘을 날거든요. 한무리가 날아오르면 차례대로 편대비행을 하기 때문에 숫자를 세기가 그리 어렵지 않아요.” 철새들의 하루 일과를 두루꿰고 있다는 철새지킴이들의 설명이다.

현재 순천만에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된 새 가운데 33종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멸종위기 조류다. 흑두루미를 비롯해 검은목두루미, 재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검은머리갈매기, 민물도요, 큰고니, 혹부리오리 등 수천 마리의 물새가 월동한다. 봄과 가을에도 민물도요, 중부리도요, 청다리도요, 뒷부리도요, 알락꼬리마도요, 마도요, 개꿩, 흰물떼새, 왕눈물떼새 등의 도요물떼새가 시베리아에서 호주로 이동하는 중간 기착지로 순천만을 이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외 생태학자들에게 순천만의 흑두루미 서식지 보전사례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대표적인 모델로 거론된다. 순천만이 가진 생태·문화적 가치는 최근 열린 순천만 흑두루미 국제 심포지엄에서도 재차 확인됐다. 2014년 11월 26~29일 4일 동안 순천만 일원에서 열린 순천만 흑두루미 국제 심포지엄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6개국 22명의 국내외 생태전문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새벽에 흑두루미 잠자리와 먹이장소 등 현장탐방을 통해 순천만이 흑두루미의 최적의 서식지로 자리 잡았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순천만 보전 위해 전담부서 신설


▎순천만의 낙조는 아름답다. 너른 갯벌에 낙조가 황금빛으로 물들고 뭇 생명들이 하나 둘씩 잠들기 시작하면 순천만은 평안하고 따뜻해진다.
순천만이 생태적 가치를 발견하고 최근 몇 년 동안 이를 보전해온 데에는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들, 순천시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다. 순천시(시장 조충훈)에는 현재 국내 지방자치단체 어디에도 없는 부서를 꾸려서 유지해온다. 순천만보전과(과장 이기정)다. 순천만습지보호정책을 되돌아보고 순천만의 효율적인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방안을 모색하는 전담부서로, 순천시청이 아니라 순천만 입구인 ‘순천만자연생태관’ 1층에 입주해 있다. 이곳에는 정규직원 28명을 비롯해 생태해설사와 관리직원 등 모두 100여 명이 일한다. 순천만 습지보전 사업비로 2015년에 48억3600여 만원의 예산을 확보한 순천시의 핵심부서다.

순천만보전과 직원들에 따르면, 순천만의 생태적 가치는 1996년 순천시 도심을 거쳐 순천만으로 흘러드는 동천 하도정비를 겸한 골재채취사업 논란을 계기로 세상에 알려지기시작했다. 시민단체와 지역민들이 순천만의 갈대숲이 갖고있는 생태·문화적인 가치와 하구생태계가 갖고 있는 환경영향평가 등을 요구하면서 골재사업 허가 취소를 요구한 것이다. 1997년 전문가들에 의해 생태조사가 처음 실시됐고, 조사결과 국제적으로 희귀한 철새와 다양한 염생식물뿐만 아니라 갈대숲이 갖는 정화기능이 보고되면서 순천만의 생태적 가치가 재조명을 받게 됐다. 결국 1998년 순천만 골재채취사업은 취소됐고, 순천만은 2003년 해양수산부 갯벌 습지보호지역 제3호로 지정 고시되었다. 이후 순천만은 순천을 대표하는 생태자원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한다.

2004년에는 순천만의 입구에 순천만자연생태관이 개관했고, 2005년부터는 지역민과 시민단체, 순천시가 긴밀하게 순천만의 지속가능한 보전과 이용에 관한 다양한 정책의 필요성에 인식을 함께하고 정책을 공유하게 된다. 또 2007년에는 순천시와 환경운동연합이 순천만의 효율적인 보전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민관이 함께 순천만 습지 보전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순천만 보전의 결정적 계기는 2006년 람사르습지 등록이었다. 순천만이 국제적으로 희귀한 조류와 갯벌 저서생물, 염생식물 등 다양한 생물종이 풍부하여 국제적으로 중요한 생물 서식지로 보존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 과정에서 말 못할 우여곡절이 많았다. 람사르습지로 등록이 되면 협약을 지키기 위한 철저한 보전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영농을 하는 지역주민에게는 불이익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주민 설득작업에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순천만은 2006년 1월 20일 국내 연안습지로는 처음으로 순천만 갯벌(28㎢)과 보성갯벌(10.3㎢) 등 총 38.3㎢가 ‘순천만(Suncheon Bay)’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자연보호연맹(IUCN) 산하 람사르 사이트(Ramsar Convention, Site No. 1594)에 공식적으로 등록됐다. 람사르협약은 물새 또는 동식물 서식지로 인정되는 습지를 보호하고자 채택된 국제협약으로 줄여서 ‘습지에 관한 협약'이라고도 하는데, 람사르협약에 등록된 우리나라 습지는 현재 순천만과 창녕 우포늪, 신안 장도습지 등 총 19개소다. 순천만을 포함한 우리나라 서남해안 갯벌은 아마존하구, 북해연안, 미국동부해안, 캐나다동부해안에 이어 세계 5대 연안습지로 국제적으로 보전 가치가 높은 생태 자원이다.

람사르습지 등록 이후 순천시는 순천만을 자연생태공원으로 지정하는 한편 순천만갯벌습지보호 주변지역 773ha를 생태계보존지구로 지정해 난개발로부터 순천만을 보호·관리 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했다. 2009년에는 순천만에 날아드는 두루미를 알리기 위해 ‘세계두루미의 날 기념식과 워크숍’을 개최해 두루미 등 철새들의 보호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철새가 좋아하는 환경은 사람에게도 좋다

2010년부터 순천만의 습지 보호정책은 특히 흑두루미를 중심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우선 순천만 습지 보전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 뒤따랐다. 주민을 설득해 갈대숲과 가까운 곳에서 영업하던 민물장어 식당과 주거시설을 생태공원 바깥쪽으로 옮겨 철새들에게 최적의 월동지를 제공했다. 순천만에 갈대군락과 철새 탐방객 차량의 출입 제한조치를 취하는 등 환경 정비사업도 뒤따랐다.

순천시는 갯벌과 인접한 매립지와 농경지, 둔치 지역에 습지를 복원하고 흑두루미들이 쉴 수 있도록 무논습지 조성사업도 추진했다. 수확을 하고 난 빈 농경지에 물을 채워 조성한 4㏊가량의 무논은 흑두루미들에게는 최적의 휴식처를 제공했다. 철새지킴이들을 통해 무논이 두루미류의 휴식지 기능 외에 잠자리로도 이용하는 게 관찰됐다.

순천시는 흑두루미 등 철새들에게 먹이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갯벌과 인접한 농경지를 중심으로 2005년부터 ‘생물다양성관리계약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순천만 인근 농민들이 추수가 끝난 농지에 철새먹이 제공을 위해 볏짚을 그대로 놔두거나 보리를 파종하게 되면 시가로 보상해주는 제도다.

또한 전깃줄에 걸려 부상을 당하는 두루미를 보호하기 위해 새들이 날아드는 인안뜰을 ‘경관농업지구’로 지정해 농경지 안에 있는 282개의 전봇대를 모두 없앴다. 그래서 흑두루미가 날아드는 순천만 들녘에는 현재 그 흔한 전봇대가 하나도 없다. 이들 전봇대를 없앤 대신 경관농업지구 안의 수리시설에서 양수기나 농기구를 사용할 때에는 순천시가 모든 전기요금을 대신 부담해주고 있다.

경관농업지구에서는 2009년부터 흑두루미영농단이 친환경농법으로 벼를 재배해오고 있다. 순천시가 농민에게 영농 보상을 하고 농민은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연 50t가량을 철새 먹이로 비축하고 있다. 대략 인안 들녘에서 생산되는 쌀의 10% 수준이다. 비축한 벼는 겨울철에 매일 300kg씩을 주변 농경지에 뿌려준다. 앞서 철새지킴이 단원들이 아침마다 흑두루미들에게 제공하는 그 양식이다. 이러한 다양한 습지보호정책으로 매년 순천만에 날아오는 흑두루미 개체수가 증가한 것이다. 2013년 겨울에는 멸종위기1급이자 천연기념물 199호인 황새4마리가 관찰되기도 하였다. 흑두루미영농단은 지금은 ‘희망농업단’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순천시는 순천만을 전문적으로 모니터하고 해설할 수 있도록 순천만자연생태해설사도 적극 육성했다. 현재 35여 명이 활동하는데, 해양수산부가 인증한 정식 프로그램을 이수한 이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조별로 편성돼 날마다 흑두루미 생태를 모니터하고, 개체수를 확인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흑두루미들의 휴식처이자 잠자리인 갯벌과 무논을 관찰하고 관리하는 것도 이들 생태해설사다. 이 같은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흑두루미 개체수가 해마다 늘어나게 됐다고 한다. ‘한국두루미네트워크’ 이기섭 박사는 이와 관련해 11월 29일에 열린 ‘순천만 흑두루미 국제 심포지엄’에서 “과거 낙동강 지류를 따라 일본으로 이동하던 흑두루미의 이동경로가 최근 서해안으로 바뀌면서 순천만을 중간기착지로 이용하고 있어 순천만의 흑두루미 개체수 증가는 당분간 계속 될 것”이라며 흑두루미를 위한 순천시의 습지보전 정책을 높이 평가했다.

외지인들이 보기에 순천 사람들의 흑두루미 사랑은 유별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하다. 순천만에서는 사람보다 철새가 먼저인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황선미 순천만보전과 습지생태분야 담당자는 “흑두루미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은 사람에게도 좋다”고 말했다.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자연과 시간이 만든 ‘명작’

겨울의 순천만은 철새 탐조뿐만 아니라 경관이 좋은 관광명소이자 아름다운 생태여행지다. 갈대군락이 조성돼 아름다운데다 갯벌을 지나 바다로 나가는 선상체험과 갯벌체험에 가족끼리 먹는 영양 좋은 짱뚱어탕이 그만이다. 이 때문에 2006년 한국관광공사는 순천만을 국내 최우수 경관 감상형 관광지로 선정했고, 2008년에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제 41호’로 지정했다. 2011년에는 세계적인 여행안내서 ‘미슐랭 그린가이드:한국편’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로 선정돼 한국을 대표하는 생태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순천시는 2011년부터 ‘순천만자연생태공원’을 유료화했는데, 2013년만 해도 23만 5천여 명이 찾아 입장료 수입만도 30억원에 이르렀다.

12월 1일, 아침부터 간간이 뿌리던 비가 진눈개비로 바뀌었다. “1년에 몇 번 없는 날씨”라는 궂은 날에도 순천만을 찾은 사람은 많았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체험학습으로 순천만을 찾은 학생들도 있지만 관광버스를 타고 온 외국 관광객도 눈에 띄었다. 겨울 순천만의 멋진 경관을 만끽하려면 갯벌을 조망하기 좋은 ‘용산 전망대’에 올라가서 봐야 한다고 했다. 산줄기가 용이 누워 있는 형상인 용산 전망대는 산마루가 여러 개 있는 바닷가의 낮은 산으로 순천만 입구에서 걸어서 40분 거리에 있다.

순천만 갯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용산전망대에 서면 순천만의 갯벌과 갈대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앞에 펼쳐진 갯벌은 바다로 개방된 서해안 여느 갯벌과는 다른 모습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여수반도와 고흥반도가 좌우를 에워싸고 있어 바다로 나가는 입구가 좁고 내부는 넓다. 마치 거꾸로 놓여진 ‘호리병’과 같은 모습이다. 왼쪽에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갯벌과 오른쪽의 갈대군락과 논밭, 나지막한 야산이 함께하는 경관은 순천만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경관이다. 순천만을 구불구불 잇는 해안선의 총 연장은 40.45㎞나 된다고 한다.

순천만 갯벌의 면적은 22.6㎢이고 이 가운데 갈대군락이 5.4 ㎢이다. 갈대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왕성한 번식력을 보이는데 특히 순천만 갈대군락은 동그란 원형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순천만은 철새를 만나기에는 겨울이 좋지만 늦가을에는 화사한 붉은색 칠면초 군락과 황금빛 갈대의 물결, 검은 갯벌이 만나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사시사철 순천만 전망대에서는 바닷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S자 모양의 긴 갯골과 동글동글 갈대군락이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S자 모양의 갯골은 특히 일몰이 다가오는 시각이 될수록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뽐낸다. 도랑처럼 깊이 패인 갯골이 시나브로 눈 앞에서 바닷물에 점점 잠겨 사라져가는 모습이 일품이다.

용산전망대에서 연신 탐조경을 들여다보고 있던 40대 부부를 만났다. 멀리 부산에서 순천만을 보기 위해 왔다는 그들은 “40분간 거센 바람을 헤치고 걸어왔는데, 힘들어도 오길 잘했다. 눈앞에 보이는 경관이 정말 아름답다”고 했다. 찬바람에 상기돼 붉어진 볼의 소녀는 탐조경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대자연과 시간이 만든 광대한 갯벌이라는 명작 앞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감탄을 연발했다.

순천시는 2013년 천혜의 관광자원인 순천만과 연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해 44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아 성공적으로 치른 것이다. 순천시는 이를 발판으로 ‘순천만정원’을 영구 개장키로 한다. 순천만습지는 생태계의 보고로, 순천만정원은 체험형 관광지로 성장시켜 관광도시와 생태도시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습지와 정원을 도시의 테마로 삼아 대한민국 ‘에코수도’로 도약한다는 야심 찬 목표다.

순천시는 주민참여형 습지보전과 생태관광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순천만을 관리해나가는 한편으로 ‘순천만’을 세계적으로 브랜드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발맞춰 순천시의회도 2014년 4월 순천만정원과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입장료 징수액의 30% 이내에서 순천만 주변마을을 지원하고 주민들이 순천만 정화활동과 모니터링에 참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순천만 습지 보전 관리 및 지원사업’을 조례로 제정하는 데 성공했다.

천학(千鶴)이 날아드는 도시


▎순천시는 순천만을 효율적으로 보전하기 위해 ‘2023 순천만 습지보전 중장기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 순천시 일대를 도심공간, 전이공간(순천만공원), 완충공간, 절대보전공간(순천만)으로 구분해 순천만을 보전해 나가고 있다.
이기정 순천만보전과 과장은 “현재 순천만은 동천을 따라 순천만국제습지센터, 순천만정원, 봉화간둘레길, 순천 원도심(아랫장, 문화의 거리, 웃장국밥) 등 도심과 연결하는 생태경제축의 시발점이 됐다”며 “순천만을 효율적으로 보전하고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23 순천만 습지보전 중장기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순천시는 순천시 일대를 도심공간, 전이공간(순천만공원), 완충공간, 절대보전공간(순천만)으로 구분해 순천만을 보전해 나가고 있다. 이를 위해 순천만자연생태공원 탐방객들의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공간을 원래의 내륙 습지로 복원하고 장기적으로는 현재 탐방객들의 거점이 되는 순천만 자연생태관을 순천시 도심과 가까운 순천만정원으로 옮기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사업들이 착착 진행되면 순천만과 순천만정원에 초중고 수학여행단과 중국 관광객들이 줄지어 찾아오는 생태관광지로 각광받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순천만은 번잡한 도시의 삶에 지친 이들에게 분명 매력적인 여행지다. 순천만의 너른 갯벌에 낙조가 들면 부지런히 먹이를 뒤지던 흑두루미 가족도 하루를 마치고 갯벌에서 잠자리에 든다. 뭇 생명이 하나 둘씩 잠들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 탐조경으로 철새들을 모니터하고 모이를 주던 철새지킴이들도 잠을 청한다. 그렇게 한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생명의 땅이 순천만의 모습이었다.

순천만에 첫눈이 내리던 12월 1일, 순천만 사람들은 누구랄 것 없이 입을 모아 천학(千鶴)을 소망했다. 집안의 곳간이 불어나는 것보다 해마다 늘어나는 흑두루미 손님들에게 더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순천만 사람들이었다. 월동 중인 7백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가족과 이웃들을 더 데려와 1천 마리로 불어나는 그날 순천은 ‘천학의 도시’이자 생명의 도시로 다른 고장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201501호 (20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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