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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호의 ‘조선왕조 스캔들’(5)] 인목대비 김씨, 재물을 탐하다 

원래 친정은 큰 부자 아니었으나 입궁 후 재산 크게 불려 … 지도자는 인정·이익에 매몰되지 않는 ‘심치체(審治體)’ 지켜야 

신명호 부경대 사학과 교수
인목대비 김씨는 19세 되던 1602년(선조 35) 7월 13일 선조와 혼례식을 치르고 입궁했다. 당시 관행대로 친정에서 보내준 유모와 몸종이 인목대비와 함께 궁에 들어갔다. 아울러 친정 부모로부터 자기 몫의 재산도 상속받았다. 하지만 인목대비의 친정아버지 김제남은 큰 부자가 아니었기에 상속 재산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인목대비는 입궁 후 큰 재산을 확보했다.

조선후기 왕비는 입궁 후 대략 1천 결(結) 정도의 왕실 토지를 받았다. 1결은 산출된 곡식이 지게로 약 100짐 정도 되는 규모의 토지로 평수로는 대략 5천 평, 쌀 수확량으로는 300말 정도로 추산된다. 따라서 1천 결이면 평수로 약 500만 평, 쌀 수확량으로 30만 말 정도 된다. 다만 왕비는 토지 소유권을 받는 것은 아니고 세금을 거두는 권한을 받았다.

에 의하면 왕자나 왕녀 등에게 하사하는 궁방전(宮房田)에서 걷는 세금은 1결 당 쌀 23말을 넘지 못한다고 했다. 이에 준한다면 1천 결의 토지에서 거둘 수 있는 세금은 최대 2만3천 말에 달한다. 인목대비는 입궁 후 아무리 낮춰 잡아도 매년 쌀 1천여 가마 이상을 확보한 재력가가 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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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호 (201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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